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친서민

정치 2009. 9. 30. 03:52
명박통의 중도, 친서민 노선 덕분에 지지율이 크게 올라가고, 이 이미지를 명박통에 뺏긴 민주당에 대한 아쉬움 내지는 비난도 많다.

이 노선의 실질 효과에 대해서 약간의 의문이 있다. 작동 메카니즘에 대한 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배적인 설명은 중도, 친서민 노선이 진짜로 먹힌다는 거다. 사람들의 니즈가 바로 이것이고 명박통이 이 노선을 천명하자 마자 쏠렸다는 것. 이 경우 민주당이 이 노선을 뺏긴 건 실책이 된다.

이 분석이 옳다면, 명박정부의 중도 친서민 노선이 실질적인 친서민적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경우 조만간 말짱 꽝으로 돌아갈 수 있다. 대부분의 분석과 비판은 이 가설에 기반한 듯 하다. 오마이뉴스 한겨레의 비판도 온통 이것이다. 친서민 외치면서 서민 예산은 감축하는 모순에 대한 것.

결국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몰라도 이 경우 명박정부의 노선 전환은 (나같은 사람은 설사 배가 약간 아프더라도) 서민층으로써는 환영할 일이다. 친서민 노선경쟁 붙어서 손해볼 서민이 누가 있겠는가.

두 번째 가설은 친서민 노선이 실질적 니즈를 반영했다기 보다는 수도권 중산층의 핑계거리로 작용했을 가능성이다. 경기의 회복과 수도권의 지가/집값 상승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한 중상층이 친서민 노선으로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경제적 이득에도 불구하고 명박통과 그 노선을 지지하기 무척 꺼림직하지만 친서민이라면 봐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 이득과 심리적 편안함을 결합하여 서민층이 아닌 수도권 중상층이 명박정부를 지지할 수 있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써 친서민 노선이 주로 기여하게 될 가능성. 회창옹이 과거에 천명했던 "따뜻한 보수", 부시의 "compassionate conservatism", 영국보수당의 "박애(fraternity)"를 "친서민"이라는 친숙한 구호로 내건 셈이다. 이 구호의 대상은 "서민"의 물질적 요구가 아니라 불평등의 증가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중상층"의 도덕적 안위다.

후자가 맞을 경우 명박정부로써는 실질적인 친서민적 결과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수도권 중상층의 경제적 이득을 지켜주는 것이 현재의 지지도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이기 때문에 현재의 정책 노선, 예산 배정 등에 변화를 주어서는 안된다.

핵심 지지기반을 수도권 중상층으로 삼는다면 4대강 사업을 통한 이익을 호남을 포함한 지방 세력과 일정부분 공유하고, 중대선거제 도입을 통한 영남잠식을 허락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된다. 호남 배제를 통한 영남 권력 유지라는 메카니즘이 파괴되었는데, 반대세력이 결집될 수 있는 불씨를 살려둘 필요가 없다.

어떤 효과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계층별 지지율의 변동에 대한 시계열적 비교와 수도권 중상층에 대한 FGI 등을 통한 정성조사가 필요하겠지. 그냥 찍으라면 후자라고 생각된다.


ps. 공주님이 아닌 명박통의 대선진출이 거시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 경제적 갈등 축의 이동을 상징하는 정치적 사건이 아닐지.

pps. 후자가 맞다면 "우리가 진짜 친서민이에요" 노선은 명박통의 무늬만 친서민 노선을 깰 수 있는 위력이 전혀 없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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