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한국을 방문하면서 C모 교수님 덕분에 최병천 소장의 <좋은 불평등>을 읽었다. 불평등 전문 연구자에게는 읽기를 권하고, 다른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었다.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인 국가 내 불평등 증가 원인에 대한 논의는 대략 4가지다: (1) 기술변동론, (2) 제도변동론, (3) 세계화, (4) 인구학적 변동론. <좋은 불평등>은 한국의 불평등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제도변동론을 비판하고 세계화 효과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책이다. 

 

전문 연구자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이 책의 최대 장점인 세계화 효과의 재평가 때문이다. 제가 과문하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 변화 요인으로 세계화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세계화는 불평등 변화 원인 중 가장 나중에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화를 불평등 변화의 한 요인으로 주목하지 않다가, 21세기 들어서야 세계화 효과가 본격적으로 논의 되었다. 

 

<좋은 불평등>은 중국효과를 한국사회 불평등 변화의 가장 큰 요인으로 보는 면에서 세계화 효과의 재평가론이라 할 수 있다. 1994, 2008, 2015년이라는 임금불평등 변동 지점이 모두 중국 효과와 결부되어 있다는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얘기했고 (예를 들면 요기), 논문도 썼지만 (예를 들면 요기, 요기),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은 IMF 이후가 아니라 1990년대 초반이다. 그리고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소득불평등이 줄어든다. 이러한 변화 지점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논리가 제가 알기로 없었다. 최병천 소장이 <좋은 불평등>에서 주장한 중국효과론이 1990년대 초반 이후 2008년까지의 불평등 증가, 그 이후의 하락을 단일 논리로 설명하는 최초의 가설이다. 이러한 가설을 제시한 것은 큰 공로다. 

 

여기서 가설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최병천 소장의 강한 주장과 달리 이 논리가 검증되지는 않았다. 이 책의 최대 단점이다. 어떤 인터뷰를 보니 300여개의 데이터가 제시되었다고 하는데, 전문 연구자의 관점에서 보면 짜집기이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이 책에서 임금불평등의 변화 지점을 보는 [그림 1-4]는 책에서도 쓰여있듯 <임금구조기본조사>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근거한다. 그런데 두 조사는 조사대상이 중간에 바뀌었다. 10인 이상 사업체로 일관되게 한정할 경우 10인 이하 사업체의 저소득 노동자와 책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비노동 인구가 제외되는 큰 단점이 있다. 한국사회 소득, 임금 불평등 변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 한국사회에 그런 자료는 없다. 2012년 이후 그런 자료(=가금복)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일반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병천 소장은 IMF는 영향이 없고, 1994년이 불평등의 변곡점이라 주장한다. 경제위기로 대량해고가 이루어진 후 자리를 보전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하면,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를 잘못 해석하면 해고가 노동자의 만족도를 높인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IMF 구제금융이 이루어진 1997-8년 경제위기 때 자리를 보전한 10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들 내부에서의 불평등을 측정하여 불평등 증가가 없었다고 주장하면 안된다. 일자리를 잃은 수많은 노동자 와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이 급전직하하여 불평등이 급등하였다. 이러한 자료 분석은 비노동 인구를 제4의 계급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저자 자신의 주장과도 모순된다. [그림 1-4]에서 1997-8년 효과가 보이지 않는 것은 데이터 한계를 드러내는 지표다. 이 한계로 인한 오판의 가능성을 다른 자료로 크로스체크해야 한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말했던 내용 중의 하나가 한국 사회 가구소득 불평등은 상층의 변화가 아니라 하층에 의해서 특징지워진다는 것이다 (요기). 하지만 최병천 소장은 중국 효과를 임노동 상층의 소득 변화로 설명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1980년 이후 상중하층의 소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구미에 맞는 특정 시점의 변화 몇 개로 퉁친다. 이러면 안된다. 최소한 <임금구조기본조사>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의 소득 상중하층의 통시적 변화라도 보여줘야하지 않겠는가. 가구소득의 변화는 하층이 주도하고,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임노동자 소득의 변화는 상층이 주도했다면, 양자간의 모순을 매개하는 설명은 무엇인지가 제시되어야 한다. 

 

강한 주장에 비해 실제 자료 분석이 미비하다는 것은 최저임금에 대한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 당시의 <가계동향조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저도 요기, 요기, 요기 등등에서 언급). 그리고 소득불평등에 대한 가장 신뢰할만한 자료인 가금복 조사에서 2018년에 불평등이 줄었다고 드러났다. 하지만 최병천 소장은 가계동향조사 자료에만 의지해서 불평등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더 나은 자료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 논란이 된 자료로 엉뚱한 주장을 반복한다. 두 자료의 결과가 상충되면 그 원인에 대한 분석과 어느 자료가 신뢰할만지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하지만 자신의 구미에 맞는 자료만 선택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cherry-picking하면 곤란하다. 

 

불평등 변화의 패턴에 대한 가설 소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Kuznets Curve는 정확히는 산업구성변화론이지만 기술변동론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쿠즈네츠 커브와 세계화론은 다른 주장이지만 구분하지 않고 있다. 직업구성 변화에 대해서도 상층직업의 확대를 중국효과로 설명하고 하층의 확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세계화론은 하층 직업의 축소로 이어져야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직업변화를 중국 효과로 설명하는 이 책의 설명과 달리, 상하층의 직업이 확대되고, 중층이 줄어드는 U-Curve는 기술변동론의 주요 주장 내용 중 하나다. David Autor가 기술변동론의 수정 버젼으로 제시해서 여러 국가에서 검증된 바다.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도 최근에는 상당히 변화했다고 밀라노비치가 업데이트된 그래프를 제시한 바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 주장하는 노인 빈곤 문제는 저 역시 동의한다. 이 블로그 만들면서 가장 처음 한 주장 중 하나가 노인문제의 중요성이다. 그런데 노인가구를 제외하고 분석해도 한국사회 불평등 변화는 소득상층이 아니라 소득하층이 더 크게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 빈곤과 불평등은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 다른 이슈다. 불평등 증가가 빈곤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두 이슈가 결합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런지 , 어떻게 그런지에 대한 일관된 설명은 아직은 없다. 이에 대한 설명은 세계화와 제도변동에 더하여 인구학적 변동에 주목해야 한다. 

 

인구학적 변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자영업자의 비중이 꾸준히 줄었다. 미국 같은 국가는 임노동자만을 대상으로 분석해도 일관된 대상으로 시행한 분석이 되지만, 한국은 자영업자가 줄고 임노동자가 증가했기 때문에 임노동자만 대상으로 분석해도 변화의 일부 원인은 인구학적 변동에 있다. 또한 다른 선진국과 달리 여성의 경제참여율이 높아지는 등 경제활동인구의 비중이 증가했기 때문에 경활인구를 대상으로 분석해도 인구학적 요인이 불평등 변동의 한 요인이 된다. 신규 유입 인구가 저소득층일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임노동 상층의 소득에 큰 변화가 없어도 신규 노동시장 유입 인구의 증가는 상층 소득의 비중 확대를 가져온다. 경활인구의 확대를 통한 실질적인 소득불평등 축소지만, 임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는 소득불평등 확대로 보이는 착시를 일으킨다. 여기에 더해서 한국은 세대별로 교육수준이 현저히 다르다. 산업구조 변동, 직업구조 변동이 모두 교육수준 변동과 연계되어 있다. 자료를 분석할 때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지만, 이 책은 그런 수고를 하지는 않았다. 

 

이 책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보수의 입맛에 맞게 반성하는 진보의 이미지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불평등>이라는 제목도 불평등을 딱히 개선해야할 것으로 보지 않는 저자의 시선을 반영한다. 대기업 확대를 통한 경제발전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장 역시 보수의 입맛에 맞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10인 이상 사업체의 임노동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 1994년 이후, 도시 2인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 1992년 이후 한국에서 불평등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변곡점은 크게 두 가지 가설이 대립한다. 하나는 최병천 소장이 제시한 세계화 효과, 다른 하나는 제도적 변화다. 신자유주의라고 퉁치는 변화가 아니라 1987-9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이에 대한 대응으로 시행된 일련의 변화들(예를 들어 계약직, 파견노동자 등 비정규직의 증가 등)이 90년대 초반 이후 불평등의 변화를 야기했을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고령화와 교육수준 확대라는 인구학적 변화가 있다. 다른 국가의 사례를 봤을 때 이 중 한가지가 모든 것을 설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실은 항상 복잡하고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여러 요인을 일관되게 분석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종합적 평가는 여러 자료를 분석한 후 비여있는 공간을 논리와 추정으로 엮어야 한다. <좋은 불평등>은 이런 기획을 추동하는 좋은 촉진제임에는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불평등 감소가 진보의 목표였다면, 최병천 소장의 평가와 달리 적어도 2017년 이후 2020년까지는 보수정권보다 성공적이었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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