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연말이다. 사는게 팍팍해진 친구들은 얼굴 보기도, 소식 듣기도 쉽지 않다. 얼마 전 고교 동창들이 망년회 도중 미국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 자리에 나온 멤버들은 모두 그럭저럭 사는 친구들이다.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들을 수도 있지만, 많은 포스팅이 현재의 삶이 그리 나쁘지 않은 친구들이 올리는 것이다.


생애주기에서 386들은 지금이 소득 곡선의 피크 타임이다 (구체적이 한국 자료는 본 적이 없지만, 미국 자료로 추정하면 그렇다는 것). 앞으로의 소득은 직업에 따라 격차가 있겠지만 5년 정도 지금과 비슷하다가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된다. 아마 소식이 들리는 친구들은 소득의 피크타임을 즐기는 녀석들이고, 들리지 않는 친구들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 가장 출생아가 가장 많을 때의 연출생아수가 대략 100만이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시절 소위 일류대의 정원은 지방의대까지 모두 포함해서 2만명 내외, 조금 넓게 좋은 대학을 정의해도 5만명을 넘지 않는다. 내가 주변에서 보고 듣고 아는 삶은 인구 코호트 중 학업성적 상위 5%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의 바램을 가장 잘 표현하는 구호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일 것이다.


그런데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친구들의 삶의 궤적은 어떻게 되는지? 가끔 신문에서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대기업을 다니다가 은퇴를 앞두고 있는 중상층의 삶에 대한 르뽀는 보이지만, 고교 성적 중간 이하의 인구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삶이 어떤지에 대한 구체적인 르뽀는 찾기 어렵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가 소위 386세대 고교 학급의 동기생들을 추적하여 그들의 삶의 궤적을 분석하는 것이다. 서울의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의 강북 학급 1개, 강남 학급 1개, 지방 대도시 학급 1개, 지방 중소도시 학급 1개 정도를 선정해서, 고교 성적 상위권부터 하위권까지, 가정 환경이 부유했던 층부터 빈곤했던 층까지, 고교 졸업 후 어떤 삶의 경로를 거쳐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인터뷰하고 이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NLSY니 PSID같은 데이타들이 있어서 양적 분석을 통해 그 경로를 알 수 있지만, 한국은 내가 알기로 그럼 데이타가 없다. 노동패널이 오래되었지만 코호트 분석을 하기에는 표본수가 작다.


이 프로젝트는 고교 졸업 후 약 30년, school to work transition과 노동 시장 내 intragenerational mobility가 일어나는 생애주기에서 어떤 요인들이 그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지, 어디에 살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는지, 같은 반에 속했던 사람들의 현재 처지는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학력은 얼마나 큰 결정 요인인지, 가족 배경은 얼마나 크게 그들의 삶을 결정하는지, 어떤 변수들이 예상치 못한 shock으로 작용하는지, 그런 shock에 대한 버퍼는 무엇이 있었는지. Shock과 사회이동의 과정에서 가족관계--혼인관계, 자녀와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만간 하락할 소득에 대한 대비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불평등을 줄여야겠다는 생각, 복지에 대한 우호적 생각은 공동체 의식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같은 반에서 동문수학한 친구들의 처지가 어떤지를 이해하는게 지니계수나 빈곤율보다 정책결정과 사회적 담론에 더 필요할 것이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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