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양당 체제의 또 다른 승자, 세습 중산층.
지난 21대 총선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진보정치가 이제는 "세습 중산층"을 원망하고 있다. 이 칼럼의 상당히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세습 중산층 사회> 저자의 주장이자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논리는, 이제 중산층이 교육을 통해 계급을 재생산한다는 것. <중산층 부모 --> 자녀의 고등 교육 --> 중산층 일자리>라는 건데, 이건 사회학에서 Blau & Duncan 이래 몇 십년 동안 떠들어오던 OED 삼각형, 부모의 직업/소득으로 측정한 O (origin), 그 자녀의 교육 수준으로 측정한 E (education), 그리고 자녀의 현재 직업/소득으로 측정한 D (destination)의 관계에 대한 주장의 반복이다.
농업사회에서 지위의 직접적 세습, 즉 O -> D로 이루어지다가, 산업사회에서 계급/계층 재생산의 경로가 O->E->D로 바뀌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O->E->D로 바뀌면서 계급 재생산은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논리다. 재산 직접 물려주거나, 귀족 지위 직접 물려주는 것보다, 자식 교육시키는게 당연히 더 어렵다.
지금까지 계급재생산이 안되는 사회는 역사에 없었는데, 지금까지 인류가 생각해낸 계급재생산 방법 중에서 가장 사회이동이 활발한, 즉 개천룡이 날 확률이 가장 높은 방법이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이다.
그래서 사회학에서 나온 논의 중의 하나가 대학이 <위대한 평등촉진자>라는 것. 실제로 대학진학률이 높은 사회일수록 계급재생산 정도는 낮아진다. 부모-자식의 소득 상관성이 대졸자 중에서 가장 낮기 때문에 대졸자가 늘어나면 전반적으로 부모-자식의 계급재생산 정도는 낮아진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이 보편화되면서 계급이 더 고착화된다는 주장은 기존 이론이나 다른 사회의 발견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이다. 한국만 왜 특별나게 그렇게 되겠는가?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학문적 논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어떻게 불평등이 유지되는가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논의의 차원이 달라진 것. 그런데 논의가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최근에 나오는 대학 팽창에도 불평등이 양적/질적으로 유지되는 논문만 보고 마치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이 불평등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인양 인식하는 분들이 넘처난다.
배경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90년대생에서 노동시장 성과가 더 불평등해지고 세습되고 있는가? 그런 증거가 있는가?
중산층이 교육을 통해서 계급을 재생산하는 두 가지 메카니즘이 있다. 하나는 부모배경과 교육성취가 더 밀접히 관련되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교육성취에 따른 노동시장 성취가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고소득층 자녀가 더 명문대에 쉽게가고, 명문대 출신이 더 고소득 직장을 가져야 한다. 바로 밑에 올린 포스팅이 전자(O->E)에 대한 것이 이 번 글은 후자(E->D)에 대한 것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사용한 여러 데이터 중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것이 "대졸자직업능력조사 (GOMS)"이고 저자인 조귀동 기자는 GOMS를 직접 분석해서 왜 90년대에서 중산층 진입이 어려워지고 중산층 진입이 "세습"되는지 보여줄려고 한다. 아래 첨부한 두 표는 이 책의 2장 "좁아진 중산층 진입의 문"에 실렸다.
그런데 두 표는 저자의 주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표 2-1>에서 2012년 졸업자는 1980년대 후반생이 주고, 2016년 졸업자는 1990년대 초반생이 주다. 이 두 기간 중에 서울 4년제 대학 출신의 소득은 감소하였고, <표 2-2>에서 보듯 지방 4년제나 2년제 대학 졸업자의 소득은 증가하였다. 1980년대 후반생에 비해 1990년대 초반생은 학벌에 따른 소득격차가 줄어들었다. 조귀동 기자가 중점을 두고 있는 졸업 후 3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직업을 가질 확률도 2012년 대비 2016년에 지방대/2년제 출신은 늘고, 서울 4년제 출신은 줄었다.
당연히 논리적 귀결은 90년대생에서 초기 노동시장에서 80년대 후반생 대비 학력 간 소득 격차는 감소되었고,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중산층이 교육을 통해 지위를 재생산하기에 90년대생에서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저자는 이 표의 이러한 함의를 무시하고, 90년대생에서 처음으로 세습 중산층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300만원 이상 소득이 중산층 진입의 문이라면, 이 문은 지방대와 2년제 출신자에게 과거보다 더 넓어졌다. 중산층보다 하위계층에서 지방대와 2년제 진학을 더 많이 할테니, 중산층 진입의 문은 90년대생으로 넘어가면서 소득하층 출신에게 더 넓어진 것이다. 그러데 저자는 서울4년제 대학에만 초점을 맞춰서 대졸 후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어져 중산층 진입의 문이 좁아졌다고 주장한다.
중산층 진입의 문은 (중산층 자녀가 주로 다닐) 서울4년제 출신자에게 좁아지고, (중하층 자녀가 주로 다닐) 지방대/2년제 출신자에게 넓어졌다.
2012년과 2016년을 비교할 때 뿐만 아니라, 좀 더 기간을 넓혀, 2008~2016년을 비교하면, 지방대학/2년제 대비 서울 4년제 대학의 평균 소득이 2008년에는 28.4% 높았는데 2016년에는 20.2% 높은 걸로 줄어듦. 80년대 초년생에 비해 90년대 초년생의 학력에 따른 소득격차도 줄었음.
이렇게 정작 <세습 중산층 사회>의 저자도 실제 데이터를 직접 분석한 표에서는 "세습 중산층 사회"와는 거리가 먼 증거를 내놓고 있다. 다만, 무슨 이유에선가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전체 대졸자 중 서울4년제 출신보다는 지방4년제/2년제 출신자가 더 많다. 더 많은 대졸자의 소득이 올라간 것이다. 과연 중산층 진입의 문이 90년대생에게 더 좁아진 것인가? 서울4년제 출신자가 아니라 전체 대졸자로 보면 중산층 진입의 문이 넓어진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의 한겨레 칼럼에 대하여.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critical thinking의 부족. 무릇 모든 책과 논문은 비판적 읽기를 해야 한다. <세습 중산층 사회>를 읽고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비판적 읽기가 안되는 것이다. 사실을 탐구하는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진보의 기획을 이해못한다는 것.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주장했지만, 복지사회는 중산층의 복지에 소득하층이나 빈곤층이 같이 가도록 기획해야 오래간다. 빈곤층만을 타겟으로 하는 복지는 반복지세력의 공격에 쉽게 무너진다. 반면 중산층 복지에 빈곤층이 묶여있는 복지는 해체하기 매우 어렵다. 이게 상대적으로 보수였던 서구사회에서도 복지가 확대된 메카니즘이다.
제가 한국사회에서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이것이다. 몇 년 전에 미국식 의료보험이 도입되고 의료복지 무너진다고 호들갑떨 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큰소리쳤던 근거다. 한 번 시작된 중산층 복지는 무너뜨리기 정말 어렵다.
중산층이 선거에서 진보 쪽으로 전환했다면 새로운 복지의 기획이 현실화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는 뜻이다. 한탄할 일이 아니라, 꿈에 부풀어야 정상인 일이다. 그런데 여기다가 중산층에 대해 저주만 퍼부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Ps.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가장 경청할만한 주장은 노동시장과 혼인시장에 따른 20대 계층 반응의 다변화다. 이 역시 검증되어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