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인문학적 글쓰기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소설, 영화, 노래가 가지는 역사적 기억의 힘>이라고 부를려니 너무 길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 작가의 소천 소식을 접하고 다시 떠오른 생각이다. 1970년대를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사람들은 조세희 소설의 기억 또한 어떤식으로든 가지고 있을 거다. 저 역시 마찬가지다. 집에 책이 적지 않은 편이었고, 어려서부터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읽었다. 방목형 독서 지도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선친께서 조금 더 커서 읽으라고 만류했던 책이다. 지금은 읽어도 그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할거라고. 자라면서 유일하게 받았던 독서지도가 이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과 상황을 집단적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집단적 기억은 역사와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서 유지되는게 아니다. 역사의 집단적 기억은 소설, 영화, 노래에서 쓰여지고 각색되고 재창조되면서 유지된다. 소설, 영화, 노래의 소재가 되지 못하는 역사는 집단적 기억에서 사라진다. 희빈 장씨를 온국민이 아는 이유는 아쉬우면 반복되는 드라마 때문이지, 그 때의 역사가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기억에서 사라진 역사의 사례 중 하나가 스페인 독감이다. 1900년대 초반의 가장 강력한 전염병이었고, 사회학의 파운딩 파더 중 한 명인 막스베버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염병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18억 인구의 2~5%가 죽었다고 추정되는 엄청난 전염병이었지만, 전염병하면 중세의 페스트를 떠올리지 불과 100년 전에 발생했던 스페인 독감을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 전염병 창궐 이후 스페인 독감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인양 모든 언론에서 보도하기 전에는.  

 

1차 대전의 마지막은 스페인 독감과 함께한 전쟁이었다. 1차 대전 사망자가 1,500만명이지만, 스페인 독감 사망자는 그 세 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도 14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독감의 기억이 전쟁 기억 중 큰 부분이 되어야 하지만, 1차 대전은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기억된다. 참호 속에서의 추위와 배고픔, 일진일퇴의 지리한 공방으로 기억되는 1차 대전은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힘이다. 캔사스시티에 가면 1차대전 기념관이 있는데, 여기도 여러 무기의 개발과 참호의 비참함은 잘 묘사하고 있지만, 스페인 독감은 상기시키지 않는다. 불과 10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스페인 독감을 집단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소유권을 가진 주장은 아니고, 어디서 읽은 내용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의 집단적 기억은 허구적 창작의 재현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조세희의 <난쏘공>은 70년대 빈곤을 현대에도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글이다. 조세희 선생의 명복을 빈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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