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어느 누구도 한 가지 전문적인 활동 영역을 갖지 않고 저마다가 모두 원하는 분야에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전체로서의 생산이 사회에 의해서 규제됨으로써 나로서는 결코 사냥꾼이나 고기잡이, 또는 양치기나 비평가가 되지 않고도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또 내일은 저 일을 하는 식으로 아침엔 사냥을 하고, 오후엔 물고기를 잡으며 또 저녁에는 가축을 몰고 저녁 식사 뒤에는 비평에 종사할 수가 있다."
토마스 피케티, 21세기의 자본
"거의 모든 일이 자동화되고, 각 개인은 교육, 문화, 건강 등을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 최대한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이상 사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선생이었다가 학생이 되고, 독자였다가 필자가 되고, 관객이었다가 배우가 되고, 환자였다가 의사가 될 수 있다. 제2장에서 얘기했듯,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이러한 사회로 가고 있다." (p.308, 영문판)
피케티가 맑스를 몇 가지 측면에서 비판하지만, ideal society의 모습은 베낀 듯.
자본주의의 발전은 평생에 걸쳐 직업의 자유가 사실상 박탈된 봉건 사회, 95%가 농민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능력과 취향에 관계없이 평생을 농민으로 살다 가던 사회를 능력과 취향과 기회에 따라 다양한 직업의 자유를 누리는 사회로 바꾸었다.
생산력이 더 높아지면 인생의 오랜 세월을 젊을 때 선택한 몇 가지 직업에 속박되어 사는, 평생에 걸쳐 몇 가지 직업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서 관심과 취미의 변화에 따라 직업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사회로 변화될 것이라는게 맑스와 피케티의 공통된 전망. 이 전망이 맞을지 틀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세대 내 직업 이동률의 증가" 내지는 "줄어드는 직업의 중요성"이 이상 사회의 중요 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