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한국의 실업률이 2.8%라는 공식 통계를 제시했더니, 어떤 분이 댓글에서 쉬었음 인구를 생각하면 실업률 운운할 수 없다고 한다. 통계를 종합해서 사고하기 보다는 지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전형적인 패턴. 

 

그런데 20대 노동시장은 분석하기 매우 까다로운 주제다. 한 두 가지 지표로 선동하기도 쉬운 주제고. 예를 들어 이런거다: 2010년에 나온 "청년 고용률 사상 최악"이라는 경향기사가 있다. 당시 여러 신문이 비슷한 기사를 냈다. 고용률은 인구 대비 현재 고용 인원의 비율로, 청년 고용률은 15-29세 인구의 해당 통계다. 그리고 이 때 고용률이 계속 낮아진 가장 큰 이유는 대학 진학의 확대다. 그러니까 교육이 확대되면 15-29세 고용률은 당연히 낮아진다. 반대로 청소년과 청년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면 고용률은 높아진다. 2000년대 초반의 고용률 하락 원인이 교육이니까, 대학 교육 기회를 축소하면 고용률은 반등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해결책인가? 

 

OECD에서는 15-24세의 고용률을 별도로 구하는데 한국은 27%로 최하위권이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 10대는 알바를 거의 하지 않고, 대학생도 고용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많은 OECD 경제선진국에서 대다수의 대학생이 일을 한다. 

 

그러니까 20대 고용률은 통계에서 말하는 선택편향이 크게 작용하는 분야다. 군복무, 교육, 취업준비, 가정형편 등등 고용이 디폴트가 아닐 여지가 많은 연령대다. 따라서 20대 고용률 변화는 이유가 무엇인지 세밀하게 밝혀야 한다. 아니면 교육의 팽창 등 긍정적 이유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반대의 예도 있다. 한국의 노령층 고용률은 다른 국가보다 높다. 이유는 연금의 미비로 노동시장에서 소득을 얻지 못하면, 생활이 안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고용률이 좋은게 아닌 경우다. 이에 반해 60대의 건강 개선과 연령차별 축소로 고용률이 증가할 수도 있다. 고연령층 고용률 변화를 단순하게 해석하기 어렵다. 

 

그래서 얘기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20대의 고용 지표는 여러 지표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는거다. "쉬었음"이 증가할 때, 고용이 안되어서 절대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인지, 다른 가용한 자원이 늘어서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나는 것인지, 어떤 계층에서 쉬었음의 비중이 증가한 것인지 등등. 

 

그렇다면 한국에서 노동시장 상태를 체크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지표는 뭘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저는 30대와 40대의 고용률을 꼽겠다. 20대는 교육 훈련 등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을 여러 이유가 있고, 50대는 빠르면 초반부터 늦어도 중반부터 은퇴가 시작된다. 여성은 가정형성, 출산이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30-40대, 그 중에서도 남성은 노동시장에서의 고용 상태가 디폴트 가정이다. 

 

아래가 21세기 한국의 30-40대 고용률(= 고용인구/전체인구)이다. 보다시피 30대 고용률은 2000년 73%에서 2025년 81%로 8%포인트 증가했다. 그리고 그 증가분은 전적으로 여성 고용의 확대 때문이다. 53%에서 73%로 무려 20%포인트 증가다. 퍼센트 증가로 따지면 근 40%에 육박한다 (=.73/.53). 이에 반해 남성 고용률은 92%에서 88%로 4%포인트 하락했다. 30대 전체 고용률은 증가했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일자리가 줄었다고 하기는 어렵고,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으로 인한, 경쟁의 격화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성평등 진전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보다시피 조용하지만 커다란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 

 

40대를 보면, 남성 고용률은 변화가 없고, 여성 고용률은 30대 만큼 크지는 않지만 63%에서 69%로 6%포인트 증가했다. 

 

 

 

 

 

안정된 변화를 보이는 30, 40대 고용률과 달리, 20대 고용률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상당히 큰 등락을 보인다. 20대 전체의 고용률은 2000년대 초반 대비 2010년대에 2-3%포인트 낮았다. 하지만 2025년 현재의 고용률 60%는 2000년과 완전히 동일하다. 교육팽창으로 하락하던 20대 전체의 고용률이 최근 코로나 시기 이후 이 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이다. 

 

그런데 성별로 보면 남녀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2000년대 초반에는 남성의 고용률이 여성보다 12%포인트 높았는데, 2025년 현재는 여성고용률이 남성보다 5%포인트 높다. 이러한 성별 고용률의 역전은 2010년대 초반에 이루어져 지금까지 확대되었다. 남성은 교육의 확대가 고용률의 하락으로 이어진 반면, 여성은 교육확대로 인한 노동시장 유입의 하락 정도보다 혼인 출산의 저하와 노동시장 기회 확대의 정도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여러 요인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한 20대 청년 고용상태를 볼 수는 없을까? 그렇게 볼 수 있는 지표가 바로 실업률이다. 아래 보다시피 2017~2020년 사이에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하여 2000년의 7.5%보다 2.5%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이후 실업률이 빠르게 개선되어 2025년 현재 실업률이 6.1%로 21세기 중 최근 3년이 가장 낮다. 고용률은 21세기 초와 다를 바 없고, 실업률은 20세기 초 보다 낮다. 

 

현재의 낮은 실업률은 남성에게서 더 도드라진다. 2000년 20대 남성 실업률은 8.8%였는데, 2025년에는 6.6%다. 여성은 각각 6.0%, 5.6%다. 

 

 

종합하면 노동시장 상태를 보기에 가장 간편한 지표인 30-40대의 고용률은 21세기들어 남성은 거의 변화가 없고, 여성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20대 청년은 21세기 초반대비 여성은 모든 측면에서 개선되었고, 남성은 고용률은 낮아졌지만, 실업률이 높아진건 아니다. 30-40대 여성의 고용률 확대와, 20대 청년 고용률의 성별 격차 역전이 21세기의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Ps. 사실 이 얘기는 바로 얼마 전 했던 것의 확장 버전인데, 청년층의 정치적 성향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몇 번 더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Pps. 그런데 위에 말한 지표는 고용의 "질"을 포함하지 않는다. 고용의 양은 증가했더라도, 질적으로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양적, 질적으로 모두 좋아져도, 교육 팽창으로 인한 기대수준 대비 고용의 양질이 미비할 수도 있다. 쉬었음 집단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여러 가능성 때문에 위 지표를 무시하는건 오류다. 위 지표를 기본으로 보완적 설명을 제시해야. 

 

통계가 선동이 될 수 있는건, 어떤 하나의 지표를 확대 과장하고,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고용 뿐만이 아니다. 청년층 보수화 이유로 매크로 지표를 무시할 수 없다고 했더니, 왜 그걸 무시해도 괜찮은지를 얘기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꽂힌 원인만 강조한다. 그런 주장은 설명하는 대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게 아니라, 설명하는 화자의 특성을 더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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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이 댓글로 2015년 이후 상층과 중간층의 격차(P90/P50)가 증가하지 않았냐고 물으시는데, 바로 답을 하지 못하겠더라. 요즘 주로 미국 사회, 그 중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에 집중하고 있어서, 최근 한국 사회 불평등 변화를 체크하지 않고 있던게 티가 나더라. 

 

그래서 가금복 조사 결과를 체크해봤다. 아래 그래프가 결과다. 여기서 소득은 세후 가처분 소득이다.

 

Y축을 두개로 나누는게 좋은건 아니지만, 이래야 변화를 한 눈에 파악하기에 편해서 그렇게 했다. 녹색 실선이 P90/P10이고 (왼쪽 Y축), 아래의 붉은색 점선이 상위 불평등인 P90/P50, 보라색 dash-dot 선이 하위 불평등인 P50/P10다 (오른쪽 Y축). 

 

 

보다시피 전체 불평등은 2011-2020까지 감소했고, 그 이후 정체다. 상위불평등은 급격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감소했다. 최근 몇 년간 상위불평등에 큰 변화가 없지만, 장기 추세가 뒤집혔다고 할 수는 없다. 하위불평등은 2011-2020까지 급감한 후 그 정도는 작지만 증가했다. 

 

이걸 정권별로 나눠보자. 가금복은 3-4월 조사하는데 전년도 소득을 물어본다. 그러니까 2024년 결과는 실제로는 2023년소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2011년을 기준점으로 삼을 때 이명박 정권에서 하위 10% 퍼센타일 소득은 16.3% 증가했다. 중위소득은 14.7%, 상위 소득은 7.8% 증가했다. 하위 소득의 증가율이 중위나 상위보다 더 높다. 

 

박근혜 정권 동안은 상위 소득 15.4%, 중위 소득 16.3%, 하위 소득이 25.0% 증가해서 여전히 하후상박의 패턴을 보인다. 문재인 정권은 상위 17.1%, 중위 34.9%, 하위 44.9%다. 박근혜 정권 대비 문재인 정권에서 상위 소득의 증가비율은 큰 차이가 없는데, 하위 소득의 증가율은 문재인 정부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위 그래프에서 2018-2020년 사이 짧은 기간 동안 재분배의 큰 개선이 이뤄졌다. 이 때가 바로 최저임금 문제, 노년층 취로 사업 문제 등이 크게 논란이 되었던 시기다. 

 

상당히 급격하게 하위 소득을 높이던 소득분배 정책이 바뀐건 2020년 코로나 이후다. 코로나 이후 윤석열 정부 초기까지, 상위 소득은 20.0% 증가하고, 중위소득은 22.6% 증가했는데, 하위 소득은 18.8% 증가했다. 그 전 10년간 지속되던 하후상박 패턴에 변화가 생겨, 하위 소득이 더 이상 더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갑자기 바뀐게 아니고, 코로나 이후 몇 년간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서 그렇게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어느 정부보다 더 확실히 소득재분배를 이루어 소득불평등을 크게 낮췄지만, 후기에는 그 전 10년과 달리 소득불평등 하락 추이가 멈추었다. 미국에서 일시적일지라도 코로나 이후 하위 소득이 증가해 소득불평등이 줄었는데 반해, 한국은 코로나 이후 하위 소득의 증가 정도가 감소해 소득불평등이 더 이상 줄지 않고, 하위불평등만 보면 소득불평등이 조금 늘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다른 선진국보다 재정건정성에 더 신경 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과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 하락의 배경에는 이러한 변화가 있다. 정권 전반기에 상위계층의 지지를 잃을만한, 그리고 후반기에는 하위계층의 지지를 잃을만한 정책을 펼친 것이다. 

 

마무리 하기 전에 두 가지 강조하고 싶은게 있는데, 하나는 코로나 이후에도 상위불평등의 증가는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불평등을 지배하는건 여전히 하위불평등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상위 10%와 중위층의 차이보다 중위층과 하위 10%의 차이가 크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경제적 보수화는 상층의 더 많은 이득으로 귀결되기 보다는, 하층의 더 빈곤한 퇴행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Ps. 세후 가처분소득이 아니라 시장소득으로 보면 추세가 조금 다르다. P90/P50 상위 불평등은 조금만 줄었는데, P50/P10 하위 불평등은 2011년 3.64에서 2024년 4.21로 상당히 크게 늘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2011년 이후 시장 소득이 가장 크게 늘어난건 중위층(82.3% 증가)이다. 동기간, 하위10%는 57.8% 늘었고,  상위10%는 71.4% 늘었다. 그런데 가처분소득으로 보면, 하위10%의 증가율이 117%로 가장 높다. 중위층 입장에서 하위계층은 노동시장 활동은 별로 없으면서 온갖 복지혜택을 봐서, 자신들과의 차이는 줄어드는데, 가장 열심히 일해서 시장소득이 늘어난 자신들은 상층과의 격차가 별로 줄지 않았다고 느낄 것이다. 추측컨데, 이 변화가 한국 사회 경제적 보수화의 가장 큰 이유리라.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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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포스팅은 많은 분들에게 별 관심없는 주제일거로 생각하고 쓴건데, 의외로 여러 분들이 코멘트를 주셨다. 원인에 대한 논의에 코멘트가 많은걸로 미루어, 가끔 얘기되는 트위터 독자들의 학력 분포 편향이 짐작되더라. 

 

많은 분들이 게임, SNS, 국정원의 심리전, sexuality 등 미시적 요인의 설명력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저도 이 변수들이 상당한 설명력을 가질거라는데 동의한다. 이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는데도 동의하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닌 이유는 조금 얘기할 필요가 있다. 

 

일베에 관심있는 분들은 많이 읽어보셨겠지만, 김학준 선생은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서 일베의 유머, 웃음 코드와 혐오 담론을 연결시킨다. 김학준 선생의 한겨레 인터뷰 내용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저는 유머를 출발점으로 한 이 분석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내용을 조금 옮기면, "호남, 여성, 진보좌파 등에 대한 혐오에 유머의 탈을 씌워 유희거리로 만든다. ... 혐오코드는 (이렇게) 유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확산됐고, 그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 혐오발언은 이제 각종 ‘드립’뿐 아니라 종종 정의, 공정, 능력이란 말과 뒤섞여 곳곳에서 사용된다. ... 유머를 도구로 쓰다보니, 혐오표현에 대한 지적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 된다." 

 

놀이 문화와 극우화를 연결시키는 다른 분으로 트위터의 괴골(개물)님이 있다. 괴골(개물)님이 포스팅한 요 쓰레드의 논리를 보시라. 마지막 트윗을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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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문화 뒤에 숨는 것이 꽤 영리한 전략인 것이, 

1. 10대 수용자들의 거부감을 크게 줄임.
2. 반면 기성세대의 정당한 개입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늘림 ('꼰대들이 놀이를 못하게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죠)
3. 같은 '놀이'를 하는 또래들의 결속력을 강화해서 자가발전시킴(이건 남자들이 더 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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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놀이와 극우를 연결시키는게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도둑맞은 자부심>을 쓴 Arlie Hockshield의 인용에 따르면, David Keen은 미국의 January 6 의사당 난입 폭동에 그토록 쉽게 여러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한 이유로 난입 당시의 축제 분위기를 든다. 같은 인용에서 혹실드는 Hannah Arendt의 <전체주의의 기원>를 인용하며 유희적 분위기에서 저절러진 극우 범죄에 대해 논한다. 

 

매우 유용한 분석이라는데 백퍼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가진 한계도 분명하다.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발현되는데,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보수화 극우화에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유사한 현상이 많은 국가에서 관찰되지만, 한국에서 유난히 성별 격차가 큰 이유가 뭔지, 왜 한국의 청년 남성은 이렇게 심각하게 보수화되었는지.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심리적 변수들이 더 잘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데 한계를 가진다. 

 

매크로 (타입) 변수의 조건에 대한 파악없이 마이크로 변수에만 초점을 맞추면, 해결책은 10대는 SNS 금지, 게임 규제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게 작동할 수는 있지만, 그리 이상적인 대책은 아니다. 

 

기왕 아렌트를 위에 언급했으니 마셜 플랜을 생각해 보시라. 대부분 알듯이,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1차 대전 이후의 경제적 궁핍이 있었다는게 마셜 플랜 작성의 주요 논리 중 하나였다. 독일을 바꾼 것은 "악의 평범성" 같은 마이크로 분석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통한 번영이 급진화와 전쟁을 막는다는 매크로한 분석이었다. 

 

이런 논리가 현재 한국 청년 남성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건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와 청년 남성 보수화를 연결시킬려는 접근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방향은 아니다. 경제적 궁핍을 원인으로 설파하는 주장이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이라든가 실제 데이터와 안맞는다는거지. 어떤 계층적 세그멘트의 현상인지 밝히는건 중요하다. 

 

반페미니즘, 남성의 toxic masculinity에 대한 분석도 마찬가지다. 신경아 선생이 경향 칼럼으로 쓰고, 페북에 더 자세한 내용을 올렸듯, toxic masculinity는 최근 문제가 아니다. 과거보다 약화되었으면 약화되었지 강화되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안성기 배우의 부드러운 남자 이미지, 요섹남 등 덜 톡식한 남성 이미지가 넓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매크로한 조건 없이 이것만 분석해서는 왜 지금, 왜 청년층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현재의 청년 남성이라는 한 개의 집단에 대한 매크로 분석은 교육, 계층, 지역 등의 차이에 따른 성향 차이를 통한 추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집단과 다른 집단 비교를 통해, 이 변수의 효과가 어떻게 다른지를 파악해야할 것이고.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래서 이런 매크로 타입 분석만 가치가 있다는게 아니고, 심리적 변수에 대한 분석이나 SNS 활동에 대한 분석으로 매크로 (타입) 변수의 중요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거다. 

 

 

Ps. 개인변수를 이용한게 무슨 매크로 분석이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교육 수준, 경제상황 같은 변수를 게임, 심리적 변수 같은 변수와 어떻게 달리 표현할지 몰라서, 그냥 매크로 (타입) 변수라고 했다. 

 

Pps. 청년 남성의 보수화가 연령 효과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 6월에 포스팅한게 있다. 연령 효과는 청년 남성의 보수화에 회의적인 분들이 이미 했던 얘기다. 일부 논쟁이 있지만, 사회학 연구들은 세상의 변화 뿐만 아니라 개인의 변화를 추적할 때, 나이 효과는 작고, 코호트 효과가 더 크다고 보여준다. 예를 들어, Kiley & Vaisey (2020) 연구에 따르면, 미국 GSS에서 나타나는 태도 변화는 대부분 단기 태도 변화거나 측정 오차고, 지속적인 변화가 나타날 경우는 코호트가 바뀌면서 젊은층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태도는 새로운 정보에 따라 바뀌기 보다는, 청년층에 형성된 성향이 지속되는 성향 안정성 모델에 더 부합한다. 즉, 지금의 청년층이 나이가 들면서 진보적으로 바뀌기 보다는 현재의 세계관을 상당히 유지할거라는 의미다. 링크한 포스팅에서, 첫 번째 코멘트도 읽어보시길. 한국의 현재 청년 세대는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주장할려면, 왜 이 집단만 다른 일반적 경향과 다른지 상당히 개연성있는 상황 논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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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여론조사: 70대 여론 빼닮은 20대…'이 대통령 부정 평가' 51%

 

화제가 된 JTBC 신년 여론조사인데, 20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부정 평가가 가장 높다. 이 보도는 20대를 성별로 나누지 않고 있다. 그런데 성별을 나눈 다른 결과를 보면, 20대는 대략 2~30%포인트의 성별 격차가 있고, 70대는 성별 격차가 거의 없다. 이를 감안하면, 20대 남성의 현정부에 대한 부정 평가는 압도적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0대 남성의 보수화와 극우화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내용이다. 극우 정도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지난 한겨레-정당학회 조사에서도 20대 남성은 70대 보다 상당히 의미 있는 격차로 더 극우적이었다 (한겨레: 70대 극우 지수는 0.22인데, 20대 남성은 0.30로 매우 의미 있는 수치). 

 

느낌적 느낌으로 최근에 나온 글들은 이 경향 자체는 인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과 6개월 전, 대선이 끝나고 이 논쟁이 불거졌을 때, 상당수의 스피커들이 이 경향을 부정했다. 극우화는 물론이고,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부정하는 칼럼이 넘쳐났다. 

 

어떤 현상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는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20대 보수화/극우화를 둘러싼 논란은 몇 가지 돌아볼 지점이 있다. 이 논란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의 어떤 경향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왜 많은 분들이 20대 남성의 보수화, 극우화를 부정했을까이다.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판단하기 어려웠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기다려보자는 태도를 가지지, 신문 칼럼에 20대 남성의 보수화, 극우화를 부정하는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데이터가 부족했다는 변명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KBS 이대남 조사가 2021년 이었고, 유사한 결과를 재현한 경향신문 조사가 2022년이었다. 20대 남성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신호는 분명했다. Financial Times에서 지지정당으로 20대의 성별 격차를 분석한 기사가 나온게 2024년이다. 2022년에 한국일보는 "'이대남'은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게 되었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지점에서  성*연령에 따른 정치 성향의 통시적 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이 전 데이터를 뒤져보는게 정상이다. 그러면 여러 척도에서 20대 남성의 변화가 확인된다. 2025년의 선거 결과는 이러한 경향을 재확인한 이벤트였다. 그 이후 한겨레, JTBC의 조사에서도 같은 경향의 반복이다. 

 

논란이 되었던 시사인 분석을 보면 척도에 따라 20대 남성과 70대의 극우화 순위가 살짝 바뀐다. 하지만 두 집단 모두 극우적 성향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 높았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20대 남성이 매우 튀는 결과가 바로 나온다. 링크한 기사에 나오듯,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으므로 한국은 홍콩처럼 중국의 속국이 될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진술에 70세 이상 남자의 21%가 동의한 반면, 20대 남자는 44%가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남성 보수화/극우화 증거는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논란 자체가 한국 사회의 어떤 경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출생 아동의 남아 선호는 사라졌지만, 담론 차원에서는 자신들이 그리는 어떤 청년상을 실제 변화와 관계없이 옹호하는 듯하다. 느낌적 느낌으로 이 성향이 상당히 넓고 깊지 않나 싶다.  

 

두 번째는 그럼 왜 20대 남성은 보수화, 극우화되었는라는 원인에 대한 분석이다. 현상 자체에 대한 동의도 안되었으니, 원인을 따지는 분석은 더 투박할 수 밖에 없으리라.

 

모두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대략 원인에 대한 분석은 세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 두 번째는 페미니즘, 그리고 세 번째는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다. 세 가지가 서로 배타적인건 아니다. MBC 뉴스에서 나왔던 분석이 앞의 두 가지를 보여준다. 세 번째는 주로 칼럼에서 등장한다. 민주당 이중성에 대한 실망, 민주당의 보수화가 오히려 극우화로 이끈다는 분석 등이다. 

 

20대 남성의 보수화/극우화는 매우 큰, 그리고 특이한 사회적 변화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그 원인에 대한 정치한 설명을 제공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달리 설명은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

 

보수화, 극우화라는 상대적으로 쉽게 확인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부족해서 쉽게 주장할 수 없다고 하더니, 보수화/극우화의 배경이 되는 경제적 처지에 대해서는 데이터로 확실히 확인되지도 않는 설명을 쉽게 받아들인다. 

 

한국 사회는 21세기들어 가장 발전한 선진국 중 하나다. 20세기말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상위권 중진국에서 확실한 선진국으로 진입하였다. 1인당 GDP는 일본을 넘어서, 일본 여행이 싸게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확실한 경제발전은 대부분의 인구집단에게 득이 된다. 피케티의 유명한 <21세기의 자본>에서도 자본가를 살찌우는건 투자에 대한 리턴 rate인 r 이고, 민중을 살찌우는건 경제발전률인 g 이다. r > g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었는데, 20세기 중반의 짧은 기간 동안 r < g이었기 때문에 불평등도 줄어들고, 자본의 영향도 작았다는게 논리다. 한국의 높은 경제발전은 불평등을 줄이고, 그 혜택이 다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런데 이 혜택을 특정 연령대만 보고 있다는게 세대론이고, 20대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논리다. 과연 그런가? 물론 특정 시점에 특정 부분에서 특정 세대에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정치적 대변혁을 가져올 물질적 기반이 될 정도로 큰가?

 

어떤 분들은 미국 사회의 극우 보수 등장과 한국 사회의 변화를 비슷한 것처럼 설명한다. 하지만 미국 아팔래치아 지역이나, 저학력 저숙련 계층이 겪은 지난 몇 십년의 변화는 한국의 변화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경제적 소외가 크게 증가한 그룹을 극히 찾기 어렵다. 적어도 지금까지 직접 분석하거나 들어본 바로는, 그런 집단이 없다.

 

시사인 기고문에서도 주장한 바지만, 지난 대선 직후 신수현 선생의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 화이트칼러, 고소득 청년 남성 집중 지역에서 이준석 지지도가 높았다. 경제적 소외가 보수화의 경제적 배경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증이다. KBS 조사와 경향신문 조사 결과도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증이 된다. 

 

청년층에게 그 나름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전면적 경제 상황의 후퇴는 상상하기 어렵다.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과, 취업해도 금방 퇴직한다는 모순된 말이 동시에 나온다. 취업이 어려우면 퇴사나 직장 이동이 떨어지는게 경제 현상의 상식이다.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고, 중산층이 줄어든다고 외치다가, 그게 아닌게 증명이 되니, 주관적 중산층 의식으로 논의가 넘어갔다가, 이제는 자산 불평등으로 논의가 이동했다. 하지만 현재의 청년층 자산이 지난 세대의 자산보다 낮은지, 청년층 내부의 자산불평등이 증가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은 (아직은) 없다. 

 

20대 남성의 경제적 기반과 반페미니즘, 정책 선호, 정당 지지의 보수화를 연결하는 논리도 부실하다. 경제적 기반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니, 이념과 정책 선호의 연결 논리가 부족한건 너무 당연한 귀결이리라.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라는 논리는 사실 20대 보수화의 동어반복이다. 지지 정당이 보수화의 지표 중 하나인데,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원인이라는건 아무런 설명이 안된다. 20대 보수화의 책임을 특정 정당에 떠넘기기 위한 정치적 언술이지 분석이라고 하기 어렵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국민정당이다. 연령대별로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지지 정당의 등락이 대략 같은 방향으로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이동하는게 일반적이다. 특정 연령 집단만 특정 정당에 더 크게 실망하는 것 자체가 분석되어야 하는 현상이지, 설명이 아니다.   


이러한 분석의 부족은 상당 부분 데이터의 한계에 기인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연구 의지 부족에 기인한다. 주장은 넘치는데 분석은 부족하다. 달리 질문하면, 분석이 부족한데도 왜 주장이 넘칠까? 그렇다고 여러 가설이 제기되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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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기사: "이명박과 문재인, ‘세대’가 달리 평가한 역대 대통령"

 

며칠 전 갤럽에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물었더니 세대별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랐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세계일보에서는 이를 세대별로 자세히 보도했다.  "2030세대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본 반면, 4050세대에서는 강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은 40-50대에서 긍정 평가가 높인다고 한다. 기사는 2030은 보수화 흐름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늘었다고 결론내린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가 알듯이 청년층은 성별로 정치 인식이 상당히 다르다. 

 

올 7월에 시사In 자료로 청년세대 극우화/보수화에 대한 분석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시사인에서 역대 대통령에 대한 감정온도를 물어봤었다. 총 100점 만점으로 0점이면 매우 차가운 감정, 100점 이면 매우 따뜻한 감정으로 답하는 질문이었다. 공이 많은지 과가 많은지 물은 갤럽과 정확히 일치하는 질문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유사한 결과가 예상되는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시사인에서는 대선에 대한 평가와 극우화에 주목해서인지 이 항목은 별도로 보도하지 않고 넘어가더라. 

 

지난 7월에 극우화 기고문을 쓸 때 역대 대통령에 대한 감정 온도도 분석해 봤었다. 아래 표가 성*연령 그룹에 따른 단순평균이다. 셀에 색깔을 넣은 것은 같은 세대 내에서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날 때이다. 노란색은 10%포인트 이상, 주황색은 20%포인트 이상 다른 성별보다 감정 온도가 높은 경우이다. 

 

보다시피 장년층과 노년층은 색깔이 칠해진 셀이 전혀 없다. 성별 격차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반면 청년층에서는 성별 격차가 뚜렷이 나타난다. 

 

청년 남성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을 포함한 보수 대통령 모두에 대해서 청년 여성보다 더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다고 청년 남성이 모든 보수 대통령에 따뜻한 감정을 느낀다는건 아니다. 전두환에 대한 청년 남성의 감정온도는 18.4점으로 장년이나 노년 남성보다 낮다. 하지만 동세대 여성보다는 감정 온도가 11점 더 높다. 여러 보수 대통령에 대한 청년 남성의 감정 온도가 전체 국민 평균보다 특별히 더 높은건 아니지만, 동 세대 여성보다는 확실히 높다. 

 

이에 반해 청년 여성은  보수 대통령에 대한 감정 온도가 청년 남성에 대비해서 낮을 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 평균보다도 확실히 낮다. 모든 보수 대통령에 대해서 일관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 청년은 전체 국민 평균보다 성별에 관계없이 더 낮은 감정온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에 대한 감정온도는 청년의 성별로 크게 갈리지만, 청년 남녀 모두 국민 평균보다는 상대적으로 차갑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다른 세대보다 청년 세대에서 성별에 관계없이 덜 우호적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두 대통령이 이명박과 문재인이다. 청년 남성은 이명박에 대해서 국민평균보다 더 따뜻하게 느끼고, 문재인에 대해서는 더 차갑게 느낀다. 이에 반해 청년 여성은 이명박에 대해서 국민평균보다 더 차갑게 느끼고, 문재인에 대해서는 더 따뜻하게 느낀다. 

 

이명박과 문재인, 두 대통령이 청년 남녀를 가르는 기준인 셈이다.

 

좀 더 해석하자면, 이 결과는 박근혜 탄핵이나 윤석열 탄핵에서 청년 남녀가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고 정치 성향이 비슷한게 아니라는걸 의미한다. 박근혜나 윤석열에 대한 태도는 period effects가 작용한 셈이다. 달리 말해, 박근혜 탄핵에 찬성하거나, 윤석열의 계엄에 반대하는 period effects에 기반해, 청년 남성의 보수성이라는 generation effects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18-34 27.7 40.8 18.4 42.5 58.4 41.4 26.3 28.8
15.9 17.9 7.2 47.1 63.0 20.8 13.7 51.9
격차 -11.8 -22.9 -11.2 4.6 4.6 -20.6 -12.6 23.1
35-64 29.4 48.4 21.2 58.6 70.6 31.7 29.7 47.6
29.5 44.1 15.3 58.2 70.5 27.6 26.3 49.3
격차 0.1 -4.3 -5.9 -0.4 -0.1 -4.1 -3.4 1.7
65+ 55.9 72.5 39.7 55.2 60.7 47.4 50.7 39.5
49.8 65.9 31.2 55.4 63.0 43.2 49.5 42.1
격차 -6.1 -6.6 -8.5 0.2 2.3 -4.2 -1.2 2.6
전체 32.9 47.7 20.8 55.0 66.7 33.3 31.1 45.2

 

그리고 청년층의 보수 대통령에 대한 따뜻한 감정은 상위계층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청년 남성은 어느 대통령도 예외가 없고, 청년 여성은 전두환만 예외다. 

 

장년층이나 노년층은 계층에 따른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감정온도 변화가 상대적으로 약한데 비해, 청년층에서는 계층에 따라 전직 대통령, 특히 보수대통령에 대한 따뜻한 방향으로의 감정온도 변화가 확실히 나타난다. 청년층은 하위계층 대비 상위계층에서 보수 대통령에 확실히 더 우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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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사: M 커브가 사라졌다

 

얼마 전 한국에서 30대 여성의 고용률이 20대 여성보다 더 이상 낮지 않다 기사가 화제가 되었다. 20대에는 활발히 경제활동을 하다가 30대가 되면 경력이 단절되는 경향, 늘 문제가 되었던 M 커브 패턴이다. 이 패턴이 사라졌다는거다. 여성의 고용 문제를 경력단절에서만 찾으면 안된다고 꾸준히 주장했던 사람으로써 반가운 기사이기도 하다. 

 

이 기사와 더불어 여러 분들이 언급한게 최근 한국에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은 고연령 여성의 돌봄 및 기타 서비스 노동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기간을 짧게 한정해서 분석하면 한시적으로 이런 주장이 뒷받침될지 몰라도 장기적 경향을 보면 그렇지 않다. 

 

아래 그래프는 연령대별 전체 인구 대비 고용자의 비율을 보여준다. employment-to-population ratio 인데, 고용의 장기적 변화를 보는데 가장 안정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는 요기). 보다시피 2000년 대비 2024년에 전연령대에서 고용률이 상승하였다. 2000년에는 40대의 고용률이 가장 높았는데, 현재는 30대의 고용률이 가장 높다. 50대의 고용률이 11%포인트 상승해서 상승폭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60대 이상과 30대다. 20대의 고용률은 떨어진게 아니고 변화가 없다. 

 

2000년은 아시안 경제위기 직후라 적절한 비교 시점이 아니라 할 수도 있다. 아래 시기의 중간이자 2008년 경제위기도 넘어선 2012년을 보면, 연령대별 고용률은 20대 58.2%, 30대 72.8%, 40대 78.3%, 50대 72.3%, 60대 이상 37.7%다. 이 시기와 비교해서 현재 고용률이 낮아진 연령대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인구집단의 고용률이 상승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성*연령별 고용률을 보면 지난 25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여성부터 보자. 

 

아래 보다시피 전 연령층에서 고용율이 대폭 상승했다. 30대의 상승률은 근 19%포인트에 달해서 가장 높다. 20대도 8.5%포인트 증가다. 여성의 고용률 상승이 50대 이상 고연령층에 의해서만 이끌어진게 아니다. 비율로 따지면 30대 여성 고용률은 이 기간에 36% 증가하였다. 이러한 가파른 청년 여성 고용률 증가가 M 커브가 사라진 이유다. 여성 전체의 고용률은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2000년 47.0%에서 2024년 54.7%로 대폭 상승하였다. 

 

 

여성 고용률이 대폭 상승한데 반해 남성은 연령대에 따라 서로 다른 경향을 보인다. 20대와 30대 남성은 2000년 대비 2024년의 고용률이 낮아졌다. 각각 7.6%p, 3.8%p 하락했다. 40대는 거의 변화가 없고, 50대와 60대는 상승했다. 그래서 남성 전체의 고용률은 거의 변화가 없다. 

 

 

고용률로만 따지면, 청년 고용은 21세기 동안 증가했지 줄어들지 않았다. 줄어든 것은 청년 남성의 고용률이다. 30대 청년 여성의 인구 대비 고용률이 18.7%포인트 증가하는 동안, 동연령대 남성의 고용률은 3.8%포인트 하락했다. 30대 전체 고용률이 증가했기에 제로섬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청년 여성 고용률 급증을 상쇄하고 남성도 이득을 얻을만큼 파이가 커진건 아니다. 청년 남성 입장에서는 제로섬 게임과 다를 바 없는 상황, 그 중에서도 네거티브 사이드에 있는 상황이다. 청년 여성의 적극적 노동시장 진출로 경쟁이 격화되고 청년 남성의 고용률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도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보다 낮은데, 1990년대까지 이 격차가 꾸준히 줄었다. 대략 남성 고용률 대비 여성 고용률이 85~90%에 달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격차가 줄었다. 이렇게 격차가 줄어든 이유는 여성의 활발한 노동시장 진출에 더하여 남성 고용률의 하락 때문이다. 여성 고용률이 급속히 증가할 때 남성 고용률의 완만한 하락은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청년 고용률 관련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20대에서 성별 고용률 역전이다. 2000년에는 여성 고용률이 남성보다 낮았는데, 2024년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 이 역전이 일어난게 2013년이다. 그 이후 최근 5년 이내에 더 확장되었다.

 

한 가지 잊지말아야할 것은 30대에서는 남성의 고용률이 여성보다 여전히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이는 청년 남성은 20대 대비 30대에 고용률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20대와 30대가 노동경력 연속선상이라면, 남성은 20대와 30대 사이에 퀀텀 점프가 있다. 2024년 현재 20대 청년 남성과 30대의 고용률 격차는 29.4%포인트다. 고용률이 20대 대비 30대에 50% 증가한다. 이에 반해 여성은 12% 증가다. 청년 남성의 고용률이 30대에 크게 증가하는 정도가 2000년 대비 2024년에 더 커졌다. 그 이유가 뭔지는 제가 알기로 아무도 연구한 바가 없다. 성별 청년 고용률을 논할 때 이러한 차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Ps. 아무도 기억 못하겠지만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전체 인구 고용률 70%를 국정 목표로 제시한 적이 있다. 그 때 했던 얘기가 이거 달성하려면 여성고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한국에서 여성 지위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위 그래프에서 보여지듯, 구조적 변화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한국의 전체 고용률을 높이는게 정책 목표라면 위에서 보여지는 청년 남성의 패턴 변화를 피하기 쉽지 않다.  

 

Pps. 미국에서 1990년 대 이후에는 성별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데 이 현상을 두고 stalled progress라고 부른다. 한국은 현재 전체 남성 고용률이 71%고 여성은 55%인데, 적어도 여성 고용률이 60%를 넘어갈 때까지, 남성의 고용률은 완만히 줄어들고 여성은 증가하는 현상이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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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경향신문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 원문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아마도 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연구한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가 발표되었다. 며칠 전에 여러 언론에서 크게 보도했는데, 국회 입법조사처에 보고서 원문이 오늘 올라왔더라. 

 

처음에 기사를 보고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보고서를 읽어보니 씁쓸하다. 여러 할 말이 있지만, 몇 가지 핵심적인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비판을 하기 전에 이 보고서에서 말하는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가 뭔지를 간단히 설명하면, 불평등을 소득만이 아니라 자산, 소비, 교육, 건강 등 다른 차원에서도 봐야한다는 거다. 이 번 입법조사처 연구에서는 소득, 교육, 건강, 자산 이렇게 4개 차원을 고려한 것이다. 상식적인 아이디어로 간주하기 쉽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건 아니다.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가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이건 기회가 되면 다음에 자세히). 

 

처음 기사를 접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다차원 불평등 지수의 값이 너무 작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불평등이 늘어서 2011년 대비 2023년의 다차원 불평등 지수 값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이 번에 발표된 불평등 지수는 아래 각 차원별 불평등 지수의 가중 평균이다. 

 

 

불평등 연구자들은 이 숫자를 보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바로 들 것이다. 자산 불평등이 저렇게 낮다는게 말이 되나? 2011년에 소득불평등 지니는 .31이었는데, 자산은 .23 이었다고? 심지어 2013년에는 .21에 불과하다고?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거의 모든 국가에서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 보다 높다. 적으면 1.5배 대부분 2배에 달한다. 아래 그래프는 이 전 포스팅에 올렸던거다.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낮은 편이라 .57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는 2023년에 많이 올라서 .32다. 누구도 믿지 못할 수치다. 이렇게 이상한 숫자가 나오는건, <한국복지패널>이라는 자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복지패널은 총 표본이 7천명이지만, 그 중 3,500명은 빈곤층 부스터 샘플이다. 자산은 상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상층 표본이 잡히지 않으면 불평등이 과소 평가 된다. 복지패널은 조사 목표가 불평등 측정이 아니기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불평등 측정의 공식자료는 가금복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 말미에 붙어 있는 부록을 보면 가금복에 기반한 자산 불평등 수치의 변화가 있다. 아래 그래프다. 보다시피 자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 보다 2배 정도 높다. 뿐만 아니다. 자산 불평등은 2012에서 2017 사이에 급격히 하락했다가, 그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2024년에도 2012년 불평등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입법조사처 연구에서 .23에서 .32로 50% 가까이 증가한 수치와는 달라도 많이 다른 수치다. 2012년과 비교하면 현재의 자산불평등은 3% 정도 감소했고, 자산 불평등이 가장 낮았던 2017년과 비교하면 3% 정도 증가했다. 이 번 보고서에 나온 50% 증가와는 천양지차다. 

 

 

이 번 연구에서 소득보다 자산 격차 때문에 2012-2023년 사이에 전체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결론은 데이터의 문제로 내린 잘못된 결론이다. 소득 불평등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자산 불평등의 상승이 심각하게 과대 측정되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보고서 27쪽에 "Garbage in, garbage out"이라는 문구가 나오며, 데이터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건의한다. 이 보고서는 그 비판에서 과연 자유로울지. 점잖게 썼지만 보고서 말미에 있는 김윤태 교수의 토론문이 이에 대한 비판이다.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의 유용성에 동의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공식 통계와 완전히 모순되는 자산불평등 추정치를 별도의 설명없이 그대로 사용한 이유가 뭔지.  

 

참고로 아래 표는 입법조사처에서 사용한 Araar (2009)의 다차원 지수를 유럽 국가에 적용해서 계산한 Wronski의 연구다 (원문은 요기). 사용된 변수는 소득, 자산, 소비로 입법조사처와는 다르지만, 다른 국가는 어떤지 대략적으로 볼 수 있다. 이 결과를 보면 입법조사처의 연구가 왜 잘못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아래 보다시피 자산 불평등 지수 지수는 소득보다 훨씬 높다. 소비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보다 작고. 이게 매우 보편적인 경향이다. 그렇지 않게 보고한 입법조사처 연구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두 번째로 입법조사처 연구에서 자산불평등이 다차원 지수를 설명하는 비중이 늘었다고 하는데, 이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아래 표가 입법조사처 연구다. 2011년에 다차원 지수의 26%만 설명하던 자산이 2023년에는 36%로 35%의 소득과 비슷하게 바뀌었다. 

 

 

그럼 자산 불평등이 이 정도 기여하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 위해, Wronski의 유럽 연구를 다시 보자. 아래 보다시피 자산불평등의 비중이 평균 50%를 넘는다. 입법조사처 연구처럼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 종합 지수 기여도 비슷한게 아니다. 이 연구 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를 봐도 자산불평등이 종합지수를 지배한다는 결과는 여럿이다. 불평등 연구자라면 그 이름을 모를 수 없는 Fisher, Smeeding이 연구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요기). 그러니까 자산불평등이 종합지수에서 지배적으로 되는건 상식이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지수보다 자산불평등 지수가 더 크니까. 그렇지 않게 나오면 이상한거지. 

 

 

 

자산불평등이 지배적으로 되었다는게 발견이 아니라, 입법조사처 연구에서 2011-2018에 자산 불평등의 기여도가 소득 불평등 보다 낮았던게 이상한거다. 

 

 

 

비판은 이쯤하고, 이 보고서에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점 두 가지만 얘기하자. 우선 세대 내 불평등에 대해서. 

 

입법조사처 연구는 세대별 4개 불평등 지수의 변화를 보여준다. 아래는 MZ세대의 변화다. 전체에 비해 표본수가 작기 때문에 추정치의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대략적인 경향은 볼 수 있다. 보다시피 MZ 세대 내부에 소득 불평등은 감소했다. 청년 세대 내부에서 소득불평등이 커저서 문제라고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데, 적어도 이 자료는 그러한 주장에 대한 반증이다. 청년 세대 내부에서 가처분 소득불평등이 줄었다. 청년 내부 불평등 확대론에 기반해 주장을 피는 분들은 그 전제가 맞는지 좀 더 확인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4개 차원 간의 상관관계다. 여러 차원 간의 상관관계가 높아지면, 다차원 빈곤 내지는 부유층이 집중된다는 의미다. 반면 상관관계가 낮아지면 한 차원의 상하 여부가 다른 차원의 상하 여부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아래가 상관관계 표다. 일부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만 실체적으로는 무의미한 수준에 가깝다. 0.10 이하의 상관관계에서 큰 의미를 찾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득과 자산의 상관관계가 2011년 .38에서 2023년 .30으로 낮아졌다. 자산 부자와 소득 부자의 불일치가 커졌다는 거다. 예전에 한 번 포스팅한 status inconsistency의 또 다른 증거다. status inconsistency의 증가는 계층 이동이 활발하다는 간접적 증거다. 계층 이동이 줄어들면 두 변수의 상관관계가 더 높아질 개연성이 높다. 둘 간의 상관관계가 늘었다는건, 하위 자산 출신자들이 상위 소득층으로의 진입이 늘었다는거다. 사회이동이 약화된게 아니라 강화되었다는 또 다른 증거다. 물론 이런 증거는 해석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팔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니까. 

 

 

초간단 정리하면, 다차원 불평등 지수를 연구하는 것 자체는 논의해볼 수 있지만, 보고서의 핵심 발견은 신뢰하기 어렵다. 불평등을 측정하는 정부 공식 자료인 가금복을 이용해서, 소득, 자산, 소비, 교육 등의 차원으로 다차원 불평등 지수를 측정하면 입법조사처의 연구와는 상당히 다른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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