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 후보인 한동훈의 자녀 논란을 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조국의 딸: 효과적으로 유지되는 불평등.

 

위 링크가 2019년 조국 당시 법무장관 후보의 자녀 논란 때 썼던 글인데, 댓글에서 조국 옹호한다고 많이들 욕하더라. 이 때 했던 얘기를 좀 더 발전시켜 한국의 대입전형별 계층효과에 대해 논문으로 쓴게 요 글이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상위계층에서 어떻게 변화된 입시 환경에 적응하여 계층을 재생산하는지 조금은 더 이해하리라.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의 딸이 출간한 논문을 살펴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런 행태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상위계층에서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다. 입시제도를 바꾸면 그에 맞춰서 행동의 패턴이 바뀔 뿐이다. 일부에서는 수시제도의 도입 이후에 이런 일이 벌어진줄 알고, 한동훈 후보의 딸이 미국 대학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생긴 예외적 케이스라고 생각하더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입시 관련 불공정은 오래된 역사다. 학력고사와 수능만으로 대학을 갔던 86과 그 후속 세대 일부가 예외적 케이스였다.

 

한국에서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도 시험보고 진학하던 시절, 뒷돈주고 명문중고와 대학에 들어갔다는 일화가 비일비재했다. 입시부정의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은 케이스도 몇 개 된다. 뒷돈 입학이 영웅담이더라. 그런데 90년대생에서 갑자기 상위계층이 과거보다 더 세습된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니 얼마나 황당했겠나. 

 

고교평준화 후 "학력고사"로만 대학에 진학했던 86세대의 교육은 암기위주의 창의성 억압, 입시 지옥, 학교의 붕괴, 수월성 교육의 실패로 비판받았다. 현재의 다양한 입시 제도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다양한 제도가 문제라고 한다. 과거 PISA에서 한국의 평균 성적이 탁월하게 나와도 성적 최상위층에서 선진국에 뒤진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삼성의 광고가 이 이데올로기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리라. 

 

개인적으로 한국 상위계층의 정책 파워를 절감한게 고교평준화의 붕괴다. 고교 평준화가 이렇게 쉽게 별 저항도 없이 무너질줄 몰랐다. 외국어고등학교를 시작으로 평준화 교육은 붕괴하였고, 한 때 가장 평등한 중등(=중고교)교육을 하였던 한국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차별화된 중등 교육을 실시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성적에 따른 고교교육의 차등화는 계층의 공간분리를 동반한다. 도시개발에서 계층 믹스를 가장 잘 실현한 국가였던 한국은 교육 차등화를 통해 계층간 공간 분리를 이루어내고야 말더라. 학력고사 시절 상위계층의 전략무기였던 과외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금지되었는데, 과외금지는 위헌판결을 받았다. 위헌적 개인 선택의 억압이 아니고서는 상위계층의 우위를 효과적으로 제약할 수단이 많지 않다.  

 

이렇게 되면 가장 하기 쉬운게 냉소다. 진보나 보수가 상위계층은 비슷하게 자기 이익을 챙기고, 그 행위가 불법이거나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상이면, 제 정신 가지고 살려면 냉소가 가장 쉽다. 하지만 냉소로 바뀌는 세상은 없다. 

 

기회평등을 통한 계층간 격차 해소가 환상이고, 상위계층의 우위가 지속된다고, 다른 정책적 대안이 없는게 아니다. 교육을 통한 공정의 실현보다는 노동시장에서의 격차 축소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이슈화하고 여기에 집중하는게 평등의 확대에 가장 효율적이다. 교육정책은 양적 확대 정책이 계층 격차 해소에 가장 효율적이다. 

 

 

노동시장 격차 축소 > 교육의 양적 확대를 통한 계층 격차 축소 >> 교육 기회의 공정성 확대

 

 

Ps. 그렇다고 입시공정성, 교육공정성이 의미 없다는 주장은 아니다. 뒷돈 입학보다야 시험이 당연히 낫지. 계층 격차 해소와 평등 확대의 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니 한정된 정치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진보로써는 다른 이슈에 집중하는게 낫다는거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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