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글 (by 양파):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안되는 이유.
채훈우진아빠님 블로그에 소개된 글을 처음 봤는데 ㅍㅍㅅㅅ의 소스를 보니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인가 보다. 이 글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답변도 많이 보인다.
글의 요점인 즉, 한 회사에서 특화된 노하우 내지는 스킬, 영어로는 firm-specific human capital을 가지지 말고, 여러 회사에서 널리 통화는 general human capital을 갖추라는 것이다. 좀 더 일반화 시켜 말하면, 대학과 산업 현장에서 특정 회사, 직업, 산업에 특화된 specific skill이 아닌 모든 회사, 직업,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general skill 위주의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이 주장은 1980년대 이후 노동시장의 중요한 변화, 그리고 국가 간 노동시장의 제도적 격차와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이전의 미국 노동시장에서 안정된 고소득 연봉을 받는 방법은 <내부노동시장(internal labor market)>에서 직위를 바꾸는 것이다. 즉, 한 회사에서 충성을 다하며 승진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내부노동시장은 종업원 규모가 500명 이상의 회사에서 성립된다고 본다. 수직적 관리 구조를 가진 과거의 회사에서 승진은 "관리직"을 잘 수행할 수 있는가라는 직위 적합성에 대한 직접 평가에 근거하기 보다는, 하위직에서 일을 잘 한 사람이 관리직도 잘 할 것이라는 가정과 하위직에서 일을 잘 한 사람에 대한 보상 체계로써 작동했다. 관리직은 외부 영업이 아닌 내부 승진에 의해 채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고소득 관리직이 되기 위해서는 그 회사에서 가장 일을 잘할 필요가 있고, firm-specific capital을 많이 쌓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요즘은 관리직 채용을 내부인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개방한다. 내부 승진을 통한 성과 관리와 보상이라는 <내부노동시장>이 무너졌다. 연봉인상은 내부 승진을 통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옮기며 올리는 것이다. 같은 회사에 머물더라도 다른 회사에서 오퍼를 받아서 협상을 통해 연봉을 올리는 것이 새로운 규준이 되었다.
사회학에서 이미 오래 전에 Capelli가 내부 노동시장 붕괴를 주장하고, Hollister가 소득에 끼치는 회사 규모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줄어왔음을 보여주었다. 나님도 논문에서 미국에서 산업이 개인 소득에 끼치는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줄었음을 실증한 바 있다. 과거에 비해 노동경력 전체를 통틀어 회사를 옮기는 횟수도 늘었다. 이러한 변화가 1980년대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에 가속화되었다. 위 링크글을 쓴 양파님이 근무하는 IT 산업은 이러한 경향이 가장 강한 곳이다.
이런 노동시장에서 특정 회사에만 통하는 특화된 기술은 보상이 적다. 어느 회사에서나 통하는 일반 기술의 가치가 더 높다.
이 경우 대학 교육도 직업 위주의 교육 보다는 사고력, 창의력, 논리력 등 새로운 기술 습득의 효율성을 높이는 general skill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미국의 대학 교육의 목표도 이렇게 변화했다. 요즘 난무하는 온갖 대학 교육 효과 측정이 general skill 강화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general skill 위주의 인적자본 축적 전략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박근혜, 손학규, 김종인, 안철수 등등 많은 정치인들이 배울려고 노력하는 독일은 미국에 비해 general skill이 아닌 specific skill 위주의 교육이다.
IT 산업, 첨단 신규 산업은 기술이 급변하기 때문에 general skill 위주의 교육과 인적자본 축적 전략이 타당하지만, 전통적인 제조업은 기술 변화가 incremental하기 때문에 firm-specific skill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industry-specific skill의 발전과 축적이 필요하다. 회사나 산업에 특화된 기술은 교과서에서 배우기 어려운 tacit knowledge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기술자가 타 회사나 산업으로 옮겨가면 지식의 단절(즉, 그 다음 사람이 다시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이 일어나고, 이직자도 과거의 지식이 소용없어 지기에 생산력이 낮아진다.
얼마 전 서울대 교수진이 써서 화제가 된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의 핵심도 (비록 못읽어봤지만 언론 기사만으로 판단하면) 산업 내에서 다른 산업에는 통하지 않는 특화된 기술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처럼 산업 발전이 "산업" 단위가 아니라 "기업"단위로 이루어진 경우 firm-specific skill을 천시하는 문화는 제조업 발전에 큰 방해가 된다. 위 양파님의 글과는 반대되는 주장이다.
그러면 어느 전략이 옳을까? 둘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general skill 위주의 산업 전략을 택하면, 이직을 쉽게 하고, 해고도 쉽게 하고, 교육 체제는 견습보다는 일반 지식 위주로 해야 한다. 대학 교육의 문턱을 낮춰 신규 일반 기술 재교육에 맞춰져야 한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적구성의 다양성 확보가 채용의 중요 순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specific skill 습득의 위험성을 낮추는 고용보험은 제한적으로만 제공하는 것이 좋다.
반면 specific skill 위주의 산업 전략을 택하면 고등 교육을 제외한 다른 교육은 견습과 기술 위주로 바꾸고, 사회보장은 장기간의 실업 보험에 촛점을 맞춰, 몰락하는 산업에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회사나 산업에 특화된 기술 습득에 시간을 투자하겠는가? 하루 아침에 그 기술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데. 이 체제에서 강력한 고용안정성과 장기간의 고용보험은 필수요소다. 채용도 다양성보다는 기업 문화를 공유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한국은 제조업 기반 국가여서 후자의 전략을 택하는 것이 타당했었고 그렇게 운영되었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빠르게 전자로 이행하였다. 여러 제도들은 general skill에 특화된 미국식으로 변하고 있는데, 배우고자 하는 모델은 specific skill 위주의 독일이다. 법, 문화, 규범, 복지를 포함한 한국의 제도적 장치들은 둘 중 어느 하나에도 맞지 않는, 두 가지가 모두 섞여있는 상태다.
나는 회사형 인간을 원하는 기성세대와, 이에 반발하는 젊은 세대의 갈등도 이러한 노동시장 작동 메카니즘의 변화와 그로 인한 혼돈이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