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철이 오빠"

기타 2014. 10. 29. 02:29

그러니까 89년, 총학생회 간부로 사무실에서 죽돌이하던 어느 가을 날이다. 


전화를 받았더니 흐느끼며 중얼거리는 앳된 목소리가 들린다. 총학생회 전화는 경찰에서 모두 도청하던 시절이라 음감이 매우 안좋았다. 뭐라구요 하고 되물으니 울음을 삼키며 묻는다. 


"해철이 오빠 괜찮아요?"


느닷없이 이런 전화가 여러차례 총학생회로 걸려왔다. 학교에서 짤리지는 않는지, 철학과 사무실은 어디인지, 담당 교수님은 누군지, 학교에 오면 해철이 오빠를 만날 수 있는지 등등.


신해철이 대마법 위반 혐의로 잡혀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온 직후다. 


뽕쟁이와 무뇌아 여학생의 전화 공세를 불평하고 있자니, 철학과 친구들이 신해철 얘기를 들려준다. 87년 가투에서 앞장서서 화염병도 던지고 했다는 거다.


당시 나는 이를 젊은 시절 사람이 얼마나 빨리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한 증거로 받아들이며 씁쓸해했고, 나중에는 술자리 가십거리로 요긴하게 써먹으며 키득거렸다.


대중연예인의 사회적 효과가 그리 단순하지 않고, 대마초에 대해 조금은 다른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훨씬 세월이 흐른 후다. 


모르겠다. 술집 가십거리로 삼은 것에 대한 미안함인지, 아니면 그의 속시원한 사회적 발언을 더 이상 듣지 못할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그도 아니면 갑자기 가버린 동시대 비슷한 코호트 셀레버리티, 그것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소와 시간을 공유했던 연예인에 대한 감정이입인지.


그의 음악을 좋아해 본 적도 없는데, 그냥 좀 허하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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