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은 고정된 세습 신분이 아니고, 몇 대에 걸쳐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신분을 잃는다. 기득권을 유지할려면 집안에서 과거 합격자가 나와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학력을 통해 계급이 재생산되는 경로가 막강한데, 조선시대도 이미 그런 메커니즘이었다. 따라서 기득권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 자녀가 과거에 합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유인이 있다.
현대의 대학입시와 같다고 얘기할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과거제에도 정시와 수시 비스무리한게 있었다. 3년마다 한 번씩 33명을 뽑는 식년시라고 불렸던 정기시험이 있고, 여러가지 명칭으로 불렸지만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수시로 뽑았던 별시가 있었다.
과거 시행 횟수는 별시(조선시대 전체 573회)가 정시(163회)보다 훨씬 많았다. 전체 합격자 중에 정시 출신이 5,865명이고, 별시가 8,393명이었다. 정시와 별시는 시험 내용도 달랐는데 (사실은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졌는데), 정시는 주로 사서삼경 암기 위주였고 (이걸 강경이라고 함), 별시는 여러 주제에 대한 논술 위주(이걸 제술이라 함)였다. 정시는 시험 시기가 정해져 있었지만, 별시는 수시로 봤기 때문에 지방에 있으면 시험 보러 오기도 매우 불편했다. 별시의 시험 문제는 시의성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친인척이 조정에 가까우면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책에서 시험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도서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유리했다. 정시보다는 별시가 더 변동성이 높고, 기득권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사회학의 적응과 배제의 법칙에 따르면 (이 전 포스팅 요기, 요기), 변동성에 기득권이 더 잘 적응하기 때문에, 정시보다 별시에서 기득권이 더 유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번 연구는 이걸 통계적으로 검증한 거다. 현재의 대학 입시에서 논술 위주의 시험이 상위 계층에서 가장 유리했는데, 조선시대 과거제에서도 정시보다 별시가 기득권에게 유리한지.
조선시대는 전체 과거합격자의 기록을 방목이라는 형태로 남겼다. 그 중에서도 문과 시험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과거다. 이 기록이 문과방목이고, 모두 디지털화되어 있다. 이 기록에는 시험친 날짜, 등수, 출신지역, 부친, 조부, 외조부, 장인의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을 가지고 조상이 과거시험 합격자인지 추적할 수 있고, 조선왕조실록과 링크해서 이들의 지위도 알 수 있다.
별시가 기득권에게 유리한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격률이다. 그걸 알려면 누가 시험을 봤는지 알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 정보는 없다. 방목은 합격자 정보만 있다. 그래서 고안한 아이디어가 일종의 DID를 하는 거다. 시기별 합격자 중에서 기득권의 정시/별시 비율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는 거다. 출신 배경에 따른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비율 차이(1st difference)가 시기별로 바뀌는지(2nd difference)를 살펴봤다. 그렇다고 이 연구가 DID의 인과성을 의미하는 건 전혀 아니고, 기술통계의 측면에서 그렇게 비교했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17세기를 양반, 사대부의 전성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19세기가 되면 세도가 정치가 시작된다. 기득권의 변화에 따라 별시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집단이 달라질거라고 가정하면, 17세기에는 양반(부, 조부, 외조부..가 과거에 합격한 집안) 중에서 별시 합격자의 비중이 높아질 거고, 19세기가 되면 세도가 집안의 별시 합격자 비중이 높아질 거라는 예측이다.
아래 그림은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조상(부, 조부, 외조부, 형제 등) 중에서 과거 합격자 수의 차이다. + 는 별시 합격자의 조상 중 과거합격자가 정시 합격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보다시피 조선 초기에는 두 시험 간에 차이가 없었는데, 점점 그 차이가 벌어져, 양반의 전성기라는 17세기에 정점을 찍고, 양반이 쇠퇴하는 조선 후기로 가면 별시와 정시 합격자의 조상 중 합격자의 차이가 사라진다.

그럼 세도가는? 세도가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논란이 있지만, 이 연구에서는 선조 이후 중전과 대비를 배출한 6개 집안으로 한정했다 (안동 김, 남양 홍, 여흥 민, 경주 김, 반남 박, 풍양 조). 이걸 이러저리 달리 규정해도 결과의 차이는 없다. 아래에서 보다시피 조선 중기까지는 세도가 집안 과거 합격자의 정시/별시 차이가 없었는데, 19세기에 갑자기 세도가 출신의 별시 비중이 높아진다. 양반과 세도가 집안이 그들의 부침에 따라 별시 합격자 비중이 달라졌다.

한 가지 추가로 검증한 건, 과거 합격자의 출신 지역이다. 방목에는 어느 지방 출신인지 정보가 있다. 그걸 이용해서 서울로부터의 유클리안 거리를 계산하고, 정시와 별시 합격자의 차이를 봤다. 그랬더니, 아래 보다시피 시간이 지날수록 정시 합격자와 별시 합격자의 서울로부터의 거리가 달라졌다. 서울에서 먼 지방 거주자는 정시를 통해 과거에 합격하고,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사는 사람일수록 수시에 합격하는 경향이 커졌다. 지방 출신자들이 변동성이 낮은 정시에 점점 적응해서 정시 합격 비중이 높아졌는데, 별시 합격 비중은 오히려 낮아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득권은 과거제에서도 제도 해킹을 했다. 시험 제도가 자주 바뀌고 유동성이 클수록, 입시에서의 적응의 법칙이 작동한다. 이 결과는 현대 한국 입시제도에서 논술고시가 상위계층이 훨씬 유리했던 현상과 일치한다.
얼마 전 교육부장관이 AI에 맞춰서 입시제도를 암기 위주, 오지선다가 아니라 논술형으로 바꾸는걸 말했나 보다. 그런 변화가 어떤 계층이 유리할지는 너무 명확하다. 한국의 현재 입시제도, 조선시대 과거제, 미국의 입시제도, 대만의 입시제도 등등 모든 교육 사회학 연구가 매우 일관되게, 제도의 빈번한 변화와 논술위주는 상위계층, 기득권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효과가 있다는걸 보여준다.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상위계층은 하위계층보다 교육 성취가 높은 경향을 가지지만, 제도가 빈번하게 바뀌고, 제도에 주관적 평가의 여지가 높아질 때, 상위계층의 이점은 더 커진다.
Ps. 17세기를 양반의 전성시대라고 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과거 합격자 중 양반출신과 세도가 출신 중 당상관에 오른 비율을 권력의 proxy로 삼아서, 이 비율과 20년 후 양반과 세도가 출신의 정시/별시 합격에 끼치는 영향을 봤더니, 정시보다는 별시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컸다. 조상 중에서 당상관에 오른 비율이 높아지면, 자손이 정시보다는 별시를 통해 과거를 합격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거다.
Pps. 문과방목을 이용한 선행 통계적 연구로는 이상국,박종희 교수의 연구와 크리스토퍼 백의 연구 등이 있다. 이 연구들은 주로 과거 합격 후 관직 진출에서 집안 배경의 효과를 본 것이다. 우리 연구는 과거를 정시와 별시로 구분하여, 과거 합격의 계층적 특성을 본 첫 양적연구가 아닐까 싶다.
Ppps. 지금까지 여러 공동 논문 작업을 했지만, 이 번이 사회학 전공이 아닌 분과 처음으로 한 작업이다. 역사학에 대한 지식은 모두 공동저자인 홍콩침례대 최동혁 박사의 공헌이다. 정시와 별시를 구분해서 보는 아이디어의 단초도 최동혁 박사 덕분에 가능했다. 융합이라는 게 쉽지는 않지만, 뭔가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같기는 하다.
Pppps. 논문은 학교와 엘스비어의 계약 덕분에 무료 접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