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숫자로 한국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두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하나는 한국의 객관적 현실과 사람들의 주관적 인식의 불일치고, 다른 하나는 여론이나 사람들의 선호와는 다른 객관적 변화다.
전자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대표적인 사례가 "개천룡"이다. 사회이동이 줄지 않았는데, 다들 줄었다고 생각한다. 상위 10%가 세습한다는 인식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한국의 불평등 변화는 상층이 아니라 하층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 상층에서의 불평등은 지난 40년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건 하위 20%의 상대적 소득이다.
일전에 트위터에서 어떤 분과 청년들이 당면하는 실제와 인식의 격차에 대해서 잠깐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게 청년만의 특이성이 아니다. 그러니 현실과 인식의 격차를 청년의 특징이나, 청년만의 무엇인가로 설명하면 설명이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다. 한국은 여론과 객관적 현실이 충돌할 때, 여론과 상관없이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여론에서 떠드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그러니까 사람들의 주관적 인식을 무시하고, 숫자로 확인되는 객관적 현실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왜 이렇게 변화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이 타 국가에 비해 꾸준히 발전하는 이유 중 하나도 아마 이거일거다.
불평등 변화가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 박권일 선생이 쓴 <한국의 능력주의>를 읽었다. 매우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한국인들의 불공정 혐오와 불평등 선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겨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장이 한국인들은 불공정은 못참지만, 불평등은 선호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불평등한 결과는 노력의 산물이기에 오히려 권장할만한 것이다. 한국인의 불평등 선호는 지난 20여년간 더 강화되었다. WVS를 분석한 결과인데, KGSS로 분석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 한국인들은 과거보다 더 불평등을 선호한다.
그런데 바로 의문이 생긴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불평등을 선호하는데, 왜 지난 10년간 소득재분배가 빠르게 진행되고, 불평등은 줄어들었나? 한국인들은 불평등은 선호하고 불공정은 못참는다는데, 실제 정책 변화는 불평등의 상당한 감소다. 정치가 한국인들의 불평등 선호를 반영하는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 가계동향조사를 이용해서 분석 기간을 확대하면, 가처분 소득의 불평등 감소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벌 직원 출신 신자유주의 첨병이라는 이명박 정부서부터 불평등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한국의 불평등 문제는 빈곤의 문제이고, 특히 노인 빈곤의 문제다. 그런데 2017년 박근혜 정부의 탄생 때를 제외하고는 노인 빈곤 정책이 지지를 받은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빈곤을 상당히 줄였는데, 이 정책은 조용하고 꾸준히 진행되었다. 이명박 정부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재분배는 꾸준히 개선되었고, 불평등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주거 정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상당히 급진적으로 슬럼을 해결하였다. 옛날에 존재하던 판자촌이 모두 사라졌다. 아파트 지을 때 임대주택을 별도의 위치에 지어서 차별한다고 한탄하지만, 아파트 건축에서 계층믹스가 정책의 기본이다. 이 정책이 성공적인가의 평가는 다르겠지만, 믹스가 사회계층 완화에 낫다는 전문가들의 지배적 입장을 상당히 오랫동안 관철했다. 그래서 가난이 보이지 않게된 문제가 있지만, 임대 주택을 원하지 않는 여론과는 동떨어진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었다. 지난 몇 년간의 변화를 보면 최소기준 미달 주택에 거주하는 인구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1인당 평균 주택 점유 크기는 커지고 있다.
교육 정책도 동일한 틀로 분석 가능하다. 너무 정책적 변화가 많아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대체적으로 계층 격차를 약화시키고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이었다. 의도했던 결과를 얻었는지는 의문시할 수 있지만, 적어도 대학 진학이라는 측면에서 다양성이 감소했다고 볼 근거는 미약하다. 수시 전형 초기에 혼란이 있었지만 이것도 지금은 많이 변화했다.여론으로보면 압도적인 다수가 수능 점수 한 가지에 기반해서 대학 선발을 하기 원했지만, 실제 정책적 변화는 이런 선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육 전문가의 진단과 다수 대중의 선호가 불일치할 때, 정책 변화는 전문가의 진단을 따랐다.
또 다른 예로 지역 발전이 있다. 선거에서 지역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변수지만, 정권의 지역기반별 지역 발전 변화를 보면, 대통령 출신 지역이 해당 정권 동안 득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손실을 겪었다. 상징적 몇 가지 변화 외에 자기 지역기반을 무리수를 둬가며 경제적으로 챙기는 행보가 어떤 정권에서도 나타난 적이 없다. 이렇게 정권의 지역 기반을 챙기기보다 경제 논리를 따른 결과가 수도권 집중이라는 아이러니가 있기는 하다. 2000년대 초만해도 영남 vs 호남의 발전상을 비교하는게 보편적이었다. 요즘은 다들 수도권 vs. 지방으로 바뀌었다. 구조적 문제가 지배적이다보니 인식이 지체되어 바뀐 케이스다.
이상의 관찰에서 느끼는 바는, 한국은 구조적 문제에 주안점을 두는 전문가의 인식과 주변의 경험에 의존하는 여론의 격차가 있을 때, 전자의 의견에 따라 사회가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적 느낌이다. 여론이 우호적일 때는 공개적으로 빠르게, 우호적이지 않을 때는 조용히 천천히 추진했다는 차이가 있을래나.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그러는데, 한국은 이미 상당히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럼 성평등 정책은?
한국은 객관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다른 나라보다 낮고 여성차별이 심하다. 여성에게 교육투자를 하지만, 노동시장 활용도가 낮다. 민주화 이후 객관적 사회 변화에 기반하여 판단한다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정책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여성들에게 다시 히잡을 쓸 것을 요구하는 탈레반같은 정권이 한국에 들어서면 가능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국의 여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견에 이견이 있는 전문가를 만나본적이 없다. 윤석열이 여가부를 폐지하면 대체 부서를 만들 것이라는 이수정의 진단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앞으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덜 목도하게 되리라는 헛된 희망은 버리는게 좋다. 구조적 문제를 여론으로 뒤엎는 형태가 한국에서 잘 안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