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제는 사실 이 전에 했던 얘기인데 다시 한 번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이 21대 대선 이후 시리즈로 작성하고 있는 글의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이 글은 블로그 글치고는 짧게 쓰기 어려웠다. 스크롤 압박이 조금 있습니다. 

 

20대 성별 분화를 이해하는 3가지 단어가 있는데, 이준석, 페미니즘, 펨코/일베다. 그리고 이 세 단어는 만하임이 그의 세대론에서 주장했던 세대 내 분화를 이해하는 이론적 틀과 정확히 일치한다. 

 

저는 X 세대, MZ 세대 등의 용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큰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세대 내지 코호트가 바뀌면 정치사회적 의견이 바뀐다. 같은 세대가 나이들면서 의견이 바뀌는 연령 효과보다, 세대가 바뀌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코호트가 이 전 코호트를 대체하고 그래서 다수의 의견이 바뀌는 코호트 효과가 훨씬 더 크다. 60, 70년대 출생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정치적 태도를 보이고, 90년대 이후 출생자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모든 세대는 그 내부의 다양성이 있다. 그렇다고 이 다양성이 세대 간 차이를 부인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세대 내 다양성은 특정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득상층이 재분배에 반대하고, 소득하층이 찬성하는 경향은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다. 남성이 성평등에 더 보수적이고, 여성이 더 진보적인 것도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래서 세대 내 분화 내지 다양성은 다른 세대와 특별히 다른 특징이 있지 않는한, 분석적 유의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세대 내 분화가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 청년층의 성별 분화가 바로 이 경우다. 21대 대선 출구조사에서 20대는  남성은 24%, 여성 58%가 이재명 (2.5배 격차), 남성 37%, 여성 10%(3.7배 격차)가 이준석이었다. 경제적 자원 배분에 대한 KGSS 설문에서 20대 남성은 능력주의가 51%로 첫 번째 선호인데, 여성은 26%로 2배 격차다. 경제적 약자를 우선해야 한다는 태도는 여성이 29%, 남성이 11%로 3배 격차다. 여성은 동등한 배분이 46%로 첫 번째 선호(남성은 38%)였다. 여러 설문에서 일관되게 성별 분화가 나타난다. 이렇게 거대한 세대 내 성별 격차는 처음보는 특이한 현상이다. 이 특이한 현상에 대한 수 많은 연구와 분석이 이어지는게 당연하다. 

 

어떤 분들은 이 격차에 주목하지 않고 여러 지표에서 청년층 남녀가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얘기했듯 세대 내 유사성은 일반적 현상이다. 이 전 세대 대비 능력주의 서사가 청년층 남녀 모두에서 더 강하다는건 세대 간 변화의 세대 내 동질성이라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 일반적 유사성으로 청년층의 분화를 지우는건 부적절하다.  

 

만하임은 세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분화를 "세대 단위(unit)"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의 짧은 세대론 에세이에서 만하임은 세대 단위의 조건 내지는 분석틀로, (a) 중핵 인물, (b) 이데올로기, (c) 소집단을 제시한다. 한국의 청년층 성별 분화를 나타내는 이준석, 페미니즘, 일베, 이 3가지 단어를 만하임의 분석틀과 연관시켜 얘기해보자.

 

한국 청년층의 성별 분화는 이준석이라는 인물을 빼고 얘기하기 어렵다. 성별 갈라치기를 가장 열심히 했고, 이 갈라치기를 정치적으로 동원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20, 21대 대선 모두 마찬가지다. 만하임의 세대 단위 분석틀에 따르면 세대 내 특정 단위의 "중핵"이 되는 인물이다. 86세대에게 중핵이 되었던 인물은 노무현이었다. 특정 세대의 중핵은 아니지만 호남 출신자들에게 중핵은 김대중이고. 이준석이 중핵인 20대 남성에 대비해 20대 여성에게는 중핵이 되는 인물이 없다. 그러니 성별로 여성보다 남성의 결집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강남역 살인사건 후 문재인의 역할과 한계가 있지만 너무 길어지니 이건 생략.)

 

성별 분화를 이해하는 두 번째 단어는 페미니즘이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분화의 기반이다. 20대 남녀 모두 이 전 세대와 비교해서 능력주의를 상대적으로 더 받아들이는데, 여성은 여기에 더하여 페미니즘을 수용하였다. 사상적 기반으로서의 페미니즘을 말하는게 아니고, 삶의 태도로서의 페미니즘, 여성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믿음과 행동이다. 한국은 여성차별이 심해서, 여성 입장에서 보편적 평등의 확산과 능력주의가 모순되지 않는다. 능력에 따른 대우는 곧 여성차별의 철폐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남성은 능력주의가 역차별 논리로 이어진다. 남성 입장에서 능력주의와 페미니즘이 모순된다. 

 

그렇다면 청년 여성에게서 갑자기 페미니즘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여성차별이 더 악화된건가?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적 변화는 객관적 조건의 변화과 주체의 변화를 같이 봐야 한다. 기든스가 얘기한 "구조화 (structuation)"이다. 주체(agency)를 빼고 외부 환경의 결정론으로 사회를 설명하는 입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 전 세대 여성은 자발적이든 타의든 가족형성 이후 노동시장에서 탈락했다. 최근 세대, 특히 70년대 초반 이후 세대는 이를 거부하고 노동시장에 남고자 했다. 경력단절의 추세를 보면 이 경향이 보인다. 그런데 여러 분야에서 변하고는 있지만, 노동시장에서 이 선택에 따른 어려움이 여전하고, 가정에서의 변화는 더 느리다. 과거와 달리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기 보다는 이를 타개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진 상당한 수의 여성(critical mass)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critical mass를 형성한 여성 집단이 받아들인게 삶의 태도로서의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이 태도는 청년 남성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그러니까 지속적인 구조적 여성 차별 (구조), 페미니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이념), critical mass (주체)의 조합이 20대 여성이 이 전 세대보다 더 진보화된 이유다.  

 

청년 여성에게서 능력주의와 페미니즘이 동시에 나타나고, 그 정도에서 개인별 차이가 있다는걸 이해하면, 왜 청년 여성 사이에서도 이준석 지지가 다른 집단보다 높은지 설명할 수 있다. 청년 여성 입장에서 이준석의 반페미니즘보다 능력주의에 천착할 수 있다. 페미니즘 없이도 차별을 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상당수 청년 남성에게서 메인 이데올로기가 능력주의고 반페미니즘이 부차적일 수 있다는걸 이해하면, 왜 페미니즘에 반대하지 않는 청년 남성들이 부정적 집단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에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21대 대선을 민주당과 국힘 기득권 모두에 대한 청년층의 거부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입장은 왜 20대 대선과 직전 총선에서 20대 남성의 국힘/윤석열 지지가 그렇게 높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만하임이 세대 내 분화를 설명할 때 주목한게 소집단의 중요성이다. 한국에서 이 역할을 담당한게 바로 펨코/일베로 대표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특정 집단의 분화는 기존 상식과 다른 의견이 집단 내에서 수용될 때 가능하다. 기존 상식과 괴리된 생각이 고립되어 있으면, 이 의견이 집단 분화를 유발할 수 없다. 펨코/일베는 청년 남성에게서 능력주의 + 반페미니즘이라는 전체 사회로 보면 소수 의견을 집단 내에서 수용하고 확산시켜 집단 내 다수 의견으로 바꾸는 소집단의 역할을 담당했다.

 

청년 여성에게서 펨코/일베와 유사한 기능을 할 극단적 입장을 가진 온라인 소집단이 일베의 반작용으로 뒤늦게 나타났다. 그 내용 면에서는 펨코/일베와 다를 바 없었지만, 펨코/일베와 같은 지속성과 확장성을 가지지 못했다. 대신 느낌적느낌으로는 청년 여성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더 중요한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서베이에서 social capital, social network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청년 남성보다는 여성의 network size 가 크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만하임의 이론틀에서 청년층의 성별 분화를 구분하는 변수는 아래와 같다. 

  중핵 이데올로기 소집단
남성 이준석 능력주의 (+ 안티 페미니즘) 온라인
여성 없음 페미니즘 (+ 능력주의) 오프라인

 

그럼 이런 분석틀에 기반하여 미래를 예측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청년층의 서로 다른 단위로 분화한 두 성별 집단의 정치사회적 태도가 바뀔 것인가? 

 

위 분석틀을 적용한다면, 청년 남성이 청년 여성보다 더 일관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청년 남성은 이준석이라는 중핵이 있고, positive 이데올로기인 능력주의와 negative 이데올로기인 반페미니즘이 모순 없이 결합하고 있고, 소집단인 온라인 모임이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친화적이다. 이에 반해 여성은 중핵이 없고 페미니즘과 능력주의라는 상황에 따라 모순될 수 있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고, 소집단 모임이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을 유지하기에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청년층에서 여성에 친화적인 진보 진영의 기반이 더 불안정하다. 정치적 선택에서 집토끼를 공고히 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쉽게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세대 단위로써의 공고성이 남성보다 여성이 낮기 때문이다. 호남의 민주당 지지가 흔들릴 때 김대중 대통령이 했던 조언이 전통적 지지층 회복이라는 집토끼 우선 정책이었다. 집토끼의 지지없는 확산 정책은 양자를 모두 잃을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Ps. 성별 분화를 얘기하면 이 블로그의 댓글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갈라치기라고 비판한다. 이 비판은 크게 세 갈래다. (1) 크게 다르지 않다. (2) 정치적 효과가 염려된다. (3) 기분 나쁘다. 첫 번째 비판에 대한 재비판이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인 다양성의 허약한 논리에 대한 글이었고, 두 번째 비판에 대한 재비판이 코호트의 정치적 일관성에 대한 포스팅이다. (2)의 입장은 20대를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인데, 저는 이 입장에 비판적이다. 그들도 다른 모두와 다를 바 없는 사회 구성원이고 어떤 입장을 가지든 그들의 선택이다. 동시에 어떤 집단이든 다른 집단과 다른 특성을 보일 때 그 내용과 원인을 알려는 돋보기를 피할 수 없다. 현상이 무엇인지 기술하는 것도 꺼려하면서 어떻게 설득을 한다는 것인지. 마지막 (3)의 입장을 가진 분들은 현상 기술을 갈라치기라고 비판하는데, 정작 정치적 갈라치기를 하는 정치 세력과 인물에 대한 비판은 없다. 갈라치기 정치와 세력은 수용하면서, 그 세력을 기술하는건 갈라치기라고 화를 낸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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