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부가세 인상을 검토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곧 이어 기재부에서 그런 적 없다는 보도자료도 나왔다. 현정부들어 간보기 기사와 해당 부처에서 부인하는 기사가 나오는 기존 패턴의 반복. 이제는 누가 어떤 경로로 그런 정책들을 검토하는지 대충 예상이 된다. 상황이 불안정해도 열일 하시는 한국의 권력서열 1위가 아닐지.
부가세 인상 검토 보도 이후 부가세 증세가 실질적으로 누진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는 듯 하다.
저는 현 정부에서 부가세를 인상하겠다면, 민주당은 절대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근소세 유예 항목 축소에 반해했던 걸 문재인 당시 야당 대표의 최대 실수라고 생각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담배/술 세금 올릴려는 움직임에도 찬성했었다 (예를 들면, 요기).
그런데 부가세 인상이 진보적인가는 또 다른 질문이다. 세금 문제에 전문적 지식이 있는건 아니지만, 세금과 불평등은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 불평등 연구자의 상식 차원에서 몇 가지 사실을 공유하고자 한다.
두 가지 결론을 우선 말하자면, (1) 부가세 인상은 역진성을 띈다는게 지금까지 연구의 결론이다. 소득 대비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 면에서 뿐만 아니라, 부가세 인상으로 전체 세액이 증가하고, 이를 재분배한 결과까지 고려해도 그렇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부가세 인상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전체 세금에서 간접세 비중, 그 중에서도 부가세가 차지하는 부분이 낮기 때문이다.
우선 첫 번째 부분부터. 부가세의 역진성은 상식적이다. 가난할수록 소득에서 소비에 지출하는 비중이 높아서, 소득대비 세금의 비율면에서 부가세는 역진적이다. 하지만 세액으로 보면 부자일수록 소비도 많이하기에, 세액의 측면에서는 부가세는 누진적이다. 부가세 역진성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주장이, 부가세를 높이면 총세액이 증가하는데, 이를 공평하게 재분배하면 결국은 빈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져서, 부가세 인상도 재분배에 효과적이라는 거다. 트위터에서도 이런 주장을 피는 분들이 눈에 띈다.
그래서 이루어진 연구들이 부가세 인상이 가처분소득에 끼치는 영향이다. Input-output 연구라는 셋팅이다. 부가세를 인상했을 때 소득하층의 가처분 소득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줄어드는지, 아니면 별 영향이 없는지에 대한 연구다. 2008년에 발행된 OECD의 종합 리뷰 논문이 있는데, 여러 국가의 시뮬레이션을 종합하면, 모든 연구가 부가세 (정확히는 소비세) 인상은 소득하층의 가처분 소득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줄인다고 보여준다. 유럽 5개 국가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했던 2010년 연구도 동일한 결론이다.
어떤 연구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경향에서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저개발국가의 간접세다. 이들 국가에서 소득하층은 현금이 필요한 시장 소비를 거의 못하고 자급자족이나 시장외적 소비를 하기 때문에, 부가세 인상이 의외로 누진성을 띈다. 한국은 그 단계를 예전에 뛰어넘었다.
그렇다고 간접세의 역진성이 100% 확정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논의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 가처분소득 외에 공유하는 효용이다. 예를 들어, 거리가 깨끗하면 모두에게 무형의 혜택이 돌아가는데, 일반적으로 빈촌의 거리가 부촌보다 지저분하다. 간접세 인상으로 정부예산이 증가하면 모든 거리를 깨끗하게 유지하게 되고 소득하층의 효용이 증가한다. 또 다른 예로, 정부에서 공원을 잘 가꾸고 유지하면 국내외 관광지를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소득상층 보다 그렇지 못한 소득하층의 효용이 더 크게 증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이 기존 연구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부가세 인상은 상식보다는 덜 역진적이지만, 그렇다고 누진적이지는 않다. 소득하층의 가처분 소득이 상층보다 비율적으로 더 많이 줄어서, 부가세 인상은 가처분 소득 불평등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가세 인상에 찬성하는 이유는 뭔가? 여기서 두 번째로 포인트로 넘어가자. 우선 아래 그래프를 보시라 (소스는 요기). 몇 개 국가에서 전체 세금의 GDP 대비 비중과 각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한국은 전체 GDP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은 국가이다. 심지어 일본보다 낮다. 한국이 그나마 저 정도라도 되는건 부가세 보다는 특소세 때문이다. OECD 평균 대비 소득세보다 간접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낮다. 한국에서 1/3 이상의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소득세를 내지 않는건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은 실효 소득세의 누진성이 높다. 그런데 간접세도 전체 GDP 중 비중이 낮아서, 다른 국가대비 상대적으로 누진성이 높을 확률이 크다. 한국의 소비세는 특소세의 비중이 큰데, 이 역시 간접세의 누진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러니 한국은 소득 상층의 세금부담 비율이 직접세, 간접세 모든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높다. 세금의 포괄성과 보편성은 낮다. 비록 실효세율에서 소득 상층의 부담이 다른 국가보다 낮지만, 전체 세금에서 소득상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소득 상층의 세금 저항이 심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
아래 그래프는 국가별 부가세 비율이다. 보다시피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이다 (소스는 요기). 간접세를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간접세의 비중이 낮다보니,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의미에서 간접세 세금의 효율성이 높다. Tax Foundation이라고 기업 입장에서 세금 경쟁력을 평가하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 한국 간접세의 기업 경쟁력은 세계 2위다.
그러니 한국은 세금의 포괄성 측면, 정부의 세입 확대라는 측면, 현재 간접세의 상대적 부담 정도에서 충분히 간접세를 올릴 수 있고, 올리는게 좋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도했듯이, 현 정부에서 간접세 인상을 추진한다면 적극 칭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