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 추진하는 정책 중에서 가장 실패할 가능성이 큰 것이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라고 생각함. 아마 말만 그렇게하고 실제로는 하지도 못할 것으로 예상하긴 하는데, 진짜로 할까봐 무서운 정책이기도 함. 


요즘 지역 연구하는 사람들이 왜 대도시에 고급인력이 몰리고 고급인력이 몰린 대도시의 생산성이 더 높아지는지 논의하고 있는데, 명확한 결론은 없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고급인력끼리 몰려 있을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집값이 오르고 지역이동률이 높아져서 학력/소득/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대도시로 몰리고, 학력/소득/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은 대도시로 오지 못하는 sorting 효과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노동자끼리 좁은 공간에 모아두면, 아이디어 교환이 활발하고, 좋은 건 서로 빨리 베껴서 생산성이 더 크게 오르는 externality 효과 때문에 지역 격차가 커진다는 것. 


지역 격차 확대가 sorting 때문이면 이해찬이 얘기한 것 같은 공공기관의 지역분산이 고급인력을 분산시켜 지역 균형발전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만, 지역 격차 확대가 externality 때문이면 공공기관 지역분산은 한국 전체의 생산성을 낮추는 패착임. 


경제 성장에서 혁신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생산성 높은 노동자의 집중에 따른 externality 효과의 중요성은 커짐. 이 때문에 최근 전세계적으로 지역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함. 


실제로 대규모 도시 지역과 다른 지역간의 생산성 격차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불평등이 커지는 것은 현재 전세계적 현상임.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지역 생산성 격차와 불평등이 커진다는건 일국 내에서 정책으로 조정할 수 없는 공통된 요인에 의한 변화가 있다는 것. 이러한 요인은 활용해야지 저항해서는 안됨. 


한국의 경쟁력은 고급인력의 수도권 집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다른 나라보다 더 수도권에 모든 인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국가 전체적으로 고급인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음. 


지속적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정책보다는 수도권의 생산성, 이동편의성을 높여주는 정책이 낫다고 생각함.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데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펴서 고급인력의 분산을 유도하는 것은 국가 전체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 


21세기들어 한국 경제 성장의 81%가 메트로 도시 지역에서 나왔고, 전체 경제 성장의 50%가 서울에서 나왔음. 서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밖에 안된다는걸 생각하면 서울의 생산성이 타 지역보다 2.5배 정도 높은 것. 


아래 그래프는 그 나라의 수도가 전체 GDP에 기여하는 정도. 소스는 요기. 보다시피 OECD 국가 중에서 수도의 GDP 기여분이 가장 큰 국가가 한국임. 한국은 서울이 망하면 국가가 망하는 그런 나라임. 이거 바꾸기 어려움. 바꾸는게 바람직한지도 모르겠고. 




또한 한국은 완전히 도시 국가임. 아래 그래프는 OECD Regions and Cities at a Glance 2018에서 가져온 것. 위 그래프의 원소스도 OECD 리포트임. 


보다시피 GDP의 80%가 메트로 시티에서 나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음. 이러니 농업노동자가 일부 증가한걸 가지고 한국이 농업국가로 돌아가는거 아니냐는 식으로 칼럼쓰고 그걸 또 되뇌이면 한심해 보이는 것. 전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도시화된 OECD 국가가 바로 한국임. 





Ps. 그리고 일반적 오해와 달리 한국의 지역불평등은 다른 나라보다 큰 편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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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칼럼: 소득주도성장을 업그레이드 하라

한겨레 기사: 소득주도성장, 재정이 열쇠다


다 맞는 소리.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게 한꺼번에 시행되기 굉장히 어렵다는 것. 


블로그 9년 넘게 하다보니 어차피 했던 얘기 또 하는 것. 이 번에도 했던 얘기 또 할텐데, 그래도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론적 논의를 현실에 적용하면 그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  


자본주의는 하나의 고정된 제도가 아니라, 각 사회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자본주의 발전에 한가지 제도가 장땡이 아니라 미국식 자유경쟁, 스웨덴식 복지, 독일식 중도(?), 일본식 집단주의, 모두 나름 잘 작동하더라는게 Variety of Capitalism (VoC).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게 국가 내 여러 제도는 친화성이 달라서, 독일식 노동시장 제도에서는, 어릴 때 부터 자기 길을 정해주는 교육제도와, 강력한 실업보장 복지가 친화성이 있고, 미국식 자유경쟁 제도에서는, 대학까지는 물론 그 후에도 경쟁하는 교육제도와, 노동유연성이 친화성이 있다는게 제도주의적 입장인 VoC의 내용.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은 지금까지 보수가 내세웠던 "성장(하면 결국 모두 이익)"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새로운 국가 경제 체제임. 


이렇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한 두 가지 제도를 바꾸면 이 새로운 제도는 기존 제도와 삐걱거릴 수 밖에 없음. 국가의 모든 제도는 서로 친화성을 가지고 상호보완하는 기능을 일정정도 가지고 있는데, 패러다임을 바꾸는 제도를 도입하면 기존 제도와 마찰을 빚고, 제도적 친화성이 무너지면서 혼돈이 초래됨. 


다른 제도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재구조화될 때까지 일정 정도의 마찰은 불가피함. 다른 제도까지 모두 재구조화되면 그 이후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메인이 되어서 과거로 돌아가는게 어려워짐. 이강국 교수의 칼럼, 한겨레 기사 모두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을 위해 제도적 보완을 서두르라는 것. 다 맞는 소리이긴 한데, 이거 할려면 시간이 걸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존버". 


제도를 바꿀 때 존버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이론이 칼 맑스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 존버에 방해되는 세력을 억누르고 장기간 버티면 결국 사회주의를 넘어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것이라는게 맑스의 이론. 이게 변형되면서 스탈린도 나오고, 문화혁명도 나오고, 김일성 일가의 독재도 나오지만, 맑스 이론의 함의가 틀린 것도 아님. 문화혁명 없었으면 지금의 중국식 발전도 없었을 것. 


박정희의 18년, 전두환/노태우의 12년 총합 30년 존버로 한국 사회 시스템을 완전히 그들의 판으로 만들었음.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뭐 스무스하게 진행된 것 같음? 생지랄을 하면서 관철한 것임. 아래 얘기했던 삼당합당 이후 30년까지 계산하면, 해방 후 80년 중 장장 60년을 박정희가 만든 시스템으로 한국 사회를 구성한 것.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군부독재 30년이 한국 사회를 만든 것. 






진보에게 돌맞을 소리하자면, 박정희가 시작한 이 시스템이 극악한 것은 아님. 나름 작동하는면이 있음. 그러니 60년 동안 유지하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여기서 머물수는 없다는게 진보의 생각. 


소득주도성장이라는게 이렇게 60년 동안 만든 경제체제를 바꾸기 위한 시작임. 기존의 많은 제도와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음. 


예를 들어 소득주도성장은 자영업자와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음. 70~75%의 경제활동인구가 노동자인데, 이들의 소득이 오르면 자영업자의 소득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대상은 고용주가 아니라 피고용자, 노동자임. 한국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30%에서 20%대 초반으로 낮아졌는데, 타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앞으로 7~8%포인트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큼. 복지국가는 모두 자영업 비율이 10% 초반대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시행할 때 자영업자의 최소 1/3, 최대 1/2이 아마 버티기 힘들 것.   


이 갈등을 견디고 소득주도성장을 보완하는 제도를 앞으로 20~30년간 시행하면 한국 사회를 완전히 바뀌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고 기존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무너지면 결국 기존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것. 






한 사회가 근본적으로 체제를 바꿀려면 한 세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일관되게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지 다른 나라 역사를 보면서 대충 따져본적이 있는데, 한 30년 걸림. 진보가 앞으로 30년간 정책적 주도권을 쥐면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 그 기간 동안 정책적 mismatch를 극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함. 


지금의 소득주도성장 노선은 분배와 성장을 모두 포괄하는 진보의 패러다임임. 이 패러다임이 실패하면 진보는 보수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는 것. 진보라고 해봤자 보수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


작년 최저임금 논란서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블로그를 좀 과격하게 쓰는건 그 때문임.  






많은 사람들이 진보의 성공을 바랄텐데, 그렇다면 당연히 나오는 질문은 그럼 문재인 독재하자는 얘기인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군부 독재와 비슷하게 진보 독재하자는 주장인가? 문빠가 문화혁명하자는 소린가 (노무현 때 이런 얘기 많았다는거 기억하시는지)? 독재 없이는 이러한 체제 전환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인가? 


사실 독재 없이 체제 전환에 성공하기 어려움. 그런데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로 체제 전환에 성공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조건이 있음. 바로 전쟁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 2차 대전 이후 모든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복지국가로 전환된 것이 그 예임. 그 바탕에는 국뽕이 있음. 전쟁보다 국뽕 함양에 좋은 사건이 없음. Thomas Piketty의 주요 주장 중 하나가 바로 전쟁으로 인한 자산의 파괴와 복지 도입이 20세기 매우 예외적인 20세기 복지국가 등장의 배경이라는 것.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할 함의는 현재 북한과의 갈등은 위험 요소가 아니라 기회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 소득주도성장의 몇 가지 조치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더라도 대북문제로 국민적 집단 목표가 형성되면 이 부작용을 넘어설 수 있음. 


복지국가가 국민국가와 함께 발전했다는 것은 큰 함의가 있음. 국뽕없이 평화적 민주주의적 체제 전환 없음. 국뽕을 보수의 무기가 아니라 진보의 무기로 전환해야 함. 한가지 주의할 점은 그러다보면 소수자의 인권에 무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는 함. 


어쨌든 박정희, 전두환에게 3S와 레드컴플렉스가 있었다면 지금의 진보에게는 쇼비니스트적 민족화합과 대북 국뽕이 있음. 이 번 기회를 놓치면 보수의 자장을 벗어나 진보의 새로운 경제 체제를 한국 사회에 도입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는 아마도 진보에게 상당 기간 오지 않을 것임. 





정리하면, 진보에게 한국의 경제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지금보다 더 나은 기회는 지금까지 없었음.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면 기존 제도와 마찰이 불가피함. 보완적 제도의 도입을 통해 가능한 빨리 극복해야 할 것임. 하지만 일정 기간 그 마찰의 부작용을 버티는 존버가 필요함. 여기서 실패하면 한국의 진보는 보수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이 되는 것. 





Ps. 

쓰다보니 너무 선동적인 것 같은데, 원래 거대담론은 좀 선동적인 법.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북한. 


콜리어의 The Bottom Billion이라는 책을 보면 똑같이 못살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에 둘러쌓인게 얼마나 경제발전에 나쁜지 나옴. 


콜리어의 책에 어느 나라가 못사는 10억에 들어가는지 나열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다른 책을 보면 북한도 여기에 들어감. 그런데 전세계 빈곤 국가 중에서 북한 만큼 유리한 위치에 있는 국가가 없음. 


북쪽으로는 우방이자 세계 경제 2위의 커다란 시장인 중국이 있음. 과거 같았으면 중국과 북한이 저임금 상품시장을 둘러싸고 경쟁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중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북한과 중국은 경쟁 대상이 아님. 동남아로 빠져나가던 중국 투자가 북한으로 갈 가능성이 있음. 


남쪽으로는 동족이자, 언어, 문화 등의 이질성이 낮고, 범정부 차원으로 북한에 투자하고 기술 이전 등 노하우를 전수할 의향이 있는 경제선진국 (GDP 규모 세계 12위) 남한이 있음. 


Land-locked country도 아니라서 설사 단기적으로 남한과 사이가 나빠지더라도 해상 수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 


세계 경제 1위의 미국은 이미 북이 핵을 포기하면 대규모 민간 투자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였음. 세계경제 3위인 일본과 북한이 수교를 맺으면 과거 한국-일본의 수교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식민 보상금을 지불하여 북한이 경제발전의 종자돈으로 삼을 가능성이 큼. 


관여도는 다른 나라보다 낮지만 러시아도 세계 11위 경제 대국임. 적어도 북한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은 없음. 


세계 경제 1,2,3위가 모두 북한 이슈에 매달리고 있고, 같은 민족이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핵을 포기하면 경제 원조를 제공할 의사가 분명함. 


후진국 중에 경제발전을 위하여 이보다 더 나은 지정학적 조건을 갖춘 나라는 없음.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예상됨. Catch-up 경제발전에 실패하기 어려운 조건임.  





통일의 대상인 남한이 있는 것이 후진국인 북한으로써는 체제에 대한 위협인데, 남북한 경제 격차가 지나치게 큰 것이 오히려 북한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아이러니. 


북한은 깡통 깡패 국가임. 어느 나라도 이런 나라와 통일하고 싶어하지 않아 함. 과거에 중국이 북한을 흡수할려고 한다는 식의 걱정들이 있었는데, 뭘 모르는 소리. 어느 나라가 2천5백만 빈민층을 받아들이고 싶어하겠음? 중국은 자국 내 지역불평등으로 이미 충분히 골치가 아픈 상황임. 


남북한 경제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통일이 되면 과거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극심한 혼란이 예상됨. 이 때문에 남한도 북한과의 급진적 통일을 원치 않음. 북한 체제 안정이 남한의 이해와도 일치함. 젊은층이 통일을 원치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극좌 극우 일부에서 너무 통일을 원할까봐 걱정. 


이러한 상황을 종합할 때 앞으로 북한에서 대량 학살만 없으면 개발독재를 지원하는 꼴을 참고 봐줘야 할 수도. 





또 한가지 열불 터지는 장면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부르짖던 북한의 군부 인사들이 자본가로 변신하는 것이 될 듯. 몰락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로 이행할 때 사회주의에서 호의호식하던 엘리트들이 자산을 불하받고 자본가로 변신하였음. 


북한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음. 김씨 가문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도모하면 사회주의 엘리트가 자본주의 엘리트로 변신하는 social mobility의 linearity가 과거의 다른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심할 것. 


사회학에서 말하는 상대적 지위(relative rank)는 변하지 않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전체 인민의 절대적 경제 지위가 상승(absolute mobility)하는 효과가 있기에 용인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어쨌든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이런 짜증나는 미래가 어서 오기를 기원함.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한겨레 기사: 폼페이오, "북 비핵화 땐 한국만큼 번영토록 조력."


한국에서 보수가 가진 두가지 사상적 기둥 중 하나가 반북 이데올로기, 다른 하나가 박정희의 개발독재 신화. 촛불혁명으로 박정희 신화가 무너졌고, 최근 일련의 대북 외교로 첫번째 기둥도 무너지는 중. 


박근혜의 몰락으로 박정희 개인에 대한 신화는 무너졌지만,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하게되면 박정희 신화의 코어인 개발독재는 오히려 그 정당성을 더 확보하게 되는 아이러니. 


Catch-up economy인데 민주주의를 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한 케이스는 네델란드를 따라잡은 영국, 영국을 따라잡은 미국 등 제1세계 케이스 밖에 없음. 한국을 포함한 후발주자는 모두 개발독재을 통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하고 이에 바탕해서 경제가 발전하였음. 





부시 주니어 시절에 (트로츠키주의자 출신) 네오콘들이 이라크를 침략할 때 내세웠던 논리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으면,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그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는 체제 변혁의 도미노가 일어난다는 것. 


알다시피 이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고 외부로 부터의 제도이식, 민주주의의 외부 이식, 민주주의 제도 이식을 통한 자본주의 발전 등의 아젠다는 작동하지 않는걸로 결론남.  


네오콘의 실패를 보고 사회과학 전반에서 일었던 반성과 과제 중 하나가 제도(institution)가 어떻게 발생하고 안착되는지 우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기껏 한다는 소리가 뭔가 중요한 분기점이 있고, 이 분기점에서 지리적 조건과 제도적 친화성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 





네오콘이 실패한 후 체제 변혁 아젠다는 금기 사항이었는데, 북핵 문제의 해결방식으로 독재체제 용인 하의 경제발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체제 변혁 아젠다가 이론적 논쟁 한 번 없이 제시되는 중. 


북한을 자본주의 체제에 안정적으로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준 김씨 일가의 세습체제를 상당기간 용인하는게 비용이 적게들고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길이라는게 지금까지 박정희(와 중국공산당 1당 독재)와 같은 개발독재가 주는 교훈.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여러 독재체제의 몰락이 보여주듯, 체제붕괴 후 상당 기간의 혼돈과 인명피해 없이 안정적으로 체제 이행한 케이스는 하나도 없음. 





보수 인사들이 신봉하는 근대화 이론에 따르면 경제발전은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필요조건. 김정은 독재 하의 경제발전은 개발독재를 옹호했던 분들의 이론적 승리와 더불어 정치적 패배를 안길 것. 반대로 박정희 개발독재를 비판하며 대북 유화책을 지지했던 분들에게는 이론적 패배와 정치적 승리를 안길 것. 


북미 회담 장소가 하필 또 다른 개발독재의 성공 사례인 리콴유의 싱가폴인 것도 재미있는 역사적 우연. 


어찌되었든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박터지는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이 어서 오기를... 





Ps.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한 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이행기 경제와 체제에 대한 사회학 논문이 쏟아져 나왔음. 북한 경제가 변화하면 한국은 Development 이슈 이후 다시 한 번 전세계 사회과학계의 주 연구 대상이 될 듯.  


북한에 센서스를 할 돈이 없어서 한국 통계청에서 돈을 대고 대신 센서스 자료를 받는 계획도 한 때 얘기되었는데, 이건 어찌되고 있는지.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조선일보 기사


조선에서는 올해의 최저임금 인상을 IMF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 듯이 기사를 냈는데, 실제 IMF 보고서를 읽어보면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 않음. 


IMF의 평가는 올해 인상은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데, 추가 인상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임. 


IMF 보고서 전문


IMF는 한국의 경제 성장에 대해 전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함. 


"In 2018, growth is forecast at around 3 percent, with private consumption growth benefitting from the large minimum wage increase, and from policies supporting employment and social spending."


높은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음. 


또한 IMF는 2018년의 최저임금 인상이 한국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평가함. 다만 일부 저숙련직, 특히 소비자가 인상이 어려운 분야에서 실업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하고 있음. 


재미있는 것은 IMF 보고서에 한국 정부 IMF 관계자의 평가서가 첨부되어 있는데, IMF의 평가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기술하고 있음.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한국정부 입장에서 IMF 스태프들의 "2018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환영"한다고 되어 있음 (맨 마지막 페이지). 


한가지 기억할 것은 IMF의 평가도 최저임금의 효과를 실제 데이타를 가지고 평가한 것이 아니라 전망에 불과하다는 것. 2018년 한 번 정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것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IMF의 전망. 다만 2020년까지 1만원을 인상하는 정책은 위험하다는 것. 





Ps. 그리고 조선이 얘기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IMF는 한국 정부의 복지 확장 재정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 ("Staff supports the government's intention to increase the share of spending towards social welfare" p.26). 정부의 사회복지 확대가 소비 기반 경제 성장을 이끌고 경제의 재균형을 가져올 것으로 IMF는 전망함.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2016년 J of Econ Perspectives 논문


아래 표는 최근 올림픽 개최를 위해 들어간 비용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최고로 돈을 때려박은 올림픽.


저자들의 리뷰에 따르면 올림픽 개최로 인한 단기 수익은 물론 올림픽 개최 비용에 미달하고, 장기적 경제 이익을 따져도 올림픽 개최 비용을 카바하지는 못함. 올림픽으로 돈을 번 케이스는 개최하겠다는 도시가 하나 밖에 없었던 LA 등 극소수에 그침. 


심지어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국민들이 느끼는 국뽕(feel-good effect, or civic pride)의 경제적 가치도 올림픽 개최 비용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함. 어떻게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의 국뽕 가치는 34억달러에 달하지만, 개최 비용은 110억달러가 넘어간다고. 그래도 국뽕의 가치가 올림픽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 중 하나.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사전평가로 실시하는 경제적 가치 평가는 모두가 이권자들의 농간으로 과대계상되었다고 함. 



이렇다보니 민주국가의 올림픽 개최 의욕이 점점 줄어들고 권위주의 정권의 올림픽 개최가 늘어나는 실상. 


한국도 88 올림픽이 군사정권의 선전무대로 활용되었고, 이 번 동계올림픽도 이명박 정권의 성과로 추진되었던 것. 


올림픽의 최대 효과 중 하나가 국뽕이다 보니, MB가 개최권을 따고, 박근혜 정부에서 준비했던 올림픽의 성과를 현정부가 향유하는 걸 보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심사가 좋을리는 만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박근혜 탄핵 덕분에 현정권이 올림픽을 준비하고 그 성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그나마 막판 준비가 제대로 되었을 것. 최순실이 깊게 개입해서 올림픽을 준비했으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시는지. 


올림픽 국뽕에 분통 터지는 보수 분들은 이 판을 바로 자신들이 깔았다는 것을 상기해야.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동아일보 기사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마구 줄고 있다는 기사. 





그런데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동아일보가 사용한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6년 12월 대비 임금근로자가 25만명 증가하는데, 그 중 상용근로자가 40만1천명 증가한 반면, 임시근로자는 10만2천명, 일용근로자는 4만9천명이 각각 감소. 


최저임금이 오르자 기업이 일제히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를 줄이고 상용근로자는 늘리는 것으로 파악됨. 


비임금근로자는 늘지 않았으며, 그 중 자영업자는 1만 8천명 증가하였으나, 무급가족종사자는 1만5천명 감소. 


최저임금이 오르니 무급가족 노동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기업들이 급격하게 상용근로자를 늘리다보니 소득이 없는 무급노동자로 일하기보다 상용근로자가 되어 월급을 받는 것이 가계경제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으로 분석됨. 


이를 모두 합치면, 최저임금의 급속한 상승으로 일용직, 무급가족종사자,일용근로자 등 소득이 낮은 노동자는 16만6천명이 감소한 반면, 고용이 안정되고 소득이 높은 상용근로자는 40만명 증가. 기업가 정신을 나타내는 자영업자도 1만 8천명 증가. 


나쁜 일자리가 줄어들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현상을 두고, 최저임금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비판하면 도대체 어쩌라는 얘기? 


혹자는 전년 동월 대비가 아니라 11월 대비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할텐데, 그렇게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임. 상용근로자는 늘고, 임시/일용직은 줄어듦.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이렇게 훌륭한 결과를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음.  





* 물론 이런 식으로 침소봉대, 일부 통계만 cherry-picking하여, 별 관계도 없는 최저임금과 연계시키는 분석은 완전 엉터리임. 


최저임금 효과가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에서 주장하듯 그렇게 쉽게 나타나면 사회과학자들이 미쳤다고 지금까지 죽어라 논쟁하고, 분석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겠음? 




Ps. 미국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아편성분 함유 진통제 과다 복용에 대한 참여 관찰을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걱정해 주신 분들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아편의 효과가 좋긴 하더군요)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Vox 보도. Ganong & Shoag 논문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미국에서 지역별 경제성장률이 소득이 높은 지역은 낮고, 소득이 낮은 지역은 높아서, 1990년대 이전까지 상당히 지역별 격차가 줄어듦. 


미국에서 1940년대에는 남부가 해안지역이나 중부보다 훨씬 못살았는데 흑인의 대이동(Great Migration)과 남부 선벨트의 발전으로 인하여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음. 


그런데 지역별 격차 감소가 1990년대 이후에는 지역별 격차 감소 정도가 약화되고, 그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지역 이동의 감소임. 


예전에는 못사는 지역에서 잘사는 지역으로 사람들이 옮겼는데, 이제는 그 경향이 완전히 사라졌거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잘사는 지역에서 못사는 지역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  



저자들은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집값에서 찾고 있음. 


아래 그림에서 빨간색은 고학력자가 지역을 옮겼을 때 소득이 늘어나는 정도고, 파란색은 저학력자가 지역을 옮겼을 때 소득이 늘어나는 정도임. 여기서 소득은 단순 소득이 아니고 잘사는 지역의 집값 상승으로 인한 실질 소득 감소분을 감안한 후의 소득 상승분임. 


보다시피 고학력자는 잘사는 지역으로 옮기면 소득이 늘지만, 저학력자는 잘사는 지역으로 옮기면 집값 대비 소득이 늘지 않음. 이렇게 되면 학력별, 능력별 지역 분리가 심화됨. 



엔리코 모레티의 주장과는 달리 저소득층은 IT 산업 등이 몰려있는 해안 지역으로 이사해서 얻는 실질적 이득이 별로 없음. 시간당 $15 벌어봤자 하꼬방같은 집의 엄청난 렌트비 내다가 마는 것.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거지만, 저소득층만의 문제는 아님. 나님도 열심히 계산해봤는데 소득이 상당히 오르지 않으면 현재 살고 있는 작은 대학도시에서 대도시로 이주했을 때 생활수준 향상이 거의 별로 없음. 오히려 생활 수준이 낮아짐 (자산 축적은 다른 얘기지만...). 


한국에서 서울의 집값이 너무 비싸져서 신혼 중산층이 경기도를 떠나고, 고연령 고소득층이 서울로 몰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임.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함. 

1) 고소득 지역에 주택 공급을 늘리자. 

2) 저소득 지역으로 공공 기관을 이전하자. 


1)은 그렇게 되면 고소득 지역으로 더 인구집중이 되어서, 결국은 집값이 더 오르고 국토 균형 발전이 저해된다는 것. 지역별 격차를 오히려 악화시킬 것. 


그래서 저소득 지역으로 2) 공공 기관/교육 기관 이전을 최선을 대책으로 제안. 


한국은 이미 2)를 하고 있음. 


실제로 인구 이동 패턴을 분석해보면 서울에 거주하던 고학력 전문직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향이 2000년대 들어 상당히 나타나고 있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아래 최저임금 관련 포스팅에 한 분이 최저임금 인상이 성장으로 이어지는 메카니즘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소득 주도 성장, 허장성세로 끝나야"라는 칼럼도 썼다. 


소득 주도 "성장"은 가능한가? 


비록 매크로 경제학의 문외한이지만, 주워들은 바로 내가 아는 답은 모른다는거다. 더 정확한 답은 장기 성장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실제로 가능성 높은 성장 대책이냐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도 모르는 장기 성장의 비결을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다고 다른 경제정책 대비 특별히 더 비판 받을 이유는 없다. 


한 번 더 뒤집어서 말하면 "소득주도" 정책을 핀다고, 장기 성장에 해를 끼친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성장이론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이 의심될지라도, 분배논리로 소득주도성장론은 유효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장기 성장이 정체된 현재의 상황에서 분배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경제 성장률이 높을 때에는 분배 정책이 미비해도 다수의 경제적 웰빙이 꾸준히 개선되지만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 적극적 분배 정책 없이는 경제적 웰빙의 개선이 소수에서만 일어난다. 





소득주도성장이 성장론이냐 아니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경제 성장이 가능한지를 알아야 한다. 가장 쉬운 경제성장 정책은 베끼는 것이다. 후진국이 선진국의 기술, 제도를 베끼는 catch-up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국은 이 단계는 거의 끝났다. 


그 다음으로 알려진 방법이 요소투입량을 늘리는 것이다. 자본, 노동력을 더 투입하는 것이다. 인구가 늘면 경제가 성장한다. 노동 투입량이 늘어나니까. 투입 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것도 잘 알려진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요소투입량이 아니라 총요소생산성이라고 명명된 요인인데, 이 총요소생산성은 보통 잔차로 계산한다. 무슨 말인고하니 GDP 성장 분 중에서 설명 가능한 모든 요인을 다 빼고 그래도 설명안되고 남는 부분이 총요소생산성이다. 한마디로 잘 모르는 경제성장 요인이다.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시기는 총요소생산성이 높게 증가했던 시기이고, 요즘 들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시기는 총요소생산성이 낮아진 시기다. 


총요소생산성은 기술발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몇 가지 기술만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중반에 전기, 내연기관 등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생산성이 급등하고, 1990년대 중반에 기술정보통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 요인들을 고려해도 설명안되고 남는 총요소생산성이 여전히 경제발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경제발전이 안되는 이유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총요소생산성 발전이 최근 들어 낮아진 이유에 대한 설명은 대략 3가지 입장으로 대별된다. 하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 입장으로, 요즘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서머스의 secular stagnation 같은 주장이나, Robert Gordon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같은 주장들이다. 가까운 미래에 총요소생산성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현재의 침체는 일시적 문제일 뿐 가까운 미래에 총요소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브린욜프슨이 중심이 되어 하는 주장인데, 4차산업혁명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모두 이 계열의 주장이다. 


마지막은 지금도 총요소생산성은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는데 현재의 GDP 계산 방식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GDP 측정 오류로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침체를 인식하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Youtube로 듣고 싶은 음악 마음대로 음악듣는 것도 경제적 웰빙의 큰 개선인데 GDP에는 이게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린욜프슨은 두 번째 주장과 세 번째 주장 사이에 왔다갔다 한다. 


각각 구조론, 시기론, 측정오차론으로 칭할 수 있다. 각각의 입장에서 성장에 대한 대안은 첫번째는 당분간 성장은 틀렸으니 확장적 재정으로 총수요나 관리하자, 두번째는 조금만 기둘려라, 경제 성장은 곧 온다. 4차 산업혁명 와중에 희생될 미적응자에 대한 케어를 준비하자. 세번째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자.  


어떤 입장이든 최근 수치로 측정된 경제성장률이 낮아졌다는데는 동의한다. 이 중 경제발전에 가장 중요한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확실한 정책적 방법은 아무 것도 없고 (뭐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도 모르니까), 그나마 정책이라고 제시된 것은 구조론에 기반한 확장적 재정이다. 






그런데 이런 소득주도성장론은 이 중에 어떤 입장이고, 어떤 답을 제시하는가? 


명시적으로 얘기는 안하지만 확장적 재정정책을 제시하는 구조론과 친화적이다. 시기론과도 딱히 괴리되어 있지는 않다. 


왜 확장적 재정정책이 정반대의 입장인 시기론과 반드시 괴리되어 있지 않는가? 예를 들어 보자. 20세기 중반의 경제발전의 큰 요인 중 하나가 전기의 광범위한 사용인데, 전기의 발명은 19세기 중반이다. 산업 생산과 일상 생활에 전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시기가 미국은 20세기 초반, 유럽은 2차 대전 이후다.  발명서부터 광범위한 사용까지 1세기가 걸렸다. 


즉, 설사 시기론이 맞아서 궁극적으로 폭발적 경제성장을 겪는다 할지라도 4차 산업 혁명의 실현까지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 시기론은 구조론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100년동안 손가락 빨면서 혁명의 시기를 기다릴건가? 그 사이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피는게 낫지. 


(MB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다른 진보 분들보다 내가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꼭 4대강에 돈을 퍼부었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이거라도 해서 돈을 붓는게 낫다.)


이렇게 해서 소득이 늘어 총수요가 늘어나면 설사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더라도 경제가 수요부족으로 침체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소득주도성장이다. 장기 성장의 답은 제시 못하지만 수요 부족으로 인한 장기 침체는 피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장기 성장은 이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게 사실상 소득주도성장이 제시하는 논리라면 논리다. 허접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거말고 소득주도성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장기 성장 대책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건 아무도 모르는 답을 소득주도성장론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야당은 여당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럴 수 있는데, 학자들이, 특히 평소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던 분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는 건 좀 그렇다. 그렇다고 이 분들이 장기 침체는 없고 곧 노말한 상태로 돌아올 것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렇게 장기 성장의 비젼도 제대로 없으면서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마치 분배 정책을 성장 정책으로 포장해서 팔아도 되는건가? 이거 정책적 사기 아닌가? 


아래 최저임금 포스팅에서 한 분의 반론은 다른 정책은 경제 성장 요인에 대한 논리는 제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총요소생산성은 모르겠지만 요소투입의 측면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론이 그 정도는 충분히 고려했다고 생각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총 수요를 증가시켜 기업의 자본투입을 높일거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 바다. 자본투입 외에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노동력 투입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입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를 달성하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은 고학력 여성노동자를 노동시장에 투입하는 것이다. 한국은 젊은층의 상식과 달리 전체 노동자의 평균 교육수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낮다. 그 이유는 고연령층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데 이들의 학력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낮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은 고학력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다른 국가보다 낮다. 남성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고학력 청년노동자의 실질 실업률이 높고, 저학력 고령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다. 


고학력 여성노동자를 산업현장에 투입하면 한국은 요소투입량이 증가한다. 총노동 수요가 부족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저학력 고연령 노동자를 고학력 여성노동자로 대체하면 노동력의 질이 높아진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이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설사 1~2년 내 단기효과로 일자리의 감소를 초래할지라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대체를 촉진하는 경제성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Reservation wage가 높을 고학력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 유인 요인으로, 생산성이 낮은 고연령 저학력 노동자의 퇴출 요인으로 말이다. 


총요소생산성의 측면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이 해를 끼칠 가능성은 낮다. 요소생산성 향상 측면에서 현재 주목하는 것은 정보통신기술(ICT)인데, 저학력 노동자로는 이 기술을 제대로 도입할 수 없다. 노동시장의 문턱을 높임으로써 노동자의 질을 제고하면 ICT를 이용한 총요소생산성 향상을 꾀하기 용이해진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선도기업의 생산성은 빠르게 증가하는데 비해 그렇지 않은 기업의 생산성은 정체되고 있다. 선도기업의 혁신이 정체기업의 혁신으로 전파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투입노동력의 질 향상은 혁신의 전파를 용이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론인가? 내가 이해하는 한 검증된 성장론은 아니지만, 현재의 생산성 정체 상황에서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성장론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소득주도성장이 장기 성장에 실제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 크게 나빠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이 한국의 경제모델인 수출산업을 망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경제성장을 방해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자, 소득주도성장은 이 정도 방어하고,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면 뭐가 남는가? 사람들이 얘기를 안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반대 논리는 "이윤주도성장 (profit-led growth)"이다. 


이윤주도성장도 총요소생산성은 할 얘기가 별로 없어 보이고, 요소투입의 측면에서 이윤이 많이 남으면 자본은 투자량을 증가시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GDP의 노동지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자본지분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래서 자본 투자가 증가하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나? 


소득주도성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에 반대되는 이윤주도성장은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검증된 것 아닌가? 1997년의 IMF 사태 이후 20년간 진보, 보수정권 모두 이와 유사한 정책을 폈는데, 성장률은 낮아졌고, 분배는 악화되었다. 해봤는데 작동하지 않은 정책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여러 국제기구에서 소득주도정책을 권고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이 정책을 추진할 세력의 미비로 그렇게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체제 내 혁명"을 이룩하고 정권을 교체한 국가다. 전세계에서 소득주도정책을 실행해볼 수 유일한 국가가 아닐까 싶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경향신문 최저임금 팩트체크 기사

최병천 전보좌관의 허핑턴포스트 글


경향신문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가 없다는 기사를 내자, 최병천 전보좌관이 반박하는 글을 허핑턴 포스트에 실었다.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왜들 이렇게 몇 가지 부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자신있게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확신하는지 모르겠다. 




우선 최저임금 미달률 부터. 


최 전보좌관은 최저임금 증가율과 최저임금 미달자 증가율 간에 "뚜렷한 개연성"(아마도 상관관계)를 보인다는데, 아래 글에서 지적했듯 그거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노무현 정권 기간 동안 상승한 7%포인트 증가분만 빼면 지금도 6.6% 밖에 안될 것이다. 왜 이 기간 동안 이토록 급격하게 최저임금 미만률이 늘었는지 정확히 아는가? 


내가 초간단 회귀분석을 해보니 최저임금 미달자 증가율 중 최저임금 상승률에 의해서 설명되는 부분은 17%에 불과하다. 나머지 83%의 최저임금 미달자 증감분은 뭔가 다른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음으로 최저임금 미달자의 영세 사업체 집중 여부. 


최저임금 미달 기업이 30인 미만 사업장에 88%가 집중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실제 영세사업체이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대기업의 사업장인지 알고 있나?   


사업체와 기업체를 구분하지 않으면 한국은 대기업의 고용률이 지나치게 낮게 나온다. 소규모 사업체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대기업의 지점들이다. 이 대기업 지점들은 최저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 중 대기업에 속한 인원이 사업체 기준으로는 13.4%이지만, 기업체 기준으로는 37.7%라는 보고도 있다. 소규모 사업체에 속한 대기업 소속 비정규직이 대부분 현재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있어 최저임금 미달자가 아니고, 최저임금 미달자는 대부분 영세기업에 속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행정지도와 사회적 압력을 통해 영세자영업자를 단속하지 않으면서도 최저임금 이하를 지급하는 실제로는 대기업 소속인 5인 이하, 10인 이하 사업체의 미지급률을 줄일 수 있다. 


최저임금 상승률이 최저임금 미지급률 변동분을 설명하는 정도가 작은 이유도 이러한 버퍼요인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최저임금 미달계층. 


최병천 전보좌관의 글을 통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누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가이다. 예상대로 50대 이상의 고령층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비율이 높다. 그런데 최 전보좌관이 강조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최저임금 미달층의 1/3만이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 상승이 빈곤 완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이 빈곤층보다는 중산층의 소득향상에 도움이 되(거나 고용이 줄어들면 이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증거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최저임금 상승의 효과는 빈곤층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계층에 영향을 끼친다. 설사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줄더라도 빈곤층의 급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왜 최 전보좌관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노동시장에서 떨어져나올 계층이 고연령 빈곤층에 집중될 것으로 가정하는가? 보조소득자가 아닌 빈곤층이 최저임금 상승으로 주로 떨어져 나올 것으로 믿는 근거가 무엇인가? 


최저임금 미지급 단속을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소규모 사업체에 집중해도 빈곤층 소득 감소가 일어날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데 돈을 걸겠다.  




그리고 빈곤층 대책에 대해. 


빈곤을 줄이기 위한 주대책으로 EITC를 거론하는 것도 황당하다. 한국에서 근로계층의 빈곤율은 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유아 및 청소년 빈곤율도 낮다. 한국의 빈곤율이 높은 것은 prime working age에 있는 근로빈곤 때문이 아니라, 노인빈곤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의 노인층보다 한국노인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기는 하나, 상당수의 노인층이 일을 안한다. 당연한거 아닌가. 그런데 일을 안해서 생기는 노인빈곤을 EITC 적용해서 줄일 수 있겠는가. 말이 안되는 정책이다. 빈곤 대책이랍시고 EITC 얘기하는 분들 보면 황당하다. 모르면 외우자. 한국의 빈곤은 근로빈곤이 아니라 노인빈곤의 문제다. 그런데 왜 근로빈곤 대책을 빈곤대책으로 제안하나? 


선진국에서 고연령층의 빈곤율이 낮은 것은 연금을 수령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고연령층의 연금수령율이 아직 낮다. 대부분의 은퇴자가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되면 고연령층의 빈곤율은 급감하게 될 것이다. 노인빈곤은 그 사이에 어떤 대책을 마련해 주느냐이다. EITC 보다는 박근혜 정부에서 수행했던 노인연금이 현 시점에서 100배 나은 정책이다. 


(EITC 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다. 빈곤 대책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인 불평등 감소 대책으로, 또한 복지병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복지를 확대하는 방책으로 EITC는 분명 좋은정책이다. 하지만 예산 제약으로 EITC와 노인연금 확대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 같으면 후자다.)




한국은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 해소 정도가 매우 작은 국가이다. 시장 소득을 통한 1차소득의 조정 없이 불평등을 줄이기 어렵다. 세금 인상과 복지 확대를 통한 빈곤층 축소가 정공법이나, 이 대책은 말이 쉽지, 지금 할 수 있나? 중산층 세금 인상하려다가는, 다음 총선에 패배하고, 바로 정권을 내줘야할 판인데. 


그러니 대기업의 팔을 비틀고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시장 소득의 변화를 가져올려는 것이다. 시장 소득의 조정이 시장에 의해서 결정날 것 같지만, 사회적 norm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방법이 꼭 좋은 것은 아니고, 실패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외에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다른 대책도 많지 않다.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세력이 재벌과 부유층인 것만도 아니다. 노동조합도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 지금은 노조도 공생보다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 각자도생에 급급하다. 노동조합도 자신들의 직접적 이익에 손해가 나더라도 사회적 공적 이득, 연대를 통한 노동자 전체의 이득에 복무토록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럴려면 각자도생을 안하면 사회가 전반적으로 변화한다는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공약을 첫 해부터 깨라고? 문재인 당시 후보 혼자 내건 공약도 아니고 대부분의 후보가 내건 공약이다. 여기서 최저임금 인상은 없던걸로 할께요하면, 정책적으로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면서 다 같이 잘먹고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겠는가, 아니면 사사건건 직접적 효과를 따지며 각자도생 분위기만 더 팽배해지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관련 첫 정책 결정인데, 노동측을 실망시켜서 앞으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파트너쉽을 형성할 수 있겠는가? 


올해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것은 정치적 결정이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3년 내에 열지, 상황을 보며 속도조절을 할지는 나중에 결정하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1년 해보고 속도를 결정하자고 한다. 최저임금의 효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긍정적 효과가 있다>가 아니라 <부정적 효과가 확실치 않다>라는 포지션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국민여론도 괜찮다. 이 판에 진보적 인사들이 나서서 정확하지도 않은 통계로 불안감을 가중시킬 필요가 있는건지. 최저임금 1만원 주장하던 분들은 왜 다들 꿀먹은 벙어리인건지.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