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교수 페이스북: 서·논술형 수능에 대한 비판.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대입제도 개편에 시동을 걸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객관식에 답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건 초보 컴퓨터도 하는 방식"이라고 했단다.
이에 대해 최성수 교수가 서·논술형 수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는데, 일독을 권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수능의 서·논술형으로의 전환은 패착이 될 것이다.
하나는 계층론적 측면이다. 2020년에 논문으로도 썼는데, 상위계층에서 가장 유리한 입시제도가 논술이다. 수능이든 내신이든 모든 입시제도가 상위계층에게 유리하지만, 특별히 더 상위계층에게 유리한 입시제도가 바로 논술이다.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 미국 대학에서 SAT, ACT와 같은 standardized tests를 폐지했더니 오히려 상위계층에게 유리하고,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하위계층 출신 학생에게 불리하더라는 연구가 이어졌다. 그 때문에 여러 미국 대학에서 standardized tests를 다시 입시에 들여오고 있다. 예일대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의 성공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단 한 개의 변수가 바로 standardized tests 점수였다. 다른 학교도 비슷한 결과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그 비슷한 경향이 있었다.
서술과 논술은 어린 시절 어떤 가정 환경에서 크느냐에 따라 그 능력이 크게 달라진다. <Unequal Childhoods>에서 아네트 라루가 보여준 것도 가정 환경에 따라 일상 생활에서 쓰는 단어와 태도가 달라진다는 거다. 중상층과 상층 출신의 가족배경은 어릴 때부터 논술에 적합한 일상 환경을 제공한다.
입시 얘기만 나오면 "개천룡"을 떠들지만, 실제로 어떤 제도가 하위계층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지에 관심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개천룡에게 유리한 제도는 학습 내용이 표준화되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험이다. 무엇보다 제도를 너무 자주 바꾸지 말아야 한다. 빈번한 제도의 변동 그 자체가 상위계층에게 유리하다.
서·논술형 입시 도입은 중상층의 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의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지금의 온갖 개천룡 관련 비판은 실제 개천룡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 체계를 흔들어 중상층에 유리한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기동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계급고착화가 안 되어 불안한 한국 사회에 계급고착화라는 안정성을 부여하는 그런 기동.
두 번째는 창의성이다. 이게 정말 오래된 떡밥인데, 주관식이 창의성을 만든다는 증거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포스팅했지만, 창의성은 교육을 통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다.
누가 창의적인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창의성은 교육을 통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고, 교육 과정 중에 발견되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창의성에 대한 연구는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다양하게 섞으면 창의적인 해결책이 더 자주 나온다고 보여준다. 여기서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은 중요한 지표이다. 아무나 섞는다고 창의적 해결책이 나오는 게 아니고, 다양한 배경에서 다른 측면에서 능력을 입증한 사람들을 섞으면 창의적 해결책이 나온다. 객관식 수능은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측정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지표다.
한국 사회에서 창의성을 높이려면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단일 지표 줄 세우기가 아니라 융합적 환경을 더 많이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미 이런 경향이 있었고 더욱 이런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반도체가 잘나가는데, 이거 구축한 사람들이 창의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가? 전형적인 암기 위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지.
한국인들의 유난스러운 여러 사교 모임은 과거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우는 대학 문화에 반해 다양성과 융합의 기회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사고를 달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온갖 모임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특목고, 자사고, 강남 출신끼리 모이는 대학 친구는 다양성을 줄여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동학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니까 입시의 다양화는 다양성을 증진시켰지만, 특목고/자사고 등의 도입은 다양성을 감소시켰다. 계층재생산에 유리한 제도와 불리한 제도가 동시에 실험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논의되는 서·논술형 대학 입시 정책은 개천룡과도 무관하고, 창의성과도 별 관계가 없다. 제가 보기에 이 제도는 혼돈스러웠던 입시제도를 (중)상층의 원활한 계급재생산에 유리한 제도로 바꾸는 기능을 할 것이다. 계급이 고착화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개천룡 타령은 줄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