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00208151252&section=05

미국이 유럽만큼 복지 국가가 되지 않은 이유가 인종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인구 규모가 클수록, 사회구성원의 이질성이 클수록 불평등 수준은 높아진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변화는 큰 틀에서 대략 같은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직후,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스웨덴의 GDP 중 복지, 실업, 연금, 건강, 주택 등과 관련된 재분배(Social Transfer)에쓴 비중은 2.59%에 불과하다. 25.9%가 아니라, 2.59%다. 1995년 현재 스웨덴은 GDP의 33%를 재분배를 위해 쓴다.

1930년에 미국은 0.56%를 재분배를 위해 썼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미 미국은 전체 GDP의 7.3%를 재분배를 위해 써서, 1930년대 유럽의 어떤 국가보다도 더 복지에 많은 돈을 썼다. 30년대 스웨덴에 비해서 복지에 쓴 돈의 비중이 3배 가까이 높다. 1995년 현재는 13.7%다. 현재 미국이 재분배를 위해 쓰는  전체 GDP의 비중은 1970년대 스웨덴이 재분배를 위해 썼던 비중과 유사하다.

1930년대, 수정 자본주의 이전의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의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미국이 스쿠루지의 나라이고, 유럽과 다른 수준의 복지 국가이긴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역사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여기는 건, 역사적 변화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 대공황과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유사한 방향으로 변화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20세기에 걸쳐서 동일 시기의 국가 "간" 격차보다, 국가 "내" 통시적 격차가 더 크다.

데이타 소스: Lindert. 2004. "Growing Public." Cambridge Univ Press.


ps. 한국은 교육을 제외한 복지 지출이 약 6%로, 대략 1930년대 독일(4.8%)보다 조금 나은 수준. 행복하시지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격하게 결과의 평등을 외치는게 아니다. 적어도 첫돌 지나기 전에 죽지 않아야 기회를 얻든지 말든지 할게 아닌가.


소스는 위에 나와 있다. 30분전에 막 나온 따끈이 논문.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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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최상의 복지정책은 민간부문에서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업 투자여건 개선과 함께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작년보다 취업자가 20만명이나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지난 1분기에 과학기술·보건복지·교육 서비스업 상용근로자는 26만6000명 늘었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서도 의료·관광·교육 서비스업 분야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야 한다.

사회안전망도 좀 더 촘촘하게 짜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실업급여와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 같은 복지혜택이 가장 적다. 노조가 과격한 투쟁에 매달리면서 우리 노사관계 경쟁력이 세계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실직 후 사회보장이 취약한 탓이 있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지 않고, 우리 경제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나친 재정부담도 피하면서, 경제위기의 충격으로부터 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한국형 복지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제부터 과제다.

 
조선일보 사설이다. 명박정부가 정책기조를 이 방향으로 완전히 전환한다면 협조할 사람 많을거다. 의도는 그렇다고 갑자기 떠들고 있으나 상응하는 행동은 아직 하나도 없다.

아무리 "한국형"에 방점이 찍혀도, 복지모델은 세금이 늘어야 한다.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재벌가들의 소유권만 강화하고, 부자들의 세금은 팍팍 내리면서 복지모델을 달성할 수는 없다. 시장에서 오뎅 사먹는 걸로 서민을 위한 정책이 나오고 복지국가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세금없이 복지 없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진보신당 최병천의 프레시안 글에서 이명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보적 경제, 복지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지금 민주 대 반민주의 전선이 형성되는게 "반동적"이라는 근시안적 주장은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최병천의 시각은 민주주의 동맹 없이 초록-복지 동맹이 지금 가능하다는 야무진 착각이다. 그의 바램과는 달리 '초록-복지 동맹'은 현재 도저히 조직할 수 없는 뜬구름이다.

게다가 최병천의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도 왜 이리 일천한지. 그의 시각은 민주주의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한나라당의 시각과 다를 바가 없다.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진게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증거면,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이기면 민주주의가 죽은 증거가 되나?

최병천의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한 도식적 이해다. 전자의 과제가 완성되었으니 이제 후자의 과제로 넘어가야만 한다는 소린데, 무슨 복지를 할 건지,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 아무런 내용도 없이 복지만 외쳐서 동맹이 형성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최병천식 해법도 가끔 가능할 때도 있다. 도저히 돌파가 불가능한 경제 위기 속에서 다수 대중의 삶이 극단적으로 피폐화되어서 어떤 혁명적 단절을 필요로 할 때 한국에서 "초록-복지동맹"이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변화상에 대한 모습이 없어도 지금까지의 방식만 아니면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이 지배하면 시도해볼만 하다. 그러나 그런게 아니라면 최병천의 제안은 보수당과 진보당의 오랜 경제 정책 대결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한국에서 보수측이 "개발-시장동맹"을 형성하는데, 여기에 대고 "복지동맹"을 맺으면 그 싸움은 시작도 하기 전에 진다. 태반의 시민이 전자가 더 믿음직하다고 여길 것이다. 미약한 진보-복지 지향세력이 경제위기가 아닌 평상 상태 속에서 진전을 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동맹을 통해서 이루어는게 가장 쉽다.

다 긁어모아서 세력을 형성하고 이 세력 속에서 다수를 점하여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해보라. 복지를 우선하는 세력이 25%라고 치자. 이 세력을 중심으로 동맹을 맺으면 75 vs 25의 싸움을 벌어자는 얘긴데, 이건 지자는 거다. 하지만 민주주의 동맹으로 50%를 모을 수 있다면, 이 동맹 내에서 25%의 복지우선세력이 과반수를 차지하여, 민주주의 동맹을 이끌 수 있게 된다. 민주주의 동맹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다.

민주주의 동맹을 통한 복지로의 이행이라는 방법을 포기하면, 개발-시장동맹에 맞서는 세력은 역사적 경험을 볼 때, 제2의 경제위기를 기다리거나 다수 서민의 삶이 극단적으로 피폐화될 때 까지 기다려야 할 텐데,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책임있는 정치세력이 취할 노선도 아니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염려하는 다수의 시국 선언에, 노동자의 자살과 용산참사 희생자가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민주주의 연대는 복지에 대한 요구를 한 축으로 하고 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연합뉴스에 보니 저소득층에 지급되어야 할 혈세가 전국 곳곳에서 줄줄 세고 있단다.

아마 맞을 거다. 저소득층에 지급되어야 할 혈세가 줄줄 새고 있을 거다.

그런데, 복지 행정 경험이 없으면 이런 일은 모든 나라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미국에서도 저소득층에게 가야할 세금의 상당수가 중간에 빠졌고, 더욱이 그걸 관리하기 위해서 쓰는 행정 비용이 전체 복지 비용의 80%를 차지하던 때도 있었다. 100원쓰면 80원은 누가 어려운 사람인지 파악하는 행정비용이고, 실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20원만 간다는 얘기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요즘은 한 10%로 줄어들었다더라.

덕분에 요즘은 복지 비용의 대부분이 실제 어려운 사람들에게 간다는 통계가 본 기억이 있다.

이런 통계 본 후 복지시스템이 필요없다고 오바하는 극렬인사들 꼭 있다. 복지를 할려면 누구에게 어떻게 돈이 갈지 파악하는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 이를 위한 전문인력 양성에 투자하고 행정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이게 소위 얘기하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다.

삽질경제로 임시직 만드는게 다가 아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아래 한국의 복지 비용에 대해서 "대학생"님이 복지를 확대하면 경제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셨기에, 그림 하나 올립니다.

x축은 국가별로 복지의 GDP 대비 비율이고, y축은 1960-1992년 사이의 1인당 GDP 성장률입니다. 보다 싶이, 적어도 선진국 내에서는 복지와 성장은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이 자료는 Lindert. 1996. "Does Social Spending Deter Economic Growth." Challenge 39:17-22.에서 캡쳐한 것입니다. Lindert는 Growing Public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학자죠.

객관성을 기하기 위하여 다른 연구들도 소개하자면, 후진국까지 포함하여 분석하면 불평등이 커질수록 성장이 빠르다는 연구결과도 많습니다.

하지만 복지를 늘리면 경제 성장이 안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에서 만연한 것 만큼 모두가 인정하는 주장은 아닙니다.

미국의 역사를 봐도 불평등이 줄어들던 2차대전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의 성장률이 불평등이 늘어난 80년대 이후의 성자률보다 높죠. 적어도 한국 정도 잘사는 국가를 포함한 선진국 사이에서 복지수준과 경제성장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얼마 전(5월)에 OECD에서 Society at Glance 2009를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잠을 제일 적게 자고 제일 열심히 일한다는 식으로 자랑스럽게 언론에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창피한 순위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우선 사회 복지 지출. 아래 그래프는 공공 사회 복지 지출의 NNI (Net National Income) 비율이다. 한국 끝에서 이등이다. OECD 평균이 전체 국민 소득의 24%를 공적으로 사회 복지를 위해 쓴다. 한국, 8%다. 멕시코(7.9%)한테 한 끝 차이로 밀려서 꼴찌에서 일등을 못했다.

하위 3개 국가를 제외하면 모든 OECD 국가가 비슷한 수준에서 복지를 위해 돈을 쓴다. 20-30% 사이의 전체 국민 총소득을 복지를 위해 쓰는게 선진국의 국제 표준이다. 한국은 선진국 국제표준 따라갈려면 지금의 3배 쯤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

한국이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낮아져 그렇게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있을 텐데, 한국과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슬로바키아 를 보라. 다들 20%가 넘는다.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복지 지출은 확실히 적지 않냐고? 끝에서 4등이니 한국이랑 2끝 차이 밖에 안나 지 않냐고?

아래 그래프는 공적 지출 뿐만 아니라 사적 지출, 즉 기부금까지 포함한 사회 복지 지출이다. 미국은 OECD 평균 보다 높다. 미국은 세금으로 복지를 책임지지는 않지만, 부유층이 전체 국민소득의 10%(자신의 소득의 10%가 아니다)를 기부하여 복지를 카바하는 국가다. 스쿠루지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미국도 우리나라보다 3배 가까운 비율을 복지를 위해 쓰고 있다. 한국과 복지가 비슷한 나라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아마도 터키 포함) 뿐이다.


멕시코, 터키, 한국 중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제일 높은 건 물론이다. 전세계에서 최악의 스쿠루지 국가를 꼽으라면 어느나라가 꼽힐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가.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2만불이 조금 안되는 한국의 일인당 평균 GDP는 유럽으로 따지면 그들의 1980년대 초반, 미국으로 따지면 그들의 1970년대 후반 GDP다.

당시에 이들 국가가 복지, 고용, 건강, 주택 보조 등에 사용한 비용은 국가 전체 GDP의 대략 20-25% 정도였다. 미국은 10-15% 정도.

이 통계는 미국은 기부금이 전체 GDP의 10% 가까이 이른다는 점을 반영하지 않은거다 (기부금의 상당수가 대학 기부금이긴 하다). 한국은 거의 0%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전체 국가가 버는 소득의 1/4은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사회의 공공복리를 위해 쓴다.

이들 국가가 복지국가로 전환한 것은 몇 백 년에 걸친 유구한 전통의 결과가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느닷없이 그리된 것이다.

한국은 현재 교육을 제외하면 6%다. 포함하면 11%.

한국은 복지라는 좌파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안되는게 아니라, 복지 정책을 펼칠 수 잇는 사회적 능력이 안되는거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사회는 노블레스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가 더 많은 개입을 하는 경제구조를 노블레스도 (어쩔 수 없이) 용인하는 사회다.

노블레스가 서민보다 벌어들인 수익의 더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는 진보성이 중요한게 아니라, 똑같은 %를 세금으로 내더라도, 세금을 많이 내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사회를 만드는게 복지 사회를 이루는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모두가 50%씩 일률적으로 세금으로 내는 국가 A와 부자는 30%, 빈자는 0%를 내는 진보적 세제를 갖춘 국가 B를 생각해보자.

국가 A에서 한 달에 1000만원버는 의사와 한 달에 100만원 버는 노동자가가 똑 같이 50%씩 세금을 내면 총 세금은 550만원이다. 이를 공평하게 공공 복지에 사용하면, 의사는 500만원의 개인 소득과 275만원의 공공 복지 혜택을 봐서 총 775만원 어치 , 노동자는 50만원의 개인 소득과 275만원의 공공 복지 혜택으로 325만원 어치의 물질적 효용을 누린다.

반면 진보적 세금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세율이 최대 30%인 국가 B를 생각해보자. 1000만원 버는 의사는 30% 세율을 적용받아 300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100만원 버는 노동자는 세율이 0%라서 세금을 내지 않는다. 국가B의 총 세금은 300만원이어서, 이를 공평하게 사용하면, 의사는 700만원의 세후 개인소득과 150만원의 공공복지로 850만원 어치의 경제적 효용을 누리고, 노동자는 100만원의 개인 소득과 150만원의 공공복지로 250만원어치의 경제적 효용을 누리게 된다.

결국 진보적인 세율이 가지고 있지만 절대적 세율이 낮은 B보다는 세율은 진보적이지 않지만 절대적 세율이 높은 A의 세후 소득 불평등이 낮아진다.

Lane Kenworthy에 따르면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의 북구 복지 국가는 모든 시민이 50% 정도의 소득을 세금으로 내고, 미국은 모든 시민이 30% 정도의 소득을 세금으로 낸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 국가의 세율이 진보적일지 모르지만 간접세, 지방세까지 모두 고려하면  모든 시민이 자기 소득의 비슷한 비율로 세금에 기여한다.  소득이 낮은 계층은 소득 중 소비 비중이 높아 간접세가 차지하는 부분이 높고, 소득이 높은 계층은 직접세의 비중이 높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복지를 위한 전사회적 동참"을 높이는 통합의 정치를 펼쳐, 노블레스를 강제해야 한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