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대통령의 입장이 아니라 다수 대중의 입장에서 박대통령이 어떻게 되는게 가장 바람직한가에 대한 얘기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 중에 현재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두 사람은 박정희, 노무현이다. 두 사람의 특징은 비명에 갔다는 것이다. 과정이 무엇이든 비명에 간 지도자, 그 중에서도 핍박받고 비명에 간 지도자에게 투사하는 대중의 판타지는 강력하다.
진보의 입장에서 가장 조심할 것은 소탐대실. 박근혜에게 핍박받은 지도자의 상징을 부여해서는 안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에 끼치는 영향력이 작다. 과거의 김대중 대통령 지지자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나뉘었다. 대북송금이 법적처벌을 받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전대통령을 핍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노태우는 어떤가.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외교의 세계사적 변화를 정확히 인식한 결단이었고, 위헌판결을 받은 부동산공개념은 그 보다 진보적일수 없었다. 진보의 입장에서는 야합이지만, 3당합당은 이후 정치의 개념을 완전히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뉘기?
노태우야 워래 카리스마가 없었다 치고, 전두환은 매우 강력한 권한을 휘둘렀고, 극우보수의 상징이었고, 구국의 결단을 한 영웅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아무도 신경 안쓰는 사람이 전두환이다. 전두환이 구속되고 처벌을 받기는 했어도 그가 지금처럼 "29만원"으로 기억될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90년대말에도 전두환의 영향력은 오래 지속되어 5공신당을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전두환은 보수의 상징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으로 아무도 그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고자 하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그가 오래오래 연희동에서 안락하게 살면서 그에게 부여할 핍박의 판타지가 없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29만원이라는 희화된 이미지뿐이다. 전두환이 바로,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박근혜 단죄가 아니라, 박근혜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사시키도록 하는 것. 그걸 목표로 진보적 정치인들이 판단을 하기를 기대한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늘상 새로운 변기를 사용하고, 따뜻한 보일러가 나오는 곳에서 올레TV를 보며 개인적으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사는게 꼴보기 싫을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모욕받고 핍박받아 물러난 지도자의 이미지를 가질 수 없게 만드는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가 청와대에 며칠 더 머문 것, 그럼에도 크게 항의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다. 탄핵 직후 박근혜 지지자들의 난동이 드러난 것도 나쁘지 않다.)
박근혜가 한국 정치에서 보수의 상징이 아니라 떼쓰는 공주의 상징이 되게 만들고, 그 덕분에 박정희가 더 이상 근대화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전직지도자가 아니게 만드는 것. 이게 가장 좋은 미래다.
전두환은 겨우 2년여 밖에 수감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가 저저른 내란, 광주학살, 상관살해의 죄악은 법적으로 사형(1심), 무기징역(2심)이었지만 그가 실제로 법적 단죄를 받은 기간은 기껏 2년이다.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대신 우리는 전두환을 29만원으로 기억하며 5공 핵심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반면 박정희의 영향력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5공 잔당은 없지만, 유신잔당은 아직도 활개다. 김종필이 자신은 유신잔당이 아니라 유신본당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했던 것도 생각해보라. 박정희에게 부여된 판타지 때문에 우리가 치룬 현재가 바로 박근혜다.
지금은 한국에서 극우 보수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축소시킬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박근혜 전대통령을 법적으로 정확히 처리하지만, 방어의 기회를 가능한 많이 제공하고, 최대한 온정을 베풀어, 스스로 천박함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그 분에게 많이 드리는게 좋겠다.
극우 보수 세력으로 부터 상당히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이 주어졌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우상으로 국가의 전통성을 삼으려는 이데올로기를 무력화시키고, 3.1운동-4.19-5.18-6.10 그리고 촛불로 국가의 전통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다. 진보, 보수할 것 없이, 이 운동이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다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궁정동의 총소리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로 가는 길이 멀지 않았다. 부디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