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사: 명문대 성공 방정식 깨기 vs. 학벌도 노력의 결과


학벌이 아니라 인성과 적성, 능력위주로 뽑겠단다. 인성, 적성, 능력에 기반해 인력을 선발하겠다는 의도를 비판할 사람은 없을 것. 


그런데 학벌 보다 더 나은 적성과 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이 뭐가 있나?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고려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재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학습능력(trainability)이 있는가이다.


과거에 한국에서 중시했던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다. 지금 뭘 알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즉, 전공에 관계없이) 똑똑한 사람 뽑아서 (즉, 수능고사 점수가 높아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을 뽑아서) 가르쳐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 같이 경쟁하서 똑같이 시험 본 수능(학력고사, 예비고사)이 누가 똑똑한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기능했고, trainability의 시그널은 대학 입학으로 완성이 된다. 그러니 대학 입학 이후에는 추가적 노력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없었다. (개인적으로야 추가 노력으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언제나 의미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업에서 학습능력이 있는 인재를 뽑아 기르는 "사람키우기" 보다는, 당장에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인사의 목표가 되었다. 전공 선택이 중요해지고, 대학에서 전공 학점의 중요성이 올라가고, 인턴제가 성행하는 것도 다 같은 이유다.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최고의 채용은 신입이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검증된 경력직이다. 


기업이 이런 식으로 변한 이유 중 하나는 기업 내부 구조가 수평화되고, 관리직 채용이 외부에 오픈되면서 "기업내 노동시장"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한 회사에 머물지 않고 다른 회사로 손쉽게 옮길 수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 신규 노동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생산성이 낮을 때 그 이상의 임금을 지불하며 훈련시켜 생산성을 올려두었고, 이제 겨우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데, 그 때 다른 회사에서 조금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스카우트하면 회사로써는 훈련 비용을 손해보는 것이다. IMF 이후에 사회에 진출한 90년대 중반 학번 부터 이렇게 변화한 채용 방식의 직격탄을 맞았다. 


비록 경력직 채용이 확대되었지만 그나마 신규 사원을 뽑는다면 trainability가 높아서 짧은 시간 내에 훈련 시킬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이 때 학력이 trainability의 제 1 요인이 된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자는 심층 면접 등 다른 방식으로 능력과 trainability를 알 수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면접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방법을 모른다. 압박면접, 음주면접, 면접에서 물어보는 황당한 질문들은, 면접보는 사람의 인성이 후져서라기 보다는, 면접 노하우 부족의 결과다.  면접을 하기는 하는데, 면접에서 뭘 물어 볼지 모른다. 그래서 면접에서 온갖 벙크가 터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면접이 형식적이었기에, 그 짧은 면접에서도 황당한 행동을 하는 아웃라이어를 솎아내는 기능만 담당하였다. 아니면 면접은 동원가능한 인맥, social capital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차피 최종 면접까지 올라온 인력의 능력은 비슷하기에 social capital이 좋은 (즉, 빽이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면접이 채용과 승진을 결정하는 주요 방식이 된 이면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전체적인 사회구조가 있다. 선생이 추천서를 써도 실제로 강력하게 추천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 미묘한 표현의 차이를 둔다. 인사담당자는 이 차이를 캐취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생이 추천서를 직접 써서 선생에게 들고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구사회는 면접을 통해 인력을 뽑아서 성공한 케이스와 실패한 케이스의 노하우가 조직에 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이 지금까지 이용했던 노하우를 폐기하고 새로운 방식을 쓰라는 것인데, 문제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손쉬운 대응은 신입사원 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학력, 학벌보다 더 쉽게 알 수 있는 trainability 정보는 현재로써는 없다. trainability를 알 수 없다면 훈련비용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경력직 채용을 확대하는 것이 낫다. 


그 다음은 trainability을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시험을 실시하는 것이다. 공적인 학벌 대신, 여러 standardized test를 입사 시험에서 실시하면 된다. 수능시험을 기업 입사 시험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반에 한국의 기업들이 학벌을 볼 때, 외국인 회사는 변종 IQ 시험을 적성검사 명목으로 봤다. 비슷한 능력 테스트를 개발하면 된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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