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과 그 판단

기타 2013. 10. 1. 12:34

버클리대에서 논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고 꾸짖은 조국 교수의 케이스를 보니 내 경험이 하나 생각난다.


지금은 저널에 출간된 manuscript 상태의 논문을 심사받는데, 논문 수정을 요구하면서 에디터가 요청한 것 중의 하나가 따옴표를 쓴 직접 인용을 대폭 줄이라는 것이었다. 인용표기 다 했으니 눈 피곤하게 따옴표 끌어다가 직접 인용하지 말고 문장을 약간 바꿔서 내가 설명하는 것처럼 바꾸라는 것. 이전 성과를 정리하는 부분에서 특별히 직접 인용할 필요가 있지 않는 한, 대부분의 저널에서 직접 인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당근 에디터 요청을 받아들여 단어 몇 개 바꾸고 따옴표 없앴다.


안그래도 한국에서 표절 기준이랍시고 제시한 6 단어 연속 어쩌고 하는 걸 보고 실소를 지은 적이 있다. 학술 논문은 인용의 정확성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부가가치가 있냐가 더 중요하다. 논문의 독창성이 6 단어의 연속성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기계적 판단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양반들. 제록스 복사기 수준의 표절을 제외한 논문 내 몇 문장의 인용을 둘러싼 표절시비는 없으면 좋지만, 논문의 가치를 좌우하는 이슈는 아니다. 


더불어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학계, 학교의 조직 운영이 여타 조직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학교는 self governance (또는 shared governance)라는 거다. 학계 내에서도 다른 분야 논문의 독창성, 가치,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이럴 수 밖에 없는게, 대부분의 학술 내용의 가치를 그 분야 전문가를 빼고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모든 저널의 논문 심사는 같은 전문가들끼리 돌려보며 판단하는 peer review 시스템을 이용한다. 위에서 누군가가 판단하는게 아니라 지네들끼리 합의하는 시스템. 


테뉴어를 결정할 때도 학과를 넘어서 단과대나 대학 전체 상급 기관에서 판단할 때는 같은 분야, 다른 학교의 명성있는 전문가들의 판단인 external revie에 크게 의존한다. 그 동네 대가들이 이 정도면 충분히 학계에 기여한 바가 있다라고 판단하면 통과, 6-8명 중 2명이상이 부정적이면 테뉴어를 받기 어려워진다.


이런 특징 때문에 대학은 학과 내에서 몇 사람이 작당하면 매너리즘, 정실주의에 빠지기도 쉽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5-10년에 한 번 정도씩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하여 학과나 연구소 진단을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구? 자신의 영역이 아닌 분야에 훈장질 하는 걸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참 남는 거 없는 장사다. 



ps. 요즘은 중앙대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논리와 기업조직논리를 대학에 도입하여 변화를 주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 방식은 매너리즘과 정실주의에 빠진 대학을 변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지속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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