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기사
UPI
서울신문

사는 지역과 대학 전공 등이 같을 경우,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시안계 대학 졸업자의 소득이 백인 남자보다 8% 낮음.

자기나라에서 적어도 고등학교까지 대부분의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이수한 아시안계 남자(1.25 Generation)의 소득은 백인보다 14% 낮음.

모든 교육을 자기나라에서 받은 후 이민 온 아시안계(1st Generation)의 소득은 29% 낮음.

아시안계 중에서 가장 노동시장 성과가 좋은 그룹은, 아시아 국가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에 이민와서 영어도 잘하고, 대학 교육은 물론, 고등학교나 그 이전의 교육을 미국에서 받은 아시안계(1.5 Generation). 이들의 소득은 백인과 차이가 없음.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최근호에 실린 이 연구의 주 저자는 나님. ㅋㅋ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연합뉴스 발로 거의 모든 신문에 가구소득 3억의 대학교수가 생활고를 하소연 했다가 욕먹었다는 기사가 떴다. 현재 미국 대학사회에서 이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억대 연봉으로는 가난해서 못살겠다는 불만은 3억 연봉으로는 가난에 찌들어 못산다는 1902년도의 대학교수의 불만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목하 미국 사회는 100년 전으로의 의식 수준의 후퇴를 경험하고 있다.

이게 순전히 남 얘기만 얼마나 좋겠냐만, 시카고대 법대 교수인 이 양반의 불만은 한국 강남거주 중산층의 불만과 대동소이하다. 너무나 소비수준이 높기 때문에 현재의 소득가지고는 모자라는 것.

더욱 씁쓸한 것은 가계소득 3억이라고 올라온 연합뉴스 기사는 팩트가 잘못되었다. 시카고대 교수 가구의 연 소득은 3억(25만불)이 아니라 4.5억(40만불) 정도이다. 3억(25만불)은 오바마 행정부가 이 정도 벌면 소득세를 더 물리겠다는 일종의 "공식 부유층 소득"수준이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지난 30년간 전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 원인과 의미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합의된 것은 적다. 그에 따른 해결책도 마찬가지.

최근에 많이 언급되는 얘기는 노동시장이 양극화되어서, 어떤 일자리는 안정적이고 임금수준도 높은데, 다른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임금도 낮더라는 것. 사라지는 일자리는 전통적으로 노조가 강했고, 단결력이 높았던 제조업의 일자리들. 새로 창출되는 불안정하고 임금 낮은 일자리는 주로 서비스 산업에서 생기더라는 것 (유럽 얘기는 요기. 미국 얘기는 요기, 비교 연구는 요기).

비록 불평등의 상당 부분이 최고소득 탑 1%, 탑 0.1%에서 벌어지지만, 그 사람들 얘기는 별나라 얘기고, 문제는 제조업의 일자리를 잃고 낮은 임금의 서비스업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소득을 어떻게 높일 것이냐는 것.

그러면 해결책은?

서비스업 일자리를 과거의 제조업 일자리처럼 만든다 (Kiviat의 주장). 제조업 일자리가 쓸만한 일자리가 된 것은, 대공황과 2차 대전 이후 제조업의 임금을 높이고 직업 안정성을 인위적으로 높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보상으로 노동자들은 산업평화를 지켰다. 서비스업 일자리도 똑같이 하자는 것. 즉, 쉽게 해고 안하고, 월급 많이 주자는 것.

이렇게 하는 데 무수한 문제점과 이슈가 있는 거, 안다.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안정화시키는 수준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임금 결정은 노동시장의 수요, 공급 뿐만이 아니라, 조직 내의 relational power, 정치적, 문화적 요인의 영향력도 크니까.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그건 바로 부자들의 재산을 지키는 파수꾼들.

아래 그래프에서 x 축은 미국의 주별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y 축은 전체 노동력 중에서 보안 서비스 등 여러 종류의 Guard 직업의 비율. 보시다 싶이 상당히 강한 정의 상관관계.


그래프 소스는 http://sfreporter.com/stories/born_poor/5339/all/ 그래프를 만든 원저자는 많이 알려져 있는 행동경제학자인 Samuel Bowles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오래동안 사회학자들은 신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고, 종교행사 참여율이 떨어지는, 세속화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교육"을 들었다. 교육을 받을수록 신을 믿지 않게 되고 종교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 국가별로 종교성에 차이가 있는 가장 큰 변수로 해당 국가의 평균 교육수준에 주목했다.

이런 가설에 가장 큰 반증이 되는 국가는 물론 미국이다. 교육수준 높고, 소득수준 높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믿는 사람들이 비율이 높다. (심지어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의 비율이 아랍 국가 비슷하다.)

그런데 다음 호 AJS에 실릴 논문에 따르면 국가별 종교 활동의 차이를 결정하는 건 교육수준이 아니라 그 국가의 불평등 정도라고 한다 (기사는 요기). 논문을 안읽어봐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60개국가를 대상으로 mixed models (HLM)로 분석한 것 같다.

결론은 경제(복지) 안정성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신에 기댄다는 것. 복지국가가 될수록 사람들은 신을 안믿고, 교회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자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종교는 현실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면해주는 "아편"이라는 맑스의 주장이 결국은 맞다는 것.

교회와 절간이 번성하는게 보기 싫으면 사람들을 계몽할려고 하지 말고, 그들에게 빵과 쌀을 안겨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위 그래프는 지난 100년간의 불평등 정도 변화에 대한 16개국의 트렌드를 한 번에 보여준다. 각 국가에서 탑 1% 고소득층이 국민 전체 개인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이고, 소득은 세전 소득이다.

1930년대 이후 불평등이 1980년초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그 이후 늘어나는 추세는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공유하는 트렌드임을 알 수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불평등 증가 속도가 다른 국가보다 빠른게 눈에 띈다.

네델란드는 다른 국가와 달리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불평등이 줄어든 것도 특이사항이다. 유연안정성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부러운 시선으로 거론되는 그 네델란드다.

최근 Journal of Public Economics에 실린 글에서 캡쳐한 거고, Piketty & Saez의 강력한 연구 이후에 봇물터지는 세금 자료를 이용한 불평등 연구의 하나이다. 무료 논문은 요기에서 볼 수 있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1902년 G.H.M이라는 이니셜을 쓰는 교수가 Atlantic Monthly라는 오늘날에도 발행되는 잡지에 기고를 했다.

"교수들의 평균 연봉이 2,000불 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 분명히 부적절하고, 부당하게 낮은 수준이다... 비슷한 수준의 다른 사람들처럼 $10,000에서 $50,000 정도는 받아야 한다."

1902년에 연봉 2천불이면 요즘 돈으로 따져서 $300,000! 환율을 1천원으로 계산해도 3억이다. 3억 연봉이 적어서 삶을 영유할 수 없단다. 이 분이 원하는 적정 연봉 하한선($10,000)은 요즘 돈으로 14억!

교양있다는 사람들은 14억에서 70억을 벌고, 3억이면 못살겠다고 투덜거리던게 100년 전의 불평등 수준이다.

이런 면에서 20세기는 확실히 진보의 세기다.

참고로 2008년 현재 미국에서 겸임 등 강사들을 제외한 사회학 전임 교수들의 평균 연봉은 미사회학회에 따르면 7만불 (7천만원). 100년 전 평균 연봉의 반의 반도 안된다. (만국의 교수들이여 봉기하라~)



소스는 http://delong.typepad.com/slouching/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영국에서 브라운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복잡한 사정은 잘 모르겠고, 요즘 영국 노동당이 인기가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영국에서 불평등이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처의 보수당 시절과 비교해서 얼마나 더 증가했는가?

아래 그래프는 임금 분포 백분율별로 보수당, 노동당 집권 기간 동안 임금 증가율이다. 직선으로 우상향하면 불평등의 증가, 직선으로 우하향 하면 불평등의 감소. 수평이면 불평등의 변화가 없다. .

보다시피, 보수당 집권 시절에 불평등 증가율이 노동당 집권 시절보다 훨씬 높다.


그림의 출처는 요기.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가난한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의 정치 참여가, 부유한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의 정치 참여보다 훨씬 낮다.

미국에서 지난 1/4세기 동안 전체 불평등의 심화와 더불어 소득에 따른 거주 지역 간 분리가 심화되었다. 2000년대의 못사는 동네는 1970년대의 못사는 동네보다 상대적으로 더 못산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끼리,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끼리 모여사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가난한 동네는 동네 리소스의 부족으로 거주민의 시민 사회, 정치 참여도는 낮아지고, 그에 따라 정치인들은 투표안하는 이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으로 부터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참여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차원에서 참여할 수 있는 리소스가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이 참여한다. 오바마가 했다는 지역 운동이라는게, 가난한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치참여를 높이는 운동 비슷한 거다.

아래 그래프는 1970년대에는 가난한 동네나 부유한 동네나 투표율에 차이가 없었는데, 1990년대 이후로는 가난한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율이 비슷한 수준의 부유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투표율보다 유의하게 낮음을 보여준다.



그래프는 Soss & Jacobs. 2009. "The Place of Inequality: Non-participation in the American Polity." Political Science Quarterly 124(1):95-125.에서 캡쳐한 것.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57672.html

한국은 세금과 사회보장의 불평등 해소 효과가 매우 작은 나라이다. 세전 불평등과 세후 불평등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세전 소득의 불평등 증가가 삶의 질의 불평등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반면 유럽과 미국은 세전 소득의 불평등이 실질 생활에서의 불평등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복지국가는 둘 사이의 관계가 너무 밀접하게 되지 않도록 만드는 다양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 제도는 물론 세금으로 뒷받침된다. 이 때문에 서구의 불평등 연구 학자들은 세전 소득을 연구할 때의 이론과 세후 소득을 연구할 때의 이론이 다르다. 궁극적인 불평등 연구의 대상이 세전 소득이 되어야 하는지, 세후 소득이 되어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한국은 그런거 신경 안써도 된다. 둘이 똑 같으니까.

북구 유럽에서 경기가 안좋아지면, 소득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늘고, 복지 혜택의 대상이 늘어난다. 국가 전체 예산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자동적으로 증가한다. 북구 유럽에서 복지 비용이 감소했다는 소식은 그 나라 경기가 호황이라는 얘기고, 복지 비용이 늘었다는건 경기가 꽝이라는 거다.

따라서 북구 유럽의 복지는 경기 순환 사이클이 제대로 돌아갈 때만 작동한다. 장기 불경기가 오면 복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복지를 축소시켜야 한다. 복지 때문에 장기 불경기가 오는게 아니라 그 반대로 장기 불경기가 복지 제도에 영향을 끼치는 효과가 더 크다는 거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불평등이 늘었지만, 세후 불평등의 변화는 국가별로 다르다. 미국도 한국처럼 심하지는 않다. 한국처럼 세전 불평등의 증가가 세후 불평등으로 그대로 반영되는 시스템, 남들이 1930년대에 가지고 있던 시스템이다.

한국이 각박한 사회인 이유는 소득의 절대 액수 때문이 아니라, 그 소득을 사회 성원들 사이에 배분하는 방식 때문이다.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