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 이종석 칼럼: 박근혜 정부가 끝장낸 것들


외교 까막눈인 입장에서 소설을 쓰자면, 사드유치-개성공단폐쇄로 박근혜 정부는 두 가지 전략적 선택을 하였다. 모두 한국 외교의 틀을 완전히 흔드는 거대한 선택이다. 


1. 친미근중에서 친미로. 신냉전시대에 한미일 동맹의 넘버3로. 


2. 평화통일(교류협력과 평화를 통한 통일)에서 통일평화(북의 붕괴를 통한 통일 후 평화)로 노선 변화. 


황당한 건, 이런 거대한 선택이 전략적 고민 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분히 즉흥적인 결정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좀 따져(서 소설을 써)보자. 우선 첫 번째 문제부터. 


다들 알다시피 미국은 외교의 중심을 아시아로 옮기는 전략을 택했다. 대중국관계가 외교의 첫 번째 과제다. 미일동맹에 한국까지 붙여서 미일한 동맹으로 만드는게 그들의 목표다. 미-일 동맹은 상수지만, 한국은 변수였다. 미국 편에 설지, 중국 편에 설지, 아니면 박쥐로 남을지 확신이 없었다. 


중국과 척지고 확실히 미국 편에 선 이 번 박근혜 정부의 결정은 미국 외교의 완벽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으로써는 큰 외교적 손실이다. 


한국은 미국과 경제, 안보의 측면에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미국을 버리고 한국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중국, 러시아,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고, 일본이 엄청난 방위비를 쏟아붓는다. 우리가 핵을 개발하면 좋겠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미-일-중-러 중 어느 나라가 가만히 있겠는가? NPT의 다른 나라는 가만히 있겠는가? 경제제재를 당하고 살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는게 가장 현실적 선택이다. 미국이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관심이 없으면 중국이 넘볼 때 우리를 버릴 수도 있지만(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유린할 때 미국이 립서비스만 하는 현실을 보라), 지금은 미국의 관심이 크다. 중국이나 일본이 멋대로 하도록 그냥 버릴리가 없다. 현 조건에서 친미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른 한 편으로 중국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척을 지지 말아야 한다. 첫번째는 경제적 이유. 중국과의 교역량이 크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지난 15년간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건실한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중국이다. 중국이 발전하니 우리도 덕을 본다. 두번째 이유는 북한 문제 때문이다. 북핵의 해결도 문제지만, 궁극적으로 중국의 승인없이 통일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대결세력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않는 변수가 있는데, 친미를 할 때 일본이 문제가 된다. 아까 얘기했듯 미국의 동아시아 구상에서 일본은 상수다. 미국의 유일무이한 아시아 파트너는 일본이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심하게 불궈지면 미국은 궁극적으로는 일본 편을 들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일본과의 갈등을 적당한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이 좋다. 일본 때문이 아니라 미국 때문이다. 미국이 한미일 동맹의 어떤 조치를 요구할 때 일본과의 갈등 때문에 일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 결정적 순간에 미국은 한국이 일본에 굴복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염려는 최근의 위안부 협상에서 현실이 되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부터 일본과의 갈등 관리에 실패했다. 나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독도방문을 아주 나쁘게 본다. 국내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국가의 이익을 저버린 좋지 못한 사례다. 독도 문제는 관리를 해야지 대통령이 나서서 한일 간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방식 역시 엉망이었다. 일본과의 대화를 회피하다가 미국의 압력에 밀려서 황당하기 그지없는 협상을 하였다.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이 엇나가는 것을 미국이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붙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이 일본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한미일 동맹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없을 때 우리는 경제적으로 중국과 가깝게 지내는 "근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갈등을 유발하고 한미일 동맹을 약화시키면서 중국에 붙는 모습을 보여줬다. 친미근중에서 친미의 한 축인 한미일 동맹을 흔들며 근중을 한 것이다. 미국은 최근의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단순한 한일 간의 역사 갈등이 아니라, 역사를 빌미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해를 끼치는 행위로 봤을 것이다. 이에 미국은 한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한다. 위안부 협상은 이런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에 눌려 일본에 고개숙인 치욕적 외교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압력에 눌려 일본 문제를 해결당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사드배치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친미근중이라는 한국의 원칙과 어긋난다. 핑계를 대고 거절하거나 뭉게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사드배치라는 전략무기에 대한 선택을 느닷없이 한다. 취임 후 계속해서 한일 갈등을 야기하며 한미일 동맹을 흔들며 중국과 친하게 지내다가, 얼마 전 미국에 눌려 일본과의 위안부 갈등을 폭력적으로 해결당하고, 갑자기 친미근중에서 친미 유일 노선으로 전환해 버린 것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좌충우돌 외교가 있을 수 있을까? 


사드 배치는 중국과의 갈등을 야기한다. 경제적으로는 설사 중국이 보복하더라도 일시적이겠지만, 정치군사적으로 중국은 한국에 대한 신뢰를 상당히 상실했을 것이다. 한국은 결국 미국의 편에서 자신들을 위협할 세력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이제 더욱 자신들에게 의지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우리의 외교적 운신의 폭은 좁아졌다. 


이 외교적 선택이 미국과 중국 모두로 부터 버림받은 건 아니라 그나마 최악은 면했다고 해야 할지. 한미일 동맹의 넘버3인데, 밖으로 돌다가 쥐어터지고 다시 밑으로 기어들어온 넘버3다. 




다음은 두 번째 문제 관련 소설.


개성공단의 폐쇄는 북한과의 유일한 소통의 끈을 끊었다는 의미 정도가 아니다. 개성공단에 지급한 돈이 핵개발에 유용되었다는 발표는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북핵이 일정 수준 해결되기 전에는 경제협력을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완벽한 조작이 아니라면 북이 개성공단 자금을 핵개발에 사용했다는 적어도 간접적인 증거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되면 100% 자금 흐름이 투명하지 않은 모든 경제협력은 군사적 전용의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떤 국민이 북의 핵개발 자금을 대는 것을 용인하겠는가? 북이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할리 없으니 이 번 조치는 사실상 북한과의 경제협력의 마지막 다리를 태워버린 것이다. 경제협력을 재개할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이란방식의 합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와 핵자금 유용 발표는 기존의 대체로 합의된 통일 노선과 완전히 배치된다. 경제협력의 정도, 북의 군사노선에 대한 대응 정도에서 여야 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공동의 경제발전을 도모해 통일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헌법4조에 평화통일이 명시되어 있고, 모든 정당의 강령도 이를 표방하고 있다. 새누리당 강령도 "남북한의 평화유지와 공동발전"이 목표라고 써있다.


북이 핵을 절대 포기할리 없고, 중국도 북한을 포기할 리 없고, 북의 핵포기 이전에 남북경제협력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 남는 길은 북의 붕괴를 통한 통일이다. 즉, 냉전에서 체제 경쟁을 통해 소련을 몰락시켰던 서방의 노선을 한반도에 다시 적용하는 것이다. "북의 궤멸"이라는 말을 다 생각이 있어서 썼다는 김종인 대표의 발언은 이러한 노선 변화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 노선을 취했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의 사드 수용은 중국의 신뢰를 저버리기 때문에 패착이라고 할 수 있다. 설사 우여곡절 끝에 북이 붕괴해도 중국이 미국의 영향 하에 있는 통일된 한국을 반대한다면 통일은 무척 지난한 과정이 된다. 


그런데 소설을 좀 쎄게 쓰면 새로운 노선은 평화통일에서 평화를 빼고 통일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빼고 평화만 남기는 것일 수도 있다. 평화통일도 흡수통일도 아닌, 평화만 남는 대북 노선 말이다. 이러면 사드배치도 전략의 하나지 실수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알다시피 한국에는 진보보수를 떠나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꽤 있다. 통일비용이 비싸니 지불하기 싫다는 인식이 상당하다. 통일을 안하고도 그냥 잘 지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햇볕정책을 대북 평화 비용으로 치는 것. 통일이 직접적 목표는 아니라도 햇볕정책과 대북원조, 교류협력이 평화를 가져오니 지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 번 사태에서 개성공단이 북의 군대를 몇 키로 뒤로 물러나게 했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 논리가 북의 핵무기 개발 때문에 틀어져 버렸다. 그렇다면 통일을 안하고 지내는 다른 방법은 북의 붕괴를 통한 평화 유지다. 북이 붕괴한다고 해서 꼭 통일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경제적으로 붕괴된 북과 통일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붕괴된 북한과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붕괴된 북을 독립국가로 유지케하고 그냥 적당히 도와주기만 하는 것이다. 


<북의 붕괴 + 통일없는 평화> 노선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외교 방정식이 훨씬 간단해 진다. 근중 없이 친미만 해도 전략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이라는 안전판을 계속 가지고, 한국은 북핵없이 또 북한과의 통일의 부담 없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통일은 그냥 계속 립서비스만 하면 된다. 


이렇게 보면 최근의 박근혜 정부의 행보는 모두 앞 뒤가 맞게 된다. 다만 이게 원래 생각했던 전략이었는지, 엉망으로 수를 두다가 이런 처지로 몰렸는지는 모르겠다. 



답답해서 그냥 상상력을 발휘해 봤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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