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 Kim (2024)

 

이 전에 한 번 포스팅했었는데,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학력 수준이 높은 이유, 특히 가족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도 학력수준이 높은 이유에 대해 학술적으로 (적어도 사회학계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설명은 "hyper-selectivity"라는 가설이다. 

 

아시아계 이민자는 본국에서 뭔가 더 능력있는 집단이고, 뿐만 아니라  많은 아시아계 이민자의 학력 수준이 미국 백인보다 높다. 이중적으로 긍정적 선택편향이 있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현상을 그냥 selectivity도 아니고 hyper-selectivity라고 부른다. 아시아계 이민자는 이렇게 이중선택을 받은 인구의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까, 아시아계 이민자 사회에서는 능력있는 hyper-selected 집단의 문화가 지배적이 된다. 그래서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집안 출신의 아시아계 학생들도 그 영향을 받아서, 학력수준이 높아진다는게 hyperseletivity 가설의 설명이다. 

 

정리하면

(a) hyper-selected 아시아계 이민자의 대량 유입   (b) 이들이 계급 배경인 upper-middle class 문화가 아시아계 이민자 지역 사회의 주류 문화 형성하고, 이들 upper-middle class가 교육 리소스(예를 들면 학원)를 형성  → (c) 이렇게 형성된 지역 문화와 리소스가 아시아계 학생들 사이에서 계급과 출신 국가를 넘어(cross-class & class ethnic groups) 배타적으로 공유. 다른 인종은 이 문화와 리소스를 향유하지 못함 → (d) 그 결과 가족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아시아계 학생도 사회경제적 배경이 높은 학생과 유사한 교육 성취. 그래서 가족배경이 교육성취에 영향을 끼치는 전통적 계층 이론(status attainment theory)이 아시아계 학생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음.  

 

그런데 이 이론을 주창한 Jennifer Lee & Min Zhou에 따르면 아시아계 이민자가 hyper-selected된 시기는 1965 년 이민법 개정 이후다. 1965년 이민법은 미국에서 이민 정책을 드라마틱하게 바꾼 역사적 시점이다. 그 전에는 아시아계 이민자가 hyper-selected 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는 hyper-selected 된다. 

 

그래서 이 번 연구에서 1965년 이민법 개정 이전, 아시아계가 hyper-selected 않았을 때는 이들의 학력 성취가 어땠는지, 1965년 이민법 개정 전후 시기에 아시아계 학생들의 교육 행동에 차이가 있는지, 지역적으로 hyper-selected 아시아계 이민자가 많은 곳에서 가족배경이 낮은 아시아계 학생들의 교육 행동이 더 좋아졌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1) 1940년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hyper-selected 되지 않았고, 아시아계 부모들의 평균 학력 수준이 백인 부모보다 낮고, 아시아계 대한 편견과 인종주의적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에, 아시아계 학생들의 학력 성취는 동일한 조건의 백인 학생보다 높았다. 특히 가족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학생들의 성취가 비슷한 배경의 백인보다 더 뛰어났다. 

 

(2) 1940-60년대와 1980-90년대를 대비해서,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hyper-selected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유입된 이후, 아시아계 학생들이 백인 학생보다 학교에 등록해서 다니는 확률이 더 높아졌는지 DID 기법으로 살펴봤는데, 그런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1965년 이민법 개정 전후에서 달라진 것은, 그 전에는 아시아계 학생들의 고등학교 재학 확률이 확실히 높았는데, 교육팽창이 이루어지면서 아시아계 학생들의 우위가 대학 재학 확률도 바뀌었다는 정도다. 

 

(3) 그렇다면 지역별로는 어떨까? hyper-selected 이민자의 유입이 지역별 아시아계 사회 문화와 리소스의 원천이므로,  hyper-selected 이민자 유입이 많은 지역에서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아시아계 학생들의 교육행동이 더 좋아졌어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패턴은 나타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아시아계 학생들의 교육행동은 hyper-selected 이민자 유입 정도와 무관했다. 

 

(4) 사용된 자료가 패널이 아니라 동일한 개인을 추적할 수는 없지만, 지역별 평균은 추적할 수 있다. 그래서 아시아계를 출신 국가별로 나누어서 각 출신국가별로 미국 내 거주 지역의 평균 변화와 hyper-selected 이민자 유입이 관련있는지 살펴봤는데 그런 경향이 없다. 거의 모든 출신 국가의 아시아계가 백인보다 학교를 다니는 확률이 높지만, 그 확률은 hyper-selected 이민자 유입과 무관했다. 

 

(5) 아시아계 중 hyper-selected 되지 않고,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것으로 알려진 집단이 동남아계 출신이다. 아시아계 이민자는 보통 캘리포니아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뉴욕/뉴저지가 그 다음이다. 그런데 동남아계는 특이하게 캘리포니아 다음이 텍사스다 (예를 들어, 휴스턴의 유명한 베트남계 집단 거주지). 그래서 텍사스에서는 동남아계가 아시아계 중 인구 비중이 가장 높다. 따라서 텍사스에서는 hyper-selected 동아시아 내지 인도계 이민자가 형성한 지역 문화와 리소스가 부족하다. hyperseletivity 가설이 맞다면 캘리 거주 하위계층 동남아계 학생은 많은 교육을 받고, 텍사스 거주 학생은 상대적으로 교육을 받는 정도가 낮아야 한다. 하지만 텍사스 거주 동남아계 학생의 성취가 캘리포니아 거주 동남아계 학생 보다 오히려 약간 높았다. 

 

아시아계 학생들의 교육 성취는 지역 사회의 인구학적 구조적 요인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통시적으로 공시적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 모든 결과는 아시아계 미국 학생들의 높은 교육 성취를 hyperseletivity 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뭘로 설명하는가? 문화적 차이의 가능성이 높지만, 그건 다음 논문에서. 

 

 

Ps. 사용한 자료는 1930-1940년 인구 전체 센서스, 1950, 60, 70, 80, & 90 public use 센서스, 그리고 ACS다. 종속변수는 1940년대 자료는 학력 성취고, 그 이후 자료는 현재 고교와 대학 재학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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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링크: Shin & Kim (2024). 

 

사회학 뿐만 아니라 사회계층론을 다루는 모든 분과의 암묵적 가정 중 하나가 가정(family)이 기본적 계층 분석의 단위라는 거다. 상식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가정에 기반한 논리가 설사 부인이 일하지 않더라도 부부의 계급이 같다는거고, 자녀의 계급도 같다는거다 (예를 들어, 윤대통령이 곧 김대통령[아닌가?]). 

 

예전에는 보통 남성 가구주만 일을 했기 때문에 가구 대표자로 해당 가정의 계급을 분류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반드시 가정=가구는 아니지만, 현재 한국은 대부분 그러니까). 그런데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이 논리가 맞냐에 대한 격렬한 사회학 논쟁이 70~80년대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남편 지위로 부인 지위를 측정한다는 전통적 계급론 vs. 여성의 계급은 남편이 아닌 여성 개인의 노동시장 지위로 측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후자(e.g., Joan Acker)는 전자를 intellectual sexism이라 비난했다. 

 

이 때 사용된 검증법이 부인과 남편의 객관적 계급지위(예를 들어, 소득, 직업)이 주관적 계급지위(Subjective Social Status, SSS)를 얼마나 결정하는지, 그리고 부인과 남편이 동일한 SSS를 보이는지 살펴본거다. 결론은 대략 전통적 계급론자들 쪽으로 살짝 더 기울었다. 여성의 주관적 계급지위는 남편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동시장 지위에도 영향을 받지만, 남편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부부는 주관적 계층지위가 거의 같다. 

 

그런데 이 논쟁에서 가정만하고 실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구원이 바로 아이들이다. 분가하지 않은 미성년 자녀들이 부모와 주관적계층지위를 공유하느냐다.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아이들은 어릴 때는 자기 집의 계층 지위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워킹맘이 증가하면서 자녀의 계층인식이 여전히 부친의 영향을 받는지, 워킹맘의 자녀들은 전업주부의 자녀보다 계층지위를 더 높게 인식하는지 낮게 인식하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검증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자료의 부족 때문이다. 부모 모두의 객관적 지위, 부모 모두의 주관적 지위, 자녀의 주관적 지위를 모두 물어본 데이터가 필요한데, 그런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KLIPS가 전세계에서 아마도 (제가 아는 한) 유일하게 이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위에 링크한 논문에서 (1) 부모와 자녀의 계층 인식이 동일한지, (2)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모친의 객관적 계급지위에 따라 자녀들의 주관적 계층 인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봤다. 

 

그랬더니 한국에서 67%의 부모와 자녀들이 계층인식을 공유하고, 76%의 부부가 계층인식을 공유했다. 부부의 계층 인식 일치도는 예전에 영국 데이터를 사용한 연구와 거의 일치한다. 가정 내 계층 인식 공유 확률에서 빈곤층인지 부유층인지, 워킹맘인지 아닌지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런데 워킹맘 자녀들의 계층인식이 전업주부 자녀들의 계층인식과 어떻게 연계되어있는지 살펴봤더니, 아래 그래프처럼,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모친의 가정경제 기여도가 높아질수록 자녀의 계층인식은 저하되었다. 모친의 가정경제 기여도가 60%가 넘어가면 추세가 역전되는데, 이 경우는 60%가 넘어가는 표본수가 매우 작아서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 할 수 없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에서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남성을 추월하기 시작해서 상당수의 신혼부부가 여성의 교육수준이 남성보다 높아지고 있다. 아래 그래프에서 Homogamy는 부무의 교육수준이 같은 경우고, Hypergamy는 남성이 높은 경우, Hypogamy는 여성이 높은 경우다.

 

전업주부 모친의 경우에는 모친과 부친의 교육수준이 같거나, 부친의 교육수준이 높은 경우에는 자녀의 계층 인식이 유사하고, 모친의 교육수준이 높은 경우에는 자녀의 계층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다. 같은 돈을 벌어도 부친보다 모친의 교육수준이 더 높아서, 전통적 관계에서 벗어나면 자녀의 계층 인식이 낮아진다. 

 

전업주부가 아니라 워킹맘인 경우에는 부모의 교육 결합 유형에 관계없이 자녀의 계층 인식이 낮다. 그 중에서 변화가 특히 큰 경우는, 부친의 교육수준이 모친보다 높은데, 모친이 일을 하는 경우다. 모친이 전업주부였을 때는 모친의 교육수준은 자녀의 계층인식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데, 모친이 일을 하게 되면, 자녀의 계층 인식이 크게 낮아진다. 부부의 교육결합에서는 남편이 교육수준이 높은 전통적 양식을 따르지만, 경제 기여도에서는 부부 모두가 일해서 남성 부양자 모델에서 벗어나는 비전통적 양식을 따라서, 전통적 양식과 비전통적 양식이 결합할 경우, 교육과 경제기여도 모두에서 전통적 양식을 따르는 경우에 비해 자녀들의 계층인식이 크게 낮아지는거다. 

 

이상의 결과는 한국에서 워킹맘이 직면하는 추가적 난관을 나타낸다. 직장에서의 여성 차별, 시댁으로부터의 압력에 더해서, 자녀들의 자존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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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보고서, 한경 보도, 한겨레 보도

 

학생의 학습 잠재력이 동일할 경우,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서 상위권 대학 진학률에 3배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와 보도다. 한겨레 기사 제목은 "상위 대학 진학률 격차 좌우하는 75%는 ‘부모 경제력’"이고, 한경의 기사 제목은 "부모 경제력이 대학 진학 75% 좌우…입시제도 바꿔야"다. 보고서는 정책적으로 지역 비례 선발제를 제안한다. 

 

교육 성취에 눈꼽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 기사들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바로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 성취를 설명하는 부모 경제력은 분명히 있지만,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게 그간 수 많은 연구에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녀의 교육 성취를 설명하는 제 1요인은 부모의 교육이다. 부모의 소득과 자산, 거주지역 등을 요인을 다 같이 고려해도  부모의 교육이 자녀 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한국은행 보고서는 상위 대학 진학의 75%가 부모 경제력이 좌우한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도대체 어떤 자료와 방법론에 근거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랬더니 사용자료가 <한국교육종단연구>다. 이 자료를 이용해서 소득을 5개 분위로 나누고, 중1 수학성취도 점수를 학생의 잠재력 변수로 사용해서, 학생의 잠재력이 소득 상위 20%와 나머지 80%의 상위권 대학 진학 확률 격차를 얼마나 설명하는지 분석한거다. 중간에 약간의 간단한 기술적 방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단 한 개의 변수를 통제하고 이 변수의 설명력을 제외한 나머지 잔차 전체를 부모 경제력의 결정력으로 추정한거다. 의아했다. 

 

이 보고서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한 방법론을 그 유명한 Chetty가 저자로 포함된 Bell et al (2019)의 논문과 같다고 방어한다. 하지만 Bell et al.은 여러 데이터를 짜집기하는 한계로 인해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한정되어 있다. 이와 달리 <한국교육종단연구> 는  수학성적을 포함한 인지적 성취, 자아개념 공동체 의식, 자기 관리, 진로계획 같은 비인지적 성취, 학습태도, 학교 특성, 학교 생활, 방과 후 활동, 진로 계획, 부모의 교육수준, 가족구조, 직업, 소득, 과외비 지출 등등 어마무시한 양의 정보를 제공한다.

 

도대체 왜 이 모든 변수를 무시하고 단 1개의 변수만을 통제한 후 잔차 모두를 부모의 경제력 차이라고 주장하는건가? 이는 마치 성별 소득 격차를 보면서, 중학교 때 성적을 통제한 후 설명되지 않고 남는 차이 모두를 능력이 같아도 임금을 적게주는 여성차별로 간주하는 것과 비슷한 주장이다. 

 

그런데 Bell et al의 방법론과 이 보고서의 방법론이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선 아래 그래프를 보시라. 학생 잠재력 3분위까지는 부모 소득 효과가 매우 미약하고, 4분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거의 모든 격차는 최상위 5분위에 집중되어 있다. 이 그래프를 보면 학생 잠재력 5분위(상위 20%) 내에서도 잠재력 정도에 따라 상위권 대학 진출에 큰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잠재력 상위 5% vs 상위 16-20%에 해당하는 학생 사이에 큰 격차가 있을 수 있다. 전체 학생 중 상위권 대학 진학자가 6%가 안되니 상식적으로 나올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이다.  

 

여기서 질문은 부모 소득 하위 80% 학생의 잠재력 5분위 내에서의 분포와 부모 소득 상위 20% 학생의 잠재력 5분위 내에서의 분포가 같을 것인가다. 보고서의 가정은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득 상위 20% 부모를 둔 학생 중 잠재력 상위 20%의 내부 잠재력 분포는 소득 하위 80% 부모를 둔 학생 중 잠재력 상위 20% 속하는 그룹의 내부 잠재력 분포와 다를 수 있다. 같은 잠재력 상위 20%라도 그룹 별 평균과 분포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잠재력 최상위 5%에서의 소득 상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잠재력 6-20%에서의 소득 상층 비중이 상대적으로 덜 높을 수 있다. 이 경우 부모 경제력에 따른 잠재력 20% 학생들의 상위권 진학 확률 격차는 잠재력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부모 배경에 따라 진학 확률이 달라지는게 아니라 잠재력 자체가 달랐던 거다. 이러한 의심을 무시하기에는 소득과 학생 잠재력을 5개 분위로 나눈 것은 지나치게 러프하다. 

 

 

한국은행 보고서가 참고한 Bell et al의 논문은 학생 잠재력을 5개 분위가 아니라 20개 분위 (ventile)로 나눈다. <한국교육종단연구> 의 최초 표본수는 7천명이 넘고, 6차 조사의 응답자도 6천명이 넘는다. 5개 분위로 거칠게 추정할 이유가 없는데도 저자들은 굳이 그렇게 했다. 

 

이 보고서를 인용한 또 다른 보도는, "한은 “서울대 진학률, 거주지가 92% 좌우… 지역별 비례선발 도입을”"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학생의 잠재력이 아니라 거주지가 92%를 설명한다는 분석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실제로 조사한 것이 아니다. 소득과 지능의 상관계수, 부모 지능과 자녀 지능의 상관계수(한국도 아닌 외국 연구 결과)를 이용해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순전히 통계적으로 추정한 후 지역별 서울대 진학 확률의 설명력을 계산한 것이다. 매우 거친 추정이고, 당연히 서울대 진학 확률의 아주 작은 부분 (= 8%) 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설명 변수가 부정확하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가지고 학생 능력이 아니라 거주지가 서울대 진학의 92%를 설명한다고 주장해도 되나? 설명변수 대충 만들고 그 변수가 종속변수의 집단 간 차이를 거의 설명하지 못하면, 그걸 모두 "집단"의 효과로 보는 분석이다.   

 

Residual approach라고 통제 가능한 모든 변수를 다 통제해도 남는 격차를 집단의 순효과로 보는 통계적 방법이 있다. 납득이 되는 방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인과관계 효과는 아니라는게 지금까지 경제학에서 그토록 목소리 높여 주장하던거 아니었나?  조금만 결과가 이상해도 그렇게 따져묻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건지.   

 

정책의 취지가 좋다고, 이런 식으로 분석해도 되는건가? 이렇게 분석했는데도 이 결과에 대한 비판을 제가 접하는 SNS상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 이 결과는 왜 이렇게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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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일 사건 2

기타 2024. 8. 6. 21:22

일전에 포스팅한 "번개는 같은 곳을 두 번 때리지 않는다 (Lightning never strikes twice in the same place.)"라는 글을 기억하시는지? 

 

번개가 같은 곳을 두 번 치는 확률은 매우 낮다는, 그러니까 롱테일 사건에 대한 기술이다. 그런데 낮은 확률의 사건도 안 일어나는건 아니다. 집에 있는 나무에 번개를 두 번 맞으니, 롱테일 사건도 일어난다는걸 너무 잘 알겠더라. 

 

그런데 번개가 같은 곳을 세 번 치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이 번에는 나무를 도대체 몇 조각으로 부러뜨렸는지 모르겠다. 번개 세 번 맞은 나무를 집의 수호신으로 삼아서 숭배해야할지, 나무 모양이 너무 엉망이 되고 무게 균형이 안맞아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전문가를 불러서 나무 전체를 베어내야할지 모르겠다. 

 

 

(아래 나뭇잎 색깔이 바랜건 쓰러진 후 며칠 지나서지 번개 맞아서 탄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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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ER 논문, Bartik의 요약 트윗

 

아래 포스팅에서 3년간 1,000명에서 매달 1천불씩 3년간 조건없이 지불하는 실험이 저축과 자산형성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결과가 오늘 공개되었다. 

 

아래 포스팅에서 1천불씩 받는 실험이 3년간만 지속될 것이기에 장기 소비의 평균을 맞추기 위해서 당연히 저축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었다. 자산이 늘어난 효과를 과장해서는 안된다는 것. 

 

하지만 막상 결과를 보니 그런 과대추정에 대한 염려가 전혀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매달 1천불씩 3년을 받은 사람들의 순자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금 보유액이 늘었지만 빚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수준에서) 더 크게 늘었다. 추가 수입을 빚을 갚는데 쓰지도 않았다. 늘어난 빚이 주택 보유 등 자산 형성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자동차나 은행 빚이었다. 통계적 유의성은 없지만 주택보유는 오히려 줄었다. 저축, 자산, 빚을 모두 포함한 순자산이 줄어든게 가장 좋지 못한 결과다. 

 

1천불씩 받은 그룹의 소비는 거의 모든 카테고리에서 증가했는데 딱 하나 예외가 주택융자 빚에 갚는 비용이다 (통계적 유의성은 없다). 다른 소비는 모두 증가시켜도 빚은 안갚는다. 가장 많이 오른 소비는 다른 가족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 술 담배 등의 소비는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한 달에 13불, 근데 교육투자 증가분은 한 달에 겨우 5불). 

 

종합 인덱스로 측정한 Financial health는 현금을 받은 초기 2년은 좋아졌지만, 3년차에 들어서는 그 효과가 사라졌다. Experian이라는 신용회사의 자료와 연결시켜봤을 때 3년 동안 크레딧 스코어가 늘어나지도, 파산이나 신용불량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이 번 실험에서 나타난 결과를 요약하면,

(1) 연간 12,000불의 무조건부 현금을 받은 개인의 연간 노동소득은 1500불 줄어들고, 소속 가구의 노동소득은 2500불 줄어들었다. 일하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인데, 현금 수여자의 일자리 질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2) 하지만 여러가지 소비는 모두 증가했다. 레져활동이 늘었다. 1천불을 받으면 그 중 500불은 소비재에 사용하였고, 250불은 비소비재 (차량 가구 등)에 사용했고, 빚을 갚는데 추가로 쓴 비용은 0불이다.

(3) 3년간 총 36,000불의 추가 소득이 있었지만, 순자산은 늘어나지 않았고 빚은 오히려 늘었다.

(4) 적어도 3년간 1천불씩 지급하는게 지속적인 삶의 개선을 가져온다는 증거는 없다. 

 

 

 

Ps. 이 번 실험 결과가 나오니 몇 개 에피소드로 효과가 좋다고 해석하는 분들이 있던데, 이분들이 뭔들 안그러겠는가. 

 

Pps. 이 번 실험 결과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재명 대표에서 좋지 않은 결과라고 하니 그걸로 시비인 분들도 있던데, 이 결과가 기본소득을 목소리 높여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재앙에 가깝지 이 분들의 논리를 지지하는 결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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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3년이었던 이 번 실험 결과의 해석에서 유의해야할 점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3년 실험이 가지는 한계다. 아래 포스팅에서 쿤리님과 econphd님과의 대화에서도 간단히 언급했는데, 좀 더 자세히 얘기하는게 좋겠다. 기본소득을 실제로 도입하면, 사회적 약속은 당연히 이 제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실험은 3년이었지만, 실제 정책은 평생이다. 여기서 오는 격차가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 해석에서 어떤 추정치는 확대 해석해야하고 어떤 추정치는 축소 해석해야 한다. 

 

경제학에서 항상소득론(permanent income)은 소득은 생애주기와 경기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소비는 이 변동을 스무딩해서 늘상 일정한 수준의 소득 그러니까 장기간 평균소득인 항상소득에 기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에서는 단기 소득보다 직업이 계층을 더 잘 반영한다고 주장하는데 비슷한 맥락의 얘기다. 직업이 연소득보다 항상소득의 더 정확한 지표라는 주장이다. 제가 사회학의 이 주장을 검증하는 논문도 썼었다 (제 주장을 검증하는 논문도 나왔고). 

 

이 번 실험이 단기간이라는건 누구나 안다. 단기간의 기본소득 공급 후 1천불의 추가 소득은 없어진다. 그러므로 항상소득론의 가설에 따른다면, 이 번 실험에서 노동공급의 감소, 소비의 증가는 과소 추정되고, 저축과 교육의 증가는 과대 추정된다. 평생 기본소득이 제공되면, 이 번 실험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노동공급은 더 크게 줄어들 것이고, 소비는 더 크게 증가할 것이고, 저축은 덜 증가할 것이다 

 

교육 증가가 과대 추정된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기본소득 제공은 교육 증가의 소득 탄력성을 낮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고졸자와 대졸자의 격차가 커질 때는 대학 진학자가 증가하고, 격차가 작아지면 대학 진학이 감소했다. 그러니 기본소득 제공은 교육 투자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3년 간 일시적 소득제공에도 교육투자의 증가가 크지 않았다면,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교육 투자는 상당히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 번 실험은 교육투자의 노동시장 보상 탄력성을 그대로 두고 (왜냐하면 추가소득을 받은 1천명 외에 다른 사람들의 소득은 그대로니까), 추가 소득이 있을 때 교육에 더 투자하는지를 본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달리 평생 기본소득이 제공되면, 교육투자의 노동시장 보상 탄력성이 낮아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번 실험에서 교육투자 증가 효과가 크지 않다면 기본소득의 교육증가 효과는 극히 미미할 가능성이 높다. AI의 중요성이 커지는 미래에 교육의 중요성이 더 증가할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번 실험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생각한다.   

 

이 번 실험에서 드러난 노동공급의 감소가 적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그 함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 번 실험에서 추가 소득 1불 제공에 노동소득이 20센트 감소했다. 노동공급도 그 만큼 감소했다. 일시적 소득 제공에도 노동공급이 저 정도 탄력성으로 줄어들면, 기본소득이 평생 보장될 때는 노동공급이 훨씬 더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코로나 기간 동안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후 미국에서 노동공급 감소(와 이어진 인플레이션)를 생각해보시라. 이 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전체 시장에 가해진다. 이런 충격을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조만간 3년간의 추가 소득 제공이 저축과 자산 형성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도 나올텐데, 이 번 실험에서 기본소득이 저축과 자산에 끼친 영향은 과대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평생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저축과 이를 통한 자산형성의 유인이 감소한다. 항상소득의 관점에서 이 번 실험은 일시적 현금 유입이기 때문에 저축과 자산형성의 유인이 크다. 그래야 현재 높아진 추가 소득을 미래에 스무딩해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기본소득은 이 유인을 제거한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언급한 복지 국가의 높은 자산불평등과 한국의 낮은 자산불평등을 생각해 보시라. 한국에서 자산불평등이 낮은 이유는 주택의 중요성이 크고, 전세 제도가 있어서 하위계층도 자산을 형성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복지국가는 소비의 안전망으로써의 자산 형성이 불필요하다. 그 결과 복지국가의 자산불평등은 상대적으로 크다. 평생 기본소득 제공은 자산불평등을 줄이기보다는 높일 유인이 큰 정책이다. 그래서 이 번 실험 결과를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정치적 허들이 매우 높은 정책이다. 한 번 도입하면 되돌리는데 드는 비용도 매우 크다. 그런데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면 이 정책을 추진할 동력은 빈약할 수 밖에 없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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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nsider 기사

연구 웹사이트오픈리서치 홈페이지의 결과 요약

연구 팀원 중 한 명인 David Brookman의 연구 디자인 요약 트윗

 

기본소득 실험 결과인데, 어제 연구 결과가 풀리면서 지금 가장 핫한 사회과학 연구/뉴스가 되었다.

 

개인 당 한 달에 1천불(한화 140만원)을 1천명에게 3년간 아무 조건없이 제공한 후 고용, 건강, 교육 등등의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간 프로젝트인데, 자금을 댄 사람은 ChatGPT를 개발한 Sam Altman이다. 6천만불, 그러니까 800억이 들어간 실험이다. 

 

위에 링크를 건 연구 디자인 요약을 보면 알겠지만, 가능한 모든 편향과 윤리적 문제를 통제하였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받아 소득이 늘면 정부에서 받는 혜택이 감소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정부와 협의해서 특별법을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ATUS라고 시간사용에 대한 조사가 있는데, 이와 유사한 조사도 병행하여, 기본소득을 받아서 일을 덜하면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추적했고, 크레딧 회사의 자료와 연계해서 신용점수는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추적했다. 기타 다른 행정자료와도 연계했다고 한다. 

 

연구 보고서는 기본소득 주창론자에게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다.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은 줄이지만, 정신 건강을 개선시키지도 않는다 (처음에 잠깐 기본소득을 받으면 정신건강이 좋아지지만 2년 차에 바로 원상복귀한다). 기본소득이 하기 싫은 노동은 덜하고 더 나은 노동을 하게만드는, 그러니까 좀 더 하이퀄러티 일자리를 추구하게 만드는 효과도 없다. 기본소득이 건강을 개선해 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게 아니라 장애로 인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응답이 증가한다 (기본소득을 받은 초기에 건강 검진을 받고 장애판정을 많이 받기 때문일 수 있음). 이에 반해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어려움(예를 들어, 차가 없어서 출퇴근이 어렵다 등)을 줄이는 효과는 전혀 없다.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을 줄이는 효과는 상당히 커서 기본소득 1달러당, 약 20센트에 해당하는 만큼의 노동공급과 노동소득 감소가 관찰된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노동시간은 줄어들지만, 자녀 양육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렇게되면 세대간 계층이동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의 자녀양육 시간이 오히려 줄었다. 통계적 유의도는 없지만, 계수값은 부정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결과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1960년대 캐나다 연구에서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노동시간을 줄지만, 자녀를 돌보는데 투자하는 시간은 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래도 기본소득의 긍정적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닌데, 하나는 청년층에서 기본소득 수령자가 고등교육을 조금 더 받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사업같은 기업가 정신이 높다졌다는 것. 앞으로 수많은 추가 연구들이 쏟아져나올 것이기에, 기본소득이 어떤 분야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1960년대에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흥하다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캐나다의 실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을 줄이는 효과 때문이었다. 1960년대 연구 결과에 대해서 여러 비판이 있었다. 이 번에 더 큰 규모로 훨씬 더 많은 것을 통제한 후 기본소득의 효과를 검증했는데,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을 줄인다는 결과에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의 다른 효과가 (현재까지의 결과로 보면) 매우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기본소득에 큰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면, 이 번 첫 결과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서 미지근하지만 긍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하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다른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때 그 긍정적 효과는 최대한 좋게 해석해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으로 많은 것을 해결하겠다는 판타지는 버리고, 구체적인 정책망을 촘촘히 하는데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s. "노동"에 대해서 두 가지 태도가 있는데, 하나는 자아 실현의 방안이라는 긍정적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소외와 착취의 대상이라는 부정적 입장이다. 원래는 전자여야 하는데, 자본주의에서 후자가 되었다는 입장도 있고. 진실은 항상 어중간해서, 노동은 이 양자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실험과 역사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프로젝트보다는,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프로젝트가 더 성공한거 아닌가 싶다. AI가 이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주장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리 설득력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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