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민주당 주자들 중에서 개인적인 선호도로 뽑으라면,
이재명 >> 안희정 > 문재인
이재명의 몇가지 주장은 워낙 황당해서 이 번에 당선될 가능성이 없다는게 안심이 되는 상황. 이 번에는 아니지만 사고의 폭을 넓힌 후 다음을 도모할 수 있기를 바람. 한국도 좌파 포퓰리즘으로 정책을 짤 수 있는 사람이 한 번은 집권하는게 좋다고 생각. 어쨌든 나는 계급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안희정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는게 단점이자 장점. 충남지사로써의 성과도 별로라고 함. 운동권 중에서도 증거기반 정책에 우호적인 PD가 아닌 NL 출신임. 안희정이 구속되었을 때의 죄질도 좋은 편이 아님. 정치자금을 유용해서 자기 집 사는데 보태기도 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희정을 문재인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대연정 때문임.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분들이 많을텐데...
내가 생각하는 차기 정권의 최대 과제는 앞으로 민주당 30년 집권의 토대를 쌓는 것. 대통령제를 유지하면 민주당이 30년 내내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개헌과 연정, 정치지형 개편을 통해 진보가 셋팅한 아젠다의 영향력 하에서 30년동안 정치가 논의되는 환경을 만드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함.
한국에서 87년 이후 지금까지 기울어진 운동장의 상황을 만든 사람은 바로 노태우임. 노태우의 3당 합당이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을 창출한 것.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보수의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 바로 노태우의 3당 합당임. 그 때 욕을 바가지로 했고, 손학규 당시 교수가 신한국당으로 넘어가며 친한 친구들이 보수로 넘어갈 때 짜증만땅이었지만, 노태우의 3당 합당은 한국에서 정치의 논리를 바꾸었음.
DJ도 DJP를 통해 집권했고, 노무현도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통해서 집권했음. 노태우의 3당합당을 따라한 것. 노태우 개인은 카리스마 꽝인 지도자였지만, 정치 구도를 완전히 바꿈으로써 이후 정치에 끼친 영향력이 매우 큼.
노태우와 김대중, 노무현의 연정의 차이점은 같은 당이라는 제도적 안정성을 구축했는가 아닌가에 있음. 나의 바램은 차기 정권이 진보의 노태우가 되는 것. 진보가 다수가 되는 안정적 구도를 만들어 보수의 한 축을 무너뜨리고 진보가 우위를 점하는 정치 역학을 창출하는 것. 보수가 진보 따라하기로 집권하는 상황을 보는게 나의 꿈임.
그럼 도대체 왜 민주당 30년 집권이 필요한가?
민주주의를 통해 여야가 사이좋게 집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이런 소리는 대한민국의 체제를 뜯어고치겠다는 생각이 아님. 사이좋게 정권 교체를 하면 엘리트가 한 자리씩 하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대한민국를 복지국가, 공정 국가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는 힘들어짐. 대부분의 국가에서 복지의 확대, 사회의 진보는 좌파 세력의 장기 집권을 통해서만 이루어졌음.
스웨덴이 복지국가가 된 것은 스웨덴 사민당이 70년 장기 집권을 한 결과임. 특히 복지국가 체제를 확인한 1932년부터 1976년까지 무려 44년간 연속해서 사민당이 집권하였음.
미국이 리버럴 복지국가가 된 것도 1932년 이후 1980년까지 무려 50년 동안 단 4년을 빼고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결과임. 하원만 따지면 1955년부터 1995년까지 40년동안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였음. 미국 민주주의와 리버럴 복지는 민주당이 의회를 장기간 장악한 결과이지, 공화당과 민주당 대통령이 사이좋게 바뀌어서가 아님.
미국보다 좌파적이고 복지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캐나다는 중도좌파 정당인 Liberal Party가 20세기 중 69년을 집권했음. 캐나다 사회안전망의 초석을 닦은 윌리엄 킹은 1921년에서 1948년 사이에 무려 22년간 캐나다 수상직을 역임. 박정희 보다 4년이나 더 집권 했음.
또 다른 복지국가인 덴마크는 1924년에 사회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후 여러 연정을 통해 2001년까지 무려 77년을 사민당 주도 정치를 펼쳐왔음.
한국도 지금과 같은 극심한 불평등을 극복하고 복지국가로 이행하고자 한다면 진보 정권의 장기 집권이 필요함. .
지금 그런 정치 기획이 가능한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고, 박정희 신화도 무너지고 있음. 반면 노무현 신화는 아직 건재하며, 불평등과 공정성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
더욱이 개헌 이슈가 있음. 개헌을 한다면 민주당이 집권한 후 진보적 기운이 넘치는 시기가 적기임. 국민 기본권을 확대하는 개헌을 실행한다면 앞으로 여러 진보적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음. 일시적으로 정치적 이익을 상대방에서 안기더라도 국민 기본권 확대 개헌은 매우 중요함. 기본권 확대가 불가능하면, 6.10 항쟁의 결과를 반영한 현 헌법을 고수하는게 차라리 나을 것.
개헌, 연정은 반드시 정치개편을 동반할 것. 당을 달리하면서 연정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거대세력으로 한 개의 당을 만드는 것이 가능함.
도대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혼돈의 정치상황임. 과거에는 이런 대혼돈의 상황을 쿠데타를 통해 정치군인들이 상황을 타계하였음. 유일한 예외가 6.10 항쟁이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직선제의 성과를 노태우가 독식하였음. 지금은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게 거의 확실하고, 보수세력이 축소된 유일무이한 상황임.
여기에 더하여 제도업의 침체와 서비스 산업 생산성 향상이라는 구조적 이슈가 있음. 제조업 고용 비중 감소는 이 산업이 집중되어 있는 영남지방의 상대적 인구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올라가면 영남의 의석수가 줄어들고 보수의 의회 영향력이 축소될 가능성이 상당함.
판을 흔들기에 딱 좋은 상황임.
안희정이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모름. 문재인은 그 주변 인사들이 여러 정책적 아이디어가 있어서 이 아이디어를 임기 중에 실행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판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할 것임. 하지만 안희정은 별 정책적 아이디어가 없어 보임. 안희정의 국민안식년제는 걍 농담 수준. 정치개편 아젠다를 다루기에는 안희정이 더 나을 것임.
문재인이 되더라도 노태우의 사례를 잘 연구하길 바람.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한 훌륭한 정책이었음. 노태우는 아무 인기가 없었지만, 노태우가 만들어놓은 정치 지형의 효과는 이 번 탄핵 정국 이전까지 지속되었음. 대통령 친구 대통령의 전례가 바로 노태우 아니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