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대의 Angus Deaton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를 소개하는 한국 신문, 특히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이 "토마 피케티 반대입장의 앵거스 디턴,노벨 경제학상 수상."


디턴을 피케티와 대별시키는 기사를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 두 사람의 책을 모두 읽어 봤는지 의문. 피케티 책은 다 읽었고, 디턴 책은 반만 읽어서 (비행기에 책을 놓고 내려서ㅠㅠ),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관점을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디턴의 Great Escape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영어를 내 멋대로 번역한 것이니 국내 번역본과는 다를 것임). 


경제학에 파레토 원칙이라는게 있는데, 다른 사람의 상황이 악화되지 않으면서 일부의 상황이 좋아진다면, 전체적으로 상황이 좋아진 것이다. 이 과정에 시기와 질투가 생길 수 있지만 이는 고려 요인이 아니다. ... 이 원칙에 근거해 마틴 펠드스타인는 소득불평등은 개선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 그런데 파레토 원칙에 대해 여러 논의할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소득 불평등 증가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Hacker & Pierson과 Bartel의 책을 소개하며 부의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논지를 펼침. 두 책은 이 블로그에서 예전에 요기, 요기, 요기서 소개.)


민주주의의 필요 조건인 정치적 평등은 극심한 불평등 하에서는 언제나 위기에 처한다. 불평등이 늘수록 민주주의의 위기는 커진다. 


대법관 브렌다이져와 따르면 미국은 민주주의를 하거나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거나 둘 중 하나이지, 둘 다를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약화되면 사람들의 웰빙에 직접적인 손실이 생기는데 이는 정치적 참여를 가치있는 것으로 여길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참여가 약화되면 전반적 삶의 웰빙에 해가 되는 다른 나쁜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 


파레토 원칙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며,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다른 사람의 행운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파레토 원칙을 전반적 삶의 웰빙 중 소득 한 차원에만 적용하고, 정치적 참여, 더 나은 교육을 받는 것, 건강한 삶을 사는 것, 다른 사람의 재산을 늘리는데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등 웰빙의 다른 차원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얻어야 하는 교훈은 


경제적 불평등 때문(아니면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다양한 계층이 평등하게 정치참여를 하는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 삶의 전반적 웰빙이 악화된다는 것. 이 입장이 도대체 왜 피케티와 대별된다는 것인지. 




디턴의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하기에 얻어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경제발전과 행복, 전반적 삶의 질 간의 상관관계다. 이 건 다음 포스팅에.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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