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040건

  1. 2019.09.29 검찰개혁: 구조의 공백과 공포 (6)
  2. 2019.09.24 시국성명서의 익명성 (19)
  3. 2019.09.11 나경원의 아들: 금수저 vs 은수저 (34)
  4. 2019.08.26 한국에서 기회평등은 오히려 개선되었다 (20)
  5. 2019.08.24 노오력도 유전 (25)

사실 잘 몰랐음. 법알못이라 어떤 방향으로 바꾸는게 좋은지도 몰랐고. 그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지금도 잘 아는거 아님. 

 

그런데 이 번 조국장관 가족 수사 건을 보면서 두 가지 점을 좀 더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었음. 하나는 권력 조직의 이기주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인권에 대한 것.

 

다 아는 얘기로 민주주의 권력 배분의 원칙은 견제와 균형. 삼권분립을 통해 한 권력이 너무 폭주하지 않도록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것. 검찰은 행정부라 사법의 독립과 무관하지만 직무의 특수성 때문에 중립적 입장이 요구됨. 검찰이 행정부의 일부이고 그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염려는 검찰이 행정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것. 이를 방지하고 중립성을 보장토록 하는 것이 지금까지 가장 큰 관심사였음. 

 

일반적 염려에서 빠져 있는 한가지 문제가 검찰 자체가 편향되거나, 검찰에 범죄가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임. 즉, 검찰의 독립이 보장되었을 때 권력을 독점한 조직의 이기주의 문제. 

 

과거에는 검찰의 폭주를 안기부(정보부, 국정원)같은 정보 기관으로 통제하였음. 권력자가 안기부, 기무사, 검찰, 경찰에 부여하는 권력을 임의로 조정함으로써 권력 기관의 조직이기주의를 막고 권력을 대통령에게 집중시켰던 것. 이러한 임의적 권력 배분 문제를 해결했더니 검찰의 이기주의를 막을 장치가 사라진게 아이러니. 과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 기관 간의 견제를 유지했는데, 그 비정상적인 방법을 드러내버리니 권력 기관 간의 견제라는 순기능도 없어져 버린 것. 그런 면에서 지금의 검찰 문제는 일정 부분 구조의 공백으로 인한 것. 

 

그에 대한 답이 공수처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분배, 분리함으로써 권력기관 간의 견제가 이루어지게 구조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 지금까지 한국에서 경찰이 잘못하면 검찰이 바로잡을 수 있는데 그 반대는 성립하지가 않음. 

 

공수처가 옥상옥이라서 공수처를 다루는 또 다른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견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판. 공수처의 문제는 검찰이 다룰 수 있음. 검찰의 문제는 공수처로, 공수처의 문제는 검찰로 상호 견제 가능. 

 

 

 

 

이 번 사태에서 느낀 또 다른 문제는 개인의 인권에 대한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첫번째 원칙은 개인 권리의 확장과 향상. 집단주의에 기초한 진보는 다 가짜. 개인에서 출발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도 다 가짜라고 생각 (여기에 대해 여러번 얘기했지만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권력에 의해 큰 잘못이 없는 개인의 삶이 망가지지 않도록 해야 함.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는 사람도 다른 사람과 동일한 권리를 누림으로써 사회적 약자 자체가 없어지도록 해야 하고. 

 

물론 여기서 일정 정도 예외가 되는게 공인. 공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감시의 대상이 되고 다른 사람과 동일한 프라이버시를 누리기 어려움. 인사청문회에서 온갖 개인사가 들춰져도 일정정도 감내해야 함. 하지만 그 대상은 한정적이이어 함. 

 

많은 분들이 조국 장관 관련 수사를 노대통령 수사와 비교하던데, 저는 지금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생각. 비록 정치적으로 시작된 수사지만, 노대통령은 공인이었고, 적어도 혐의는 분명하였음. 대통령의 가족, 특히 영부인은 선출된 권력은 아니지만 정부 조직에 의해 지원하는 부서가 있는 등 분명히 공인이라 할 수 있음. 수사 행태는 불만이었지만, 수사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  

 

지금은 그것도 아님. 장관 후보의 가족은 공인이 아님. 게다가 지금의 수사 대상은 조국 장관이 장관이 되기 전에 벌어진 일. 조국 장관 아들이 청소년위원회 출석률이 낮았다고 서울시를 압수수색한다는게 정상적인 검찰권의 행사라고 생각됨? 이런 일이 너무 많고 지속되고 있음. 검찰이 다른 견제를 받지 않고 한 가족을 이렇게 뒤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임.

 

이 행위가 합법적이고, 이를 말릴 수 있는 정상적 절차가 없다는 것은 더 큰 공포로 다가옴. 권력과 구조에 의해 거악의 혐의도 없는 개인의 삶이 망가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공포와 경악.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재미 2019.09.30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 틀에서는 동의합니다만 전 정치색이 다르기 때문에 또 동의하지는 않게 되네요ㅎ
    그렇다고 뭐 싸우자고 달려드는 짓을 할 만큼 힘이 남아도는 나이도 아니고...
    확실히 검찰의 견재세력이 부족한 건 인정. 그러나 공수처랑 잘 견재가 될 것이다. 라고하는 것도 낙관일 수도 있겠죠. 언급하셨다시피 공수처에 대통령의 힘 과거을 빗대어 말하면 독재의 힘이 될 거고 오히려 그 과거경험 때문에 '유사할 수도 있는' 공수처를 반대할 명문도 제공되죠.
    여기서부터는 아트이고 정치입니다. 공수처라고 안기부처럼 안 될 거란 보장없다. 등등... 뭐 결국 조국이 살아있는 권력이고 어쩌고하는 레퍼토리는 동의하지도 않지만 결국 동의하는 쪽에선 문재인의 권력강화로 보일 뿐이죠. 거칠게 얘기해서 기능적으로 유사한 두 집단에 하나는 뒤에 대통령이 있다면... 네 이건 아트이고 정치죠.

    물론 별로 대단하지도 않아보이는 조국 법무부장관을 두고 엄청난 수사를 하는 게 역시 같잖아보입니다만 이번에도 뭐 미미하지만 혐의따위가 있긴 하죠. ㅡ 그렇다고 서울시압수수색하는 게 좋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제 논점이 흐려지는 거 같아 다시 말하지만 검찰개혁에는 동의하고 검찰이 지금과 같아서는 안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글쎄, 공수처... 이런 생각이 있긴 합니다. 뭐 세상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공수처만들어서 부패할까싶기도 하지만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현재의 나이브한 결론은 검찰 자체의 개혁이 답이라고는 봅니다. 라는 제 결론도 결국 또다른 낙관이네요ㅋㅋ

    • 바이커 2019.09.30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통령 견제는 국회와 사법부의 역할입니다. 검찰에 대한 통제는 행정부 내에서 이루어져야죠.

  2. 재미 2019.09.30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권이 잘 견제하고 기소독점주의도 해소되고 그러면 좋겠다만... 역시 공수처에서는 글쎄?네요. 기우이길 바랍니다. 이게 의도한 것처럼 가려면 결국 디테일로 갈 텐데 저나 교수님이나 법전공자 아닌 사람들이 얘기하누는 꼴이니... 전 공수처의 부작용에 크게 기우를 하는 사람이겠고 교수님께선 더 긍정적으로 보시는 분이시죠. 공수처자체도 오래된 떡밥이니 설립이 되든 안되든 검찰개혁이 좀 더 진행될 거 같긴 합니다ㅎㅎ 매정권마다 하던 일이기도 하네요.

  3. ㅇㅇ 2019.10.01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집단주의에 기초한 진보는 가짜라는 건 정체성정치를 포함하는 말씀이신지 궁금하네요. 개인의 권리의 확장과 향상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인지가 궁금합니다.ㅎㅎ

  4. ㄴㅇㄴㅇ 2019.10.02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수처가 옥상옥이 될 가능성이 저는 작지 않아 보여요. 지금처럼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기소와 수사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공수처가 핵심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은 물론 검사와 판사, 경찰 고위직에 대한 기소권을 가집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사실 상상이 잘 안 가지만, 공수처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경우에 따라 대통령의 인사권으로 지명된 공수처장 하의 또 하나의 사법 기관이 늘어나는 결론 밖에 아닐까요...
    굳이 공수처라는 복잡한 수를 보낼 것 없이 검찰에 대한 경찰의 견제 능력을 키워주는 게 견제와 균형 원칙의 정석이 아닐까 합니다.

  5. 옥외옥 2019.10.24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수처는 옥외옥입니다. 지금 검찰보다 훨씬 헌법과 법률에 맞는 수사를 하도록 만드는 조직이고, 지금의 검찰청장보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을 넣어 공수처장을 임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훨씬 까다롭고, 인권 친화적이고, 정파색이 옅은 인물이 이끄는 공수처가 검찰보다 못한 조직이 될까 반대한다고요? 공수처를 만들지 않으면 그 수사들 지금의 무소불위 검찰이 조사 하게되는데요? 뭔가 다들 잊고 있네요.

한겨레: 대학교수 시국선언 실명제 / 안영춘

 

조국 교수를 둘러싸고 서명자의 명단을 모두 공개하지 않는 성명서가 나오는걸 보니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미국에 있으면서 시국 선언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모두 실명으로 했음.  

 

한 번은 미국에 있는 상당수의 사회학자들이 참여한 성명서가 있었는데, 저는 참여하지 않았음. 많은 분들이 저도 당연히 서명했을 거라 생각. 참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서명 참여자 명단을 익명으로 처리한다고 했기 때문. 나중에 주도한 몇몇 분들의 이름이 언론보도에 공개되었지만, 서명을 받을 때는 어떤 주체가 서명을 주도하고, 누가 문서를 작성했는지도 공개되지 않았음. 어떤 분들인지 대충은 알고있지만, 한 번도 공식적으로 공개한 적이 없음. 전체 명단은 아직도 서명을 주도한 몇 분만 가지고 있음. 

 

당시 성명서에 서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서명에 참여함으로써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는데, 특히 대학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불이익이 클 수 있다는 것.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인데 이 포스팅에서는 익명성에 주목 (나머지 두 가지는 아래 추신에서 간단히 언급). 

 

저는 학자가 서명을 익명으로 하면 안된다고 강하게 믿음. 학계에 테뉴어가 있는 이유도 학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학문적 의견을 밝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 정치 참여도 마찬가지. 책임성(accountability)은 정치 참여와 조직 행동의 기본임. 

 

2016년 이화여대 점거 농성에서도 얘기했듯, 단체 명의로 내는 성명서가 아니면 개개인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endorse하는게 정상. 당시 이화여대 사태 때, 지도부 없는 민주주의라고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 전체가 익명으로 남았음. 총학생회장만 법적 제재를 받았고. 다른 한 편, 이대 시위에 반대하면서 익명으로 점거 농성을 비난하는 광고가 일간지에 실린 적도 있었음. 시위에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모두 대학의 의사결정이라는 공적 행위, 특히 평생교육이라는 큰 교육정책과 관련해서 익명으로 여론전을 펼치는 기괴한 모습. 

 

 

 

 

민주주의에서 익명성이란 표현의 자유과 조직적 부정행위의 고발을 위한 것이지 집단적 행위의 주체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 아님. 

 

현재 온갖 SNS에 일기장에서나 쓸 기록을 남기고, 스마트폰을 쓰면서 자신이 방문한 장소, 시간, 관심사의 상당 부분을 노출시켜서 프라이버시의 영역이 되어야 할 부분을 공공의 영역에 남김. 이와 반대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공공의 영역이 되어야 할 정치적 행위와 조직행동은 익명을 유지할려는 아이러니한 대비가 벌어지고 있음. 이 대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정확히 잘 모르겠음. 

 

전세계적으로 떠오르는 혐오의 확산도 익명성에 기반한 정치 행위의 확산이 일정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함. 

 

1차 대전이 벌어진 이유 중의 하나가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동일한 언어를 쓰고 비슷한 phenotype을 가진 동족의 확인. 그로 인해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아닌 민족국가로, 제국의 지배가 아닌 민족국가의 지배로 이행. 이와 유사하게 익명 의견 표현의 확산으로 혐오와 차별의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언어와 생김새를 넘어 의견일치의 동족을 확인한 것이 최근의 전세계적인 배제의 정치 확산에 일부 기여했다고 생각.

 

기우일 가능성이 크다고 믿지만, 의사표현의 익명성을 넘어 정치참여의 익명성으로까지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염려. 극단적 사례지만 KKK처럼 가장 비민주적이고 반시민사회적 정치 조직이 익명성을 띄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책임성(accountability)을 배제한 익명으로써의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와 civility라는 사회발전의 진보에 역행하는 것. 

 

 

 

 

Ps. 익명 서명의 또 다른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 정보는 공개하는게 최선. 누가 서명했고 누가 안했는지를 일부만 아는 것 자체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음. 조국을 둘러싼 보수학자들의 서명도 익명으로 하게되면 누가 서명했고 안했는지 일을 주도하는 사람만 알게됨.   

 

Pps. 아마 전체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불이익으로부터 일반 서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크지만, 정치 참여와 책임에서 모든 개개인은 지위와 신분에 관계없이 동등하다는 것을 알아야.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모든 학자가 학계 내에서의 지위와 영향력과 무관하게 동등하게 책임있는 주체임. 서명을 주도한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고 타인의 이름을 감추는 것은 정치 참여의 동등한 주체로써 다른 서명자를 인정하지 않고 타자화하기 때문.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haein 2019.09.25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나 조금은 애매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최근 연세대 류석춘 교수 관련 사태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저는 그의 발언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지만, 수업 시간에 강의한 내용을 기반으로 이슈가 되어 수업이 바로 폐강이 되고 파면까지 요구받고 있는 상황 (e.g.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10458.html)을 보면서는 학문적 자유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이와 같은 문제를 제 페북에 쓸까하다가 자칫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가 싶어 자체검열하고 말았습니다. 꽤나 오랜 해외 생활을 하다 한국에 돌아왔는데, 해외에 있었다면, 한국에 자리 잡지 않았다면, 별다른 부담 없이 하고 싶은 얘기를 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테뉴어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Transparency나 Accountability가 원칙적으로 중요한 대전제가 되어야한다는데에 동의하지만, 자기검열 후의 씁쓸한 느낌을 떨치기는 어려워서 그냥 짧게 남겨봅니다.

    • 바이커 2019.09.25 1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수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얘기만 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혁신과 학문적 발전을 가로막는 첩경이라는데 동의합니다.

      류석춘의 사례는 박유하의 사례와 비슷할 것입니다. 박유하는 결국 무죄선고를 받았죠. 이런 얘기도 식민지근대화론처럼 세련되게 학문적으로 할 수 있어야죠.

      그 와중에 불궈지는 민법상의 명예훼손은 본인이 감수해야죠. 인격적 대상이 있는 학문이니까요.

    • ㅇㅇ 2019.10.01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박유하 교수의 경우에야 책을 통해 나름 학문적으로 정제된 방식을 사용했지만, 류석춘 교수의 발언이 과연 학문적 자유의 보장범위에 포함될까요. 최소한 학문이려면 근거와 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이영훈 교수에 대한 인신공격 등의 공격이 더 적절한 예 같습니다.

  2. ㅇㅇ 2019.09.25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리 내다봤을 때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교수와 학생을 똑같이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물론 이번 시국성명은 정말 한심스럽긴 합니다만.......

    • 바이커 2019.09.25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성인이 된 후의 스승-제자 관계는 굉장히 한정적입니다.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금태섭의 조국 비판을 스승-제자 관계의 연장선에서 해석하는 분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3. 2019.09.25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한가한 소리를 하시네요; USKI 날아가는 거 현지에서 보시지 않았는지...다 떠나서 명예훼손으로 민형사를 걸 수 있는 나라에서 익명성 떼고 얘기하라는 건 힘있는 친구 알고 변호사비용 넉넉한 사람만 입 열라는 소리와 다를 게 없다 봅니다.

    • ee 2019.09.25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명을 공개하지 않으면 정말 서명을 한 건지, 혹은 가공의 인물을 만든건지 구분할 방법이 있나요?

    • ㅇㅇ 2019.09.25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학 교수 쯤 되는 인간들이 무슨 권력이 부족해서 숨겨요?;;;

  4. 2019.09.25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극적 정치행위에도 한참 못 미치는 단지 특정 장관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 의사 표명에 대해 누구 손에 의한 어떤 account 를 hold하고 싶으신지도 잘 모르겠고요. 막후 압력이나 공권력 개입을 얘기하시는 건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적인 해직운동 견딜 자신 없으면 입열지 말아야 하나요. 예전 전교조 명단 공개 헌법재판 간 건 생각나기도 하고 참 진영논리라는게 이렇게 되는군요. "익명으로서의 정치참여"가 민주주의의 진보에 있어 퇴행적이라니 정말 재미있는 말씀 읽고 갑니다. Civil한 식자들이 이름 걸고 투표하고 배반투표하면 처벌도 가능한 미국식 선거인단제 도입하지 직선제 비밀선거는 왜 하나요?

    • 지나가는 2019.10.02 0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교조는 위에서 필자가 지적한 것처럼 '집단'으로서 활동하고 책임지는 케이스겠죠. 최소한 글은 정독하고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개개인의 집합적 행위로서의 시국선언과 이미 하나의 결사체로서 활동하는 전교조 사례가 동일하다고 보십니까? 저도 전교조 명단 공개에 부정적이고 현 비합법화 문제에 대해서도 비합법화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말씀하신 내용은 원 글에 비추어 전혀 타당성이 없네요.

  5. 2019.09.25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지금 부리시는 논리적 곡예를 누군가는 어디서 박근혜 최순실 사태 당시에 똑같이 하고 있었을 겁니다. 무죄추정이니 피의사실 공표네,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의 위험, 구조의 구속과 개인의 한계, 법치와 정의, 조개와 해일...다 유구한 논리고 동서고금 언제나 궁지에 몰리면 튀어나오는 spin 이니까요. 다만 그 만큼의 경멸을 스스로 사시기로 결심하시면 누가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 바이커 2019.09.25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견강부회도 적당히. USKI나 전교조, 비밀투표가 적당한 사례라고 생각하세요? 하지도 않은 말과 인터넷 어디에서 본 얘기랑 마구 섞어놓고 인상비평을 하면, 본인 기분이 나쁘다는 얘기 밖에 안됩니다.

  6. 바이커 2019.09.25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펼치기가 옵션이었는데 디폴트로 바뀌고 옵션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ㅠㅠ 이 스킨에서 댓글펼치지 않는 방법을 아시면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7. ㅇㅇ 2019.09.26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건 모르겠는데 고등학생이나 박사후연구원까지는 소속인물의 신분이 확실하다고 하면 뭐 단체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나 내부 비리 문제나, 성범죄문제, 권력문제, 이권문제는 특히 그렇다고 봅니다)

    전 이것보다 인상 깊은게 교수 시국선언이 큰 의미 없는 세력 대결용 잔재주 정도로 밖에 취급이 안된다는 겁니다. 조씨 찬반 선언 모두 여론을 결정적으로 움직이는 힘은 이제 없어보여요. 십수년 전이나 수십년전과 비교해도 확연하게 다르죠?

    박근혜 몰락도 정유라와 최순실 사건의 파급력 그 자체가 컸지 그 시국선언 자체는 뭐 그런게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고 봅니다. 의미가 있고 뉴스도 되긴 하겠지만 꼭지로 치면 중후반부 즈음?

    사례는 다르지만 모씨의 위안부 관련 발언과 학교의 재빠른 대응을 비롯 대학 교수들 발언에 대한 학생들의 고발과 교수들의 강의 폐쇄나 휴직, 사직을 보면 시대가 성숙해져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테뉴어 받아먹고 하고 싶은대로 정년까지 하고 싶은대로 하는거야 그 분들 바램이겠으나 학생들 입장에서는 돈 내고 들어와서 교수들 개똥철학까지 들어주려니 피곤하기 그지 없는거지요. 입학을 위한 비용이 의무교육 시점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학생이기 이전에 고객으로서의 정체성도 이젠 무시하면 안되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학문의 자유라고 하는 것도 자기 분과학문에서 전문성을 전제로 해서나 성립되는거 아니겠습니까. 자기 세부 전공도 아닌데 떠뜰어놓고 학문의 장에서 한 소리를 가지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는 주제 파악이 안된 소리라고 봅니다.

    조국 반대 의견이 서울대 로스쿨에서도 나온거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 분들 입장에서 까놓고 말해조국에게 배운거보다는 변호사 시험 가르치는 학원에서 배운게 더 많을테고, 많은 돈 바쳐서 거기 들어간 이상 예전과 같은 태도일 필요는 없겠다 싶습니다. 이걸 두고 조국 반대 쪽이나 찬성 쪽이나 그래도 스승인데... 하는 말이 안 나오는 걸 봐도 세상 많이 달라졌어요.

    비슷한 예로 명문대의 시위가 여론에 큰 영향을 못 끼친 것도 저는 비슷한 흐름으로 봅니다. 요즘 시대에 서연고 학생들이 시위한다고 국민들이 그걸 사건 사물의 판단 기준으로 한국이 기초적인(?) 나라는 아니게 된거지요. 그 친구들은 자신들을 수십년 전 86이나 민청학력 세대처럼 대접해주길 바라는 모양새지만... 그거야 아그네스 초우나 조슈아 웡 급은 되야 나올 얘기고요.


    어떤 분들은 반지성주의 창궐이다 하겠지만 저는 오히려 세상이 발전했구나 싶습니다.

  8. ㅇㅇ 2019.09.26 0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더 나가서 솔직히 교수라는 이유로 너무 전방위적으로 다 떠들고 지식인이다 하는 건 좀 민망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 분들이 그리 무시하는 종편 패널들이야 차라리 변호사나 전직 국회의원, 판검사, 경찰간부라도 되니 실무경험이라도 많지, 아직도 교수들 지면 주고 모든 소재를 다 떠들게 하는 신문들이 종편보다도 영향력이 없는 이유가 있어요. (하긴 교수면 다행이지 그냥 작가나 시인까지 그러고 있지만)

  9. ㅇㅇ 2019.10.01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표현의 자유과 조직적 부정행위의 고발을 위한 것과 집단적 행위의 주체를 감추기 위한 수단을 무엇을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번 교수 시국선언은, 결국 실명 발표한 것으로 압니다만,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행위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 바이커 2019.10.01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accountability가 중요한가 아니냐로 구분할 수 있죠.

    • ㅇㅇ 2019.10.01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accountability가 중요한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어 이대 관련 포스팅을 보았더니 대강 알 것 같습니다. 사적인 영역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가 표현을 넘어선 실체적 요구가 있을 때가 바로 그 시점이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동의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명예훼손죄 폐지의 근거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에서의 책임성과 표현의 자유의 상충가능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결할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공적영역에의 참여는 다소간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도 책임성이 중요하다고 보시는 건지요 아니면 애당초 서로 양립 가능하다고 보시는 건지요? 같은 맥락에서 집회에 가면 등을 쓰고 참여하는 행위는 어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 ㅇㅇ 2019.10.01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면 주체 역시 함께 판단해야하는 걸까요. 참 어렵습니다.

노컷뉴스: 나경원 아들 제1저자, 나경원 부탁으로 실험실 사용

 

이 번에는 나경원 아들이 서울대 실험실을 사용하고 학회 발표문의 제1저자가 되었다고. 그 결과를 이용해서 예일대에 진학했다는 의혹까지. 이 전 포스팅에도 얘기했듯 상위 계층은 어떤 교육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교육을 통한 계층재생산을 경로를 찾아내고야 만다는. 

 

조국, 나경원 모두 뭔가 특혜를 받고 스펙을 쌓아서 문제. 이런 스펙으로 각각 한국과 미국의 대학에 진학하였음. 양 국가 모두 학생의 종합적 성과를 고려하는 입시 제도를 가지고 있어서 생겨난 논란. 이 때문에 학종의 비중을 줄이고, 대신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

 

한겨레 기사: 된서리 맞는 '학종' 한겨레 기사 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들이 공정성 강화를 위해서 수시의 비중을 줄이고, 정시 비중을 늘릴 것으로 예상. 

 

그런데 과연 수시의 비중을 줄이고, 정시의 비중을 늘리면 공정한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답을 제시하는 논문이 한국사회학 최신호에 떡하니 실림. 요즘 한국사회 불평등에 대한 참신한 연구는 모두 사회학에서 나오는 듯. 어쩜 이렇게 시기도 적절하게 논문이 나왔는지. 

 

문정주, 최율 (2019) 한국사회학 논문: 계층수준에 따른 대입 제도 선호

 

문정주, 최율 선생의 질문은 계층에 따라 수시, 정시 입시 제도에 대한 인식과 선호가 다른지 여부. 사회학자라면 누구나 아는 social closure 개념을 배제와 적응이라는 두 가지로 정리하여 교육 제도에 도입하고 대입 제도의 계층 간 경쟁의 대상으로 분석.

 

이론적 논의도 잘 정리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분석 결과. 아래 그래프는 주관적 사회계층에 따라 선호하는 입시 제도. 보다시피 상층은 확실히 수시보다 정시를 선호함. 하층에서도 수시보다 정시를 선호하지만 그 정도는 약함. 대신 하층에서는 수시나 정시나 특별한 선호가 없다는 응답이 절반에 육박. 여기서 사회계층 인식이 상층인 비율은 약 15%, 중간은 71%, 하층은 14%. 

 

입시제도로 수시보다 정시를 미는 것은 하위계층이 아닌 상위계층. 

그렇다면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인식도 계층에 따라 달라질까? 아래 <Figure 2-2>에서 보듯 계층이 높아질수록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생각함. 하층에서는 정시와 수시의 차이가 없음.

 

이 블로그에서는 제시 안했지만,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기회의 평등에 대한 인식도 아래 그래프와 거의 같음. 상층일수록 정시가 수시보다 더 공정하다고 인식함. 

계층 지위가 높을수록 수시보다는 정시를 선호하고, 정시가 더 평가의 공정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정시가 더 기회평등을 제공한다고 생각. 

 

그런데 이러한 결과는 수시를 이용하여 대학에 진학한 여러 최상층의 케이스와 모순됨. 수시는 상층에 유리하고 정시는 흙수저에 유리하다는 최근의 인식과도 다름. 하지만 어떤 면에서 이러한 결과는 현실과 부합함. 논문에서 리뷰했듯 예전의 연구를 보면 상층이 표준화된 시험에서 항상 유리하였음. 

 

그럼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한국에서 유독 정시가 하층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이유에 대해서 저자들은 매우 재미있는 해석을 제시함. 

 

수시는 하층에 유리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제공하고, 최상층(=금수저)은 자신들의 네트워크와 자원을 이용하여 바늘구멍인 수시의 구멍을 뚫는데, 여기에 끼인 최상층이 아닌 상층(=은수저)이 수시제도보다는 정시제도를 선호한다는 것. 

 

이를 조금 비틀어보면 교육제도에 대한 논의는 금수저 vs 은수저(or 다이아몬드 수저 vs 금수저)의 논쟁이라서, 그 밑의 계층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예 공론의 장에 들어와 있지도 않다는 것. 서울대, 고대 등의 시위도 금수저를 향한 은수저의 분노였던 것. 

 

하층이 정시를 선호한다는 것은 최상층 대비 상층이 정시를 선호한다는 것의 뒤틀린 표현. 강남에 있는 아파트 대출 갚느라 가난한 서민의 애환을 그리는 하우스푸어 기사와 다를 바 없음. 한국은 입시제도를 비롯한 다양한 정책 논의 공론장에서 하층의 실제 선호를 지운 나라가 아닌지. 

 

 

 

 

Ps. 주관적 계층이 아닌 객관적 계층(=소득, 재산)으로 보면 다르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저자들은 객관적 계층으로도 모두 분석해서 부록표에서 제시. 결과 안달라짐.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오독이 심하군요. 2019.09.11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당 논문은 주관적 계층의식 (불분명한 타이틀로 마치 소득분위에 따른 계급을 연상시키는 단어이지만. 논문 전체로 보면 구체적으로 지정한게 없군요)
    설사 저자들 말대로 (석사 논문 작성자들) 주관적 계층의식이 당췌 뭔말인지는 애매하더라도 맞다 합시다. (이 논문은 경제적 계층 구분이나 주관적 계층 구분의 방법이나 정의는 안보입니다. 뭔 논문이 이정도인지.. 석사논문이라도 수준이 참.. )
    12페이지를 보면 주관적 계층의식이 중위층 71% 상위층 15% 하위층이 14%인데.
    경제력으로 본 계층은 중위 27% 상위 37% 하위 35% 구성비를 보입니다.
    총 조사인원 2010명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이게 무슨 결과가 비슷할 수 있을까요.

    경제력으로 본 계층과 소위 연구에서 주창한 주관적 계층의식은 위의 조사 풀을 보면 경제력 계층의 하위층이 주관적 계층의식은 더 높은 편입니다. 24%만큼이 옮겨갔으니까요.
    그에비해 경제적 상위층도 주관적 계층의식으로는 중위층으로 몰렸고. 중위층은 유지한듯 하기에
    사실상 상위, 하위, 중위 모두 경제력 관계없이 중위층 71%에 가장 많이 몰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13페이지의 figure 1-1 에서 바로 이 중위층 71%와 상위층 15% , 합해서 전체 2010명 중 무려 86%가 (여기엔 위에 적었듯 경제적으로는 상 중 하위 다 들어갑니다.)
    (경제적이 아니라 주관적 계층의식이라는 구분에 따른 비율입니다. 저자가 아주 논문을 잘못썼습니다. 애매하게 했네요.)

    내신성적 생활기록부에 대한 선호도가 우하향하는 음의 기울기입니다.
    이건 2010명 전체로도 2순위에서도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30%밑에서 거의 20%까지 하락.
    그리고 중위 계층부터 상위계층 ( 경제력이 아니라 주관적 계층이라는 소위 구분에 따른) 일수록 뚜렷하게 내신보다 수능성적을 선호합니다.
    거의 30%후반부터 시작해 주관적 계층 (경제적 상중하 다 포괄한 계층) 상위는 40%중반이상으로 올라갑니다.
    (대체 어떤 항목인지도 공개가 안된 논문입니다. ..)
    자원봉사나 적성에 대해서는 신뢰도를 20%가 넘지 못하는군요

    이걸 어떻게 저리 해석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논문은 편향성을 갖고 출발한 어설픈 논문입니다.

    아래의 논문 일부 내용이 그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네요.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하층의 독해력이크게 떨어진다면 입시제도의 담론 형성에서 하층은 쉽게 배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제도 변화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일부 계층에 편향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두 번째 지점은 입시제도에 대한 계층 간 선호의 차이가 교육성취의 유불리에 대한 전략적 계산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회적으로표출되고 있는 담론과 실제 계층에 따른 선호 인식 간의 괴리가 존재한다면 이는 제도의 변화를 둘러싼 계층 간 투쟁의 결과가 사회적 담론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

    게다가 이걸 작성한 교원대 석사과정생과 지도 조교수는 당연히 교원입장에서 학종을 수능보다 우선한 입장입니다.
    편향성을 가진 집단의 어설픈 논문을 갖고 호도하시는거 같습니다.

    • 바이커 2019.09.11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군요.

    • 논문 2019.09.12 0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립변수 설명 부분에 주관적/경제적 계층의식의 설정에 대한 설명은 모두 되어있습니다. 또한 논문의 결과는 주관적 계층의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제적 계층의 경우 부록으로 제시한다는 설명도 되어있습니다. 주관적 계층의식과 경제적 계층수준은 당연히 동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구요.

      교원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기때문에 학종을 선호한다는 주장은 정말 현실을 모르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원 입장에서는 업무의 부담과 강도의 측면에서 학종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2. ㅇㅇ 2019.09.11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분이 하고 싶은 말씀은 충분히 하신거 아닌가요. 당연히 교원 입장에서야 3년간 학생,부모 앞의 갑이 될 수 있는 수시제도가 좋을 겁니다. 그런 편향 가능성은 의심할만 하잖아요.


    그나저나 수시가 정말 하층에게 유리한 제도를 제공하는지요. 충분히 교차 검증된 논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전쟁(?)을 보면 좀 우스운 것이 정시 반대론자들의 주된 논지였던 줄세우기 반대론과 달리 수시도 갈수록 비교과 영역이 축소되거나 정성평가 영역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인 듯 합니다. 아마 이번에 문재인이 내놓을 대입 대책도 또 이 주관적 항목이 줄어들거나 제재가 들어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건 고시 반대한다고 로스쿨이 나왔지만 로스쿨에서도 절대적으로 리트와 변호사 시험으로 변호사 인생이 결정나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개인적으로 시험 하나가 좌우하는 정시건 3년간 관찰하는 수시건 평가 항목은 거의 정량평가 위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의 낮은 신뢰도, 매우 오래된 정량평가를 통한 선발이라는 역사까지 감안해야 하겠지요.


    ...라고 하려고 했으나 요근래 전교조 덕에 당선된 교육감들이 (보수 교육감 한 사람도 동참하고 있지만) 기존 수시제도도 부족하고 화끈하게 바칼로레아를 도입운동을 추진중이더군요. 이것도 좀 더 수면 위에 올라오면 볼만할 듯 합니다.

    • 바이커 2019.09.11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델이 이상하다거나, 고려하지 못한 지점이 있다거나 그런 얘기를 해야지, 공개된 데이터를 분석해서 논문을 썼는데 배경을 시비로 결과를 의심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수시가 정시 대비 하층에게 실제로 더 유리한지에 대한 연구가 충분한지는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나온 데이터로는 일반고와, 지방출신, 소득하층이 정시보다 학종에 기반한 수시에서 더 유리하다는 것은 확인됩니다.

      동일한 시험을 통한 정량평가가 결과 수용에 용이하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용이성이 공교육 활성화, 기회평등, 사회가 필요로하는 인재 개발, 지식의 확충과 발전이라는 목표와 부합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많으니까요.

  3. 김중백 2019.09.12 0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시에 대한 논의는 정말로 10차 방정식 이상의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민하고 잘 적어도 하나의 그림으로 살펴보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에 정시중심 입시에서는 "나름 다 내탓이오" 라고 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컸습니다. 그런데 현 입시와 고교체제에서는 "내탓만은 아니오" 라고 할 수 있는 여지가 큽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기인합니다.

    1. 다양한 특성을 가진 고등학교의 존재와 이에 따른 입시 전략의 다양화

    2. 대학별 입시가 다양화 됨에 따라 입시생 본인의 준비 상황과 선호도와의 불일치 가능성

    3. 입시는 다양성을 추구하나 여전히 존재하는 학교간 서열이 존재하며 다양성을 사교육과 정보우위로 극복하려는 상황

    4. 정시가 점차 쉽게 출제되기 시작하고 과목의 수가 적어짐에 따라 상당수의 정시 입시생들의 반수는 필수, 3수는 선택 프레임, 그리고 이에 대응하려는 수시 중심의 입시 상황

    5.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한 마디 "내가 합격하면 공정한 입시, 내가 불합격하면 불공정한 입시" 라는 자기중심적 생각 :)

    결국 정부가 중심을 가지고 현재 상황에서 그래도 가장 추구해야할 바, 상대적으로 덜 추구해야 할 바, 소외되는 집단을 달래줄 수 있는 바 를 명확하게 정하고 이에 기반한 정책을 시행해야 그래도 불만이 조금은 덜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은 과연 이러한 입시정책을 통해 정부가 최소한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불분명 하구요, 공정한 입시라고 얘기해도 과연 어떤게 정부가 추구하는 공정인지 제대로 알기 힘들거든요.

    조금은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서울대 엄빠 아래 태어나 뛰어난 정보와 지력을 가진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는게 당연한데 이걸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입시제도를 공정한 입시라고 볼지, 아니면 고졸 엄빠 아래 태어나 정보도 없고 추가 교육도 받기 어려운 학생이 표준화된 시험, 비교과 활동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학교 공부만 잘하면 설대 엄빠 자녀와 비슷, 혹은 더 좋은 대학을 가는게 공정한 입시라고 볼지 조금 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거지요.

    하여간 입시 문제는 쉽지 않네요 ~~ 그 당사자가 되어가니 더욱 그러합니다 -.-

    • 바이커 2019.09.12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기에 더하여 수시와 학종이 오히려 학생들의 다양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는건 아닌지도 논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시절 gap year를 도입한 것 같은데, 이게 또 상층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서요.

      지금은 공정성을 축으로 논의가 돌아가지만, 교육이 스크리닝 효과를 넘어서, 인적자본 효과도 있다고 본다면, 실제 고민은 다양성+수월성의 조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4. 오독이 심하군요. 2019.09.12 1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논문은 한마디로 쓰레기 수준입니다.
    경제적 계층이랑 논문의 연구된 계층간의 상관성이 떨어지는데 그걸 바꿔도 비슷하다는 아불성설을 하고있으니까요.
    외려 경제적 하층이나 상층이나 구성비는 거의 강 중 하 1:1:1 수준이지만
    논문의 교육에 대한 주관적 계층에서는
    중간수준의 비중이 70%넘습니다.
    그말은 하층이든 상층이든 중위층이든
    자식의 교육에 있어서는.관심과 지식이 높다는
    해석이 되어야 맞는겁니다.

    그리고 경제계층구분도 10단위로 나누어 뭐라
    말하지만. 사실상 경제계층구분의 척도와
    교육수준이나 자녀의 교육환경 등에 대한
    상관관계의 매개율 정리도 안된 어설픈 시도이고..우리나라의 아직까지 높은 교육열로 인해 교육의 중위수준이 경제적으로는 중하위 아래까지도 매칭이 될수있음에도.(자식투자는 많이 하니)
    그런 부분도 죄다 간과되어 가져다 붙였습니다.

    한마디로 정시강화는 외려 소외계층에게 유리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헛소리를 포장한거지요.

    교원대 석사와 지도 조교수 수준이 이정도인지.. 한심합니다.

    그리고. 나경원 아들은 실제 미국 상위 사립고 최우등 졸업에 ap 만점 과목들에 미국 경시 수상자입니다. 서울대 실험이니 뭐니는 장소만 빌리고
    본인이 연구 프로토콜 하고 논문을 쓴게 아니라 포스터 정도라는군요.
    뭐.. 금수저다보니 미국 비싼 상위 사립고 디니고
    대학교에 가서 실험기자재 빌려쓰고..
    그런 특혜는 뭐 부모덕이 맞지만.
    미국은 그런게 문제되지 않는 시스템이죠.
    부정은 아니니까요.
    어차피 완전한 획일적 평등은 이상일뿐이죠..
    하지만 조민따위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미 단국대 의대교수가 다 인정했고...


    재가 유학이나 입시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아는데
    정시가 무조건 옳습니다.
    로그쿨보다 사시가.맞고.
    과거와 고시가 음서보다는.무조건 낫습니다.

    님의 다른 좋은글은 많은 시사점을 느낀 것도 있습니다만.
    이 논문은 그냥 편향된데다
    데이터 해석도 엉망인 수준입니다.
    이걸 금수저 제목꺼리로 들만한 논거는
    없어보입니다.

    핵심은 잘살건 못살건 시험이 그나마 공정하다
    여기는 비중이 전계층에 걸쳐 가장 높다는거고
    전체의 71%인 중위층(경제적이 아니라 이 논문에서의 계층)
    부터 중상위 상위로 갈수록
    수능성적의 신뢰선호가 다른것들을 배가량 압도합니다.
    그건 사회 소외층이.아닌
    경쟁에서 중위이상을 이룬 사람들은
    경쟁 자체의 공정함을 믿고 경쟁했기에
    그런 룰을 존중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살기 여유로운 양반들이 주로 과거응 보았지만
    평민역시도 기회는 열려있고
    양반 평민 무관하게 과거 자체의 실력으로
    공정하게 심사받는게 맞지요
    그런데
    특채. 음서. 끼리끼리 품앗이..
    수시.. 입학사정관.
    이런게 지금 조민을 통해 드러난 그들만의
    @부당한@ 리그가 드러난게죠.

    학부모 절대다수는 정시강화를.원합니다.
    외려 돈많은 집들은 수시를 좋아합니다.
    현실을 절대 모르는 논문입니다.


    • 바이커 2019.09.12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층 변수의 operationalization을 전혀 이해못하니까 이런 헛소리를 하는거죠. multinomial logit으로 주관적/객관적 계층의 상대적 효과를 적절하게 잘 분석해 놨던데요.

  5. 누가오독질이냐 2019.09.12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독이 심하군요'님, 그렇게 논문이 쓰레기면 한국사회학회지 심사위원들은 쓰레기 수집상입니까? 사회학 공부 안한거 티내지 말고 당신이나 편향성 강요하지 마세요. 유학이나 입시애 대해 잘 안다, 무조건 정시가 옳다고 떠드는걸 보면 사교육으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 같은데, 당신의 경험이나 이해에 갇혀서 떠들지 말라고.

  6. ㅇㅇ 2019.09.12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성평가의 장점, 다양성의 장점은 좋지만 문제는 전형적 '문과 학문'의 위상은 추락하는 반면 앞으로의 학문의 미래가 계량성이 필수인 (모든 세부분과에서 절대적인 요소라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STEM 위주라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과학도 이제는 수학 못하면 교수 하기 힘들고 논문도 쓰기 어렵고 말입니다.

    미국의 말 많은 레거시 입학도 법대, 정치학과, 경영학과 이런데니까 그러려니 버티는거지 STEM 쪽에서는 없는 건 아니겠지만 힘들잖습니까.

    애들의 수학, 과학, 논리 학습능력을 정성평가한다는게 이게 말이 쉽지 대학원생 대상으로도 어려운 걸 과연 만18세에게 할 수 있을지요.

    뭐 아예 STEM과목들 난이도를 대폭 내려서 논술이나 기타 과제 수준을 정말 쉽게 만드는 전략이 있긴 하지만 (이걸 소위 사교육 반대론자들이 주로 밀고 있습니다) 이게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결국 생산성에 도움이 되느냐 하면 또 의문스럽고요.

  7. 흠 그렇다면 2019.09.12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시 강화와 소주성을 동시에 추진하는 분들은, 소득분위 하층 가계 박살내고 대신 자식들 대학(교수 자제분들이 빼먹고 남은 장학금으로?)은 가게 해드리는 그런 전략인가요? 역시 큰 그림...

  8. 오독질빌런 2019.09.13 0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웃긴 소리시네요. 과거가 평민들에게 열려 있었다고 평등했다? 그래서 양반 가문들끼리 돌려먹기 했습니까? 나경원 어쩌고 하는거 보니 뭔 의도인지 알겠으니까 아는척 작작하고 가세요. 계급이론 부정 못 해서 안달나셨네.

  9. 오독이 심하군요. 2019.09.14 0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이커2019.09.13
    계층 변수의 operationalization을 전혀 이해못하니까 이런 헛소리를 하는거죠. multinomial logit으로 주관적/객관적 계층의 상대적 효과를 적절하게 잘 분석해 놨던데요.


    ..

    이리 말하시니. 그 근거를 좀더 풀어 말씀해주시죠. 저도 논문이라면 빠삭하게 보고
    이공학쪽 분석도 맹눈이 아니니.
    모호하게 풀지마시고 계층변수를 뭘 어찌했고
    님의 해설부탁합니다.
    잘 이해하신 님이 잘 설명해주시겠어요?

    이런식으로 페이퍼 쓰다가
    지도교수에게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일텐데요
    해석 기본도 엉터리인걸..
    위에 내가 지적한 사항이 잘못된게 뭔지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논문은 제대로 읽어라도 봤다면
    본문의 계층을 경제적 계층으로 바꾸어도
    동일할거라는 해석자체가 안됩니다.

    • 바이커 2019.09.14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항로짓 오즈비를 해석하는게 어려우니까 누구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저 위의 그래프만 제시한거고, 논문을 읽을 수 있는 분들은 표를 보고 상대적 선호의 실제를 해석하겠죠. 도대체 다항로짓 오즈비를 어떻게 해석하길래 이런 주장을 하는거죠?

      그리고 주관적계층과 객관적계층의 불일치는 계층론의 상식 중의 상식이에요. 이게 해결이 안되니까 맑스는 계급의식 얘기하며 class-for-itself 얘기한거고, 베버는 status inconsistency 얘기한거죠. 계층론에서 100년도 넘은 상식이란거죠.

      사회에 따라 두 계층기준의 불일치가 어떻게 엘리트층의 정치적 진보성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한 고전도 있죠. 최근 연구로는 Hout가 GSS 이용해서 주관적계층을 설명하는 객관적계층 변수가 미국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아본게 있고요.

      심지어 불평등 연구하는 학자들 대상으로 객관적 중간층의 기준에 대해 설문했더니 그 기준이 매우 다양했다는 보고도 있죠. 객관적 중간층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몇 %나 중간층으로 봐야하는지 학자마다 생각하는게 다 달라요.

      확실한 것은 두 계층변수가 긍정적 상관을 가진다는 것 밖에 없어요. 두 계층변수의 불일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사회마다 시기마다 다양합니다.

      그런데 둘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둘의 매개를 논하지 않는다고 논문이 엉터리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보일거 같아요?

      좀 더 명확히 두 계층변수가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두 변수를 연속변수로 구성하고, 정시선호를 종속변수로 LPM을 돌려봐야 한다고 얘기했으면 충분히 고려해볼만 주장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사회학 리뷰어가 님과 같은 토를 달았다가는 깡통박사라는 비웃음만 살겁니다.

      가끔보면 특정 분야 전문가들이 자기 영역 이외의 것도 잘 아는양 착각하는 경우가 눈에 띄는데, 아는 것이란 자기가 뭘 모르는지 알아야 진짜 아는 겁니다.

  10. ㅇㅇ 2019.09.15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댓글들을 보면 중등교육이 결국 대학 어떻게 보내는지 입시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가 많이 보이네요. 수시에 긍정적이든 정시에 긍정적이든 말입니다. 대입에서 학생부 평가가 강화되는 것이 계급 이동과 평등에 관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저도 이쪽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고등학교 교육의 내용에도 상당히 많이 영향을 주었고, 그래서 현직 교사들 중 학종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인데요. 토의식 교육, 수행 평가, 실습 등의 교육 활동이 늘어난 배경으로 평가하는 교육자들도 많죠. 이 부분은 교육학 분야니까 블로그 주인분이 논하는 영역 바깥에 있긴 합니다만.......

  11. 오독이 심하군요 2019.09.15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문에 대해서 본인이 주창하신
    계층이 경제계층으로 바꾸어도 성립한다는
    부분에 대해 논문의 설계지표상 표본구성에
    잘못된걸 지적했더니.
    다층 명명상의 분석을 못한다 하시길래
    그럼 논문상의 무엇이 그런 주장을 가능케하는지
    해석해달라 부탁드리니.
    갑자기 다른걸 갖고오시네요

    다항로직 오즈비니..
    용어의 남발대신에 말입니다.
    로직 자체에 대체 모델링 의도가 뭔지.
    본문 자체에 님의 해석이 맞다는.
    그리고 저 논문의 설계와 결과해석이 저처럼 되는게 맞다는 근거를 논문해석에서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근거로 말하시려면 저 논문의 무결성에 대해
    님이 재인한 저 논문의 해석의 문제없음을
    논문 자체로 해석해달라는겁니다.

    논문 모델링의 문제가 없는지 말입니다.
    다른 사변적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지 마시구요

    a☞b 라는데 그 잘못부분을 말씀드리니
    그 해석을 잘못했다 반박하시는데.
    그럼 잘못된게 아니라면 설명을 해달라니.
    논문외의 c d 이야기를 하시네요.

    어설픈 논문의 덮어놓고 해석이라 보입니다.
    아니라면 제대로 논문이 모델링 과 결과해석의
    문제없음을 논문 자체로 해석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씀드렸듯. 저도 논문이라면 꽤 읽은 사람이니
    해석이 잘못된게 제가 오독한거라면 실수 인정하겠습니다만.
    현재까지는 아무것도 논문 자체로 설명을 못하고 계십니다.
    설마 논문 자세히 안읽으신건지요?
    그렇다면 인용과 강화는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것 같네요.

    P.s. 다른 논문외적인 내용을 근거로 삼을수가 없습니다. 논문 자체의 결과를 인용하며 근거로 삼았으니까요. 저는 논문 자체가 잘못된 해석이라 말한겁니다. 그러니 반박을 하시려면 논문 자체의 무결성을 설명해주시면 됩니다.

    • 바이커 2019.09.15 2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관적, 객관적계층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님과 같은 질문은 의미가 없고, 입시선호와 관련된 두 측정의 경향적 동일성을 확인하는게 필요한데, 부록표의 오즈비를 보면 그게 확인된다는 겁니다. 설명을 해도 모르는 분은 모르죠. 오즈비 안보면 뭘 봤다는건지.

  12. ㅇㅇ 2019.09.16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분의 의견과 달리 저는 공교육, 사교육포함해서 만18세 미만의 학생들에게 가장 핵심적으로 중요한 건 "이거 배워서 어떻게든 먹고는 살아라"지 다른 건 아니라고 봅니다.

    대학의 존재는 애초부터 취업과 직업을 위한 것이지 순수한 연구를 위한 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말입니다. 오히려 학문을 무슨 신성한 것으로 가정하고, 대학은 순수한 학문의 전당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유교적(?), 사농공상적(?) 분위기가 문제를 흐린다고 봅니다.

    어떤 교수 방법이건 간에 장단점은 있겠지만 결국 최우선의 요소는 그걸 다 끝마친 학생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소득을 약속해줄 수 있느냐에 있다고 봅니다.

    • ㅇㅇ 2019.09.17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학 어떻게 보내는지와 먹고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사안입니다. 상위권 대학을 가서 학교 수업을 잘 듣고 적당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괜찮은 회사 취직해 40년을 근속하여 벌어먹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평생 교육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대학이 직업을 위한 교육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면 중/고등교육에서 학생의 "학습력"을 신장시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해지겠죠.

  13. 내로남불 2019.09.16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논문의 설문 항목에 대한 중요한 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위 논쟁에 대한 답이 될수도. 2 번째 주요한 연구질문인 정시제도를 선호한다는 것에 답을 하지만 난 실지로 속마음은 수시를 원한다는 수의 경우가 많음. 즉 트럼프를 지지 하지 않는다고 설문에 답하지만. 정작 트럼프를 찍는 shy voter 처럼.

  14. 재떨이 2019.09.16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의 뜻에 늘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 논문하고는 좀 다른 질문인데요, 학종/ 수능 (또는 그 유사한 종류의 시험)이 하층의 계층이동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있는지 여쭤봐도 될지요.

    만일 학종이 하층의 계층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저는 학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유지되어야 할 근거는 충분할 것입니다. 반대로 그런 효과가 없고, 다른 포스팅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두 입시제도가 계층 이동에 같은 효과를 갖는다면, 그냥 다 쓸데없는 논쟁 같이 느껴집니다 ㅎ

    • 바이커 2019.09.16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아는 건 없습니다. 제가 고교 교육 효과에 대해서 과문해서 이미 연구가 되어 있는데 모를 수 있습니다. 한 번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은 중요한 연구주제라고 생각됩니다. 데이터 몇 개 모으면 충분히 연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 스윙키드 2019.09.16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이런 자료들이 있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1461017?fbclid=IwAR2fRVW2yTG-XbqtZ-hTRrx4oHhugmzS4xUgixrNzfJUq05xkVLweCMnhWs

      다른 입시 유형들이 가져오는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는 좀더 데이터가 축적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입시 유형 자체가 가져오는 직접적인 계층적 변화는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학종이 애초에 표방했던 정신에 충실하게 학교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소위 "학교 교육 정상화"가 가져올 과실은 전체에게 그리고 아마도 입시에서 구조적으로 더 많이 소외되어 있는 중하층 출신 학생들에게 크게 미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든 논의가 좁은 의미의 '대입 선발 공정성'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 재떨이 2019.09.17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이커 // 답변 감사합니다. 언젠가 포브스 조사에서 대학간판은 미국 사회에서 얻는 수입과 큰 관련이 없다고 기사를 실었던 것 같은데, 스윙키드 님이 말하신 것처럼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윙키드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를 보면서 과연 통계분석을 해도 유의한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sample size가 24만명인 것을 보니 아마 차이는 있을 듯 합니다. (이런 것만 분석해도 재미있을텐데요) 덧붙이면, 공정성도 중요한 가치니까, 이 문제는 당분간 이슈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말씀해주신 기사와 이 블로그 글들을 합쳐보면, "학종으로 저소득층이 대학교육을 더 받을 수 있지만, 결국 평등한 결과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임" 이렇게 되는 듯 합니다.

    • 바이커 2019.09.17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떨이, 스윙키드 // 자료는 분석해놓고 어떻게 해석하는게 좋을지 몰라서 일단 제쳐놓고 있던 결과가 있는데 덕분에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15. 오독이 심하군요. 2019.09.17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인정보다는 요리조리 회피하시네요.
    제가 지적한 논문의 문제점과
    대충읽고 곡학아세 중인 글을 문제삼았더니
    별상관도 없는 멀티노미멀이니. 다항로짓이니
    읇으시며 그런 용어가
    대체 논문의 문제나. 해석의 문제
    해석에 어찌 적용되나 설명은 못하시면서..
    무조건 당신이 몰라서 그런다만 읊으시며
    정신승리하시네요.
    어디서 흔히보던 좀 식상한 반응입니다.
    좀 아는 사람에게는 안통하지요.

    국민대다수는 논문 자체에서도 보이듯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정시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경제수준과 무관하게
    경제하위조차도 중위수준만큼 교육에 지식이나
    관심이 많다고 응답하고있습니다.
    교육열이 아직 높다는 거지요.

    자기들이 어설프게라도 만든
    간단한 자료해석조차도 못하는
    곡학아세들을 보며 실망스럽습니다.
    그걸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필터링 없이 부화뇌동하는 것도..
    학자라면 부끄러운 일이구요.

    현란한 용어남발한다고
    잘못된 오독이 해결되지는 않죠

    차라리 논문을 제대로 못봤다.
    지적을받고 보니 오독이 있었다
    이런식으로 깔끔하게 인정했다면
    사람이 실수도 하는거니.
    그러려니 했겠습니다만.
    이후 행태를 보면
    잘못을 현란함으로 포장하는
    식상한 대응에 좀 실망스럽습니다.
    잘 모르는 대중 선동이나 먹히겠네요.

    학문은 뉴트럴해야합니다.
    곡학아세.. 는 그다지..

    아뭏든 더 시간낭비는 안하겠습니다.
    논문 서머리만 보고 테이블 해석도 안하는건
    잘못하신겁니다.

    암튼 교원대 수준은 좀 그렇군요.
    암만 사회과학논문이라지만.

    • 오독은 당신의 몫 2019.09.18 0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회피를 하는 건 당신이죠.
      robustness check의 개념이 머릿속에 전혀 안 박혀 있으신 주제에 논문 해석이 잘못되었네, 곡학아세 중이네 어쩌고 하시니 안쓰럽습니다. 무식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셔 봐야 스스로의 정신건강에 해로울 뿐입니다.

    • 누가 누구더러 2019.11.26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인이 지적하신 현란한 용어 남발 등등의 단점을 본인 글쓰기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계세요. 논점을 알 수 없는 비판을 하시기보다 텍스트를 이해하시는 데에 좀 더 공을 들여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보입니다만..

    • 지나가다 2019.12.11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즈비 읽을 줄 몰라요?

  16. ㅇㅇ 2019.09.18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당연히 대학이야 직업을 위해 존재하지요. (전, 이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일단 사기꾼이라고 봅니다)

    학습력이라는 문제는 수능을 감안하는 교수법, 내신을 감안한 교수법 모두 별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고 소위 실습, 수행평가, 실무적 교육 (아르바이트 할 때 근로계약서 쓰기 부터, 피임법이 됐건 사고 쳤을 때 대응법이건) 좋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다만 토론, 토의 확대는 회의적입니다. 이건 과연 먹고 살기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학습에 별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저는 누구나 각자의 이론이 있다고 믿는 편이고 안타깝지만 애들일수록 자신만의 이론 소위 개똥철학을 접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요즘 수학이나 과학이 어려우니까 토론이나 토의의 주제를 이룹러 수학사나 과학사처럼 난이도를 낮춰서 시도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면 정작 실용성은 너무 떨어지죠.

    • ㅇㅇ 2019.09.19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가 없겠죠. 말씀하신 대로 중등교육 수준에서 수학이나 과학을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여러 측면에서 한계가 있고, 여타 사회 의제는 교수자의 역량이라든지 그런 것들도 있고. 그것 자체로 효과를 보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든 그 이후 직업 활동을 시작하고서든 토론과 토의라는 방식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당장 회사에서 회의하는 것, 미팅 상대를 설득하는 것, PT 진행하는 것 전부 토론과 토의라는 큰 틀 아래의 변용이죠. 물론 현실에서 이상적인 토론 토의가 이루어지는 필드는 많이 없습니다만 그건 별개 문제구요.

      여유 있는 학생들은 고등학교에서든 대학에서든 스터디 열면 되고 세미나 꾸리면 되고 모임 만들면 되겠죠. 근데 그럴 만한 문화/경제 자본 없는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이런 방식의 수업을 경험하게 해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7. ㅇㅇ 2019.09.18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다른 얘기지만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언제 가르쳐야 하느냐는 측면에서는 지금 정부도 현실 외면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해는 가는게 어느 나라나 그렇듯 한국도 인문학, 사회과학 계열이 대체로 진보적이고 관련 종사자들을 배려하자니 구조조정 같은 것이 쉽게 되기 어렵겠지요.

    이 와중에 지방대학은 (참고로 지금 이 화제가 나오게 만든 그 부부 교수 중 한 사람 학교 모토가 공무원 사관학교입니다), 수도권에 대규모 캠퍼스를 짓는 식으로 연명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대학이 소위 평생교육이라는 차원으로 넘어간다면, 그 교육의 형태는 충분히 견적이 나오는데 그건 이대생들이 시위하게 만든 미래라이프 대학같은 것들과 구조가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또 이러면 우리 학교 서열 내려가는거 아니냐는 분노가 학생에게서 쏟아질법도 하군요. (사실 이대 시위도 미래라이프 대학이 학교 가치를 하락시킬 것이란 불만이 큰 요인이었죠)

    제가 문과였기에 오히려 마음 편히 하는 말인데 애초에 인문학과나 사회과학 계열이 젊을 때 매력적인 법이니까요. (요즘 유행하는 '힐링 인문학'이나 빼고)

경향신문 김민아 칼럼

 

조국과 그의 자녀 특권 문제는 계급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경향신문 칼럼. 

 

여러 우수한 연구들이 상당히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고, 꽤 많은 계급,계층론 전공자가 동의하는 지점이 바로 한국에서 기회평등은 악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선되었다는 것. 일반적 인식과 다르고 결과가 섹시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에서 잘 보도하지 않음. 직관과 다른 이 결과를 이해할려면 상당한 통계적 지식도 필요해서 더더욱 제대로 보도되지 않음. 대신 개천에서 용이 안난다, 흙수저론과 같은 현실과 다른 자극적인 논의만 확대 재생산되는 중. 

 

최성수, 이수빈 <한국사회학> 논문

 

예전에 소개했던 최성수, 이수빈의 "한국에서 교육기회는 점점 불평등해졌는가?"라는 논문에 따르면 세칭 명문대를 제외하면 부모의 학력에 따른 그 자녀 세대의 학력불평등 격차는 의미있게 증가했다고 할 수 없음. 

 

정인관, 박현준의 최신 SSR 논문

 

학력만 그런 것이 아님. Social Science Research 최신 호에 실린 정인관, 박현준의 연구에 따르면 교육팽창으로 인하여 한국에서 부모 계급과 자녀 계급의 상관성은 하락하였음. 

 

부모 계급과 자녀의 계급 상관성은 두 가지로 요소분해할 수 있음. 하나는 구조적 요인 (structural mobility), 다른 하나는 순수한 사회 이동 (fluidity 또는 relative mobility 또는 circulation mobility).

 

구조적 요인은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평균 소득이 높아지고 직업 구조가 고도화되면 설사 부모 세대 내에서의 "상대적" 지위(=등수)와 자녀 세대 내에서의 상대적 지위에 차이가 없더라고, 자녀 세대의 사회이동이 높아지는 현상을 나타냄. 

 

부모가 그 세대 내에서 하위 40%고, 자녀도 그 세대 내에서 하위 40%일지라도 부모 세대는 농사꾼이었지만, 자녀 세대는 화이트칼라 회사원이 됨. 이 경우 계급의 상대적 지위는 부모와 자녀 세대에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마치 계급이동이 활발한 것처럼 느껴짐. 

 

이와 대비되는 순수 사회이동은 쉽게 설명해서 구조적 요인을 통제하고 부모와 자녀 세대의 등수에 변화가 있는지를 보는 것.

 

정인관, 박현준의 논문에 따르면 부모-자녀 계급의 순수한 사회이동은 1950-1984년 코호트를 걸치면서 계속 증가하였음.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확률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었음. 아래 그림에서 로그선형 모델이라는 기법으로 분석했더니 부자 간의 계급 상관이 1950-54년 코호트를 1로 봤을 때 최근 코호트로 올수록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음. 

 

 

이렇게 순수 사회이동의 확률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이동이 줄었다고 느끼는 것은 고도성장 시기를 지나서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기에 구조적 이동이 줄어든 것. 개천에서 용이 안나는 듯이 느끼지만, 사실은 개천이 줄어서 그런 것. 옛날에는 개천 밖에 없었기에 용이 났다하면 다 개천에서 나지만, 지금은 개천이 별로 없어서 용이 개천에서 안나는 것. 

 

여러 반론이 많겠지만, 위 두 논문보다 신뢰할만한 대규모의 다른 자료를 사용한 연구 결과도 충격적일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계급 이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해 들었음. 데이터 보안이라고 이런 연구는 공개할 수 없으니 참... 

 

순수 사회이동이 높다고 이상적인 사회인 것은 아님. 사회학자인 Torche의 연구에 따르면 칠레는 굉장히 불평등하지만, 순수 사회이동은 높음. 경제 위기로 사회 전체가 쫄딱 망하면 구조적으로 모두가 하향이동하면서 순수 사회이동도 높아질 수 있음.

 

순수 사회이동 확률이 높다는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확률이 높다는 것 뿐만 아니라 부자가 망해서 개천으로 떨어질 확률도 높다는 것. 한국에서 순수 사회이동 확률이 높기 때문에 중상층 이상에서 자신의 지위 유지를 위한 노력도 높아질 수 밖에 없음. 떨어지면 바닥이고, 다른 사회보다 떨어질 확률이 높으니, 기를 쓰고 지위 유지를 할려고 하는 것. 

 

이 때문에 최성수 교수는 한국 사회는 계급이동의 경직성이 문제가 아니라, 계급이동이 활발해서 오히려 계급의 정체성을 못받아들이고 모두가 경쟁에 뛰어들어서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회라고 진단.

 

기회가 평등해서 도리어 불행한 사회가 되는 아이러니. 즉, 높은 불평등과 연동된 기회평등은 필연적으로 경쟁 심화를 동반함.  

 

그래서 사회변화의 기획을 기회평등의 기획이 아닌, 결과 평등의 기획, 계급적 격차 축소로 바꿔야 한다는 것. 올라가도 너무 올라가지 않고 떨어져도 너무 떨어지지 않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는 것. 결과평등이 있어야 기회평등이 가져오는 경쟁심화 계급격차의 심리적 불행 격화라는 아이러니를 극복할 수 있음. 

 

 

 

 

Ps. 반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명문대와 최상의 지위는 달라요일 것. 대학 졸업, 전문직/관리직 같은 넓은 의미의 지위 획득은 계급 간 이동이 높아졌지만, 명문대와 최상위 지위는 계급 간 벽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지적. 타당한 지적일 수 있음. 하지만 이를 알려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명문대 효과를 같이 볼 수 있어야 함. 김민아 칼럼에서 언급한 정도의 통계로 검증하기 어려움. 

 

기존 연구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능력에 따른 sorting 문제도 있음. 과거에는 부모 세대에서 능력에 따른 학력 sorting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현재의 부모 세대는 능력에 따른 학력 sorting이 더 잘 되었을 수 있음. 기회가 평등해지고 능력에 따른 sorting이 과거보다 더 잘 이루어지고, 많은 능력이 유전이면 사회이동은 떨어짐. 

 

Pps. 또 다른 반론으로 한국의 불평등은 타 국가보다 심하지 않다는 것이 있음. 그럴 수 있음.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하위 10~20%는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더 지위가 낮다는 것이 여러 자료에서 일관되게 증명됨. 계급지위가 하락해서 나락으로 떨어지면 끝없는 추락임.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재미 2019.08.26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수님과의 댓글로 몇 번의 교환을 지나고나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이해가 잘 되어 오해하지 않게 되어 블로그글을 읽기가 편하네요ㅎㅎ

    사회학논문을 다 팔로우업해서 읽지는 않지만 위의 논문에 역시 동의하고, 말씀하셨다시피 개천 자체가 적어졌다는 게 맞다고 봅니다. 확실히 제대로된 복지정책이나 그 비슷한 것도 없는 50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사회보다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이 훨씬 낫다는 건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죠.

    너는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는 편가르기를 집어치우고 다수가 중산층이 되고 먹고살만하고 만족하는 세상이 왜 싫겠나요ㅎㅎ 생각해보니 이제 한국은 일본처럼 오래 회사를 다닐 수도 없고 고용안정성도 없고 계층간 이동보다는 그냥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게=좋은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게 매우 어려워져서 그런 거 같아요.

    결과의 평등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실현해야하는가...는 솔직히 여태까지 몇몇 정치인들이 그냥 월에 몇십만원 쥐어주는 그런 별로 영양가없는 정책밖에 못봐서 한국사회에서 심도있는 고민+다수가 동의하는 정책이 나오길 바래봅니다.

    • 바이커 2019.08.26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정적인 삶이 핵심이라는데 동의합니다.
      https://sovidence.tistory.com/731

      그리고 첨예한 좌우 갈등은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보다 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더 가다듬어서 다음 기회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오리 2019.08.28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솔직히 여태까지 몇몇 정치인들이 그냥 월에 몇십만원 쥐어주는 그런 별로 영양가없는 정책밖에" -> 이 대목은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정책이라도 실행하는 정치인이 이재명 지사 말고 누가 있나요? 밀턴 프리드먼도 인정한 기본소득 개념이 "소극적인 제2의 토지개혁"으로서 경쟁의 초기조건을 만들어주려는 의도로서의 산물 아닌가요? 월에 몇 십만원만 있으면 청년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재충전, 자기계발에 쓸 수 있고 노년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음은 자명할진대...

    • 재미 2019.08.28 2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리님에게.
      그렇게 자명하시면 그렇게 믿으세요ㅎ
      하신 말씀이 뭐 유명한 분을 인용하긴 했는데 그 제도에 대한 무수한 반박 논문이 지천에 널려서 뭐 학문으로 말하는 건 차치하고 세상천지에 그런 무조건적으로 돈을 뿌리는 제도가 얼마나 있는지....
      네네. 돈 주면 쉴 수 있고 쇠고기 사먹고 찜질방가고 좋겠네요. 자명합니다. 재충전도 하고 참고서도 사고요. 네 자명합니다.
      하시고싶으신 말씀이 이게 아니라 없는 자에게 더 기회를 주자 이런 거 같은데 번지수가 아예 틀렸다고는 안 할게요. 근데 좀 아닌 거 같습니다. 더이상 길게 말 안하겠습니다. 자명합니다. 제가 배움이 짧았습니다.

  2. 지나가다 2019.08.26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s는 사회과학의 금기일 수 있는 영역이라.. 아무리 데이터를 모아도 유전효과를 측정하는것은 쉽지 않아 검증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군요

  3. 키튼 2019.08.27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데이터를 오독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1) Origin(아버지의 직업 분류) - Destination(아들의 직업 분류)로 이동성을 측정하게 되면 우리나라 같이 압축 성장한 사례에서는 1차-2차-3차로 이어지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저절로 Fluidity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지요?

    2) 그런 면에서 직업 분류보다는 아버지와 아들 각각의 소득 분위를 Origin과 Destination으로 설정해 분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 바이커 2019.08.27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1) 아닙니다. loglinear model이 그러한 구조적 변화(=marginal distribution)를 통제한 상태에서의 fluidity를 계산합니다.

      2) 본글에서 언급한 발표할 수 없는 자료를 사용한 분석에서 지금 말씀하신 기법(rank-rank correlation)을 적용하였습니다.

  4. 행인 2019.08.27 0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수 사회이동 확률이 높다는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확률이 높다는 것 뿐만 아니라 부자가 망해서 개천으로 떨어질 확률도 높다는 것. 한국에서 순수 사회이동 확률이 높기 때문에 중상층 이상에서 자신의 지위 유지를 위한 노력도 높아질 수 밖에 없음. 떨어지면 바닥이고, 다른 사회보다 떨어질 확률이 높으니, 기를 쓰고 지위 유지를 할려고 하는 것.

    이 부분이 감명깊네요. 확실히 중상층으로 진입하는 것도 되지만, 떨어지는 것은 더더욱 쉽다 보니 어릴 때부터 교육에 목숨을 걸고, 최상층들은 그 경쟁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지금 아예 과고생들 입시용 저널을 까발리고 있던데 이 카르텔에선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거 아니겠나 싶습니다. 경북대 성명만 봐도 아예 제도와 SKY 자체로 향하고 있더라구요.

  5. 하제 2019.08.27 0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쉽게 정리하시는데 달인이 되어가심. ^_^

  6. 스페르치 2019.08.27 0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84년 이후는요

    • 바이커 2019.08.27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회경력이 짧아서 부자간 계층 이동 자료는 아직 측정하기 어려운 것 같고, 교육이동은 위에서 언급한 추세에서 아직은 큰 변동없다는 것을 최성수,이수빈 논문으로 알 수 있습니다.

    • ㅇㅇ 2019.08.28 2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1984년이라 써져있으니 엄청옛날자료가 아님 birth date입니다

    • 스페르치 2019.08.29 0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프에 4개 항목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7. 기린아 2019.08.29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컨트롤 하고 나면 계층간 이동이 오히려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는 경청할만 합니다만, 한 개인 입장에서는 그런걸 다 컨트롤 한 환경이 주어지는건 아니라는게 문제겠네요. 이 경우 과거에는 경제성장으로 인해 경쟁에 모두가 투입되더라도 신분의 상승을 맛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될테니, 제가 정책 담당자라면 위안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계급 이동의 문제는 결국 계급을 인정하고 살든지 아니면 경제성장에 몰빵해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든지 둘중의 하나로 귀결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후자가 이제 가능한거냐, 라는 문제가 있겠네요.

    • 유전 2019.08.30 0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통계 분석에서 변수를 컨트롤하는 것과 개인이 본인의 처지를 컨트롤 하는 것은 완전 별개의 것인데 대체 '컨트롤'을 무슨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 바이커 2019.08.30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 수만 있다면 경제성장이 최선의 선택이나 이건 선택하고 말고의 여지가 아니죠.

      어쩔 수 없이 전자인데, 그렇다고 자조만 할 수 있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주어진 조건에서의 최선은 계급(이동)의 완고성이 아니라 계급적 격차를 정책 대상으로 하자는 말이죠.

  8. aaa 2019.09.01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샘플이 1950-1984년생이면 기회평등이 개선되었다는것이 세간의 인식과 다르지 않죠. 저때야 초기 코호트는 돈 없어서 공부 잘해도 상고 나오고 끝나는 시절이었다가 후대는 대학에 보내는 시절이었는데요.

    개천용이나 흙수저론이 나오기 시작한건 빨리잡아도 2000년대 들어서이고 그럼 샘플이 1980년-2000년 생이 되어야 세간에서 말하는 기회균등이 악화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겠죠.

  9. 안녕하세요 교수님 2019.10.25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며칠 전 교수님의 글을 처음 접해서 열심히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쪽 계열이 아님에도 보기 편하게 정리해주신 양질의 글 덕분에 재밌게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D

"노오력"을 강조하는 분들이 마치 노력은 개인의 achieved characteristics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거 아님. 

 

부모로 부터 재산을 물려받듯, 부모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자녀에게 지위를 물려주듯, 개인의 능력의 상당 부분은 유전되는 것. IQ만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노오력도 유전임. 

 

사회과학에서 노오력을 "grit"이라고 표현함.  인내라고도 번역하고, 이를 악물고 빠득거리는 성격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 단어는 인내, 일관성, 열심히 노력, 지치고 않고 계속함, 미래지향적인 목표의식 등등을 포괄하는 단어임. 

 

영국학자들이 grit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가정 환경과 유전으로 나눠서 봤더니만, 제일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 (전체 논문은 요기). 유전과 노력의 상관관계가 86%. 양심도 유전임 (논문은 요기). 같은 집에서 자란 이란성 쌍둥이와 다른 집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를 비교했더니만 환경에 관계없이 일란성 쌍둥이의 소위 virtuous behavior의 상관성이 더 높음. 

 

그러니까 머리가 나쁜 것도 상당 부분이 부모 탓이고, 노력을 안하는 것도 상당 부분이 부모 탓. 양심 없이 행동하는 것도 부모 탓. 키크고 미모가 뛰어난 것만 유전이 아님. 

 

인종차별의 근거가 되었던 우생학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지는 이러한 결과들이 최근에 대규모 DNA 정보를 사회과학자들이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속속 드러나고 있음. 앞으로 이런 발견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함. 

 

그런 측면에서 능력주의는 가장 상속에 기반한 불평등을 지지하는 논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정유라의 주장이 능력주의에 대한 최근의 사회과학적 발견과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일치. 

 

물론 이런 발견도 다 정도의 문제. 세상에 100% 유전이라는 주장은 하나도 없음.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개인의 선택이 사실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개인의 노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부모와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 achieved characteristics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이 사실은 ascribed characteristics임.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사회학자 마이클 영의 비판은 바로 이 지점임. 능력주의를 끝까지 밀어붙였더니 상속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 

 

그러면 대안은?

 

이건 사회과학적 문제라기 보다는 철학적 문제임. 인간이 평등해야만 하는 과학적 이유는 없음. 사람은 다름. 능력에 상당한 격차가 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언적 의미에서라도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학적 선택임. 지금처럼 보통선거권을 부여하고 법 앞의 평등이라는 관념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 옛날 사람들은 현대의 사람과 본능과 양심이 달라서 신분제를 채택했겠음?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용인할만한 불평등인지는 집단적 선택의 문제임. 어떤 능력을 보상하는지도 사회적 결정인 것과 마찬가지. 사농공상일 때는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렇게 했겠음? 지금은 STEM을 전공하면 보상받지만 옛날에는 천한 것들이나 하는 일이었음. 발재간이나 좋은 호날두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는 뭐임? 능력도 다 운 때가 맞아야 보상받는 능력이 되는 것 (g-factor라고 능력은 한 가지 지표로 환원된다는 사람도 있기는 함).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능력주의, 공평한 기회라는 신기루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깨고, 이 에너지를 공생, 박애의 기획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이 문제가 담론 차원에서 진보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듯. 

 

 

 

 

Ps. 번외 편으로 2017년의 통계 수치 몇 개 감상하시길. https://sovidence.tistory.com/854. 헌법에 써있는 법 앞의 평등은 잘 지켜지고 있는거죠? 

Posted by 바이커 sovidenc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재밌습니다 2019.08.24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교수님이 가진 정치색이 있듯(한국의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향이 있다라는 뜻으로) 이 정치색으로 이분법적인 논리를 구사하려는 댓글이 많아서 약간 답답하려던 차에 재밌는 글, 또는 떡밥을 올려주셨네요ㅎㅎ

    SF영화 중에 가타카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썰을 풀었다고 생각되는데(유전자가 결국 매우 중요하고 이러한 유전자도 풀이 있을테니 그 풀 안에서 좋은 것만 뽑아서 발현시키는데 좋은 것만 뽑아내려면 돈이 들고 결국 부자가 유전적으로도 우등한 존재가 되고 사회적으로 성공도 하고...)

    말씀하셨다시피 이건 철학적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적 성찰로 돌아가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과연 박애라는 게 지지되어야할 공공선인가 같은 거죠. 왜 있는 자들이 굳이 그래야하는가? 라고 러프하게 말할 수도 있겠군요. 능력주의라는 지옥에서도 주지하셨다시피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쓸모없는 인간(이란 게 뭔지는 정의하기 어렵지만)이라고 사회에서 인식된다면 그냥 결과의 평등을, 박애를 외치는 것 외에는 공감 가기 어렵습니다.ㅡ 야만적인 일이지만 그냥 더 간단히 말해서 내 나름으로 일해서 번 돈을 남에게 주기 싫다는 거죠. 자기 능력이 유점이든 상속이든 간에요.

    이 점에서 사회적 합의 등을 빼놓고는 이 불평등의 확장을 멈출 괜찮은 명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ㅡ 전 모르니 한 수 알려주십사 하는 말입니다.

    좀 비틀어 말하면 극단적 불평등은 결국 공멸하는 결과(대공황 등)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예시도 있을텐데요. 현대의 미국을 비추어보건데 그러면 어느정도까지 불평등을 용납해야하고 왜 굳이 북유럽모델을 지지하시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 바이커 2019.08.24 1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회적 합의 외에 다른 것이 없다는데 동의합니다. 이건 도덕률에도 적용됩니다. 살인이 왜 꼭 나쁘겠어요. 여러 복잡한 얘기를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냥 그렇게 합의한거죠.

      그리고 대공황을 예로 드셨는데 사회적 합의는 역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대공황 이후 미국에서 복지가 적극 도입된 이유는 자본주의의 멸망과 사회주의 도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지금 불평등이 확장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항마가 없기 때문이니까요. 폭주해도 체제 위협이 안되니 폭주하는거죠.

      그러니 정치세력이 중요하죠.

      이 블로그 열면서 쓴 첫글에서도 밝혔듯 저는 "사회 발전의 효율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 평등"이 제 정치적 입장입니다.

      이 정치적 입장이 관철될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이 리버럴한 정당의 연속집권이라 생각하는거구요.

    • 재미 2019.08.24 2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이 블로그를 몇 년 전 부터 보아왔지만 첫 글을 읽어볼 생각은 안해봤네요.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입장에 저도 역시 동의합니다.

      부드럽게 다른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다시 약간 비틀어보면 이런 얘기입니다.
      "사회 발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대 불평등" 정도라고나 할까요. 이 건 뭐 정견도 탁견도 아니고 그냥 우울한 농담 정도로 생각하셔도 되는데요.

      제가 예전에 미국대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 번 일어난 일입니다. 그 이후엔 굳이 이런 질문을 안 했는데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아시다시피 미국 대학교 학비는 참 비싸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학비가 비싸면 고등교육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게 아닌가?라는 투의 질문을 했는데 당시 20여명의 학생 중에 2명만 빼고 학비가 비싸니까 공부가 필요한 사람만 공부하고 이게 일종의 가짜수요를 제한하는 장벽역할을 하는 거라는 류의 발언들을 했었습니다. 이 경험이 상당히 충격이어서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요. 학부수준에 경영대 학생들도 이렇게 자본친화적(?)인가 생각도 했었더랬죠ㅎㅎㅎ. 제 사례가 작은 일화일 거고 이걸로 일반화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사실 이런 배리어들은 미국 도처에 널려있죠. 한국에서 고등교육까지 마친 저로서는 이 게 사회발전의 효율성을 올려주나?? 생각이 드는데... 미국인 사이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제 머리속의 합의와는 다르다는 걸 직접적으로 처음 느꼈습니다. ㅡ 쓰다보니 생각났는데 제가 있는 뉴욕주에서 SUNY계열의 대학교 등록금이 거의 무료가 되는 것에 대해서 교육의 질 저하, 결국 세금으로 하는 일, 최종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정책이다.라는 결론으로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학생/교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뭐 결국 제가 전달하고자하는 핵심은 누릴 수 있는 최대평등 vs 감내할 수 있는 최대불평등같은 게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전자이실 텐데요. 왜 대공황이후에도 미국은 후자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많은 걸까요...

      좀 더 심각하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회 발전의 효율이 증대된다면 불평등을 감내해도 되는 걸까요. ㅡ 제가 느낌 미국사회의 한 단면이랄까요.

      좀 철학적이게 되었네요. 간만에 일상생활에서의 단편적인 경험으로 느끼던 바를 글로 표현하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아마도 결론은 대항마가 없으니 그냥 불평등을 감내하는 게 아니라 끌려가는 거다. 이런 걸까요. 살아본 나라가 미국과 한국뿐이라 북유럽에서 살아본다면 또 재밌는 경험도 있을텐데 아쉽네요.

    • 바이커 2019.08.25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국이 지금 복지에 GDP의 20% 정도를 지출하는데 대공황 이전에는 0.2%였습니다. 천지개벽에 해당하는 변화입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말씀하셨다시피 감내할 수 있는 최대불평등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196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복지가 100배 증가할 수 있엇던 과정은 앞서 말씀드린 사회주의의 위협과 더불어 역사에서 잠깐씩 생기는 좁은 윈도우의 기회에 돌이킬 수 있는 복지제도를 시행해서 입니다.

  2. 유전 2019.08.24 2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edigree based heritability를 이런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애초이 h^2은 mutability를 측정하는 지표가 아닙니다.
    http://www.nealelab.is/blog/2017/9/13/heritability-101-what-is-heritability

    Mutability나 기전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최소한 Genomic data에 기반한 GWAS 혹은 NGS기번의 category 분류가 있어야 합니다.

    • 바이커 2019.08.24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적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는 노오력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걸 비전공자가 논문의 권위(그것도 논문의 한 부분)를 빌어 거칠게 표현하니 이렇게 되네요.

      기왕 말씀하신 김에 지금 하신 말씀을 조금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시면 여기 오는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유전 2019.08.24 2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hanbin973.github.io/2019/07/28/complexhomo.html

    그리고 특별히 몇 가지 더 추가할 점이 있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전력은 좀 더 일반적인 통계학 용어를 빌리면 Genetic component와 Environmental component 를 나타내는 확률변수가 독립이라는 가정 하에 R^2를 계산한 것입니다.

    2. (1을 이해하신 분들은 더 이해하기 쉽겠지만) 그래서 R^2은 집단별로 다르고 상황별로 다르게 산출됩니다.

    예를 들면, 복제인간(=DNA구성요소가 모두 동일)으로만 이뤄진 집단을 상상해봅시다. 이 집단은 DNA 구성요소 동일하기 때문에 복제인간 사이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모두 환경적 요인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전력은 0%가 됩니다.

    반대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모두 동일하게 통일된 가상의 국가를 상상해봅시다. 이 집단은 환경적 구성요소가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어떠한 차이도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이 됩니다. 따라서 유전력은 100%입니다.

    즉, 유전력은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다양성 (=분산) 중 몇 프로가 유전적 요인의 다양성에 의해 설명되는지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전적 요인의 다양성이 없는 집단에서는 유전적 요인이 아무리 강한 영향력을 행세해도 유전력이 0%이고 (유전적 다양성이 0이니까요)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3. 또, 머리카락의 색깔은 유전력이 80%가 넘습니다. 근데 염색을 통해서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18-07691-z).

    4. 조현병, 자폐 스팩트럼 전부 유전력이 50%를 한참 상회하는데 병원 가서 치료 받습니다. 왜냐하면 증상은 상당히 완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당뇨병 유전자 발견은 치료(변형의 일종이죠?)의 첫걸음이고 노력 유전자의 발견은 노력의 불변성의 증거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합니다. 이것부터 바꿔야..

    6. 그리고 원래 정신적/행동적 형질들은 거의 다 유전력이 매우 높습니다. 정신질환부터 성적지향, 교육수준 등등.

    • 온다 2019.08.26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대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모두 동일하게 통일된 가상의 국가를 상상해봅시다. 이 집단은 환경적 구성요소가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어떠한 차이도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이 됩니다. 따라서 유전력은 100%입니다."
      에서 "어떠한 차이도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은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이 맞겠죠?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 유전 2019.08.27 2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제가 거꾸로 썼네요. 제가 개떡같이 썼는데 찰떡같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4. 유전 2019.08.24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WAS나 Exome Sequencing을 얘기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가계도 (형제 자매 사촌 부모 등)을 이용한 유전력 산출은 유전적 요인 전반의 영향을 측정하지 정확히 어떤 유전자나 DNA 영역이 기여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DNA 정보를 읽은 후 (=시퀀싱) 기능을 알고 있는 영역별로 쪼갭니다 (=Genome Project 및 그 후속 작업에서 했던 일). 그리고 각 영역이 유전력 전체에서 다시 얼마만큼 차지하는지 계산합니다 (S-LDSC 등). 이를 바탕으로 해당 영역에 포함된 유전자의 알려진 기능을 참고하면서 어떤 상황일지 예상하는 겁니다. 이건 유전학 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다양한 행동과학, 분자생물학 등의 배경지식을 요구합니다. 아직까지 잘 안 이뤄지고 있고요.

    • 재떨이 2019.08.27 0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세한 설명감사합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GWAS에 관심이 생긴 임상의사입니다. 정말 유전학 공부는 많이 어려워졌군요.

      말씀하신 것과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파킨슨병에 대해서 주로 공부하는데, 파킨슨병도 꽤 유전이 되는 편입니다. 예전에 GWAS 결과들의 meta-analysis 결과도 두 차례 보고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GWAS 결과들을 통해 파킨슨병의 위험도를 예측했더니 이게 가계도 상의 가족력보다 더 뛰어난 예측능력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저희는 농담삼아 돈 들여 검사하느니 그냥 집 안에 환자가 있었는지 전화를 돌려보는 편이 낫다는 말을 합니다.

      특정 표현형이 유전되는지 알기 위해서 가계도 이상의 다른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가계도 상에서 관찰되는 경향성이 있다면, 이는 특정 표현형에 유전적인 배경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제 해석에 오류가 있고 이를 설명해주실 수 있다면, 우매한 MD에게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유전 2019.08.27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재떨이님 말씀이 맞습니다. GWAS Hit은 (특수한 몇몇 경우 제외하고) Clinical relevance는 상당히 떨어집니다.

      굉장히 최근에 AJHG에 나온 페이퍼가 있는데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02929719302666
      간략히 요약하면 GWAS Hit가 Biological relavence는 사실 별 상관이 없고 그건 negative selection (변이를 제거하는 자연선택)의 영향이라는 주장입니다.

      가계도 조사에서 유전성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유전된다는 큰 얘기가 아니라 바이커님이 올린 본문처럼 구체적인 메커니즘에 대해 얘기하려면 구체적인 유전자와 생물학적 회로, 나아가서는 사회적인 기전을 찾아야 하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가족력이 GWAS보다 훨씬 정확할 것입니다. GWAS나 (혹은 Exome seq)은 말씀드렸던 것처럼 질병의 예측하기에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위에 링크한 논문은 그런 한계 중 하나를 보여줄 뿐입니다). 단지 질병의 etiology를 세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Fine mapping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GWAS는 의료적인 가치보다 생물학적, 이론적 가치가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 재떨이 2019.08.28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GWAS 결과가 negative selection이라는 말이 아주 신선하네요. 논문도 감사합니다.

  5. Q 2019.08.25 0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력은 유전에 영향을 받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쓰게 만들고, 그래서 노력에 대한 보상 시스템은 사실은 희생한 시간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라서 가장 공정한 시스템입니다. 결국 시간 소모로 입증한 Sacrifice와 Commitment에 대한 보상인거죠.

    반면에 조국으로 대표되는 386들은 20대에 운동 조금 한거 가지고 평생을 우려먹으며 대한민국을 퇴보시킨다는 점에서 Sacrifice나 Commitment가 없죠. 이런 글도 결국 촛불정신, 오월광주, 세월호, 노무현 정신 이런 말들을 웃긴 소리로 만드는데 일조하죠. 우생학적 유전자 결정론이 맞다는 사람이 세월호를 얘기하면, 가만히 있으란다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멍청해서 죽었다는 소리밖에 더됩니까?

    하여간 앙가주망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6. AA 2019.08.25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난과 그에 따른 결핍은 개인의 인지 자원에 큰 무리를 주어 지능지수를 (일시적으로라도) 크게 떨어뜨린다”는 기사가 기억이 나네요

  7. 지나가다 2019.08.25 0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식

    어차피 결과적 평등을 추구할 거라면 일단 능력있는 사람이 승리하게 하고 후에 결과를 보정하여 평등을 얻겠습니다. 조국같은 사짜들이 카르텔로 해먹도록 하는 게 아니라요.

    • 지나가다 2019.08.25 0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국같은 경우는 노력이 유전이라고 할 게 아니라 사기치는 게 유전이라고 해야겠지요. 범죄성향의 유전에 관한 통계적 연구도 한 번 소개해 주시죠?

  8. 위에 몇분들 2019.08.25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국은 서울대 법대 학사-석사-버클리 박사.....서울대 교수-청와대 민정수석 커리어를 가진 한국 사회 능력 사다리의 거의 최정점에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걸 사짜니 우려먹는다느니 사기 운운하는 걸로 봐선 님들은 아마도 그것 이상의 '능력'과 경력을 가지신 분들인가 보군요. 부럽습니다~

  9. 원래 2019.08.25 0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까 보면 어중간한 애들이 만능노력설 지지하는 경우가 많음 시야가 좁거나.... 마치 위에 SPKKY 쌔고 쌨는데 학벌주의 운운하는 중앙대생같은 위치죠.

    • 이런 경우 2019.08.25 0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신의 노력에 대한 과신+정신승리에 가깝다고 봄. 이 거대한 자아는 여러 사고의 근간이 되는데 언젠가는 빨간 물 먹게 될 것.

  10. ㅇㅇ 2019.08.25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국과 문의 생각이 미래가 궁금하긴 하네요. 대선 주자 없는 세력은 몰락 아니면 1회용 숙주가 되는거야 수순이니 이 길에서 탈출하려는거야 이해 갑니다.

    하지만 정치권 내외의 사람들이 머리 어지간히 나쁘지 않는 이상 '조국만이 할 수 있는 검찰 개혁' 같은 프레이즈를 진지하게 췩브은 안할테고 본인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것처럼 대선 진로 좋은데이를 외치다가 삐끗한 느낌입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조국이나 김경수는 그 쪽 동네에서 좋아할 스타일이 아니란 것. 문재인이야 딱 그 동네 취향에 맞는 상남자 특전사 출신 의리의 사나이라지만 조국은 아무리 봐도 얄미운 도련님 캐릭터고 김경수는 그 동네에서 별로 인기 없는 생원 느낌이지요. 김경수가 원체 뜨질 못하니 대체재로 조국이 올라온 느낌인데 현재로서는 글쎄올씨다입니다.


    총선에서 출마해서 역할을 맡으라는 여론에도 넘쳐도 움직임이 전혀 없는것도 이해가 갑니다. 나가자니 부산 아니면 강남인데 고향에서 호감 받는 스타일도 아니고 강남에 나와봐야 대한민국 최고 대학 서울대 로스쿨 교수라고 찍어준다는 보장도 없고. 뭐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강북이나 호남에 출마할 수야 없지 않겠어요?


    예전에도 지금도 조국 이미지는 약간 얄미운 실천보다 말이 앞서는 체리피커 리무진 리버럴의 그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게 어떻게 밀어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라고 해봐야 힐러리도 망했지만) 한국서는 그 비호감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한지라. 그러니까 책 좀 작작내고 적당히 소셜미디어를 했어야지.

    이제 끝나는 정권, 그래도 더 해먹어야 하는 간절함만 느껴지는 정국입니다. 강행되건 철회되건 변곡점이죠.

  11. ㅇㅇ 2019.08.25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저나 조국만이 할 수 있는 검찰개혁, 사법개혁 이런 말은 좀 민망하지 않나 싶네요. 형사소송법 개정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 정국에서 설령 강핻이 된들 그거 야당에서 쉽게 받아줄리도 없고.

    무엇보다 검찰개혁의 요체가 결국은 검찰권 축소와 경찰권 강화일텐데 이걸 반길 국민도 많지 않아뵙니다. 애초에 독자 수사권도 없는 덕에 비슷한 수준의 국가에 비해서도 유독 매우 만만한 경찰이 된 것이고 그게 한국인들이 누려온 미묘한 특권이지라.

  12. 옛날에 2019.08.25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이스트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북 페이지에다가 한 졸업자 선배가 "알파메일", "도태" 이야기 했다가 학부생들이 부들부들 댔던 것이 떠오르네요. 본인들은 그걸 순수한 자기의 노력이고, 자기보다 상위계급은 노력이 아닌 환경빨이라고 믿으면서도 재산 등 치부를 건드리는 순간 돌변하는 광경이었습니다. 일종의 정신건강 유지법이자, 뒤틀린 자존감들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마인드셋을 정립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으니까 방어기제로 삼는 것이죠. 물론 그 친구들도 몇 년 지나면 깨닫게 되던가, 아니면 더더욱 심해지던가 둘 중 하나일 건데 적어도 대학 초입~대2병 시기에 불평등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괜히 우에다 치즈코가 동경대 합격생들 상대로 그런 연설을 한 게 아니더라.. 싶었어요.

  13. ㅇㅇ 2019.08.25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릿이 그 베스트셀러의 그릿맞죠?그리고 유전의 영향이 있다는거지 정해진 그릿을 바꿀수없다는건 아니겠죠?

  14. 2019.09.2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