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기사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마구 줄고 있다는 기사. 





그런데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동아일보가 사용한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6년 12월 대비 임금근로자가 25만명 증가하는데, 그 중 상용근로자가 40만1천명 증가한 반면, 임시근로자는 10만2천명, 일용근로자는 4만9천명이 각각 감소. 


최저임금이 오르자 기업이 일제히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를 줄이고 상용근로자는 늘리는 것으로 파악됨. 


비임금근로자는 늘지 않았으며, 그 중 자영업자는 1만 8천명 증가하였으나, 무급가족종사자는 1만5천명 감소. 


최저임금이 오르니 무급가족 노동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기업들이 급격하게 상용근로자를 늘리다보니 소득이 없는 무급노동자로 일하기보다 상용근로자가 되어 월급을 받는 것이 가계경제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으로 분석됨. 


이를 모두 합치면, 최저임금의 급속한 상승으로 일용직, 무급가족종사자,일용근로자 등 소득이 낮은 노동자는 16만6천명이 감소한 반면, 고용이 안정되고 소득이 높은 상용근로자는 40만명 증가. 기업가 정신을 나타내는 자영업자도 1만 8천명 증가. 


나쁜 일자리가 줄어들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현상을 두고, 최저임금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비판하면 도대체 어쩌라는 얘기? 


혹자는 전년 동월 대비가 아니라 11월 대비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할텐데, 그렇게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임. 상용근로자는 늘고, 임시/일용직은 줄어듦.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이렇게 훌륭한 결과를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음.  





* 물론 이런 식으로 침소봉대, 일부 통계만 cherry-picking하여, 별 관계도 없는 최저임금과 연계시키는 분석은 완전 엉터리임. 


최저임금 효과가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에서 주장하듯 그렇게 쉽게 나타나면 사회과학자들이 미쳤다고 지금까지 죽어라 논쟁하고, 분석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겠음? 




Ps. 미국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아편성분 함유 진통제 과다 복용에 대한 참여 관찰을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걱정해 주신 분들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아편의 효과가 좋긴 하더군요)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Vox 보도. Ganong & Shoag 논문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미국에서 지역별 경제성장률이 소득이 높은 지역은 낮고, 소득이 낮은 지역은 높아서, 1990년대 이전까지 상당히 지역별 격차가 줄어듦. 


미국에서 1940년대에는 남부가 해안지역이나 중부보다 훨씬 못살았는데 흑인의 대이동(Great Migration)과 남부 선벨트의 발전으로 인하여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음. 


그런데 지역별 격차 감소가 1990년대 이후에는 지역별 격차 감소 정도가 약화되고,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지역 이동의 감소임. 


예전에는 못사는 지역에서 잘사는 지역으로 사람들이 옮겼는데, 이제는 그 경향이 완전히 사라졌거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잘사는 지역에서 못사는 지역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  



저자들은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집값에서 찾고 있음. 


아래 그림에서 빨간색은 고학력자가 지역을 옮겼을 때 소득이 늘어나는 정도고, 파란색은 저학력자가 지역을 옮겼을 때 소득이 늘어나는 정도임. 여기서 소득은 단순 소득이 아니고 잘사는 지역의 집값 상승으로 인한 실질 소득 감소분을 감안한 후의 소득 상승분임. 


보다시피 고학력자는 잘사는 지역으로 옮기면 소득이 늘지만, 저학력자는 잘사는 지역으로 옮기면 집값 대비 소득이 늘지 않음. 이렇게 되면 학력별, 능력별 지역 분리가 심화됨. 



엔리코 모레티의 주장과는 달리 저소득층은 IT 산업 등이 몰려있는 해안 지역으로 이사해서 얻는 실질적 이득이 별로 없음. 시간당 $15 벌어봤자 하꼬방같은 집의 엄청난 렌트비 내다가 마는 것.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거지만, 저소득층만의 문제는 아님. 나님도 열심히 계산해봤는데 소득이 상당히 오르지 않으면 현재 살고 있는 작은 대학도시에서 대도시로 이주했을 때 생활수준 향상이 거의 별로 없음. 오히려 생활 수준이 낮아짐 (자산 축적은 다른 얘기지만...). 


한국에서 서울의 집값이 너무 비싸져서 신혼 중산층이 경기도를 떠나고, 고연령 고소득층이 서울로 몰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임.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함. 

1) 고소득 지역에 주택 공급을 늘리자. 

2) 저소득 지역으로 공공 기관을 이전하자. 


1)은 그렇게 되면 고소득 지역으로 더 인구집중이 되어서, 결국은 집값이 더 오르고 국토 균형 발전이 저해된다는 것. 지역별 격차를 오히려 악화시킬 것. 


그래서 저소득 지역으로 2) 공공 기관/교육 기관 이전을 최선을 대책으로 제안. 


한국은 이미 2)를 하고 있음. 


실제로 인구 이동 패턴을 분석해보면 서울에 거주하던 고학력 전문직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향이 2000년대 들어 상당히 나타나고 있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아래 최저임금 관련 포스팅에 한 분이 최저임금 인상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메카니즘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소득 주도 성장, 허장성세로 끝나야"라는 칼럼도 썼다. 


소득 주도 "성장"은 가능한가? 


비록 매크로 경제학의 문외한이지만, 주워들은 바로 내가 아는 답은 모른다는거다. 더 정확한 답은 장기 성장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실제로 가능성 높은 성장 대책이냐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도 모르는 장기 성장의 비결을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다고 다른 경제정책 대비 특별히 더 비판 받을 이유는 없다. 


한 번 더 뒤집어서 말하면 "소득주도" 정책을 핀다고, 장기 성장에 해를 끼친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성장이론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이 의심될지라도, 분배논리로 소득주도성장론은 유효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장기 성장이 정체된 현재의 상황에서 분배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경제 성장률이 높을 때에는 분배 정책이 미비해도 다수의 경제적 웰빙이 꾸준히 개선되지만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 적극적 분배 정책 없이는 경제적 웰빙의 개선이 소수에서만 일어난다. 





소득주도성장이 성장론이냐 아니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경제 성장이 가능한지를 알아야 한다. 가장 쉬운 경제성장 정책은 베끼는 것이다. 후진국이 선진국의 기술, 제도를 베끼는 catch-up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국은 이 단계는 거의 끝났다. 


그 다음으로 알려진 방법이 요소투입량을 늘리는 것이다. 자본, 노동력을 더 투입하는 것이다. 인구가 늘면 경제가 성장한다. 노동 투입량이 늘어나니까. 투입 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것도 잘 알려진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요소투입량이 아니라 총요소생산성이라고 명명된 요인인데, 이 총요소생산성은 보통 잔차로 계산한다. 무슨 말인고하니 GDP 성장 분 중에서 설명 가능한 모든 요인을 다 빼고 그래도 설명안되고 남는 부분이 총요소생산성이다. 한마디로 잘 모르는 경제성장 요인이다.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시기는 총요소생산성이 높게 증가했던 시기이고, 요즘 들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시기는 총요소생산성이 낮아진 시기다. 


총요소생산성은 기술발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몇 가지 기술만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중반에 전기, 내연기관 등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생산성이 급등하고, 1990년대 중반에 기술정보통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 요인들을 고려해도 설명안되고 남는 총요소생산성이 여전히 경제발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경제발전이 안되는 이유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총요소생산성 발전이 최근 들어 낮아진 이유에 대한 설명은 대략 3가지 입장으로 대별된다. 하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입장으로, 요즘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서머스의 secular stagnation 같은 주장이나, Robert Gordon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같은 주장들이다. 가까운 미래에 총요소생산성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현재의 침체는 일시적 문제일 뿐 가까운 미래에 총요소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브린욜프슨이 중심이 되어 하는 주장인데, 4차산업혁명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모두 이 계열의 주장이다. 


마지막은 지금도 총요소생산성은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는데 현재의 GDP 계산 방식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GDP 측정 오류로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침체를 인식하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Youtube로 듣고 싶은 음악 마음대로 음악듣는 것도 경제적 웰빙의 큰 개선인데 GDP에는 이게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린욜프슨은 두 번째 주장과 세 번째 주장 사이에 왔다갔다 한다. 


각각 구조론, 시기론, 측정오차론으로 칭할 수 있다. 각각의 입장에서 성장에 대한 대안은 첫번째는 당분간 성장은 틀렸으니 확장적 재정으로 총수요나 관리하자, 두번째는 조금만 기둘려라, 경제 성장은 곧 온다. 4차 산업혁명 와중에 희생될 미적응자에 대한 케어를 준비하자. 세번째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자.  


어떤 입장이든 최근 수치로 측정된 경제성장률이 낮아졌다는데는 동의한다. 이 중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한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확실한 정책적 방법은 아무 것도 없고 (뭐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도 모르니까), 그나마 정책이라고 제시된 것은 구조론에 기반한 확장적 재정이다. 






그런데 이런 소득주도성장론은 이 중에 어떤 입장이고, 어떤 답을 제시하는가? 


명시적으로 얘기는 안하지만 확장적 재정정책을 제시하는 구조론과 친화적이다. 시기론과도 딱히 괴리되어 있지는 않다. 


왜 확장적 재정정책이 정반대의 입장인 시기론과 반드시 괴리되어 있지 않는가? 예를 들어 보자. 20세기 중반의 경제발전의 큰 요인 중 하나가 전기의 광범위한 사용인데, 전기의 발명은 19세기 중반이다. 산업 생산과 일상 생활에 전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시기가 미국은 20세기 초반, 유럽은 2차 대전 이후다.  발명서부터 광범위한 사용까지 1세기가 걸렸다. 


즉, 설사 시기론이 맞아서 궁극적으로 폭발적 경제성장을 겪는다 할지라도 4차 산업 혁명의 실현까지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 시기론은 구조론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100년동안 손가락 빨면서 혁명의 시기를 기다릴건가? 그 사이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피는게 낫지. 


(MB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다른 진보 분들보다 내가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꼭 4대강에 돈을 퍼부었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해서 돈을 붓는게 낫다.)


이렇게 해서 소득이 늘어 총수요가 늘어나면 설사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더라도 경제가 수요부족으로 침체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소득주도성장이다. 장기 성장의 답은 제시 못하지만 수요 부족으로 인한 장기 침체는 피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장기 성장은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게 사실상 소득주도성장이 제시하는 논리라면 논리다. 허접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거말고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장기 성장 대책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건 아무도 모르는 답을 소득주도성장론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야당은 여당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럴 수 있는데, 학자들이, 특히 평소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던 분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는 건 좀 그렇다. 그렇다고 이 분들이 장기 침체는 없고 곧 노말한 상태로 돌아올 것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렇게 장기 성장의 비젼도 제대로 없으면서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마치 분배 정책을 성장 정책으로 포장해서 팔아도 되는건가? 이거 정책적 사기 아닌가? 


아래 최저임금 포스팅에서 한 분의 반론은 다른 정책은 경제 성장 요인에 대한 논리는 제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총요소생산성은 모르겠지만 요소투입의 측면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론이 그 정도는 충분히 고려했다고 생각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총 수요를 증가시켜 기업의 자본투입을 높일거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 바다. 자본투입 외에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노동력 투입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입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를 달성하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은 고학력 여성노동자를 노동시장에 투입하는 것이다. 한국은 젊은층의 상식과 달리 전체 노동자의 평균 교육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낮다. 그 이유는 고연령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데 이들의 학력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낮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은 고학력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다른 국가보다 낮다. 남성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고학력 청년노동자의 실질 실업률이 높고, 저학력 고령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다. 


고학력 여성노동자를 산업현장에 투입하면 한국은 요소투입량이 증가한다. 총노동 수요가 부족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저학력 고연령 노동자를 고학력 여성노동자로 대체하면 노동력의 질이 높아진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이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설사 1~2년 내 단기효과로 일자리의 감소를 초래할지라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대체를 촉진하는 경제성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Reservation wage가 높을 고학력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 유인 요인으로, 생산성이 낮은 고연령 저학력 노동자의 퇴출 요인으로 말이다. 


총요소생산성의 측면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이 해를 끼칠 가능성은 낮다. 요소생산성 향상 측면에서 현재 주목하는 것은 정보통신기술(ICT)인데, 저학력 노동자로는 이 기술을 제대로 도입할 수 없다. 노동시장의 문턱을 높임으로써 노동자의 질을 제고하면 ICT를 이용한 총요소생산성 향상을 꾀하기 용이해진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선도기업의 생산성은 빠르게 증가하는데 비해 그렇지 않은 기업의 생산성은 정체되고 있다. 선도기업의 혁신이 정체기업의 혁신으로 전파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투입노동력의 질 향상은 혁신의 전파를 용이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론인가? 내가 이해하는 한 검증된 성장론은 아니지만, 현재의 생산성 정체 상황에서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성장론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소득주도성장이 장기 성장에 실제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크게 나빠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이 한국의 경제모델인 수출산업을 망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경제성장을 방해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자, 소득주도성장은 이 정도 방어하고,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면 뭐가 남는가? 사람들이 얘기를 안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반대 논리는 "이윤주도성장 (profit-led growth)"이다. 


이윤주도성장도 총요소생산성은 할 얘기가 별로 없어 보이고, 요소투입의 측면에서 이윤이 많이 남으면 자본은 투자량을 증가시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GDP의 노동지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자본지분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래서 자본 투자가 증가하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나? 


소득주도성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에 반대되는 이윤주도성장은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검증된 것 아닌가? 1997년의 IMF 사태 이후 20년간 진보, 보수정권 모두 이와 유사한 정책을 폈는데, 성장률은 낮아졌고, 분배는 악화되었다. 해봤는데 작동하지 않은 정책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여러 국제기구에서 소득주도정책을 권고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이 정책을 추진할 세력의 미비로 그렇게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체제 내 혁명"을 이룩하고 정권을 교체한 국가다. 전세계에서 소득주도정책을 실행해볼 수 유일한 국가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경향신문 최저임금 팩트체크 기사

최병천 전보좌관의 허핑턴포스트 글


경향신문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가 없다는 기사를 내자, 최병천 전보좌관이 반박하는 글을 허핑턴 포스트에 실었다.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왜들 이렇게 몇 가지 부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자신있게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확신하는지 모르겠다. 




우선 최저임금 미달률 부터. 


최 전보좌관은 최저임금 증가율과 최저임금 미달자 증가율 간에 "뚜렷한 개연성"(아마도 상관관계)를 보인다는데, 아래 글에서 지적했듯 그거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노무현 정권 기간 동안 상승한 7%포인트 증가분만 빼면 지금도 6.6% 밖에 안될 것이다. 왜 이 기간 동안 이토록 급격하게 최저임금 미만률이 늘었는지 정확히 아는가? 


내가 초간단 회귀분석을 해보니 최저임금 미달자 증가율 중 최저임금 상승률에 의해서 설명되는 부분은 17%에 불과하다. 나머지 83%의 최저임금 미달자 증감분은 뭔가 다른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음으로 최저임금 미달자의 영세 사업체 집중 여부. 


최저임금 미달 기업이 30인 미만 사업장에 88%가 집중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실제 영세사업체이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대기업의 사업장인지 알고 있나?   


사업체와 기업체를 구분하지 않으면 한국은 대기업의 고용률이 지나치게 낮게 나온다. 소규모 사업체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대기업의 지점들이다. 이 대기업 지점들은 최저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 중 대기업에 속한 인원이 사업체 기준으로는 13.4%이지만, 기업체 기준으로는 37.7%라는 보고도 있다. 소규모 사업체에 속한 대기업 소속 비정규직이 대부분 현재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있어 최저임금 미달자가 아니고, 최저임금 미달자는 대부분 영세기업에 속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행정지도와 사회적 압력을 통해 영세자영업자를 단속하지 않으면서도 최저임금 이하를 지급하는 실제로는 대기업 소속인 5인 이하, 10인 이하 사업체의 미지급률을 줄일 수 있다. 


최저임금 상승률이 최저임금 미지급률 변동분을 설명하는 정도가 작은 이유도 이러한 버퍼요인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최저임금 미달계층. 


최병천 전보좌관의 글을 통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누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가이다. 예상대로 50대 이상의 고령층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비율이 높다. 그런데 최 전보좌관이 강조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최저임금 미달층의 1/3만이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 상승이 빈곤 완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이 빈곤층보다는 중산층의 소득향상에 도움이 되(거나 고용이 줄어들면 이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증거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최저임금 상승의 효과는 빈곤층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에 영향을 끼친다. 설사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줄더라도 빈곤층의 급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왜 최 전보좌관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노동시장에서 떨어져나올 계층이 고연령 빈곤층에 집중될 것으로 가정하는가? 보조소득자가 아닌 빈곤층이 최저임금 상승으로 주로 떨어져 나올 것으로 믿는 근거가 무엇인가? 


최저임금 미지급 단속을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소규모 사업체에 집중해도 빈곤층 소득 감소가 일어날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데 돈을 걸겠다.  




그리고 빈곤층 대책에 대해. 


빈곤을 줄이기 위한 주대책으로 EITC를 거론하는 것도 황당하다. 한국에서 근로계층의 빈곤율은 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유아 및 청소년 빈곤율도 낮다. 한국의 빈곤율이 높은 것은 prime working age에 있는 근로빈곤 때문이 아니라, 노인빈곤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의 노인층보다 한국노인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기는 하나, 상당수의 노인층이 일을 안한다. 당연한거 아닌가. 그런데 일을 안해서 생기는 노인빈곤을 EITC 적용해서 줄일 수 있겠는가. 말이 안되는 정책이다. 빈곤 대책이랍시고 EITC 얘기하는 분들 보면 황당하다. 모르면 외우자. 한국의 빈곤은 근로빈곤이 아니라 노인빈곤의 문제다. 그런데 왜 근로빈곤 대책을 빈곤대책으로 제안하나? 


선진국에서 고연령층의 빈곤율이 낮은 것은 연금을 수령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고연령층의 연금수령율이 아직 낮다. 대부분의 은퇴자가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되면 고연령층의 빈곤율은 급감하게 될 것이다. 노인빈곤은 그 사이에 어떤 대책을 마련해 주느냐이다. EITC 보다는 박근혜 정부에서 수행했던 노인연금이 현 시점에서 100배 나은 정책이다. 


(EITC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빈곤 대책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인 불평등 감소 대책으로, 또한 복지병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복지를 확대하는 방책으로 EITC는 분명 좋은정책이다. 하지만 예산 제약으로 EITC와 노인연금 확대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 같으면 후자다.)




한국은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 해소 정도가 매우 작은 국가이다. 시장 소득을 통한 1차소득의 조정 없이 불평등을 줄이기 어렵다.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를 통한 빈곤층 축소가 정공법이나, 이 대책은 말이 쉽지, 지금 할 수 있나? 중산층 세금 인상하려다가는, 다음 총선에 패배하고, 바로 정권을 내줘야할 판인데. 


그러니 대기업의 팔을 비틀고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시장 소득의 변화를 가져올려는 것이다. 시장 소득의 조정이 시장에 의해서 결정날 것 같지만, 사회적 norm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방법이 꼭 좋은 것은 아니고, 실패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외에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다른 대책도 많지 않다.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세력이 재벌과 부유층인 것만도 아니다. 노동조합도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 지금은 노조도 공생보다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 각자도생에 급급하다. 노동조합도 자신들의 직접적 이익에 손해가 나더라도 사회적 공적 이득, 연대를 통한 노동자 전체의 이득에 복무토록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럴려면 각자도생을 안하면 사회가 전반적으로 변화한다는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공약을 첫 해부터 깨라고? 문재인 당시 후보 혼자 내건 공약도 아니고 대부분의 후보가 내건 공약이다. 여기서 최저임금 인상은 없던걸로 할께요하면, 정책적으로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면서 다 같이 잘먹고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겠는가, 아니면 사사건건 직접적 효과를 따지며 각자도생 분위기만 더 팽배해지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관련 첫 정책 결정인데, 노동측을 실망시켜서 앞으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파트너쉽을 형성할 수 있겠는가? 


올해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것은 정치적 결정이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3년 내에 열지, 상황을 보며 속도조절을 할지는 나중에 결정하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1년 해보고 속도를 결정하자고 한다. 최저임금의 효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긍정적 효과가 있다>가 아니라 <부정적 효과가 확실치 않다>라는 포지션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국민여론도 괜찮다. 이 판에 진보적 인사들이 나서서 정확하지도 않은 통계로 불안감을 가중시킬 필요가 있는건지. 최저임금 1만원 주장하던 분들은 왜 다들 꿀먹은 벙어리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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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Academy 보고서

테일러 교수 초간단 요약 포스팅


브린욜프슨이 위원장으로 참여해서 작성한 보고서. 공적 기관의 정리 보고서라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2016년 논의까지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음. 보고서의 마지막은 새로운 데이타 수집과 운영에 대한 챕터로 장식한 것이 인상적. 


이 보고서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은 아래 일화들. 




기성세대의 "요즘 아이들 버릇 없다"라는 불만은 수메르 시대 점토판에도 나올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두려움도 그 역사적 전통이 이에 뒤지지 않는 듯. 


로마황제였던 티베리우스는 깨어지지 않는 유리(요즘으로 치면 강화유리)를 만들었다는 기술자를 죽여버리는데, 그 이유가 유리가 깨지지 않으면 유리산업과 무역이 타격을 입을까봐.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직조기계의 발명가에게 특허 발급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가 그 기계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져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질까 안타까워서라구. 


러다이트 운동은 두 말하면 잔소리. 당시에 러다이트 운동이 하도 강렬해서 영국 의회는 기계파괴를 a capital offense (사형이 적절한 형별로 고려되는 범죄)로 규정했다고. 


1960년대에도 기술혁명이 일자리를 모두 없앨까봐 두려워서 심지어 닉슨도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했을 정도. 


문재인 대통령이 4차산업혁명위원회라는걸 만들어 위원장을 맡는다는데,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이와 비슷한 '기술, 자동화, 경제적 진보에 대한 국가위원회'를 만들어서 자동화의 효과를 연구한 적도 있다.





이 유구한 역사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고 새로울 것이 있을지 없을지 논쟁 중. 일자리의 운명은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 발전과 인간의 사회적 대응이 합쳐져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내용은 기술발전이 가져오는 일자리 위협, 불평등 증가, 사회복지 약화에 대한 인간의 대응으로 매크로한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노조도 힘을 잃고, 남는 것은 정당 밖에 없음. 정당과 이익집단의 결합이 아니라, 정당과 개별시민의 직접 결합이 더 중요하게 될 것으로 보고서는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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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기사: “정부 주도”vs“민간 주도”… 미래산업 방향 놓고 세게 붙었다


혁신과 국가의 역할에 대한 두 가지 대비되는 시각은 안철수와 심상정이 제공. 


▽안철수=정부가 먼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민간이 결정하면 밀어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 정부 부처가 연구개발(R&D) 예산을 꽉 움켜쥔 상황에서는 엄청난 국가적 비효율을 초래해 한 부처가 통할해야 한다. 공정 경쟁이 가능한 산업구조를 만들면 누구나 희망을 갖고 도전하고,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교육, 과학, 산업구조 등 총체적인 사회개혁이 필요하다.”


▽심상정=4차 산업혁명은 산업이나 기술에 국한된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근본적 변화를 동반하는 혁명이다. 정부는 방해자가 아니고 적극적인 혁신의 파트너가 돼서 장기 투자 계획을 세워주고, 인프라를 두껍게 깔아줘야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인력양성 중점의 교육이 아니고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 직업 바꾸기 재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안철수의 시각은 전형적인 보수적 시각. 국가는 뒤에서 교육지원 등의 역할만 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것. 설사 연구개발을 지원 하더라도 실제 혁신은 민간이 주도하는게 맞다는 것. 

이에 반대하는 심상정의 시각은 몇 년 전 대두된 "기업가 국가 (The Entrepreneurial State)"의 관점을 정확히 대변. 이 관점은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Mariana Mazzucato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온 것. 

심상정의 페이스북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는데, 이 글의 첫 부분은 Mazzucato 교수의 책 내용을 베껴놓은 듯. 

심상정 페이스북: 우리는 흔히 아이폰을 애플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폰 핵심을 구성하는 인터넷, siri, 터치스크린 등은 국가가 주도해 투자한 기술입니다. 민간이 처음부터 달 탐사를 기획하고 준비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미션이었을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가 과감한 투자를 선도하며 두터운 인프라를 깔아주고, 기업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은 정부 주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쨌든 Mazzucato 교수의 주장 중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는데,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연구개발 판을 깔아주고 산업을 육성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라는 것. 미국이 혁신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민간의 기업가 정신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기업가 국가이기 때문이라는게 그 녀의 주장. 미국 민간기업이 혁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국 국가가 장기 전망을 가지고 위험을 감수하며 기초기술에 투자하고, 혁신 기업을 지원하기 때문이라는 것.    


Mazzucato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전통은 건국 당시 앙숙이었던 제퍼슨(=자유방임)과 해밀턴(=국가주도)의 대립으로 형성되었는데, 미국은 겉으로는 제퍼슨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해밀턴 방식을 따른다는 것. 


해밀턴은 장하준 교수의 책에 나오는 Infant Industry를 주창했던 그 해밀턴임. 즉, Mazzucato 교수는 미국 경제 발전은 초기에 infant industry를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며 키워왔던 그 방식을 변형시켜 국가가 신산업 연구개발을 주도하며 산업을 이끌고 있기에 유지된다는 것. 이를 약간 비틀어보면 미국은 infant industry 보호 정책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다른 형태도 유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음. 


테슬라도 엘론 머스크가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다 해놓은게 아니라, 초기에 정부 예산지원을 받았음. 구글 서치 엔진의 알고리즘도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연방정부 예산 투입. 그런데 이렇게 성공하는 사례 1개당 실패 사례 20개 정도가 있다고 함. 20개를 실패해도 1개의 성공을 보고 밀어주는게 기업가 국가고, 그런 기업가 국가가 있어야 혁신이 이루어지고 경제가 발전함. 혁신의 동력이 벤쳐캐피탈이고 민간의 기업가 정신이 라는 건 걍 구라. 민간 기업가와 투자가들은 기업가 국가에 비해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심이 별로 없다고. 근본적 혁신 기술은 정부의 R&D에 의해 개발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퍼소니안 같은 이데올로기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의 이윤 독점 동기가 있기 때문. 위험 감수는 정부돈으로 이윤은 기업 혼자서! 


워낙 센세이셔날했던 책이라 여러 언론에서 소개되고 이코노미스트, 카토 인스티튜트 등에서 반박이 이어졌었음.  


참고로 Mazzucato 교수의 책은 PDF version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한겨레 신문 기사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또다시 2만7천달러대를 기록하며 10년째 ‘2만 달러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달러를 기준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이 소폭 늘기는 했지만, 3만 달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06년 2만759달러로 2만 달러대로 처음 진입한 뒤 10년째 제자리걸음 수준인 셈이다."


10년째 제자리 걸음 수준인 한국경제라는데... 한겨레 신문만 이렇게 보도한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중앙일보, 기타 경제 신문들도 모두 마찬가지. 


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맞지만, 10년째 제자리라는 이런 식의 진단이 맞을까? 





아래는 2005-2015년 사이 10년간 각 국가별 연간 1인당 GNI 성장률. 


모든 국가를 보여준 것은 아니고, 2005년 기준 1인당 GNI가 1만불이 넘는 국가 중 2015년 GNI Per Capita 자료도 있는 국가들만 추림. 자료 소스는 World Bank


연간 성장률이 높은 기준으로 sorting했는데, 보다시피 한국의 1인당 GNI 성장률이 3.1%로 네번째로 높음. OECD 연평균은 0.6%. 


중앙일보에서는 타 선진국은 1인당 GNI 2만불에서 3만불로 넘어가는데 5-9년 밖에 안걸렸다고 하는데, 5년만에 소득이 이렇게 증가하려면 연간 성장률이 8.4%, 9년만에 2만불에서 3만불로 올라설려면 연성장률이 4.6%가 되어야 함. 아래 보다시피 그런 고도 성장하는 나라 하나도 없음. 


전세계의 성장률이 과거보다 낮아졌고, 한국도 예외가 아님. 다른 선진국보다 2만불에서 3만불로 소득이 올라가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세계경제 사정이 변했기 때문.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지난 10년간 성장률은 상당히 좋은 편임. 


앞으로 이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문제. 




ps. 2000년대 초반에는 모든 언론에서 1만달러 덫을 얘기했음. 10년넘게 2만불 벽을 못넘어서 큰일났다고. 한국이 2만불이 넘어선 것은 노무현 정권 시절. 이제는 10년 넘게 3만불 벽을 못넘어서 큰 일이라고 떠들고 있음. 앞으로 15년 정도 뒤에 10년 넘게 4만불 벽을 못넘어 큰 일이라고 호들갑 떠는 언론을 볼 수 있기를 바람.  




2005

2015

Annual Change

Slovak Republic

12,830

18,349

3.6%

Lithuania

10,399

14,583

3.4%

Chile

10,510

14,355

3.2%

Korea, Rep.

18,437

25,141

3.1%

Latvia

10,740

14,274

2.9%

Singapore

37,241

49,467

2.9%

Qatar

56,675

72,334

2.5%

Malta

18,971

23,750

2.3%

Equatorial Guinea

11,354

14,211

2.3%

Israel

26,648

32,612

2.0%

Estonia

14,125

17,269

2.0%

Trinidad and Tobago

13,205

16,061

2.0%

Germany

39,320

46,403

1.7%

Czech Republic

17,153

19,811

1.5%

Ireland

44,704

51,145

1.4%

Australia

46,928

53,587

1.3%

Hungary

12,321

13,838

1.2%

Sweden

50,670

56,450

1.1%

Japan

45,376

48,928

0.8%

Canada

46,240

49,686

0.7%

Austria

44,335

47,495

0.7%

Croatia

12,856

13,722

0.7%

OECD members

35,315

37,679

0.7%

United States

48,942

52,062

0.6%

Slovenia

21,900

23,170

0.6%

Netherlands

48,302

51,084

0.6%

Norway

89,464

93,791

0.5%

Belgium

43,583

44,941

0.3%

France

41,024

42,213

0.3%

Antigua and Barbuda

12,961

13,247

0.2%

Barbados

14,891

15,171

0.2%

Switzerland

75,989

77,380

0.2%

Denmark

59,326

59,593

0.0%

Finland

45,550

45,520

0.0%

United Kingdom

40,433

40,363

0.0%

Spain

30,663

30,569

0.0%

Portugal

21,670

21,482

-0.1%

Cyprus

29,569

27,692

-0.7%

Brunei Darussalam

36,653

33,676

-0.8%

Italy

37,280

33,808

-1.0%

Oman

17,152

15,471

-1.0%

Bahamas, The

23,670

19,758

-1.8%

Greece

27,370

22,708

-1.8%

United Arab Emirates

57,504

39,340

-3.7%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주간동아 기고문


글의 요지는 4차 산업혁명이 희망찬 미래를 가져온다는게 아니라,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4차 산업혁명과 별 관계없으니, 그런거 신경끄고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과 복지 확대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임. 편집부에서 섹시한 제목을 뽑으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듯. 


---------


"... 4차 산업혁명의 파장을 걱정하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생산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현재 노동자가 갖고 있는 숙련 기술이 무용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 걱정은 현재 우리 사회가 실제로 직면한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지나치게 빨리 발전해 기존의 숙련 기술이 쓸모없게 된다고 걱정하지만, 현실은 생산성 발전이 저조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불평등은 경제성장률이 높을 때가 아니라 경제성장률이 낮을 때 더 커진다. 


4차 산업혁명이 너무 빨리 도래해서가 아니라 20세기 말 이후 기술혁신이 충분히 빠르고 광범위하지 못해 생산성 향상이 정체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 


생산성이 급격히 증대될 때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은 생산성이 정체될 때 쓸 수 있는 정책 수단보다 훨씬 많다. 가장 손쉬운 대책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늘려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다. ... 나이가 들면 은퇴한다는 개념도 20세기 중반 이후 생산성이 증대하고 연금이 생기면서 인류 역사에서 처음 생겨난 것이다. 그 전에는 늙어 죽을 때까지 노동했다. 


한국은 다르다고? 1998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0시간이었다. 지금은 2113시간이다.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길지만(OECD 평균은 1766시간), 불과 17년 사이 평균 노동시간이 27% 줄어들었다. ... 생산성 증대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면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 충격이 사라진다. ... 


4차 산업혁명이 미래에 가져올 충격을 걱정하는 일은 잠시 미뤄도 좋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이 제시해야 할 비전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과 사회보장 제도를 강화할 방안이 돼야 한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NYT 기사; Atlantic 기사Autor et al. AER P&P 논문

Simcha Barkai 논문.


노동소득분배율이 줄어드는 이유로 사회학에서는 노동자의 bargaining power로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을 설명 (Kristal 2010). 경제학에서 제시한 설명은 (1) 기술과 컴퓨터 발전으로 자본가격이 하락해서 노동대비 자본투자가 늘었기 때문, (2) 자본과 노동은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서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면 실제로는 자본/노동 비율이 줄어들어서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진다는 설명; 그리고 (3) 세계화로 선진국 노동자가 후진국 노동자와 경쟁관계가 되어 임금이 낮아지기 때문이라는 설명 등이 있음.


노조의 문제든, 기술의 문제든, 세계화의 문제든, 여기서 말한 설명 중 하나가 맞다면,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은 정책적으로 접근해서 풀기 매우 어려운 과제임.  




그런데 최근 새로운 설명이 하나 추가되었으니 독과점의 강화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을 초래했다는 것. 


David Autor, Lawrence Katz 등 네임드 경제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이고 여러 언론사에서도 보도했음. 지난 30년간 거의 전산업에 걸쳐 독과점(구체적으로는 산업별 5대 대형회사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강화되었고, 이 요인으로 회귀분석을 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이 대부분 설명된다는 것. 


이들이 내린 결론은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진 이유는 자본집중도가 낮아서 노동소득이 높은 회사의 비중이 줄어들고, 자본집중도가 높아 노동소득이 낮은 회사의 매출 비중이 올라간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졌다는 것. 


그런데 이들의 발견 중에 재미있는게 있는데, 독과점의 강화와 그 독과점 회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소득은 별 상관관계가 없더라는 것. 독과점으로 지대는 발생하는데, 회사들이 지대를 노동자들과 나누지 않는다는 것. 이 결과는 노동자 소득 격차 결정에서 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떨어진다는 기존 연구와도 일치 (나님의 논문).





그럼 도대체 독점의 강화가 왜 노동소득분배율 악화로 이어지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신진학자가 훨씬 더 쌈빡한 설명을 내놓음.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Simcha Barkai의 박사학위논문 페이퍼에 따르면 독과점으로 회사들이 우월적 시장지위를 이용하여 가격인상을 하고 이 이득을 회사에 쌓고 있다는 것. 


Barkai의 논문에서 충격적인 것은 GDP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본소득율도 하락했다는 것. 그렇다면 남는 것은 회사 이윤의 증가. 기업이 이윤을 내는데 이걸 주주들에게 배분하지도 노동자들에게 주지도 않고 기업 내부에 현금을 쌓아 사내유보금이 늘고있다는 분석과 정확히 일치. 


아래 그림에서 첫번째는 부가가치 증가분 중 자본소득으로 간 부분이고, 두번째 그림은 부가가치 증가분 중 회사에 이윤으로 남은 부분. 두 번째 그림에도 1980년대 중반에만해도 회사에 이윤으로 남는 부분에 거의 없었음. 하지만 지금은 부가가치 증가분의 15%를 차지. 


Barkai는 자본소득율을 무디스 AAA 본드의 수율로 계산. 상식적으로 정당한 방식인 것 같은데, 이렇게 하는게 거시경제에서 맞는지 나는 잘 모르겠음. 


Barkai의 결론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이 시장 경제의 효율적 메카니즘의 결과가 아니라 독과점의 증가에 따른 가격 인상으로 지대를 추구한 결과라는 것.  







그렇다면 이 연구들의 함의는 무엇인가? 줄어드는 노동소득분배율을 해결하는 방법은 노동조직을 강화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도, 기술변동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님, 세계화에 학을 떼고 Brexit이나 트럼프를 뽑아야하는 것도 아님. 


정치인을 압박하여 반독점법을 강화하면 됨. 정책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 


자본주의는 시장에 맏겨두면 재생산이 안되고, 국가의 개입을 통해 독과점을 막아야 제대로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교훈도 다시 얻을 수 있고. 


한국에서는 인위적으로 기업유보금에 높은 세금을 매기는 제재를 가할 필요 없이, 자본주의 경쟁 원리에 따라 시장진출입을 용이하게 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을 다시 늘릴수 있다는 것. 자본주의 경쟁 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재벌의 힘을 약화시키고 독과점을 막는 것이 반드시 필요. 





ps. 미국에서는 자본소득분배가 떨어지고 회사에 이윤이 쌓이면 전형적인 principal-agent 문제가 대두될 수 있지만, 한국은 회삿돈이 쌈지돈인 재벌들이 많아서 자본가인 재벌들이 신경도 안쓸 것.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4차 산업혁명, 로봇, 생산방식의 변화. 말들은 많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납득되지는 않는다. 로봇이 일자리를 뺏아간다는 막연한 공포만 생기기 쉽다. 인터넷이 나오고 컴퓨터가 나올 때에도 혁명적 변화가 생길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IT 혁명으로 칭해지는 기술 발전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대표하는 얘기가 바로, 


"우리가 원한 것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였지만, 우리의 손에 쥐어진 것은 140자의 트위터."


그런데 4차 산업혁명, 로봇, 인공지능은 다를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생산방식과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번에는 다를까? 


물론 나도 정답은 모른다. 그런데 관련 분야 전공자가 아닌 사람도 상당한 정확도를 가지고 예측해볼 수 있는 기준은 제시할 수 있다. 


그 기준은 집안의 장식과 풍경을 살피는 것이다. 이 방법은 Richard Gordon과 Brad DeLong이 그들의 책과 논문에서 제시했던 것이다. 


195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집안 거실에 티브이가 있고, 소파가 있고, 부엌에는 냉장고와 렌지, 개수대가 있다. 2017년의 영화에도 그 풍경이 다르지 않다. 티브이가 브라운관이 아니고 LCD인 것이 다르고, 냉장고와 커지고 타입이 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만 해도 TV라는 것이 없었다. 루즈벨트의 노변정담은 화롯가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미국 시골지방에 수도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다. 냉장고가 보급되고 음식을 집에서 보관할 수 있게 된 것도 1930년대 이후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리창문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다. 그 전에는 집안은 빛이 안들어오게 문을 닫아두거나 뜨겁고 차가운 공기가 그냥 들어오게 열어두어야 했다. 겨울에 집안은 매우 어두컴컴했던 공간이었다. 이 안에서 오랫동안 초를 키고 있으면 폐는 완전히 망가진다. 


부엌이 집안으로 들어온 것도 역사적으로 얼마되지 않는다. 상하수도의 완성이 1930년대고 가스레인지가 가정에 보급된 것은 20세기 초다. 장하준 교수가 얘기하는 세탁기의 위대함이란, 하루에 4시간씩 강가나 우물가에 가서 물을 길어오던 노동을 줄인 것을 의미한다. 


산업혁명의 완성으로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집안의 모습을 갖춘 것이 선진국에서 1950년대다. 그 이후로 집안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그 전 시대와 비교해 집안의 모습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후로는 혁명적 변화가 없었다. IT 혁명이라고 해봤자 집안에 컴퓨터가 들어오고 스맛폰이 들어온 정도의 마이너한 변화가 있을 뿐이다. 




글이 좀 늘어지기는 하지만 한국의 모습도 생각해 보면 경제변화를 집안 풍광의 변화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40대 후반 이상은 기억하겠지만 1970년대만 해도 도시에서도 화장실과 부엌이 온전히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부엌이 집안에 있어도 따로 신발을 신고 1-2 계단을 내려가서 있는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 빨래를 한 후 세탁물을 쥐어짜던 가사노동이 사라진 것도 "짤순이"가 보급된 1980년대 이후다. 빨래를 할 때마다 식구들이 모여서 빨래를 쥐어짜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족의 도움없이 혼자 여러 식구의 빨래를 하다보면 손목 다 나간다. 거실이 가족의 공동 공간이 된 것도 1980년대 중반 이후다. 그 전에는 안방이 가족 공간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냉난방 방식과 연료의 공급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4차 산업혁명, 자동화, 로봇의 등장이 집안의 풍광을 바꿀 것인지를 상상해보면, 이 기술변화가 혁명적이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기술발전은 "냉장고에 들어있는 채소를 꺼내 칼질을 하는 것"이나 "진공청소기로 청소한 후 걸레질"과 같은 인간의 단순 노동을 대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로봇은 그 기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집안에 로봇 기능이 들어와 인간의 반복적인 단순노동을 대체할 수 있게되면 이는 생산방식과 삶을 조직하는 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의미할 것이다. 집안에 필요한 appliance가 달라지는 그 시점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 진짜 혁명이 되는 순간이다. 


이게 무슨 의미이지 아직도 상상이 안되면 성별 "가사노동분담"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보라. 4차 산업혁명이 현실이 되면 이 주제는 없어진다. 분담할 가사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은 없다. 산업혁명으로 옷을 저렴하게 사서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만들어 입는 옷은 취미활동이지, 가사노동이 아니다. 대부분의 인구가 농업이 아닌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현대에, 텃밭은 취미활동이지 생산활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이 완성되면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취미활동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까? 아마도 결국은 그럴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속도다. 대표적인 기술변화론자인 맥아피와 브린욜프슨의 주장은 변화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이고, 고든같은 비관론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속도가 얼마나 붙을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앞에서 기술한 변화를 아직은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4차 산업혁명 설레발은 적당히 치는 것이 좋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