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출생 20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서 <불평등의 세대> 뿐만 아니라 <90년대생이 온다>나 <세습 중산층 사회>같은 책도 구해서 읽어봤다. 

 

전에도 여러 번 얘기(요기, 요기, 요기, 요기)했지만, 사회학의 계층론 전문 연구자와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 사이의 괴리가 가장 큰 부분이 한국의 사회이동성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계급 세습이 강화되었다, 기회불평등이 커졌다, 중상층 자녀들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확률이 강화되었다는 주장은 언론에서 많이 떠들지만 그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가장 신뢰할만한 데이터와 방법론을 사용한 이 분야 전문 연구자들의 연구는 오히려 그 반대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 배경이 자녀의 대학 진학 확률에 끼치는 영향은 축소되었고, 부모의 직업 배경이 자녀의 직업 성취를 결정하는 영향은 축소되었다. 그렇지 않다는 연구들은 대부분 심각한 데이터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교육과 노동시장 성취에서 계층 영향력이 감소했다는 걸 보여주는 엄밀한 연구가 언론에 자주 소개되지 않는 이유는 언론인 스스로도 불평등이 강화되었다고 믿고, 또 그런 뉴스가 대중에게 더 잘팔린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증거를 들어밀면 당장 나오는 비판이 가장 최근 자료는 달라요! 90년대생은 과거와 다른 계급 세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같은 책에서 쎄게 주장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90년대생은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중산층이 세습되는 세대라는 것이다.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나 제가 몇 개 자료로 체크해본 결과로는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왜 그런지 어떤 증거가 있는지 조금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90년대생의 계층 지위를 연구하는게 왜 어려운지부터. 

 

90년대생은 2019년에 조사된 자료에서 가장 오래된 나이가 만29세다. 만 30세가 되지 않은 젊은 나이라, 계층 형성이 안되어 있다. 노동시장 경험이 대부분 일천하고 이들의 계층에 대한 자료 자체가 없다. 노동시장에 진입하지도 않은 집단에 대해서 계층이 세습된다고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한국에서 불평등 연구에 가장 많이 쓰이는 <가계동향조사>는 가구원의 소득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 그런데 20대가 독립 가구를 형성하기 보다는 가구원으로 살아가는 비율이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 20대 소득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가금복> 자료가 그걸 조사하는데 이 블로그에서 주구장창 얘기했지만, 통계청에서 이 자료를 공개 안하고 있다. 

 

90년대생은 대졸자가 대부분이라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를 이용하면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이 자료는 2019년 현재로 2016년 자료가 최신이다. 2016년 자료에서 1990년대 초반 졸업자들의 초기 노동시장에 대한 자료만 있다. 

 

그럼 남는건 <노동패널> 밖에 없는데 2019년 노동패널 자료에서 현재 직업이 있는 1990년대 생은 전체 샘플 1504명 중에서 400명에 불과하다. 계층 세습 여부를 연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90년대생들의 계층 세습은 제대로된 검증을 받을 수 있는 경험적 연구의 영역이 되기 어렵다. 아직 노동시장에 제대로 편입되지 않았고, 그러니 당연히 자료가 없다. 증거가 있을 수가 없다. 있어도 제한적 증거가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제한적 증거도 계층 세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 당연히 90년대생의 계층이 세습되는가는 교육성취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최성수.이수빈(2018)의 연구가 가족 배경에 따른 4년제 대학, 엘리트 대학 진학 확률을 측정했지만 이들의 연구는 1980년대생에서 끝났다. 1990년대생에 대한 자료에 한계가 있으니 이렇게 한 것.  

 

기존에 나와있는 증거가 부족하니 자료를 직접 돌려봤다.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를 이용해서 대학 입학 당시의 가족 소득을 출생 연도별 랭크 변수로 바꾸고 가족 소득이 소위 말하는 서연고-서성한-중경한시 대학에 입학할 확률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해 봤다. 다른 변수 하나도 통제안하고 오직 대학 입학 당시 가족 소득이 엘리트 대학 진학에 끼치는 영향력만 봤다. 

 

그랬더니 1980년대 이후 출생자 중 가족 소득의 순위를 최고 1등 부터 최하 100등까지 정렬하여 등수가 10개 상승하면 엘리트 입학 확률이 평균 1.1%포인트 증가한다. 소득 하위 20%의 엘리트 대학 진학 확률이 5.2%인데 소득 상위 20%의 엘리트 대학 진학 확률은 11.9%로 두 배 넘게 차이가 난다. 가족 배경은 엘리트 대학 진학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가족 배경이 엘리트 대학 진학에 끼치는 영향의 출생연도별 추세를 보면 가족 배경의 영향력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씩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축소했다. 80년대생 대비 90년대 초반생의 가족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교육 성취의 계층 세습이 강화된 것이 아니라 축소되었다. 성, 재수여부, 지역, 출신 고교 등 여러 변수를 통제하면 결과는 조금 바뀔 수 있겠지만, 단순 상관관계의 측면에서 90년대생이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세습 중산층이라는 증거가 없다. 원래부터 엘리트 대학 진학 확률은 중상층에게 유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중산층의 우월적 지위의 영향력은 80년대생 대비 90년대생 초반에서 축소되었다. 

 

 

 

 

그럼 일부에서는 90년대 후반으로 가면 다르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증거가 뭔가? 

 

최성수.이수빈(2018)의 연구를 보면 1960년대 출생자부터 1980년대 출생자까지 상위권 대학 진학 확률에 끼치는 부모의 상대적 학력 지위의 영향력에 거의 변화가 없다. 제가 직접 분석한 부모의 상대적 소득의 자녀 엘리트 대학 진학 영향력은 1980년대생 대비 1990년대생에서 줄어들었다. 이 전반적 경향이 1990년대 후반 출생자에게 갑자기 바뀔 필연적 이유가 있나?

 

경험적 증거가 없으니 이건 논리적 추론, 가설 추론의 과정이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계층 세습이 약화될 이유가 더 많다. 

 

1. 1990년대생이 대학에 들어올 시기에는 대학이 팽창한다. 대학 팽창이 불평등을 줄여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강화시키지는 않는다. 대학팽창과 불평등의 관계에 대한 사회학 이론도 팽창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이 어떻게 다른 양적, 질적 수단을 통하여 "유지"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 팽창은 계층 배경에 관계 없이 대학에 진학할 확률을 높여서 계층 영향력을 축소시킨다. 

 

2. 90년대생은 출산율이 낮아진 세대다. 출산율이 낮아지면 부모가 자녀 1명에게 쏟는 투자가 늘어난다. 부자와 빈자 모두 똑같이 다자녀가 아니라 외자녀에게 자원을 쏟아부으면 교육 성취의 계층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이유는 자녀 교육을 위한 자원의 효과도 체감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부모가 교육 투자를 2배 올리는 것의 효과가 원래 교육투자가 많았던 부자 부모가 교육 투자를 2배 올리는 효과보다 크다. 자녀수가 줄어들고 모두가 자녀 1인에게 쏟아붓는 자원 투자를 늘리면 교육 성취의 계층 격차는 줄어들고, 엘리트 대학 진학에 끼치는 계층 효과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도 논의했지만 한국은 동질성이 큰 국가다. 전 국민이 자녀를 위한 교육투자에 인색하지 않다. 이런 동질성 하에서는 어떤 자원이든 투자할 자원만 늘어나면 교육성취의 계층 격차는 줄어든다. 

 

3. 뿐만 아니다. 90년대생에게 적용된 수시, 내신 확대는 계층 격차를 줄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입시 유형을 따르더라도 고소득층의 엘리트 대학 진학 확률이 저소득층보다 높지만, 상대적으로 내신이 저소득층 자녀에게 유리하다. 논술 등 일부 고소득층에게 유리한 입시전형이 있지만, 90년대 후반생에게 확대된 내신 위주 전형은 소득 하층 자녀들의 엘리트 대학 진학 확률을 높였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론적으로 이전세대보다 1990년대에서 교육성취의 계층 세습이 악화되기 보다는 줄어들 이유가 더 많다. 

 

 

 

그렇다면 왜들 이렇게 난리인가? 

 

그 이유는 오히려 기회가 평등해지면서 경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소득 하층은 엘리트 대학 진학 경쟁에 아예 들어와 있지 않은데, 지금은 이들이 그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연히 엘리트 대학을 둘러싼 경쟁에 소득 하층 출신의 비중이 증가한다. 과거에는 소득 하층이 경쟁에 안들어와있으니 소득 하층의 소득 효과는 관찰되지 않는다. 일반적 인식에 소득 하층의 소득 효과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관찰되는 대부분의 소득 효과는 중산층 이상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런데 지금은 교육 기회가 평등해져서 소득 하층이 대학 진학 경쟁 시장에 편입되었다. 아예 시장에서 배제되었던 계층이 시장에 들어오니 갑자기 소득 하층의 소득 효과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시장에 들어오니 경쟁은 심화된다. 엘리트 대학 진학이 더 어렵다고 느껴지고, 소득 하층은 엘리트 진학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좀 더 압축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소득의 순효과 (rate effect) 때문이 아니라 소득 하층이 증가한 소득계층의 분포 효과 (composition effect) 때문에 90년대생에서 계층 세습이 커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럼 90년대생들의 노동시장 성취는 어떻게 되었을까? 글이 너무 길어지니 이건 다음에 별도의 글로.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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