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대단체인 다른백년 기고글


아래 포스팅한 이 번 미국 대선의 민주당 패배는 좌파의 지적 기획의 실패라는 포인트를 미국 백인노동계급의 상황과 연결해 좀 더 길게 쓴 글. 


이 블로그에서 이미 다 했던 얘기이기는 함. 


포인트는, 


1. 민주당 패배는 좌파의 지적 기획의 실패다.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 분노가 아니라 희망이다. 그런데 좌파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적 미래의 희망이 없다. 


2. 백인 노동계급의 상황이 miserable하고, 대안을 찾는데, 현재 제시된 대안이 없다. 


3. 미국의 계급, 학력에 대한 물리적 지리적 분리가 심하다. 대안을 내놓기는 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분석은 그렇고, 감상도 조금 적자면, 



미국 중도좌파의 모토는 "증거 기반 정책 evidence-based policies"임. 샌더스를 비난했던 이유도 그가 제시하는 정책이 증거에 기반해 지지되지 않기 때문. 크루그만이 공화당의 정책을 Voodoo economics라고 맹비난해 온 것을 모두들 알고 있을 것. 


샌더스나 공화당이나 트럼프나 증거 기반 정책에 심대하게 위배됨.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대중은 이러한 엉터리 정책들에 휘둘리지 않을 것으로 미국의 중도-좌파 지식인들은 확신함. 특히 오바마 행정부에서 증거 기반 정책에 기반해 매우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기에 그 확신은 차고도 넘침. 


여기에 더하여 인구 구성까지 민주당에 유리하게 변화하고 있음. 이민과 출산률의 격차로 인해 소수 인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여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었음. 


우파나 좌파가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이 없기는 마찬가지. 어차피 모두가 장밋빛 청사진이 없다면 증거 기반 정책, 인구학적 미래가 함께하는 민주당, 중도-좌파가 승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음. 





이 때 트럼프가 증거 기반 정책도, 광대한 지적 기획도 아닌, 마케팅으로 치고 나왔음. 음모론이든 뭐든 다 동원하여 백인 노동계급의 심리를 건드린 것. 나는 트럼프의 승리를 마케팅의 승리로 이해함. 기존 공화당, 기존 정치인은 윤리적 문제 때문에 절대 하지 못하는 마케팅. 


물론 이 것 만으로는 이기지 못함. 하늘이 무너져도 민주당은 찍지 않는 공화당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그러나 49.9%에서 50.1%로 형세를 바꾼 힘은 마케팅이었음. 






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큰 태도 차이 중의 하나는 미지의 것에 대한 인내심. 호기심이 교육과 연구, 과학의 자양분이지만, 현재 과학은 그렇게 호기심을 발휘해도 나오지 않는 답은 그냥 모르는채로 지내는 인내심도 같이 기르자는 입장임. 


그래서 증거 기반 정책을 좋아하는 중도-좌파는 음모론을 극도로 혐오함. 한국에서 진보인내 하면서 퍼뜨리는 음모론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함. 하지만 음모론적 설명은 증거가 나오지 않는 현상에 대해 매우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답을 제시함. 


트럼프의 선동이 그런 것임. 






분노가 세상을 바꿀 것 같지만, 진정한 변화는 낙관론이 있을 때만 가능. 기독교가 유럽을 먹은 것이나,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먹은 것이나, 한국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것이나 모두 낙관론에 기반했던 것임. 분노가 아님. Hope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과학의 증거는 상당히 우울함. 자동화, 부의 집중 등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 대안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음. 트럼프의 마케팅이 아편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사회과학적 증거에 기반해 제시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 이상향이 없는 것. 


나는 결국은 증거 기반 정책으로 돌아갈 것으로 확신함. 맑스가 종교와 사회주의를 비교하며 전자는 아편(마케팅에 근거한 음모론)이고, 후자를 과학이라고 했을 때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었음. 다만 증거 기반 정책으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음.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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