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발언이다. 촛불시위자의 자발성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집중 비판을 받았는데, 촛불시위 주최자의 자금원을 막으라는 지시이기도 하다. 

 

아래 포스팅에서 K-pop에 대해 언급하니 여러 분들이 의견을 제시하는데, 이 번 탄핵 집회에서 "역조공"을 비롯한 K-Pop 기사를 보면서 제가 가지는 의문을 좀 더 정리하면 이런거다. 

 

아래 글에서 시민운동의 빈공간 속에서 K-pop 이 자리를 차지 하는거 아니냐는 질문을 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이명박의 발언을 빌려서 다시 질문할 수 있다. 여러차례의 탄핵 관련 집회를 열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음향시설은 공짜가 아니다. 이승환이 개런티 없이 출연하겠다고 하면서도 괜찮은 음향시설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있다. 

 

12월 14일 오후 3시부터 열린 여의도 집회의 주최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다. 참여연대 홈페이지를 보면 이 단체는 12월 10일 전국 1,50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발족한 기구다. 그러니까 운동권 시민단체의 연합체다. 가수 이승환과의 출연협의도 아마 이 단체에서 했을 것이다. 말이 10일 발족한 기구지, 12월 4일의 여의도 집회도 이 단체가 주최했다. 

 

달리 말하며 신뢰 하락을 겪고 있는 시민단체가 없었다면 축제와 다를 바 없었던 잘 조직된 탄핵 집회도 없었다. 그런데 K-pop의 스타들은 '비상행동'에 대한 지원을 하거나 기부를 하지는 않는다. 선결제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와 팬관리 서비스는 하지만, 집회를 주최하는 측과는 거리를 둔다. 집회 주최측으로써는 풍요 속의 빈곤을 체감할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게 저의 질문이다. 이 질문은 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하나는 K-pop의 등장이 정치와 대중가요의 결합인지, 아니면 반정치와 대중가요의 결합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2016년 이화여대에서 등장했던 다만세는 "반정치로써의 학내 운동"과 K-pop의 결합이었다. 2024년 이화여대의 탄핵 집회는 학생회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2016년의 이대 점거 농성은 학생회를 배제하였다. 당시 이대 총학생회장은 시위의 주동자도 아니면서 주동자로 처벌받았다. 권한은 없으면서 책임(accountability)만 있었던 케이스. <정치-대의를 위한 시위-운동가요>로 이어진 연결을, <비정치-이익을 위한 시위-K-pop>으로 대치시켰다. 

 

그런데 이 번 탄핵 시위를 보면 K-pop은 반정치 뿐만 아니라 정치와도 결합하고 있다. 결합의 내용이 변화했다. 

 

이는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질문은 반정치로 등장한 K-pop이 정치와 결합하게되는 실제 과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제가 가진 의심을 얘기한다면, 사회 운동 효율의 향상을 위해 시민단체에서 K-pop을 적극적으로 동원한 것 아니냐는거다. 이를 통해 반정치와 K-pop의 결합을 정치와 K-pop의 결합으로 전환시킨 것 아닌가? 

 

이렇게 얘기하면 민중의 자율성을 무시하지 말라고 할텐데, 자율성이 없다는게 아니라, 조직의 주체가 변화하는 과정이 있다는거다. 시위를 조직하며 민중가요 외에는 고려치 않다가, K-pop을 적극 활용할 때에 시민단체에서 어떤 논의들이 있었는지? 대학에서 전반적인 운동권 문화가 쇠퇴할 때, 민중가요 순혈주의로 가지 않고, 대중가요와 결합하기로 결정할 때 고려했던 요인들. 그 때의 시민단체 내의 역학 같은 것들 말이다. 

 

세 번째 질문은 K-pop 팬덤 조직의 의미다. 사회학자들은 다들 알텐데 예일대 Grace Kao 교수의 요즘 연구 주제가 K-pop이다. 처음에는 BTS 팬덤인 '아미'에 대한 분석이었다. '아미'가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영향을 줬다는 건데, 논문도 읽어봤다. 그런데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모르겠더라. 미국에서는 Taylor Swift의 팬조직에 대한 문화사회학적 연구를 하는 분들도 있다. 같은 학과 교수가 Swiftie 연구의 개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귓동냥으로만 듣고 있다. 

 

K-pop 팬덤은 시민의 결합으로써의 의미가 있는건가? 시민의 결합이라는게 거창한게 아니다. 미국 사회 공동체를 다른 그 유명한 Putnam의 책 제목이 <Bowling Alone>이다. 동네 사람들끼리 같이 볼링치는 동호회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 한국은 이와 달리 전통적 모임인 동창회 뿐만 아니라 각종 동호회가 크게 번성했다. 심지어 달리기도 러닝크루라고 무리를 짓고 있다고? 시민단체는 쇠퇴하지만 시민사회는 촘촘한 연결망을 건설해 가고 있는건가? K-pop 팬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달리 실체적 공동체 모임이 되고 있는가? 그게 성별로 갈리나? 그렇다면 그 내부의 역학은? K-pop이 정치와 결합할 때 K-pop 팬덤도 정치와 결합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반정치가 기본이지만, 특정 국면에서 정치와 결합하기도 하는건지? 

 

질문도 생각도 정리된건 아닌데, 이걸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연구하지도 않을거고, 이 번 기회가 아니면 이런 정제되지 않은 얘기를 또 언제할까 싶어서 지금 말씀드린다. 

 

누군가는 열심히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뭔가 좋은 설명이 있으면 알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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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종료와 더불어 탄핵 표결도 통과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몇 가지 감상이 있는데, 

 

첫 번째는 생각보다 적었던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탄핵 찬성 투표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128명)의 절반이 찬성했다. 이 번에는 108명 국민의힘 의원 중 12명만 찬성이다. 탄핵은 200명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권이나 무효는 반대와 다를 바 없다. 

 

2024년의 윤석열 탄핵은 그 이유와 정당성에서 2016년 박근혜 탄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명확하고 중하다. 내란 2주만에 탄핵이 이루어졌다는 면에서 희망적이지만, 내란의 죄를 범했음에도 국민의힘 의원 중 10%만이 탄핵에 찬성했다는 면에서 놀랍다. 

 

한국 보수당은 삼당합당의 전통이 있었다. 민정당 계열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했던 김영삼의 민주당 상도동 계열이 큰 분파를 차지했다. 박근혜 탄핵 시기의 민주당 계열 지도자가 김무성 아니었던가. 이 번 탄핵 투표 결과는 국민의힘이 더 이상 보수적 이념을 기치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국민정당이 아니라 상당히 순혈적인 극우이념정당으로 바뀌었다는 징표가 아닌가 싶다. 

 

다른 한 편으로 이 번 탄핵 투표는 적어도 민주주의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여야 모두에 영향을 끼치던 86세대가 더 이상 한국 정치의 좌우 정당 모두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게 되었다는 표식이 아닐까 싶다. 86 운동권 세대가 보수 정당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시대는 지나갔다. 

 

민주주의 운동을 했던 세대의 보수 영향력 쇠퇴는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와 불가역성을 전제로 한다면 딱히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번 탄핵 투표 결과는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걸 의미한다. 한국에서 보수 정치가 크게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지 않은걸 고려할 때, 앞으로 한국 정치가 어떤 세력에 의해서 분점될지 두려운 마음이 있다. 

 

 

 

첫 번째가 절망 편이라면 두 번째는 희망 편이다. 군수뇌부는 윤석열의 반란에 저항하지 않았지만, 그 아래 영관급 부터는 반란에 적어도 소극적으로는 저항했다. 한 사회가 법과 제도에 따라 운영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존중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광범위한 시민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분연히 떨처일어나는 각성된 시민도 필요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주어진 권한의 사용에 두려움이 없으며 타인의 역할과 권한을 존중하는 시민층이 필요하다. 말은 쉽지만 상부에서 압력을 가해질 때 이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번 사태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그런 시민층이 존재한다는게 확인되었다. 

 

 

 

세 번째는 다시 확인된 청년 세대의 성별 분화다. 여의도 광장의 최대 인파가 20-30대 여성인데 반해 청년 남성의 수는 매우 적었다는 것은, 청년 세대의 정치적, 문화적 태도에서 성별 분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참여에서도 상당히 큰 분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전의 포스팅에서 한국 사회 전반에서 대인 신뢰와 사회적 신뢰가 증가하고 있는데, 청년 남성에서만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고 보여준 바 있다. 청년 남성의 "상대적" 신뢰 저하는 최근 코호트에서 생긴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2000년대 들어 전 코호트에 걸쳐 꾸준히 진행된 현상이다. 하지만 사회참여에서 성별 분화가 있다는 것은 이 번에 처음 확인된 것이 아닌가 싶다. 

 

태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참여에서 성별 분화가 일어나면 앞으로 어떤 사회적 현상이 나타나는건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회변동을 이끄는 인구학적 동력에서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기관 신뢰도의 변화다. 아래 그래프는 KGSS를 이용해서 2003-07 대비 2018-23 기관별 지도자들의 신뢰도 변화다. 첫 번째 그래프는 신뢰도가 증가한 곳이고, 두 번째는 하락한 곳이다. 

 

 

 

여기서 드러내는 전반적 경향은 정부와 기업의 리더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지고, 시민사회의 리더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진거다. 대부분의 정부 기관 신뢰도가 높아졌는데, 예외가 두 군데 있으니, 대법원과 군대다.  

 

이 번 윤석열 일당의 내란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던 대통령실의 신뢰도에 충격을 가할 것이고, 군장성들에 대한 신뢰를 더욱 낮출 것이다. 앞으로 군은 시민의 신뢰를 어떻게 득할지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지난 20년간 낮아진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가 이 번 사건을 계기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시위 문화가 응원봉과 K-pop으로 바뀐 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비어가고 있는 시민사회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대안이 그것 밖에 없어서가 아닌지. 

 

 

 

Ps. 바로 위에 언급을 하긴 했지만, 응원봉과 K-pop 이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승환은 그렇다치고, 아이유와 소녀시대는 되는데 싸이는 안되는 K-pop과 시위의 결합이 뭔지. 화염병에서 촛불로, 촛불에서 응원봉으로 변화하는데, 전자의 의미는 명확한데, 후자는 의미가 있는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Pps. 내란이라는 큰 사건이 벌어지니 여러 분들의 분석이 빛을 발하더라. 계엄이 선포되고 무산된 직후 긴급 좌담회를 개최하고, 페북과 언론에서 맹활약한 박종희, 박원호 교수를 비롯한 정치학자들. 윤석열의 담화가 어떻게 사실과 어긋나는지 일목요연하게 분석한 이기은 선생의 팩트 체크. 뉴스타파의 기록생활인구 분석. 천관율 기자의 여전한 분석력과 글발. 슬로우 뉴스 이정환 기자의 요약 등등. 

 

Ppps. 이 전 포스팅의 신뢰도 변화 그래프를 보고 이상한 소리하는 분들이 몇 명 있던데, 나중에 그래프 그리는 법에 대해서 한 번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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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30년 가까이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형법으로 사형제는 남아있고, 사형집행 방법도 법률로 정해져 있는데, 형법 66조에 의하면 "사형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하여 집행한다"고 되어 있다. 군인의 사형은 이와 다른데, 군형법 3조에 "사형은 소속 군 참모총장이 지정한 장소에서 총살로써 집행한다"고 되어 있다. 민간인은 교수형, 군인은 총살형으로 방법이 정해져 있다. 

 

교수형이 집행된 것은 1997년이 마지막이고, 총살형이 집행된 것은 1985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내란죄는 우두머리가 "사형, 무기징혁 또는 무기금고"의 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고, 군인에게만 적용되는 반란죄는 수괴는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어, 군형법 상의 반란죄가 더 중하다. 

 

 

 

미국에서는 사형 집행 방법이 주별로 다른데, 대부분의 주가 독극물을 주사하는 lethal injection 방법을 채택하고 있고, 일부 주에서만 교수형을 허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군인에 대한 사형집행은 1961년이 마지막이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현재 미국에서 군인을 대상으로한 유일한 사형집행 방법은 lethal injection이다. 

 

 

 

사형제에 대한 시민의 지지는 주로 미국 범죄학자들이 미국 사례로 연구했고, 다른 국가에 대한 적용은 많지 않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부패에 대한 인식이 높을수록 시민들은 사형제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사형제 폐지는 2016년 KGSS 조사에 따르면 과반수가 반대했다. 찬성은 1/4 정도였고, 나머지 1/4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지만 사형제에 대한 지지률이 낮지는 않은 편이다. 

 

최근 조사된 WVS를 이용해서 국가 간 비교를 해보면, 10에 가까울수록 사형제를 찬성하는 리커트 척도에서 전세계 평균이 4.11인데, 한국은 4.34로 낮은 편은 아니지만 높지도 않다. 주변 국가 중 미국 5.51, 중국 5.52, 일본 6.80으로 한국보다 사형제 찬성 의견이 높다. 참고로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지속적인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형제를 실제로 집행하는 국가에서 사형제 지지 여론이 폐지국가보다 높다. 이에 반해 독일 2.53, 스웨덴 3.39로 유럽 복지 국가는 낮은 편이다. 한국의 의견은 영국(4.45)이나 호주(4.45)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란죄 때문에 여러 분들이 사형을 얘기하는데, 한국 여론이 그렇다는 얘기다.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에서 바뀔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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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다른 분들처럼 저도 한 편으로는 황망한 심정으로 다른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으로 반헌법적 계엄 내란 사건과 이에 맞서는 한국 시민들의 저항을 지켜보고 있다. 

 

여러 뉴스 중에 부당한 명령에 맞섰던 군인들의 소식도 있다. 방첩사에서 부당한 명령의 실행을 거부하자 상관들이 영관급 장교를 폭행했다는 뉴스 같은 것들. 이에 반해 삼성 장군인 곽종근 특전사 사령관은 부당한 명령이지만 복종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지시를 거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후회의 심정을 드러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고, 순간적 판단을 내려할 상황에서,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옳바른 가치에 기반해 올곶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교육시킬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저는 무신론자지만, 성경에 보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구절이 있다. 도적같이 찾아온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이익에 흔들려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품격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 폭행을 당하고, 혹시 계엄이 성공하면 군인으로써 자신의 커리어가 완전히 망가지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거부할 수 있는 그 용기와 판단력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냐는거다. 

 

수능 같은 시험 성적에만 기반해 학생을 선출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가, 대학, 그 중에서도 미국 아이비리그의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지도자를 키우는게 목적인데, 그런 잠재성을 가진 인재를 시험 성적 만으로는 발굴할 수 없다는거다. 

 

그럼 그런 능력이 있는 인재는 대학에서 교육하는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인지? 그래서 잘 뽑는게 중요한건지. 아니면 직업 훈련 중심 교육이 아니라 기초학문인 리버럴 아츠 교육을 중시하면 그런 능력이 더 잘 길러지는 것인지? 그래서 미국 중상층 가정은 자녀를 리버럴 아츠 대학에 보내는 것인지? 

 

그 능력과 품격을 어떻게 길러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번 계엄 내란 사건을 처리하면서 원칙에 따라 행동한 사람들과 순간적 판단 실수라도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들의 신상필벌을 분명히 하는 것이, 도적같이 찾아온 진실의 순간에 준비되어 있는 두터운 시민층을 만드는 출발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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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적 계엄

정치 2024. 12. 5. 11:02

이게 탄핵이 아니면 도대체 대통령의 어떤 행위가 탄핵 대상이 되는가. 

 

헌법수호는 커녕 적극적 위헌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처벌로, 또한 정상 판단이 불가능한 국정운영자를 교체해 추후의 혼란과 불행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탄핵 외에 무슨 대안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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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제가 알리가 있겠는가. 

 

아래 그래프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AP VoteCast의 자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그룹이 좀 더 공화당쪽으로 이동했는데, 대학원 학력자들은 좀 더 민주당 쪽으로 바뀌었다. 대학은 확실히 고립된 섬이고 에코챔버가 맞는 듯. 

 

아래 그래프에서 트럼프로 가장 많이 이동한 그룹이 흑인남성, 18-44세 비백인, 소수인종 저학력 남성이다. 라티노 남성도 예외가 아니다. 이 그래프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시안 커뮤니티가 있는 지역도 상당히 트럼프 쪽으로 이동했다. 이 현상은 이 번에 처음 관찰된게 아니고, 2022년 중간선거에서도 덜 심각한 수준이지만, 확실히 나타났던 경향이다. 

 

이러한 변화는 트럼프가 2016년에 승리했던 원인에 대한 설명과 크게 배치된다. 동아일보 박재혁 교수 칼럼에 설명이 나오는데, 그 동안의 학술적 연구는 경제적 요인 보다는 백인 기독교 남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의 지위 위협이 2016년 트럼프 승리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인종과 계급 중 굳이 고르라면 인종이 주요 변수였다는거다. 제가 있는 학교에도 트럼프의 부상과 선거를 연구한 교수들이 있는데, 동일한 주장이었다. 

 

이 번 선거 결과는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이러한 설명과 거리가 멀다. 아래 그래프에서 %는 격차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흑인 남성은 2020년에는 87:12의 비율 (75%포인트 격차)로 민주당 지지가 높았는데, 2024년에는 75:25 (50%포인트 격차)로 바뀌어서 75-50 = 25%포인트의 shift가 일어났다는거다.  백인만 보면 남성은 3%p, 여성은 2%p 정도 격차 변화로 트럼프로 이동했는데, 흑인은 남성은 25%p, 여성은 6%p 격차 변화로 트럼프로 이동했다. 라티노는 남성은 19%p, 여성은 12%p 격차 변화로 트럼프 쪽으로 이동했고. 이러한 변화를 인종 문제로 설명할 수 없고, 젠더 문제로 설명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계급적으로 백인 노동계급에게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인종적으로 소수 인종으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소수 인종의 민주당 지지가 여전히 절대적으로 높지만,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졌다. 2020년과 비교해서 2024년 선거에서 흑인에서는 91%에서 83%로, 라티노에서는 63%에서 55%로 다른 인종에서는 58%에서 55%로 낮아졌다. 

 

선거 관련 토론회도 한 번 참석해서 들어봤는데 속시원한 설명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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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 결과가 확정될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 

 

지난 몇 달 동안 주변에 있는 사회학자들, 그리고 학생들에게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을 꾸준히 물어봤다. 일부는 트럼프의 2016년 당선 원인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정치 사회학자들이다. 그런데 거의 모두가 해리스의 당선을 예측하더라. 일부는 신승을, 일부는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보다하는 것 보다 더 큰 차이로 이길 것으로 예측했다. 

 

오늘 계층론 수업 시간의 일부를 할애하여 선거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토론했다. 첫 번째 질문은 누가 당선될 것으로 예측하냐였다.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아니라고 강조했고. 그런데 학생 전원인 해리스의 당선을 예측하더라. 극히 일부만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다.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그라운드 레벨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거다.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의 분노가 임계치를 넘어섰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더라. 공화당 지지자들도 이 번에는 해리스에게 투표하겠다는 경우가 주변에 있다는게 전언이다. 2016년에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지만, 이 번에는 그런 경향이 전혀 없다는 것도 해리스 당선을 점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골수 공화당인 자기 집안의 분위기를 전하는 학생들도 있고. 한 번도 수업을 빠진 적 없는 학생 몇 명이 아직 투표를 못했는데, 자신이 등록된 지역에 가기 위해서 수업을 불참하겠다고 통보한 경우가 여럿이다. 

 

2016년에 학생들에게 선거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는 분위기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실망의 목소리가 상당히 있었다. 펜실베니아 출신 대학원생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클린턴이 이기겠지만, 자신이 예측하기에는 여론조사보다는 훨씬 차이가 적을 것이며 트럼프가 되어도 놀랍지 않다고 얘기했었다. 이 번에는 그런 경우가 없다. 

 

미국 리버럴의 상징인 대학에 속해있기 때문에 주변이 모두 이렇고, 이들 모두가 거대한 착각 속에 빠져있는건지, 아니면 그라운드 레벨의 현실은 언론보도 보다는 더 반트럼프의 기운이 강한 건지 조만간 드러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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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결과는 코쿤 속의 착각이었을 강력한 가능성.... 아래 그래프는 NYT의 2020년 선거 대비 변화. 빨간색은 좀 더 공화당 쪽으로, 파란색은 좀 더 민주당 쪽으로 변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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