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기고문. 


... 이재용 부회장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한국 부자 50인 중 3위다. 총재산이 7조 원에 달한다. 그는 1990년대 아버지로부터 60억 원을 증여받고 16억 원의 증여세를 낸 뒤 나머지 돈으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사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면서 재산 증식에 나섰다. ... 1위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고, 2위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다. 4위는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회장, 5위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다. 이 중 온라인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의 권혁빈 회장을 제외한 4명은 모두 기업 창업자의 자손이다. ... 


세계 슈퍼리치 관련 자료를 수집해 정보를 제공하는 ‘Wealth-X’라는 비즈니스 서비스 회사가 있다. 이 회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산 350억 원 이상 부자를 추출해 그들의 특징을 연구한 결과가 2016년 초 학술저널 ‘인텔리전스(Intelligence)’에 실렸다. ... 이 자료를 보면 한국 슈퍼리치가 다른 나라 슈퍼리치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높은 교육 수준이다. ... 한국 슈퍼리치 가운데 대학 교육을 받은 이는 88%에 달한다. 세계 평균인 70%보다 18%p 높다. 같은 항목에서 미국은 80%, 일본은 69%이다. 핀란드와 노르웨이는 각각 48%와 60%에 불과하다. 각 국가에서 순위 10위 이내 대학이나 인지능력 상위 1% 대학을 엘리트 교육으로 정의하고 슈퍼리치가 그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은 비율을 따지면 한국은 엘리트 교육 출신자가 78%로 독보적으로 높다. 세계 평균은 32%, 미국은 34%이다. MBA 학위를 가진 한국 슈퍼리치도 29%로 세계 국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세계 평균은 16%이다. 미국은 21%, 이웃 나라 일본은 7.5%에 불과하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노력해 자수성가했다는 성공 스토리는 이제 한국에서는 환상이다.  ... 


조너선 와이와 데이비드 링컨은 슈퍼리치의 자산 형성 과정을 자수성가, 상속, 상속을 통한 부 증가 등 3가지로 나눴다. 한국은 자수성가 비율이 33%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세계 평균은 66%이다. 한국에서는 자산 350억 원 이상 슈퍼리치 3명 중 1명만 자수성가형이지만, 다른 나라는 3명 중 2명이 자수성가형 부자인 셈이다. 특히 미국은 그 비율이 75%에 달하고, 일본은 57%이다. 한국 슈퍼리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부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 상속과 증여로 부자가 된 것이다. 


한국 부자들이 자수성가형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자산 1조2000억 원(약 10억 달러) 이상인 ‘슈퍼리치 중 슈퍼리치’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 세계에서 자산 10억 달러 이상 부자 중 30%가 이른바 ‘금수저’ 출신으로 증여나 상속으로 부자가 됐다. 창업으로 거부를 축적한 비율은 28%, 월가 등 금융 부문에 종사하며 자산 10억 달러 이상을 모은 비율은 21%이다. 그런데 한국은 상속이나 증여로 10억 달러 이상 부자가 된 비율이 74%에 달했다. 미국은 이 비율이 29%, 일본은 19%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슈퍼리치가 되기 어렵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재벌에 대한 형사처벌 시도가 있을 때마다 늘 그랬듯 국가 경제 손실과 경제활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슈퍼리치가 될 수 없는 사회에서 높은 기업가 정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가 세습되는 사회의 경제활력은 낮다. 


60억 원을 증여받아 7조 원의 자산을 일군 것은 경제 활력을 높인 행위였던가? 

Posted by sovid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