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식 공정의 작동 방식으로 "시험주의"를 비판하는 글들이 자주 보인다. 미국은 커리어 전체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경쟁하는데 한국은 대학 입시 시험 한 번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시험주의도 아니라는 글도 보이고.
그런데 인생의 각 단계마다 시험을 보고 지속적으로 경쟁하는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상위계층의 이익을 보존하는 메카니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생에서 고교진학, 명문대, 대학원, 직장, 승진 등 5단계의 관문이 있고, 여기서 상위계층은 각 관문에서 40%의 성적 우수자가, 하위계층에서는 35%의 성적 우수자가 통과한다고 치자. 각 단계에서의 계층 간 격차는 5%포인트에 불과하다. 일종의 조건부 베르누이 시행으로 사고실험을 해보자.
그러면 인생의 출발점에서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이 각각 1000명이 시작하면 최종적으로 괜찮은 직장에서 승진하여 물질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는 숫자는 상위계층은 10명, 하위계층은 5명이 된다. 출발점에서는 상하위 계층의 숫자가 같고 고교에서는 50명 차이, 비율로는 14% 차이 밖에 안났지만, 최종 관문을 통과하면 상위계층의 숫자가 하위계층보다 2배 많게 된다.
각 단계에서의 통과율을 상위계층은 45%, 하위계층은 30%로 꽤 차이가 난다고 치면, 최종관문을 통과한 사람의 비율은 상위 계층이 90% (18명) 하위계층은 10% (2명)에 불과하게 된다.
상위계층 (40% [45%] advance rate) | 하위계층 (35% [30%] advance rate) | |
(0) 출발선 | 1000명 | 1000명 |
(1) 특목고/자사고 | 400명 [450명] | 350명 [300명] |
(2) 명문대 | 160명 [203명] | 123명 [90명] |
(3) 명문 대학원 | 64명 [91명] | 43명 [27명] |
(4) 괜찮은 직장 | 26명 [41명] | 15명 [8명] |
(5) 승진 | 10명 [18명] | 5명 [2명] |
이런 식의 경쟁을 사회학에서는 competitive mobility라고 한다. 인생의 각 단계마다 새롭게 경쟁을 하고 그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상층으로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결국은 계급을 재생산한다.
대학 입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계속 경쟁해도 출신 계층에 따른 리소스의 차이로 각 단계마다 하위계층 출신이 불리하면 장기적으로 큰 결과의 차이를 낳게 된다.
미국 사회학에서 큰 발견 중의 하나가 1980년대 초에 제기되었던 대학 진학 이후에는 출신계급의 영향이 없더라는 대학이 "위대한 평등의 실현자 (The Great Equalizer)"라는 이론이다. 어떻게든 하위 계층을 대학까지 보내면 그 다음에는 출신계층의 영향이 거의 없더라는 것. 위 분석에서 (2)단계까지는 가족 배경의 영향이 나타나 advance rate의 계층 차이가 있지만, 그 다음서부터는 출신배경의 차이가 없더라는 것. 그러니 대학까지는 하위계층을 집중 지원하고, 그 다음은 "공정경쟁"으로 competitive mobility를 이루면 사회이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대학이 팽창하면서 미국에서도 대학원에서는 출신 계급의 영향이 다시 나타났다 (요 포스팅 참조).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한국 자료를 분석해보면 대학갈 때도 당연히 가족 배경의 영향력이 남아있고, 대학원 갈 때도 그렇고(현재 논문 작업 중), 대학 졸업 후 직장 가질 때도 그렇다 (이수빈, 최성수 논문 참조). 서구사회보다 가족 배경의 영향력이 대학 진학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있다. 대학에서 대학원 갈 수 있도록 부모가 뒷받침해주고, 대학 졸업하고 취준생으로 지낼 수 있도록 부모가 서포트해주고, 직장다니면서 가정을 일구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돌봄서비스와 유아교육을 (조)부모가 서포트해준다. 이 과정에서 상위계층은 인생 전체를 통해서 경쟁에서 서포트로 이어지는 노오력을 중단없이 기울인다.
그 결과 서구의 competitve mobility가 한국에서는 계급 재생산의 메카니즘이 되어 버린다. 그 이유는 시험주의 때문 만이 아니다. 시험주의와 가족주의의 결합에 의해서만 이 메카니즘을 설명할 수 있다. 서구 사회에 비해 가족주의가 강하고, 부모가 자녀를 서포트하는 알흠다운 미덕이 있다. 그 덕분에 각 시험마다 가족 배경의 영향력이 살아있다. 대학 이후 advance rate이 같아지는 현상이 한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저는 여기에 한국에서 유독 공정경쟁 담론이 상위계층에서 득세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족이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한국의 전통은 대학 팽창의 효과와 더불어 대학 교육까지의 시험주의 공정경쟁을 통한 계급재생산을 흐리게 한다. 이게 여러 사회학 연구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사실이다.
이렇게 흐려진 계급재생산을 강화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시험주의, 공정경쟁의 단계를 늘리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논란은 이 맥락에서 봐야하는게 아닌가 싶다. 인국공식 정규직 채용이 능력주의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가족배경의 영향력이 작동하는 능력주의가 아니라서 화가나는 것 아닌가.
한국식 가족주의와 공정경쟁의 competitive mobility가 결합하면 계급을 더 잘 재생산한다. 공정경쟁을 통한 계급재생산의 메카니즘은 한국의 가족주의를 통한 매개 효과를 같이 봐야 그 온전한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