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을 강조하는 분들이 마치 노력은 개인의 achieved characteristics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거 아님.
부모로 부터 재산을 물려받듯, 부모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자녀에게 지위를 물려주듯, 개인의 능력의 상당 부분은 유전되는 것. IQ만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노오력도 유전임.
사회과학에서 노오력을 "grit"이라고 표현함. 인내라고도 번역하고, 이를 악물고 빠득거리는 성격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 단어는 인내, 일관성, 열심히 노력, 지치고 않고 계속함, 미래지향적인 목표의식 등등을 포괄하는 단어임.
영국학자들이 grit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가정 환경과 유전으로 나눠서 봤더니만, 제일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 (전체 논문은 요기). 유전과 노력의 상관관계가 86%. 양심도 유전임 (논문은 요기). 같은 집에서 자란 이란성 쌍둥이와 다른 집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를 비교했더니만 환경에 관계없이 일란성 쌍둥이의 소위 virtuous behavior의 상관성이 더 높음.
그러니까 머리가 나쁜 것도 상당 부분이 부모 탓이고, 노력을 안하는 것도 상당 부분이 부모 탓. 양심 없이 행동하는 것도 부모 탓. 키크고 미모가 뛰어난 것만 유전이 아님.
인종차별의 근거가 되었던 우생학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지는 이러한 결과들이 최근에 대규모 DNA 정보를 사회과학자들이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속속 드러나고 있음. 앞으로 이런 발견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함.
그런 측면에서 능력주의는 가장 상속에 기반한 불평등을 지지하는 논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정유라의 주장이 능력주의에 대한 최근의 사회과학적 발견과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일치.
물론 이런 발견도 다 정도의 문제. 세상에 100% 유전이라는 주장은 하나도 없음.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개인의 선택이 사실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개인의 노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부모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 achieved characteristics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이 사실은 ascribed characteristics임.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사회학자 마이클 영의 비판은 바로 이 지점임. 능력주의를 끝까지 밀어붙였더니 상속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
그러면 대안은?
이건 사회과학적 문제라기 보다는 철학적 문제임. 인간이 평등해야만 하는 과학적 이유는 없음. 사람은 다름. 능력에 상당한 격차가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언적 의미에서라도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학적 선택임. 지금처럼 보통선거권을 부여하고 법 앞의 평등이라는 관념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 옛날 사람들은 현대의 사람과 본능과 양심이 달라서 신분제를 채택했겠음?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용인할만한 불평등인지는 집단적 선택의 문제임. 어떤 능력을 보상하는지도 사회적 결정인 것과 마찬가지. 사농공상일 때는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렇게 했겠음? 지금은 STEM을 전공하면 보상받지만 옛날에는 천한 것들이나 하는 일이었음. 발재간이나 좋은 호날두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는 뭐임? 능력도 다 운 때가 맞아야 보상받는 능력이 되는 것 (g-factor라고 능력은 한 가지 지표로 환원된다는 사람도 있기는 함).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능력주의, 공평한 기회라는 신기루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깨고, 이 에너지를 공생, 박애의 기획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이 문제가 담론 차원에서 진보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듯.
Ps. 번외 편으로 2017년의 통계 수치 몇 개 감상하시길. https://sovidence.tistory.com/854. 헌법에 써있는 법 앞의 평등은 잘 지켜지고 있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