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수저와 흙수저로 운명이 갈리는 현실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바로 공정한 기회다. ...
매우 상식적이고 지당한 주장으로 들린다. 그런데 맞는 말일까. ... 기회의 평등은 도덕적으로 옳다. 하지만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함으로써 가족 배경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기획이 역사적으로 성공해왔는지는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기회 평등 정책이 가족 배경의 영향력을 줄인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
미국 캔자스대의 에밀리 라우셔(Emily Rauscher) 교수는 미국에서 19세기에 실시된 의무교육이 사회 이동에 끼친 영향력을 연구했다. ... 미국 각 주의 초등학교 의무교육은 대략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시작됐다. 그 전까지는 부유한 가족의 자녀만 교육을 받았지만, 의무교육이 실시된 이후 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모든 아이가 교육을 받게 됐다. 교육 기회의 평등이 확대된 것이다. ... 그렇다면 이러한 교육 기회의 확대가 가난한 집안 출신 아이의 사회 이동을 촉진했을까. 평등한 기회가 사회 이동을 촉진한다면 빈곤층 자녀의 상향이동률이 높아졌어야 한다. ...
라우셔 교수는 바로 이것을 연구했다. 의무교육이 실시되기 직전 세대 아버지와 아이의 사회경제적 지수의 상관관계와, 의무교육이 실시된 직후 세대 아버지와 아이의 사회경제적 지수의 상관관계를 비교한 것이다. 부자간 사회경제적 지수의 상관관계가 높으면 아버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이에게 그대로 승계된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이 지수의 상관관계가 낮으면 아버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이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끼치는 영향력이 작다는 의미가 된다. 기회 평등이 계층 이동을 촉진한다면 의무교육 실시 이후 이 상관관계가 줄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의무교육 실시 이전 세대의 지수 상관관계는 0.26, 의무교육 실시 이후는 0.27로 통계적으로 변화가 없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상관관계가 약간 높아졌다. 기회 평등이 계층 이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이다. ...
기회 평등이라는 기획이 실패했다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 사실 매우 잘 알려지고 성공한 모델이 있다. 복지를 확대해 계층 간 격차를 직접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