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김민아 칼럼

 

조국과 그의 자녀 특권 문제는 계급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경향신문 칼럼. 

 

여러 우수한 연구들이 상당히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고, 꽤 많은 계급,계층론 전공자가 동의하는 지점이 바로 한국에서 기회평등은 악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선되었다는 것. 일반적 인식과 다르고 결과가 섹시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에서 잘 보도하지 않음. 직관과 다른 이 결과를 이해할려면 상당한 통계적 지식도 필요해서 더더욱 제대로 보도되지 않음. 대신 개천에서 용이 안난다, 흙수저론과 같은 현실과 다른 자극적인 논의만 확대 재생산되는 중. 

 

최성수, 이수빈 <한국사회학> 논문

 

예전에 소개했던 최성수, 이수빈의 "한국에서 교육기회는 점점 불평등해졌는가?"라는 논문에 따르면 세칭 명문대를 제외하면 부모의 학력에 따른 그 자녀 세대의 학력불평등 격차는 의미있게 증가했다고 할 수 없음. 

 

정인관, 박현준의 최신 SSR 논문

 

학력만 그런 것이 아님. Social Science Research 최신 호에 실린 정인관, 박현준의 연구에 따르면 교육팽창으로 인하여 한국에서 부모 계급과 자녀 계급의 상관성은 하락하였음. 

 

부모 계급과 자녀의 계급 상관성은 두 가지로 요소분해할 수 있음. 하나는 구조적 요인 (structural mobility), 다른 하나는 순수한 사회 이동 (fluidity 또는 relative mobility 또는 circulation mobility).

 

구조적 요인은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평균 소득이 높아지고 직업 구조가 고도화되면 설사 부모 세대 내에서의 "상대적" 지위(=등수)와 자녀 세대 내에서의 상대적 지위에 차이가 없더라고, 자녀 세대의 사회이동이 높아지는 현상을 나타냄. 

 

부모가 그 세대 내에서 하위 40%고, 자녀도 그 세대 내에서 하위 40%일지라도 부모 세대는 농사꾼이었지만, 자녀 세대는 화이트칼라 회사원이 됨. 이 경우 계급의 상대적 지위는 부모와 자녀 세대에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마치 계급이동이 활발한 것처럼 느껴짐. 

 

이와 대비되는 순수 사회이동은 쉽게 설명해서 구조적 요인을 통제하고 부모와 자녀 세대의 등수에 변화가 있는지를 보는 것.

 

정인관, 박현준의 논문에 따르면 부모-자녀 계급의 순수한 사회이동은 1950-1984년 코호트를 걸치면서 계속 증가하였음.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확률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었음. 아래 그림에서 로그선형 모델이라는 기법으로 분석했더니 부자 간의 계급 상관이 1950-54년 코호트를 1로 봤을 때 최근 코호트로 올수록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음. 

 

 

이렇게 순수 사회이동의 확률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이동이 줄었다고 느끼는 것은 고도성장 시기를 지나서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기에 구조적 이동이 줄어든 것. 개천에서 용이 안나는 듯이 느끼지만, 사실은 개천이 줄어서 그런 것. 옛날에는 개천 밖에 없었기에 용이 났다하면 다 개천에서 나지만, 지금은 개천이 별로 없어서 용이 개천에서 안나는 것. 

 

여러 반론이 많겠지만, 위 두 논문보다 신뢰할만한 대규모의 다른 자료를 사용한 연구 결과도 충격적일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계급 이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해 들었음. 데이터 보안이라고 이런 연구는 공개할 수 없으니 참... 

 

순수 사회이동이 높다고 이상적인 사회인 것은 아님. 사회학자인 Torche의 연구에 따르면 칠레는 굉장히 불평등하지만, 순수 사회이동은 높음. 경제 위기로 사회 전체가 쫄딱 망하면 구조적으로 모두가 하향이동하면서 순수 사회이동도 높아질 수 있음.

 

순수 사회이동 확률이 높다는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확률이 높다는 것 뿐만 아니라 부자가 망해서 개천으로 떨어질 확률도 높다는 것. 한국에서 순수 사회이동 확률이 높기 때문에 중상층 이상에서 자신의 지위 유지를 위한 노력도 높아질 수 밖에 없음. 떨어지면 바닥이고, 다른 사회보다 떨어질 확률이 높으니, 기를 쓰고 지위 유지를 할려고 하는 것. 

 

이 때문에 최성수 교수는 한국 사회는 계급이동의 경직성이 문제가 아니라, 계급이동이 활발해서 오히려 계급의 정체성을 못받아들이고 모두가 경쟁에 뛰어들어서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회라고 진단.

 

기회가 평등해서 도리어 불행한 사회가 되는 아이러니. 즉, 높은 불평등과 연동된 기회평등은 필연적으로 경쟁 심화를 동반함.  

 

그래서 사회변화의 기획을 기회평등의 기획이 아닌, 결과 평등의 기획, 계급적 격차 축소로 바꿔야 한다는 것. 올라가도 너무 올라가지 않고 떨어져도 너무 떨어지지 않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는 것. 결과평등이 있어야 기회평등이 가져오는 경쟁심화 계급격차의 심리적 불행 격화라는 아이러니를 극복할 수 있음. 

 

 

 

 

Ps. 반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명문대와 최상의 지위는 달라요일 것. 대학 졸업, 전문직/관리직 같은 넓은 의미의 지위 획득은 계급 간 이동이 높아졌지만, 명문대와 최상위 지위는 계급 간 벽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지적. 타당한 지적일 수 있음. 하지만 이를 알려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명문대 효과를 같이 볼 수 있어야 함. 김민아 칼럼에서 언급한 정도의 통계로 검증하기 어려움. 

 

기존 연구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능력에 따른 sorting 문제도 있음. 과거에는 부모 세대에서 능력에 따른 학력 sorting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현재의 부모 세대는 능력에 따른 학력 sorting이 더 잘 되었을 수 있음. 기회가 평등해지고 능력에 따른 sorting이 과거보다 더 잘 이루어지고, 많은 능력이 유전이면 사회이동은 떨어짐. 

 

Pps. 또 다른 반론으로 한국의 불평등은 타 국가보다 심하지 않다는 것이 있음. 그럴 수 있음.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하위 10~20%는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더 지위가 낮다는 것이 여러 자료에서 일관되게 증명됨. 계급지위가 하락해서 나락으로 떨어지면 끝없는 추락임. 

 

Posted by sovid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