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in. 2021. <Career & Family>. Princeton Univ Press. 

 

한국어로는 <커리어 그리고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여러 언론에도 소개되었고 (예를 들어 한겨레). 미국의 발매 일자가 10월12일이었는데, 한국에서 번역판이 10월12일 같은 날짜에 나왔다. 사회학과 경제학을 모두 공부하고, 언론사에 있었던 김승진 선생이 번역했으니 번역도 훌륭할 것으로 기대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 책에 대해서 독후감을 남긴다. 

 

하나는 형식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경제"학자"가 쓴 책이 아니다. 내용은 당연히 골딘의 것이지만, 형식은 대중서를 작성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에 틀림없다. 에필로그를 포함한 본문 237페이지에 인용이 하나도 없다. 논문 형식으로 괄호 안에 참고문헌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각주도 없다. 대신 "Notes"라는 책 말미에 붙은 appendix에 각 페이지와 그 페이지의 문장을 볼드체로 소개하고, 각주를 달듯이 참고문헌과 추가 설명을 기재하였다. 

 

글의 소스를 확인하려면, (1) Notes에서 쪽번호를 찾고, (2) 확인하려는 본문 내용의 문장을 찾은 뒤, (3) Notes의 내용을 읽어서, 예를 들어, (Goldin, 2014)를 확인한 후, (4) References에 가야 한다. 그래야 최종적으로 원소스 논문을 찾을 수 있다. 본문에서 제시된 테이블이나 그림의 소스를 확인하려면, Figures and Tables Appendix를 찾아본 후, Source Appendix를 또 찾아봐야 한다. 

 

본문의 소스를 확인하는 학문적 글읽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학술 논문 쓰기에 익숙한 학자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형식이다. 하지만 학문적 글읽기가 아니라 책 전체의 논지를 쫓아가는게 주목적인 글읽기를 하는 분들에게는 문장이 끊기거나 각주를 왔다갔다할 필요없이 매끄럽게 글을 읽을 수 있는 매력적인 형식이다. 

 

책은 이보다 더 쉬울 수 없을 만큼 쉽게 썼다. 예를 들어 직업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 개념을 자세히 설명한다. 저에게 이 개념을 설명하라고 하면 두 줄 정도 쓸 것 같다. 최대한 길게 쓰면 두 문단 정도 쓰고. 그 이상 설명하라고 하면, segregation index 공식을 쓸 것 같다. 하지만 골딘은 이 개념을 두 쪽에 걸쳐서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책 전체에 걸쳐서 비슷한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머리 속에 안들어올래야 안들어올 수가 없다. 처음에는 책을 읽다가 237쪽이 아니라 100쪽 내외의 팜플렛을 만들 내용을 뻥튀기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자고로 대중서는 이렇게 써야한다는것, 그리고 이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걸 동시에 배웠다. 자기 전문 분야에 빠져있으면 어떤 개념은 자세히 설명해야하고, 어떤 개념은 그럴 필요가 없는지 감이 없어진다. 전문용어인 아카데믹 쟈곤이 제일 편한 언어가 된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전문 대중 아케데믹 서적 편집자가 상세히 읽고 코치를 해준 듯 하다.  

 

이 책을 소개하는 다른 하나의 이유는 당연히 내용이다. 골딘의 논문을 평소에 읽던 분들이 이 책에서 뭔가 새로 배울 내용은 거의 없다. 골딘의 1990년대 후반 작업과 2010년대 작업을 같이 엮은 책이다. 했던 얘기를 저널리스틱하게 또했다.

 

그런데 골딘이 30년에 걸쳐서, 그 중 10년 정도는 작업을 중단해서 불연속성을 가지는 여성의 커리어에 대한 별도의 논문들을 하나의 거대 서사로 엮었다. 한국으로 치면 은퇴하면서 논문집을 내는데, 이걸 논문들의 단순 묶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수미일관된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틱한 서사로 재탄생시킨거다. 공식과 숫자로 들어찬 경제학 논문을 서사로 가득한 스토리 텔링으로 재탄생시켰다. 

 

어제 올렸던 사회과학과 사회과학 저널리즘의 구분을 적용하자면, 이 책은 경제학 전문가가 대중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경제학자가 아닌 경제학 저널리스트로써 쓴 책이다. 매우 잘쓴 책이다. 일생에 걸친 골딘의 경제학 업적에 강력한 스토리 텔링을 얹은 사화과학 저널리즘의 끝판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원천은 골딘이 한 가지 커다란 주제에 대해서 꼬리에 꼬리를 잇는 질문을 일생에 걸쳐서 논리적으로 연구했기 때문이다. 일생에 걸친 연구도 이렇게 서사가 있게 하고 싶다는, 평범한 연구자가 쉽게 성취하기 어려운 욕망이 생기더라.  

 

내용에 대해서는 물론 동의하는 부분과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한 편으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다수 여성노동자의 지속적 사회진출을 일컫는 말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60년대에 요란했던 사회운동과 여성의 사회진출을 분리시키려는 이데올로기적 시도이기도 하다. 마치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과 성별 소득 격차 축소가 여성운동과는 무관한 일인양 보이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책 이전에 논문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골딘이 제시하는 성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한 "last chapter"가 대기업이라는 관료제적 통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변호사와 약사를 대비시키면서 정부의 개입보다는 기술과 시장에 의한 해결책을 선호하지만,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이 "정부"의 시스템인 관료제적 통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손이 있어야 해결된다는, 시장에 의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먼 해결책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것은, 골딘이 책에서 두어번 언급한 사실이다. 바로 미국은 대졸 직후 노동시장에서 성별 소득 격차가 없다는 것. 골딘이 주장하는 성별 소득 격차가 차별보다는 "가정"의 분업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핵심 근거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은 대졸 직후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소득이 남성보다 18% 작다

 

한국은 골딘이 말하는 greedy work 때문에 발생하는 가정의 분업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걸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비동시성이 한국에서는 동시성으로 존재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한국의 성별 격차도 미국처럼 해결해야겠다고 깨달아서는 곤란하다. 미국은 과거의 문제가 되어버린 명백한 차별을 한국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 차별을 줄여서 미국 정도의 성별 격차라도 도달해야 한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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