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 Shin 2024 RSSM.

 

GOMS 자료를 이용하여 시리즈로 내고 있는 성별 소득 격차의 세 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 연구. 첫 번째 연구가 대졸 직후 성별 소득 격차를 밝히는 것이고, 두 번째 연구가 그 원인이 여성차별에 있음을 밝히는 것이었는데, 이 번 연구는 대졸 직후 동일한 일자리를 가졌을 때 소득 성장률이 성별로 어떻게 다른가를 살핀 것이다. 이 번에는 신희연 선생과 같이 연구했다. 

 

자료는 2008-2010 GOMS의 1차 조사와 2년 후 추적 조사를 사용했다. 더 최근 자료를 사용하면 좋겠지만, 1차 조사 2년 뒤에 동일 응답자를 추적 조사한 건 이 때 뿐이다. 그 이후에는 추적 조사를 중단했다. 분석 대상은 4년제 대졸 후 1,2차 조사 모두에서 일자리가 있던 응답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졸 직후 일자리를 가진 다음에 2년 동안 여성의 임금 증가율이 남성보다 평균 9% 낮다. 동일 학교, 동일 전공, 동일 근무 시간, 동일 일자리를 가졌을 때 여성의 2년 동안의 임금 성장률이 남성보다 9% 낮다는 의미다. 

 

물론 스토리가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지금부터 어떻게 복잡한지 얘기하고자 한다. 

 

동일 일자리를 통제하지 않고 임금증가율의 평균만 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단지 2.8% 낮다. 9%의 격차는 일자리가 같을 때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1차 연도에 임금이 낮은 일자리를 가질수록 2년후 임금 상승률이 높기 때문이다. 여성은 1차 연도에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를 가질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고, 비슷하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한계 일자리>에서 여성의 임금상승률은 남성보다 9% 낮지만, 1차 연도 한계 일자리 취득자의 임금상승률이 높아, <한계 일자리>에 여성이 집중된 분포 효과로 평균 임금 상승률 차이는 2.8% 밖에 안되어 보이는 것이다. 임금 상승률 순효과는 9%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또한 1차 연도에 <한계 일자리>를 가지면 2년 뒤 일자리를 바꾸는 확률도 높고, 일자리 변동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진다. 2년 동안 남성은 34.5%가 일자리를 바꿨지만, 여성은 44.8%가 일자리를 바꿨다. 채용해도 여성은 금방 그만둔다는 얘기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 (대기업+정규직+평균이상 임금), <적당한 일자리>(나머지 모든 일자리), <한계 일자리>(중소기업+비정규직+낮은임금)으로 나누었을 때, 1차 연도에 <좋은 일자리>의 비중이 남성은 27.1%, 여성은 11.5%, <한계 일자리>는 여성이 42.9%, 남성이 22.8%다. 

 

이 때문에 성별로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3단계 가중치를 적용했다. Inverse Probability Treatment Weighting이라는 기법을 확대 적용한 것인데, (기존의 샘플링 가중치)*(3년차에도 계속해서 일할 확률)*(인적자본과 1차 연도 노동조건의 성별격차 조정)로 최종 가중치를 준거다. 이렇게 하면 1차 조사에서 학력, 전공, 일자리의 임금 수준, 노동시간 등의 성별 격차가 모두 사라진 성별 균형 샘플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성별 조건을 동일하게 맞추면 여성의 임금 상승률이 남성보다 9% 낮다는 거다. 

 

그런데 임금상승률의 성별 격차가 <한계 일자리>나 <적당한 일자리>에서는 9%에 달하지만, <좋은 일자리>에서는 4.5%로 줄어들고, 추가로 1-2차 연도 사이의 일자리 변동, 결혼, 직무 변동 등을 통제하면 성별 격차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게 바뀐다. 다시 말해, 대기업의 괜찮은 일자리에서는 성별 임금증가율 차이가 크지 않고, 그 작은 격차도 직무 변동이나 승진 등에 의해서 설명된다. 하지만 그 이하 일자리에서는 어떤 변수를 통제하더라도 상당히 큰 성별 임금증가율 격차가 있다. 

 

동일 일자리에서 성별 임금 격차와 기회 격차가 없다는 주장은 여성 중 상위 10%만이 차지하는 <좋은 일자리>의 스토리를 전체로 일반화한 오류다. 인사부가 크고, 임금과 인사조치가 규정화된 대기업에서의 성별 차이가 작지만, 여성 임노동자의 90%가 경험하는 현실은 이와 크게 다르다. 

 

그런데 대기업에서는 다른 방식의 성별 격차가 존재하는데 바로 승진 기회의 차이다.  <한계 일자리>보다 <좋은 일자리>에서 여성의 승진 확률이 남성보다 더 크게 낮다 (성별 격차 5%p vs 8%p). 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여성은 남성보다 승진 때문에 일자리를 바꾸는 확률이 높다는거다. 승진에 뒤쳐지는 현실에 짜증이 나서 설사 임금이 그렇게 높아지지 않더라도 승진이 되는 일자리로 바꾼다. 이런 경향은 여성은 남성보다 한 조직에 충성하기 어려운 구조적 조건이 있다는거다. <한계 일자리>에 있다보니 임금 상승을 위해서, 승진이 안되다보니 승진을 위해서, 여성은 남성보다 일자리를 더 높은 확률도 바꿀 수 밖에 없다. 이에 반해 남성은 일자리 변동의 가장 큰 이유는 임금이다. 일자리를 바꿀 때 남성은 임금이 평균 20% 정도 높아지는데, 여성은 10% 정도만 높아진다. 

 

또 다른 발견 중 하나는 결혼의 효과다. 남성은 결혼이 임금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데, 여성의 결혼은 임금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같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임금이 하락하는건 아니고, 여성의 결혼 후 임금 하락은 일자리를 바꾸기 때문이다. 동일 일자리에서는 남여 모두 결혼이 임금에 끼치는 영향이 없다. 그런데 결혼 후 일자리를 바꾼 사람 중 남성은 임금 변동이 유의하지 않은데, 여성은 임금이 16% 낮아진다. 이러한 변동이 자의에 의한 self-selection인지 구조적인 압력이 있는건지는 이 연구가 밝히지는 못한다. 그리고 결혼이 여성에게 끼치는 이런 부정적 영향은 <한계 일자리>에서 상당히 크고, <좋은 일자리>에서는 미미하다. 

 

결론은 클라우디어 골딘이 얘기한 성별 임금 격차는 차별보다는 커리어와 가족 간의 선택의 문제가 되어 성별 격차의 <마지막 챕터>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일부 국가에 한정된 얘기지 한국의 현실이 아니라는거다. 논문에서는 길게 얘기했는데, 미국, 유럽의 연구에서 일자리가 동일할 때 성별 임금 상승률 격차가 거의 없다는 연구들이 있다. 한국은 이러한 <마지막 챕터>에 들어서지 않았다. 한국의 대졸 청년 여성 노동자는 노동시장 진입 당시 일자리 할당에서, 노동시장 진입 후 임금 상승률에서 이 중의 차별을 겪고 있다. 

 

 

 

Ps. 이 번 연구의 가장 큰 단점은 자료가 2008-2010으로 약 15년 지났다는거다. 요즘은 달라요라는 주장을 검증하기 어렵다. 그런데 성별 소득 격차를 다른 어떤 자료보다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던 GOMS 조사는 2020년을 마지막으로 조사가 중단되었다. 조사 폐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 잠시 미루었다가 결국 조사를 중단했다. 중단했던 2차 추적조사를 다시 시작해도 모자랄판에. 

 

Pps. 다른 분들은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 연구는 저널에 제출 후 1차 심사에서 무수정 채택된 유일한 논문이다. 지금까지 첫 제출에 conditional accept은 몇 번 받아봤지만, 첫 제출에 무수정 채택은 이 논문이 유일하다. 

 

Ppps. 논문은 학교와 Elsevier의 계약 덕분에 무료 다운로드가 된다. 논문을 한글로 옮긴 번역본도 있는데, 혹시 한글본이 필요하신 분들은 비밀답글로 본명과 이멜을 남겨주시면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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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로, 내란으로 그 결과를 바꿀 수 있는데?

 

답은 모른다. 

 

2010년에 포스팅했던건데, 사회과학의 최대 난제가 무엇인지 당대의 사회과학자 13명이 리스트한 적이 있다. Ann Swidler라고 문화가 무엇인지 새로운 정의(culture as a toolkit)를 제시했던 사회학자가 꼽았던 난제는 <안정적 제도의 생성과 유지>였다. 어떻게 하면 한 사회에서 제도가 생성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이다 

 

여기서 제도(institution)란 법적 제도 만이 아니라 규범과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선거제도란 선거를 하는 규칙과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회전반의 태도를 포괄한다. 많은 신생 국가에서 선거를 해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거 제도와 민주주의의 확립은 결과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결과를 수용하는 문화가 있을 때 가능하다. 미국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범 후 선거와 민주주의 제도를 이식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법을 만들고, 선거를 실시하기는 쉽지만, 그에 맞춰서 대다수의 정치인과 국민이 따르게 하기는 어렵다.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서 제도가 한 사회에 생성되고 유지되는지, 어떻게 하면 제도를 다른 사회에 이식할 수 있는지 그 규칙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많은 분들이 느끼듯 윤석열의 쿠데타와 이어진 내란 세력의 준동은 한국에 상당히 장기적인 충격을 가할 것이다. 저는 두 가지 점에서 윤석열의 내란과 그 동조 세력이 한국 사회 민주주의 제도에 큰 충격을 가했고, 앞으로 가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서 행동하는 전통, 제도의 심리적 수용성을 뒤흔들었다. 다른 하나는 법의 빈공간이 있을 때 법의 취지에 따라 행동하는 제도의 문화적 측면을 뒤흔들었다.

 

어떤 제도도 법률적으로 문서상으로 완벽하게 성문화되는 경우는 없다. 법의 취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문화를 동반하지 않으면 제도는 유지되지 않는다. 헌법재판관 임명과정, 윤석열의 체포와 압수수색 과정은 모두 논란이 될 수 없는 과정을 논란으로 만들었다. 윤석열 내란과 그 동조 세력의 행동을 박근혜 탄핵 당시의 플레이어들의 행동과 비교해보면 박근혜의 탄핵은 헌법이 정한 절차와 취지를 따른 매우 질서정연한 과정이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어떤 것도 논란이 되지 않았다. 법률과 문화를 포괄하는 제도로써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 가까운 미래에 없어지지 않을 보수 정당 정치인의 다수가 내란 세력을 신속히 차단하기를 거부했고, 상당수의 보수 정당 지도자들이 실질적으로 내란에 동조했고, 권력의 궁극적 원천인 경찰, 군부의 상당수가 내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다. 한국 사회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있는 행정 관료들이 법의 취지에 따라 행동하기를 거부했다. 정치적 불안정에 행정적 안정을 부여하던 관료제에 균열을 가했다. 이런 대치를 통해 국민의 1/3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력의 사용을 지지하는걸로 바뀌고 있다. 윤석열을 지키겠다고 그의 관저 앞에 모인 무리들은 또 다른 국가 기관인 경호처와 합세하여 국가에서 발행한 체포영장의 집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 시점에서 "이재명은 안 된다"는 현수막은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리적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수용하지 말자는 선동에 가깝다. 소속 정당과 지지 정당에 따라 정책적 이견을 가지는걸 넘어서, 제도 수용의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어떻게 될까? 

 

한국 정도로 발전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익숙한 국민이 있는 국가에서 전면적 반동으로 나아간 사례는 없다. 한국도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윤석열 내란의 청산 과정은 상당히 지난할 것이다. 일제와 군부 독재는 그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청산이 어려웠다. 일제 청산과 프랑스 비시 정부의 청산이 다른 가장 큰 이유가 기간이다. 기간이 길면 청산 세력이 광범위하고, 이들 세력이 없으면 국가 역량도 잠식된다. 윤석열의 내란은 짧은 기간이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세력과 집단이 동조하고 참여했기에, 청산이 얼마나 잘 될지 모르겠다. 

 

내란 세력의 청산과 민주주의 제도 수용의 규범과 문화를 발전시켜야할 이 중의 어려운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가 더 단단한 민주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로 새해를 맞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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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발언이다. 촛불시위자의 자발성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집중 비판을 받았는데, 촛불시위 주최자의 자금원을 막으라는 지시이기도 하다. 

 

아래 포스팅에서 K-pop에 대해 언급하니 여러 분들이 의견을 제시하는데, 이 번 탄핵 집회에서 "역조공"을 비롯한 K-Pop 기사를 보면서 제가 가지는 의문을 좀 더 정리하면 이런거다. 

 

아래 글에서 시민운동의 빈공간 속에서 K-pop 이 자리를 차지 하는거 아니냐는 질문을 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이명박의 발언을 빌려서 다시 질문할 수 있다. 여러차례의 탄핵 관련 집회를 열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음향시설은 공짜가 아니다. 이승환이 개런티 없이 출연하겠다고 하면서도 괜찮은 음향시설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있다. 

 

12월 14일 오후 3시부터 열린 여의도 집회의 주최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다. 참여연대 홈페이지를 보면 이 단체는 12월 10일 전국 1,50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발족한 기구다. 그러니까 운동권 시민단체의 연합체다. 가수 이승환과의 출연협의도 아마 이 단체에서 했을 것이다. 말이 10일 발족한 기구지, 12월 4일의 여의도 집회도 이 단체가 주최했다. 

 

달리 말하며 신뢰 하락을 겪고 있는 시민단체가 없었다면 축제와 다를 바 없었던 잘 조직된 탄핵 집회도 없었다. 그런데 K-pop의 스타들은 '비상행동'에 대한 지원을 하거나 기부를 하지는 않는다. 선결제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와 팬관리 서비스는 하지만, 집회를 주최하는 측과는 거리를 둔다. 집회 주최측으로써는 풍요 속의 빈곤을 체감할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게 저의 질문이다. 이 질문은 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하나는 K-pop의 등장이 정치와 대중가요의 결합인지, 아니면 반정치와 대중가요의 결합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2016년 이화여대에서 등장했던 다만세는 "반정치로써의 학내 운동"과 K-pop의 결합이었다. 2024년 이화여대의 탄핵 집회는 학생회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2016년의 이대 점거 농성은 학생회를 배제하였다. 당시 이대 총학생회장은 시위의 주동자도 아니면서 주동자로 처벌받았다. 권한은 없으면서 책임(accountability)만 있었던 케이스. <정치-대의를 위한 시위-운동가요>로 이어진 연결을, <비정치-이익을 위한 시위-K-pop>으로 대치시켰다. 

 

그런데 이 번 탄핵 시위를 보면 K-pop은 반정치 뿐만 아니라 정치와도 결합하고 있다. 결합의 내용이 변화했다. 

 

이는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질문은 반정치로 등장한 K-pop이 정치와 결합하게되는 실제 과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제가 가진 의심을 얘기한다면, 사회 운동 효율의 향상을 위해 시민단체에서 K-pop을 적극적으로 동원한 것 아니냐는거다. 이를 통해 반정치와 K-pop의 결합을 정치와 K-pop의 결합으로 전환시킨 것 아닌가? 

 

이렇게 얘기하면 민중의 자율성을 무시하지 말라고 할텐데, 자율성이 없다는게 아니라, 조직의 주체가 변화하는 과정이 있다는거다. 시위를 조직하며 민중가요 외에는 고려치 않다가, K-pop을 적극 활용할 때에 시민단체에서 어떤 논의들이 있었는지? 대학에서 전반적인 운동권 문화가 쇠퇴할 때, 민중가요 순혈주의로 가지 않고, 대중가요와 결합하기로 결정할 때 고려했던 요인들. 그 때의 시민단체 내의 역학 같은 것들 말이다. 

 

세 번째 질문은 K-pop 팬덤 조직의 의미다. 사회학자들은 다들 알텐데 예일대 Grace Kao 교수의 요즘 연구 주제가 K-pop이다. 처음에는 BTS 팬덤인 '아미'에 대한 분석이었다. '아미'가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영향을 줬다는 건데, 논문도 읽어봤다. 그런데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더라. 미국에서는 Taylor Swift의 팬조직에 대한 문화사회학적 연구를 하는 분들도 있다. 같은 학과 교수가 Swiftie 연구의 개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귓동냥으로만 듣고 있다. 

 

K-pop 팬덤은 시민의 결합으로써의 의미가 있는건가? 시민의 결합이라는게 거창한게 아니다. 미국 사회 공동체를 다른 그 유명한 Putnam의 책 제목이 <Bowling Alone>이다. 동네 사람들끼리 같이 볼링치는 동호회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 한국은 이와 달리 전통적 모임인 동창회 뿐만 아니라 각종 동호회가 크게 번성했다. 심지어 달리기도 러닝크루라고 무리를 짓고 있다고? 시민단체는 쇠퇴하지만 시민사회는 촘촘한 연결망을 건설해 가고 있는건가? K-pop 팬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달리 실체적 공동체 모임이 되고 있는가? 그게 성별로 갈리나? 그렇다면 그 내부의 역학은? K-pop이 정치와 결합할 때 K-pop 팬덤도 정치와 결합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반정치가 기본이지만, 특정 국면에서 정치와 결합하기도 하는건지? 

 

질문도 생각도 정리된건 아닌데, 이걸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연구하지도 않을거고, 이 번 기회가 아니면 이런 정제되지 않은 얘기를 또 언제할까 싶어서 지금 말씀드린다. 

 

누군가는 열심히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뭔가 좋은 설명이 있으면 알려주시기를.  

 

 

 

Ps. 비밀 댓글로  본 글의 오류를 알려준 글이 있어 아래 옮겨두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1500여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모여 발족한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과 가수 이승환 씨가 공연한 집회의 주최측인 <촛불행동>이라는 단체는 각각 다른 단체입니다. 실제로 12/13(금) 비상행동의 집회는 8시 30분 경 국민의힘 여의도 당사 앞까지 행진하여 대형 현수막 찢기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고, 촛불행동은 그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으며 이승환 씨의 공연은 8시 경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자인 촛불행동은 박원순 성폭력 사건 2차 가해로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은 1인이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지라 이 둘을 구분하여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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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종료와 더불어 탄핵 표결도 통과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몇 가지 감상이 있는데, 

 

첫 번째는 생각보다 적었던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탄핵 찬성 투표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128명)의 절반이 찬성했다. 이 번에는 108명 국민의힘 의원 중 12명만 찬성이다. 탄핵은 200명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권이나 무효는 반대와 다를 바 없다. 

 

2024년의 윤석열 탄핵은 그 이유와 정당성에서 2016년 박근혜 탄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명확하고 중하다. 내란 2주만에 탄핵이 이루어졌다는 면에서 희망적이지만, 내란의 죄를 범했음에도 국민의힘 의원 중 10%만이 탄핵에 찬성했다는 면에서 놀랍다. 

 

한국 보수당은 삼당합당의 전통이 있었다. 민정당 계열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했던 김영삼의 민주당 상도동 계열이 큰 분파를 차지했다. 박근혜 탄핵 시기의 민주당 계열 지도자가 김무성 아니었던가. 이 번 탄핵 투표 결과는 국민의힘이 더 이상 보수적 이념을 기치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국민정당이 아니라 상당히 순혈적인 극우이념정당으로 바뀌었다는 징표가 아닌가 싶다. 

 

다른 한 편으로 이 번 탄핵 투표는 적어도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여야 모두에 영향을 끼치던 86세대가 더 이상 한국 정치의 좌우 정당 모두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게 되었다는 표식이 아닐까 싶다. 86 운동권 세대가 보수 정당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시대는 지나갔다. 

 

민주주의 운동을 했던 세대의 보수 영향력 쇠퇴는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와 불가역성을 전제로 한다면 딱히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번 탄핵 투표 결과는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걸 의미한다. 한국에서 보수 정치가 크게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지 않은걸 고려할 때, 앞으로 한국 정치가 어떤 세력에 의해서 분점될지 두려운 마음이 있다. 

 

 

 

첫 번째가 절망 편이라면 두 번째는 희망 편이다. 군수뇌부는 윤석열의 반란에 저항하지 않았지만, 그 아래 영관급 부터는 반란에 적어도 소극적으로는 저항했다. 한 사회가 법과 제도에 따라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존중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광범위한 시민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분연히 떨처일어나는 각성된 시민도 필요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주어진 권한의 사용에 두려움이 없으며 타인의 역할과 권한을 존중하는 시민층이 필요하다. 말은 쉽지만 상부에서 압력을 가해질 때 이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번 사태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그런 시민층이 존재한다는게 확인되었다. 

 

 

 

세 번째는 다시 확인된 청년 세대의 성별 분화다. 여의도 광장의 최대 인파가 20-30대 여성인데 반해 청년 남성의 수는 매우 적었다는 것은, 청년 세대의 정치적, 문화적 태도에서 성별 분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참여에서도 상당히 큰 분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전의 포스팅에서 한국 사회 전반에서 대인 신뢰와 사회적 신뢰가 증가하고 있는데, 청년 남성에서만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고 보여준 바 있다. 청년 남성의 "상대적" 신뢰 저하는 최근 코호트에서 생긴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2000년대 들어 전 코호트에 걸쳐 꾸준히 진행된 현상이다. 하지만 사회참여에서 성별 분화가 있다는 것은 이 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 아닌가 싶다. 

 

태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참여에서 성별 분화가 일어나면 앞으로 어떤 사회적 현상이 나타나는건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회변동을 이끄는 인구학적 동력에서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기관 신뢰도의 변화다. 아래 그래프는 KGSS를 이용해서 2003-07 대비 2018-23 기관별 지도자들의 신뢰도 변화다. 첫 번째 그래프는 신뢰도가 증가한 곳이고, 두 번째는 하락한 곳이다. 

 

 

 

여기서 드러내는 전반적 경향은 정부와 기업의 리더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지고, 시민사회의 리더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진거다. 대부분의 정부 기관 신뢰도가 높아졌는데, 예외가 두 군데 있으니, 대법원과 군대다.  

 

이 번 윤석열 일당의 내란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던 대통령실의 신뢰도에 충격을 가할 것이고, 군장성들에 대한 신뢰를 더욱 낮출 것이다. 앞으로 군은 시민의 신뢰를 어떻게 득할지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지난 20년간 낮아진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가 이 번 사건을 계기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시위 문화가 응원봉과 K-pop으로 바뀐 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비어가고 있는 시민사회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대안이 그것 밖에 없어서가 아닌지. 

 

 

 

Ps. 바로 위에 언급을 하긴 했지만, 응원봉과 K-pop 이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승환은 그렇다치고, 아이유와 소녀시대는 되는데 싸이는 안되는 K-pop과 시위의 결합이 뭔지. 화염병에서 촛불로, 촛불에서 응원봉으로 변화하는데, 전자의 의미는 명확한데, 후자는 의미가 있는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Pps. 내란이라는 큰 사건이 벌어지니 여러 분들의 분석이 빛을 발하더라. 계엄이 선포되고 무산된 직후 긴급 좌담회를 개최하고, 페북과 언론에서 맹활약한 박종희, 박원호 교수를 비롯한 정치학자들. 윤석열의 담화가 어떻게 사실과 어긋나는지 일목요연하게 분석한 이기은 선생의 팩트 체크. 뉴스타파의 기록생활인구 분석. 천관율 기자의 여전한 분석력과 글발. 슬로우 뉴스 이정환 기자의 요약 등등. 

 

Ppps. 이 전 포스팅의 신뢰도 변화 그래프를 보고 이상한 소리하는 분들이 몇 명 있던데, 나중에 그래프 그리는 법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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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30년 가까이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형법으로 사형제는 남아있고, 사형집행 방법도 법률로 정해져 있는데, 형법 66조에 의하면 "사형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하여 집행한다"고 되어 있다. 군인의 사형은 이와 다른데, 군형법 3조에 "사형은 소속 군 참모총장이 지정한 장소에서 총살로써 집행한다"고 되어 있다. 민간인은 교수형, 군인은 총살형으로 방법이 정해져 있다. 

 

교수형이 집행된 것은 1997년이 마지막이고, 총살형이 집행된 것은 1985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내란죄는 우두머리가 "사형, 무기징혁 또는 무기금고"의 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고, 군인에게만 적용되는 반란죄는 수괴는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어, 군형법 상의 반란죄가 더 중하다. 

 

 

 

미국에서는 사형 집행 방법이 주별로 다른데, 대부분의 주가 독극물을 주사하는 lethal injection 방법을 채택하고 있고, 일부 주에서만 교수형을 허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군인에 대한 사형집행은 1961년이 마지막이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현재 미국에서 군인을 대상으로한 유일한 사형집행 방법은 lethal injection이다. 

 

 

 

사형제에 대한 시민의 지지는 주로 미국 범죄학자들이 미국 사례로 연구했고, 다른 국가에 대한 적용은 많지 않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부패에 대한 인식이 높을수록 시민들은 사형제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사형제 폐지는 2016년 KGSS 조사에 따르면 과반수가 반대했다. 찬성은 1/4 정도였고, 나머지 1/4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지만 사형제에 대한 지지률이 낮지는 않은 편이다. 

 

최근 조사된 WVS를 이용해서 국가 간 비교를 해보면, 10에 가까울수록 사형제를 찬성하는 리커트 척도에서 전세계 평균이 4.11인데, 한국은 4.34로 낮은 편은 아니지만 높지도 않다. 주변 국가 중 미국 5.51, 중국 5.52, 일본 6.80으로 한국보다 사형제 찬성 의견이 높다. 참고로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지속적인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형제를 실제로 집행하는 국가에서 사형제 지지 여론이 폐지국가보다 높다. 이에 반해 독일 2.53, 스웨덴 3.39로 유럽 복지 국가는 낮은 편이다. 한국의 의견은 영국(4.45)이나 호주(4.45)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란죄 때문에 여러 분들이 사형을 얘기하는데, 한국 여론이 그렇다는 얘기다.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에서 바뀔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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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다른 분들처럼 저도 한 편으로는 황망한 심정으로 다른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으로 반헌법적 계엄 내란 사건과 이에 맞서는 한국 시민들의 저항을 지켜보고 있다. 

 

여러 뉴스 중에 부당한 명령에 맞섰던 군인들의 소식도 있다. 방첩사에서 부당한 명령의 실행을 거부하자 상관들이 영관급 장교를 폭행했다는 뉴스 같은 것들. 이에 반해 삼성 장군인 곽종근 특전사 사령관은 부당한 명령이지만 복종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지시를 거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후회의 심정을 드러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고, 순간적 판단을 내려할 상황에서,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옳바른 가치에 기반해 올곶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교육시킬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저는 무신론자지만, 성경에 보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구절이 있다. 도적같이 찾아온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이익에 흔들려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품격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 폭행을 당하고, 혹시 계엄이 성공하면 군인으로써 자신의 커리어가 완전히 망가지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거부할 수 있는 그 용기와 판단력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냐는거다. 

 

수능 같은 시험 성적에만 기반해 학생을 선출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가, 대학, 그 중에서도 미국 아이비리그의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지도자를 키우는게 목적인데, 그런 잠재성을 가진 인재를 시험 성적 만으로는 발굴할 수 없다는거다. 

 

그럼 그런 능력이 있는 인재는 대학에서 교육하는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인지? 그래서 잘 뽑는게 중요한건지. 아니면 직업 훈련 중심 교육이 아니라 기초학문인 리버럴 아츠 교육을 중시하면 그런 능력이 더 잘 길러지는 것인지? 그래서 미국 중상층 가정은 자녀를 리버럴 아츠 대학에 보내는 것인지? 

 

그 능력과 품격을 어떻게 길러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번 계엄 내란 사건을 처리하면서 원칙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과 순간적 판단 실수라도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들의 신상필벌을 분명히 하는 것이, 도적같이 찾아온 진실의 순간에 준비되어 있는 두터운 시민층을 만드는 출발점이리라.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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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적 계엄

정치 2024. 12. 5. 11:02

이게 탄핵이 아니면 도대체 대통령의 어떤 행위가 탄핵 대상이 되는가. 

 

헌법수호는 커녕 적극적 위헌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처벌로, 또한 정상 판단이 불가능한 국정운영자를 교체해 추후의 혼란과 불행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탄핵 외에 무슨 대안이 있는지.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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