복지와 재정적자가 최근 금융불안정의 원인이라는 조선일보 기사.
복지가 재정파탄과 청년폭동을 가져왔다는 조선일보 사설.

최근에 본 기사 중에서 최악이다.

1.
요 며칠 발생한 전세계적 주가폭락은 재정적자를 줄이기로 미국의 여야가 합의한 후에 벌어졌다.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법은 (증세에 대한 얘기 없이) 정부 지출을 줄여서 그렇게 하겠다는 거다. 복지는 축소될 수 밖에 없고, 대규모 경기 부양도 물건너 갔다. 멀쩡하던 주식이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더니만 폭락해 버렸다.

복지와 재정적자가 금융불안정의 원인이라면, 왜 이 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데, 불안하던 금융이 안정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벌어지나?

미국발 위기의 원인이 재정적자가 아니라 다른 데 있기 때문 아닌가?

2.
미국 공화당과 조선일보는 2008년 경제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정부 개입을 확대한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가 위기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이 얘기한다.

보수주의자들이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소리만 한 것이 아니다. 정부의 개입을 줄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었으므로 확장정책을 버리고 긴축을 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와 반대로 크루그만등 케인지안들은 애초 미국 정부가 투입한 경기부양책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추가로 재정을 투입하여 경기를 부양하지 않으면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물고, 총수요가 모자라서, 다시 불황(즉, 더블딮)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경기과열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때라고 이들은 말하였다.

한 쪽은 정부의 개입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다른 한 쪽은 정부의 개입이 너무 작아 효과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여왔다. 정부의 지나친 경기 부양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주장과 정부의 과소 개입이 경기 회복을 늦춘다는 주장이 대립하였다. 둘 다 뭔가 나빠질 것을 걱정하지만, 전자는 경기 과열을 후자는 경기 침체를 걱정했다.

그래서 현재 상황이 어떤가?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높고, 성장률이 회복되는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월가가 걱정하던 인플레이션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갑자기 모두가 더블딮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재정적자가 문제라는 월가의 주장보다는, 성장의 둔화, 일자리 부족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크루그만과 드롱의 주장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현실과 더 잘 맞아떨어진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 잘 모르면 두 가지 진단을 같이 소개하는 성의라도 보여야지, 도대체 왜 조선일보는 이 시점에서 재정적자가 만악이 근원이라는 식의 엄한 소리를 하는 걸까?

3.
재정적자는 명박정부에서도 상당히 증가하였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명박정부가 빚을 내서 상당히 큰 재정을 토목과 기타 사업에 투입하였다. 2008년 이후 명박정부의 재정투입과 토목공사가 당시의 위기를 비교적 고통없이 넘기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이 블로그에서도 한 두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조선일보가 하는 주장의 한국판은 4대강 사업 때문에 금융불안정이 발생했다는 거나 마찬기지다. 과연 그런가?

심지어 조선일보의 어떤 기사의 제목은 "복지 경쟁으로 망한 美경제, 한국도 똑같은 길 가고 있다"다. 도대체 무슨 놈의 복지 경쟁을 미국에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들라면, 세금 깎아주기 경쟁일거다. 미국 재정적자의 큰 부분은 바로 부시의 부자 감세 때문이다.

명박 정부가 한 일도 부자 감세. 국방비 지출은 늘리고, 세금은 줄여서 재정 파탄을 초래한 부시와 마찬가지로, 지출은 늘리고 세금은 줄여온게 바로 명박정부다. 다음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박근혜도 지난 대선에서 "줄푸세." 세금 줄이자가 공약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감세를 철회한다니까, MB노믹스가 파탄난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한게 조선일보 아닌가?

조선일보의 위 보도는 위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없이 복지 확대만 막아보겠다는 이데올로기의 발로로 밖에 안보인다.

4.
복지가 분수에 비해 지나쳤다고 얘기할 수 있는 국가는 그리스 정도.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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