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에 가는 이유는 거기서 뭔가를 배워서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성취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이겠지만, 좋은 대학의 합격생은 매년 몇 천명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연례 행사에 불과하다.

요즘 조선에서 미국 대학 입학을 무슨 거대한 성취나 되는 것처럼 보도하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학생되는게 그렇게 뉴스거리인가? 기대에 걸맞는 "성과"는 아무 것도 없는데?

하버드에서 수석했다고 뻥친 "77장"의 저자, 모당 의원은 하버드 졸업하고 뭐했나? 한국와서 까페 주인하지 않았던가. 무슨 대단히 혁신적인 까페라도 만들었나?

조선일보 보다보면,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최대 성취가 마치 미국 대학 "입학"같다. 부디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뭔가를 이루었다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는 대학 입학 가지고 기사쓰지 마라. 짜증만빵이다.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사는 20대 후반 청년을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대학합격했다고 수기 쓰는 촌스런 짓거리좀 안했으면 좋겠다. 대학입시 교육에서 한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하는 한국 교육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꼭 그렇게 촌스러운 책을 쓰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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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친노신당

정치 2009. 7. 22. 03:54
친노신당이 9월 정도에 가시화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한겨레 기사.

형식은 예전 개혁당. 개혁당이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반노무현 민주당 세력의 뻘짓이 있었고, 노무현 집권을 통해 갖다 바칠 정치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나도 개혁당을 지지했지만, 개혁당이 그 자체로 생존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한 인물들은 별로 없었을 거다.

지금은? 민주당이 의원직 사퇴를 거론할 만큼 투쟁의 선봉에 서 있다. 노대통령 서거를 진보개혁세력 뒷통수 치기 정당 만들어서 날려버릴려고 하나?

친노신당이 순기능을 한다면 단 하나, 영남에서 친노 인사들의 국회의원 당선을 쉽게 만드는거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개헌을 염두에 두고 베팅을 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결과는 국회의원 당선 밖에 없다. 정동영이 독자출마를 통해 권력의지를 보여주었듯이, 친노인사들이 신당을 통해 독자적인 권력의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또 다른 의의를 찾을려나. 말이 친노신당, 전국정당화, 집단지성이지, 내용은 궁물정당이 된다.

일단 친노신당을 만들고 나중에 민주당과 합친다는 얘기는, 김민석이 정몽준에게 갔을 때 사용했던 논리와 같다. 이 논리가 짜증나서 차라리 개혁당을 만들자고 나섰던 사람들이 아닌가. 

섭섭한 것도 알고, 답답한 것도 알겠는데, 위기 앞에서는 연대만이 살 길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파시즘 앞에서는 미국과 소련도 연대했는데,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한가하게 신당이나 창당하고 있을 때인가? 지금이 그렇게 태평성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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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오컨의 법칙(Okun's Law)이라는게 있다. 논리학에서 쓰는 오캄의 칼(Occam's razor)와는 다른 법칙. 1960년대에 제시된 일종의 경험칙으로 고용의 증감은 GDP증감의 절반 밖에 변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용이 이처럼 변동이 심하지 않고 status quo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이유는, 침체시에 사람짜를 경우 호황시에 적절한 사람 구하는게 말처럼 쉽지 않고, 노동시간을 조정하면 해고없이도 기업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경기침체는 경기 침체의 정도보다 고용침체가 더 심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는 살아나도 고용은 늘지 않는, "고용없는 성장" 패턴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오컨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

드롱은 그 이유로 경기침체의 속성에 덧붙여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설로 제시한다. 이제는 생산력이 더 이상 숙련노동자에 의해서 담보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브랜드, 기계, 일처리하는 프로토콜, 조직 등에 속한다고 간주하고, 노동자는 1회용 용기가 되어버렸다는 점을 든다. 고용이 철밥통은 아니더라도 나무밥통은 되었는데, 이제는 1회용 종이 용기에 불과하다는 거다.

고용끈적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employment stickiness를 칭하는 용어가 있을 텐데, 몰라서 그냥 고용끈적성이라고 내 맘대로 쓴다. 아시는 분은 좀 가르쳐주시라.)

그 덕분에 미국에서 이 경기침체에 1인당 생산성이 급증했다. 눈꼽만치라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동자는 해고해 버린 결과다. 경기침체 이전에는 해고할려면 눈치라도 봤지만, 이제는 해고가 얼마나 떳떳한가.

해고를 통한 생산성 증가. 이 시스템이 얼마나 지속가능할까?



자세한 내용은 브래드 드롱의 논문급 칼럼 참조.

아래 애니메이션은 지나가다님이 소개한 Technological Threat. 보다가 뿜었음.^^

애니메이션 내용과 관련해서, 중간매니저의 감소에 대해서는 Peter Cappelli의 연구 참조. 하급 화이트칼라직의 감소에 대해서는 David Autor의 연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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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근로빈곤: 출구없는 이웃
2. 한국의 근로빈곤: 4가지 유형
3. 외국의 근로빈곤
4. 한국의 근로빈곤: 안산지역
5. 한국의 근로빈곤: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조선일보의 "워킹푸어(근로빈곤)"시리즈다. 근로빈곤은 열심히 일하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일컫는 용어다. 조선의 이 번 기획기사는 돋보인다. 이런 기사와 종부세 인하, 부자 증세를 반대하는 기획 기사가 동시에 실릴 수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미국에서는 근로빈곤을 해결하고 노동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 EITC(Earned Income Tax Credit)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도 노무현 정부 시절에 검토한 걸로 알고 있다. 아마 지역에 따라 시범실시도 했을거다. 명박정부에서 전면 실시할 예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제도의 내용은 일정 시간 이상 일을 했는데, 임금 수준이 기대 수준에 미달이면, 일해서 번 돈에 비례해서 마이너스 세금을 주는거다. 즉, 돈을 준다는 얘기다. 30만원 벌었으면 10만원을 세금으로 더 주고, 50만원 벌었으면 15만원을 더 주는 식이다.

내용은 살짝 복잡하니 위키피디아의 정리를 참고하시라.

이 아이디어는 원래 미국 공화당에서 제안한 것인데, 클린턴 정부 시절에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확대 적용되였다. 공화당에서는 오히려 EITC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었다. EITC는 "복지 혜택 받아서 캐딜락 타는 흑인 여성"이라는 거짓 이미지가 횡행했던 미국에서 새로운 복지를 도입하는 좋은 방편이었다.

EITC가 좋은 제도임에는 틀림없지만, 복지의 덫에 걸린 적도 전혀 없고, 노동윤리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EITC가 미국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안하는 것보다야 물론 훨씬 낫겠지만.

근로빈곤을 해결하는 첩경은 사회전체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다. 사회 전체 평균임금의 절반 이하를 받는 상대적 빈곤층의 비중을 줄이고, 사회 전체 평균임금의 1.5배 이상을 받는 중상층의 비중을 줄여서 중간층을 두텁게 하는게 최선의 해결책이다. EITC도 좋지만, 노동임금 자체가 근로빈곤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충분히 주는 것이 가장 좋다.



ps. 근로빈곤이라는 용어가 학계에서도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는데, 왜 조선일보는 굳이 워킹푸어라는 영어를 썼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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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izjournals.com/albuquerque/stories/2009/07/13/daily55.html

미국에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대학 졸업자들의 초임은 거의 줄지 않았다는 기사. 2009년에 졸업하고 취직한 대학졸업생의 임금은 작년 졸업생들과 비교해서 임금이 1% 이하로 줄었다. 평균 초임이 올해는 $49,307, 작년에는 $49,693.

잘나가는 엔지니어링 전공자들은 6만불대의 임금을 받은 반면, 리버럴 아트 전공자들은 3만불대의 낮은 임금을 받는다. oTL

임금, 고용 등은 한 번 고정되면 잘 바뀌지 않는 성향이 있는데, 이를 stickiness라고 한다. 한 번 임금 수준이 정해지면 외부의 충격이 있더라도 단기간에 잘 변하지 않는다는 거고, 한 번 고용되면 외부의 충격이 있더라도 단기간에 잘 안 짜른다는 거다.

가장 자유경쟁시장에 가깝다는 미국도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임금 수준은 단기간에 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대졸 초임을 낮춰서 신규 모집 정원을 늘리자는 "압력운동"이 있었는데, 대졸 초임을 낮췄다는 얘기는 들리지만, 신규 모집 정원이 그에 비례해서 늘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임금을 낮춰서 고용을 늘리자"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이 아이디어가 "사회적 합의"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반짝 아이디어로 집권층에 의해 강요될 때, 공기업 대졸초임의 임금을 낮추는 압력 이상의 효과는 없다. 한국 사회에서 부족한 것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과 주체, 이들을 총칭하는 제도(institution)이지 아이디어 자체는 아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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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o라는 신생 토론게시판에서 "하하하"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이 "경청하는 사람"이라는 분에게 남긴 댓글을 두고 분란이 생겼다. 분란의 소지가 된 하하하님의 댓글은 "그냥 이 짐승에게는 제가 먹이를 주고 끝내는 것이 어떨까요?"

이 댓글이 욕은 맞는데, 좀 역사가 있는 욕이다.

"DNFTT"

인터넷에서 쓰이는 약자로 "DNFTT"는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뜻이다. Do not feed the trolls의 약자. 미국 인터넷에서 널리 알려진 표현법이다.

이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글을 번역하면, "인터넷 슬랭 중에 '짐승(트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쟁적이거나, 선동적이거나, 주제에 벗어난 얘기를 올리는 자를 일컫는다. 이들의 주요 목적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적인 반응을 자아내거나 아니면 그 주제에 대한 토론을 방해하는데 있다."


trolls이라는 단어는 스칸다나비아 반도의 민간전설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국가별로 조금씩 단어를 바꿔 쓴단다. 일본에서는 "쓰레기"로 중국에서는 "일목(외눈깔)"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하하하님의 링크에서도 보이듯이 트롤을 짐승으로 표현한다.

"짐승에게 먹이를 준다"라는 표현은 인터넷에서 주제에 상관없는 댓글을 다는 방훼꾼을 상대해준다라는 일반화된 표현법이다. "내가 이 짐승에게 먹이를 주겠다:라는 말은 <훼방꾼은 내가 상대하겠다>라는 말을 인터넷 용어로 표현한 것.

이 말이 널리 퍼진 것은 재작년인가, 여성 블로거에 대해서 살인 위협까지하는 "짐승"들에 대한 일대 파문이 미국 블로거들을 강타한 이후, 트롤(짐승)무시하기가 블로거들이 갖추어야할 소양의 하나로도 꼽히기 때문일 거다. (참조: 오라일리의 블로거 행동 강령 제안.) 이 사건은 BBC 뉴스에도 나왔다. 여기에 대해 연구해서 나온 책도 있단다.

오라일리의 블로거 행동강령 4번째: "트롤을 무시하라"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돼지와 같이 싸우며 뒹굴지마라. 둘 다 더러워질 뿐이지만, 돼지는 그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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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여성 고용 측면에서 OECD 국가 중 꼴찌에서 1-2위를 다툰다는 건,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여성 고용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꼴찌지만, 여성의 고위직(국회의원, 기업임원, 정부고위직 등) 진출 비율은 전세계에서 바닥을 기고 있다.  몇 년 전에 본 통계로는 거의 이슬람 국가 수준이었다. 최근의 경제 위기에 가장 실직의 위기에 내몰린 계층은 30대 여성이라는 보도도 얼마전에 있었다.

캘리에 있는 페퍼다인 대학교의 Alder & Conlin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기업 차원에서도 여성의 승진율이 높은 기업의 이윤이 높다고 한다.

Miller McCune 기사.

2001년부터 포츈 500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여성 승진율이 높은 25대 기업의 전반적 이윤은 포츈 500의 평균보다 34% 높단다. 이 결과는 2004, 2005, 2006, 2007, 2008년 자료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된다.

Alder & Conlin교수는 이런 현상이 관찰되는 이유로, 성별에 관계없이 가장 능력있는 사람을 승진시키는 회사에서 이윤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여성 사회 진출의 확대는 한국사회의 긴급한 요구 중의 하나다. 예비역 병장들의 억울함을 달래는게 발톱 사이에 낀 때를 청소하는 문제라면, 여성 사회 진출 확대는 간에서 자라고 있는 암을 제거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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