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기고글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를 진보측에서 가지고 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 


예전에 안티조선이 한창일 때, "상식"을 무기로 내세워, "꼴보수" 프레임으로 자유주의자를 반공보수로 부터 분리해내는 프레임이 있었는데, 이제 그 정도로는 통하지 않음. 상식 정도의 낮은 수준이 아니라, 좀 더 고차원적인 자유주의의 이념적 차원에서 보수의 분리를 견인할 수 있어야.   


진보는 보수의 종북, 호남-친노 분열 프레임에 계속 당하고 있음. 종북몰이가 끝나니 이제 친노-호남 분열몰이가 보수 언론의 꿀잼 아이템.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니 뭐라하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지만 진보는 교과서국정화 등 보수의 분열 이슈가 존재하는데 이를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됨. 보수의 진보 분열 프레임은 작동하고, 진보의 보수 분열 프레임은 없는 듯. 자유주의를 진보의 것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프랑스 혁명의 이념도 자유,평등,박애. 자유는 진보의 이상임. 


...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각자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사회를 의미했을 것이다. 간혹 박 대통령 당신의 꿈만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지만, 나는 이 구호가 상당히 괜찮은 슬로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 


공산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가 꿈꿨던 이상적인 사회는 “어느 누구도 한 가지 전문적인 활동 영역을 갖지 않고 저마다가 모두 원하는 분야에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사회”로,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또 내일은 저 일을 하는 식으로 아침엔 사냥을 하고, 오후엔 물고기를 잡으며, 또 저녁에는 가축을 몰고, 저녁식사 뒤에는 비평에 종사”하는 그런 사회다. 마르크스가 그린 이상적인 사회는 전체주의적 통제를 일삼는 사회가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욕구를 이루는 데 제약이 없는 사회였다. 


달리 말해 꿈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어도 그 꿈을 이루는 데 별문제가 없는 사회다. ...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도 비슷한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제시한다. ... 피케티는 고도 경제성장이 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여긴다. ...


인류 사회는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미래를 전망하는 방법은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이다. 해방 후 한국인의 80%가 농림어업에 종사했지만, 1980년대에는 그 비중이 27%로, 지금은 6%로 줄었다. 19세기 미국 인구의 95%가 농민이었지만, 현재는 2% 미만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한다. 경제발전은 구성원 대부분이 능력과 취향에 관계없이 평생을 농민으로 살던 사회를 기회에 따라 다양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본주의 산업사회로 바꿔놓았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사실상 박탈된 농업사회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산업사회로의 이행을 가능케 했던 힘은 산업혁명으로 촉발한 급속한 경제성장이다. ...


최근 논란이 됐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도 인류 사회가 경제발전과 더불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여러 증거를 제시한다. ... 경제발전과 더불어 인류가 영아 사망의 속박과 계급 조건의 제약으로부터 탈출해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 바로 디턴이 얘기하는 ‘위대한 탈출’이다. ... 


경제발전과 성장이 위대한 이유는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여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나이가 많아서, 남들보다 두뇌가 뛰어나지 못해서, 성적 정체성이 남들과 달라서 등등의 이유가 삶의 제약이 되는 일이 점점 적어지는 사회로 나아갈 때, 그래서 모든 개인이 꿈을 이루기 쉬운 사회가 될 때 우리는 이상적인 사회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이 기준으로 볼 때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은 무척 우려스럽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직업 선택의 자유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 집권 여당의 김무성 대표는 올해 초 심지어 “자유를 유보해서라도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5·16혁명이었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경제성장은 ‘위대한 탈출’이 아니라 ‘위대한 속박’이 될 판이다.


자유를 유보하는 성장이 아니라 자유를 확대하는 경제성장, 이게 국가 지도자의 꿈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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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꼬마 2015.11.27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진보 중에서 자유주의를 수용할만한 집단이 얼마나 될까요? 자유주의 자체를 보수의 가치(강자의 횡포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보는 관점만 강하지, 인권이나 자아실현이라는 진보적인 관점에서 보는 집단 자체가 적기는 합니다.

    DJ나 YS 계열 정치인들은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이분들은 거의 사라지신 것 같고, 486은 박정희 키드답게 진보를 하면 소비에트와 북한, 중국을 표준으로 삼으시며, 보수를 하면 박정희와 이승만을 표준으로 삼는 진정한 자유주의의 적대자들이신 것 같습니다.

    결국 그 다음 세대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 바이커 2015.11.27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제라도 얘기를 시작해야죠.

      과거에 진중권 등이 "상식"으로 자유주의 비슷한 걸 얘기하던 논리는 이론적 뒷받침이 약했거든요. 이론적 기반이 약하다 보니 생산성 담론에 무참히 무너져버렸어요.

      학계 사람들을 만나면, 야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욕하지만, 최근 보수의 이념적 승리는 지적 경쟁에서 진보진영, 특히 학계의 패배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상식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화된 이념으로써, 자유주의와 개인의 권리, 자유주의에 기반한 평등을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 평등, 박애에서 평등은 그냥 같다 붙인게 아니라 자유주의에 기반해서, 자유주의를 확장해서 나오는 얘기니까요.

  2. 꼬마 2015.11.28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은 깊이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