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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01 통계 조작 8
  2. 2009.07.01 이메일의 시대는 가고 5
  3. 2009.07.01 실직하면 명이 짧아진다. 2
  4. 2009.06.30 각자도생 2
  5. 2009.06.30 가카의 산지직거래 드립 by 피노키오 4
  6. 2009.06.30 "Dare to be silly"
  7. 2009.06.29 떢볶기 사먹은 그 돈 7

통계 조작

인구 통계 2009. 7. 1. 12:45
벤쟈민 디스라엘리가 그랬다.

"세상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빌어먹을 거짓말, 그리고 통계 (lies, damn lies and statistics)"

통계 조작은 교묘히 하는 거다. 별 관계없는 통계를 연결시키거나, 매개 변수를 빼고, spurious correlation을 제시하거나, 비교시점을 임의대로 바꾸거나 뭐 그런거다. 이도저도 안되면 전문가가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도록 어렵게 비비꼬는 방법도 있다. 내 경험으로 논문 내용이 부실해도, 일단 통계를 어렵게 꼬면 사람들이 욕을 잘 안한다.

국책연구소인 KISDI에서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국가 경제에 열라 좋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도무지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린아님이 KISDI의 연구 결과를 믿을려면 원달러 환율 652원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냐는 의문을 제기했고, 민주당의 변재일 의원도 KISDI의 보고서 통계가 조작되었다는 지적을 했었다. 급기야 프레시안에서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환율 ITU의 자료에 근거했다는 환율 652원은 ITU보고서에도 없는 완전 조작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 조작을 바로잡으면 결론은 완전히 바뀐다. 미디어법은 통과되면 경제에 좋을 거 하나도 없다로.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KISDI는 묵묵부답이다.

통계가 최악의 거짓말인 이유는 교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뻔뻔하게 숫자 자체를 바꾸는 저급한 거짓말쟁이 통계돌이는 잘 없다. 명박정부가 아무리 강요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연구자의 최후의 도피처는 통계, 팩트다. 이 걸 지멋대로 조작하다니.

아예 "정보통신정책연구소"가 아니라 "정보통신날조연구소"로 이름을 바꿔라. 영어로는 Korea Information Society Development Institute가 아니라 Korea Information Society Deception Institute면 적당하겠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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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에 실린 기사다. 이메일 리스트 서버를 이용하던 학술적 토론이 블로그, 트위터, 위키에 밀려서 사라지고 있단다.

한국은 애초부터 제로보드, 이지보드 등 토론사이트가 발전했지, 이메일 리스트 서버를 이용한 토론은 거의 없었으므로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하긴 한국에서 이메일이든, 보드든, 블로그 등 인터넷은 대중을 위한 공간이었지, 학자의 공간은 아니었다. 인터넷 문화가 일찍부터 발전한 한국에서 왜 인터넷을 이용한 학술토론은 거의 없는지도 연구 대상이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면 몇 개 즐겨찾기의 웹사이트와 블로그들을 한 번 쭉 훓는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리스트 서버로 들어오는 이멜을 체크하는 건, Stata에 대한 토론이 유일하다. 그것도 관심가는 몇 개만 열어보고 대부분 패스.

블로그 등이 새로운 내용의 전파 "속도"를 앞당기는 건 분명한데, 이게 학문적 발전과 학술적 토론의 생산성을 높이는지는 의문이다.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시간잡아먹는 귀신은 아닌지.^^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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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구다.

http://www.miller-mccune.com/health/the-toxicity-of-job-insecurity-1315

40대에 실직을 경험한 사람의 수명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5년 정도 짧아진단다. 실직은 실직 당시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세상에나 약 2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영향은 남는다.

실제로 실업을 경험한 사람 뿐만 아니라, 혹시나 짤리나 않을까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건강도 악화된다.

특히 수입이 안정되지 못한 사람의 건강이 많이 악회된다. 다시 말해, 지나친 노동유연성 증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거다. (유연노동시장이 전체 수입을 늘려서 인류 전체의 평균 생명연장에 기여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실직이 건강을 악화시키는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실직하는지 인과관계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분, 당연히 있을 거다.

수니 알바니의 잘 나가는 젊은 사회학자 스트럴리는 개별적 실업이 아니라 공장 전체가 문을 닫은 경우(그래서 개인의 건강 상태가 실직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상황)를 연구했는데, 이 경우에도 실직자의 전반적인 건강 악화가 관찰되었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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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정치 2009. 6. 30. 07:11
"닥치고 경제"

작년인가? 심상정 전의원 관련 행사에서 지난 대선을 요약하는 시대정신으로 김헌태 전KSOI 소장이 쓴 단어다. 이어서 김소장은 명박시대의 시대 정신을 규정하는 단어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었단다.

"각자도생"

우석훈 선생도 이 말을 이어받아 칼럼에서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다.

이 말 만큼 명박시대의 정책, 명박시대의 시대 정신, 명박시대의 갈등을 잘 요약하는 말이 없다.

명박시대의 시대 정신은 지난 명박통의 간식투어에서도 여지 없이 발현되었다. 가카께서는 영세상인을 위한 대책에 답하여 산지 직거래를 트는 등 각자 알아서 살 길을 찾으라고 일갈하셨다.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도, 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쌍용의 노동자들도, 그들을 몰아내려 공장진입을 시도하는 노동자들도, 모두들 이 번 경제위기에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남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다. 타인을 고려할 수 없는 각자도생 상태다. 이러니 사회 갈등은 극단적으로 강화될 수 밖에 없다. 비열한 거리, 정글의 세계가 명박시대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명박의 삶 자체가 각자도생의 전형이 아닌가.

각자도생이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면 억울하지라도 않겠지만, 명박시대의 각자도생은 고소용s라인의 외곽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감세로 12조를 나눠먹은 사람들은 서민의 십시로 자신들을 위한 일반을 차렸다. 각자도생은 각자도생이나, 모두가 아닌 "서민들은 각자도생"이다.

홉시안 딜레마가 다른게 아니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각자도생을 위해 극단적인 경쟁을 벌이는 사회에서 경쟁을 통해 사회가 발전하는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멸을 길로 들어선다. 각자도생을 위한 경쟁 때문에 아무도 살지 못하고 망하는 사회의 모습이 홉시안 딜레마다.

명박정부의 중도 깃발은 명박통의 시장방문, 대한늬우스, 그의 4대강 정비 추진을 위한 라디오 연설을 볼 때, 서민을 위한 중도정치로의 전환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마는, 민주주의 탄압에서 각자도생 경제의 강화로 포인트를 바꾼 것에 불과한 듯 하다.

홉시안 딜레마의 극복은 "연대"다. 홉스는 딜레마의 극복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는 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다보면 모두가 감옥에 갇힌다는 죄수의 딜레마는 홉시안 딜레마와 같은 의미다. 죄수가 풀려나기 위해서는 막힌 벽을 뚫고 대화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입을 맞춰야 한다.

연대는 지도력이 발휘될 때 이루어진다. 민주민생연대로 민주주의의 위기와 각자도생에 맞서는 시대정신을 제시하는게 진보개혁세력의 시대과제다. 촌스러워보여도 이거 이외의 답은 없는 듯하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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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님이 아래 다신 답글을 본 글로 올립니다. 단락별 숫자와 강조는 편집자가 넣은 것입니다.


아 참. 가카가 정말로 시장 상인에게 산지와 직거래를 트라는 조언을 하셨나요?

정말 그렇다면 그야말로 현재 농산물과 수산물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 유통 소비되고 있는지 눈꼽만큼도 모르는 무식한 소리입니다. 일반인들이야 잘 모르니까 언뜻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같은 정책 책임자가 저런 소리를 했다면 아 이건 뭐...

만약 그 조언대로 시장 상인들이 산지 생산자에게 가서 직거래를 튼다고 해보죠. 대충 생각하면 중간 유통 마진이 없어지니 서로에게 이익이라는 계산이 들겠지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1.

우선 생산자 입장에서 그것은 매우 피곤한 방식입니다. 대량구매하는 중간상에게 싼 값에 한꺼번에 목돈 받고 넘기고서 생산에만 전념하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조금 비싸지만 소규모로 일일이 직거래 상인들에게 주문받은만큼 배송하는 것이 나을까요? 그 작업에 매달려야하는 인건비는? 그리고 건마다 발생하는 배송비는? 더 좋은 값을 쳐주는 직거래처를 찾는 홍보 비용은? 그러다 직거래처를 못찾아서 제때 팔지 못해 생산물이 썩는다면 그 피해는? 생산자 입장에서 답은 뻔한거죠..

가카께서는 농수산물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도 없고, 상품화한지 2일 이내에 소비되지 않으면 그 가치가 사라지고 마는 특수한 상품이라는 걸 당체 모르는거죠.

2.

그럼 시장의 영세상인 입장에서는 어떨가요? 우선 산지에가서 직거래 요청해봐야 일언지하에 거절당합니다. 물론 한 두건 노는 시간에 응해주거나 하는 일은 있겠지만, 위 말씀처럼 생산물을 그런 식으로 처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일단 산지에서 모두 직거래에 응하는 기적이 발생한다고 해보죠. 우선 농수산물의 품질은? 일일이 가서 확인하나요? 결국 생산자의 양심에 맡겨야합니다. 그러다 맘에 들지 않는 상품을 배송받으면? 반품하나요? 만약 그랬다간 그 즉시 직거래는 중단되고 말겁니다. 안전하게 현금화 해주는 중간상인들이 있는데 반품의 위험을 안고 직거래할 생산자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직거래로 배송되는 농수산물이란, 중간상인들에게도 팔리지 않는 하급품밖에는 없게 되는거죠.

3.

현재 농수산물은 이런식으로 유통됩니다. 예를 들어 갯벌에서 채취하는 조개류를 들어보죠. 일단 산지 어민들이 갯벌에서 채취한 조개들을 공매장에서 중간상인들에게 경매로 넘깁니다. 이때 현금으로 즉시 교환됩니다. 중간상인들은 그날 저녁 그 조개들을 트럭 단위로 가락동이나 노량진의 경매사에게 배송합니다. 경매사는 그보다 적은 단위로 그것을 중매인들에게 경매합니다. 경매된 현금은 시장운영자에게 입급되고, 즉시 중간상인에게 재입금됩니다. 중매인들은 종류별로 모인 조개들을 분류한뒤 일제히 거래하는 도매나 소매상들에게 전날 받은 주문량만큼 배송합니다. 갯벌에서 소비자 식탁까지 전 과정이 하루안에 모두 이루어지고, 이 모든 과정에 시장 경쟁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4.

과거 김대중 정부시절 어떤 꼴통같은 공무원이 산지 직거래를 실현하겠다면서 중간상인 중매인 시스템을 뜯어고치려고 했었는데, 시행 며칠만에 산지에서는 물건들이 썩어가고, 시장에서는 물건이 없어 가격이 몇배씩 폭등하는 일이 벌어졌죠. 결국 흐지부지 되었는데, 그때 정책담당자들이 깨달은 것은, 현재의 시스템이 농수산물 유통에는 모두에게 유리한 최적의 방식이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난리통을 겪었는데도, 그놈의 산지 직거래 떡밥은 오늘도 우리의 서민대통령까지 다시 낚는데 성공하는군요.

참고로 대형마트들조차 농수산물은 몇몇 대량판매되는 품목들 빼고는 감히 직거래 못합니다. 제가 알기로 대부분 농수산물 시장의 중매인들 손을 거쳐서 납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영세상인한테 가서 산지 직거래를 설교하다니 안습입니다.. 그 상인 아마 속으로 욕 좀 깨나 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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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e to be silly"

기타 2009. 6. 30. 05:46
대한늬우스 아이디어를 낸 명박통의 원칙이 아니고, 노벨상을 받은 폴 크루그만의 연구 원칙 중 하나란다.

폴 크루그만의 대중서와 그의 칼럼은 많이 읽었는데, 그의 학문적 업적은 내 나와바리가 아니라 하나도 읽은게 없다. 그런데 최신 AER에 그의 논문이 실렸길레 호기심에 한 번 읽어봤다.

뭐 그리 재미있는 논문이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한 논문은 아니다. 학술적 jargon을 많이 섞은 노벨상 회고록 정도의 글. 심심하신 분들은 읽어 보시고 (회원[기관]이 아닌 사람이 다운받을려면 7.5불 내야 한다).

신무역이론이라고 명명되는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아이디어가 예전에 얼마나 무시당했었는지를 회고하며, 폴 크루그만이 하는 소리가, "바보같은 소리도 두려워말고 해보자는게 나의 연구 원칙 중 하나 ("Dare to be silly" became one of my principles for research)" 였단다.

히트작을 낼려면 대담해야 한다는, 블로그에나 써야 할 소린데, 이런 흰소리를 AER같은 경제학 탑저널에 대담하게 할 수 있고, 그런 글이 저널의 첫 논문으로 실린다는게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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떢볶기 사먹은 그 돈

정치 2009. 6. 29. 07:30
대형슈퍼 때문에 장사 못해먹겠다는 상인에게 명박통이 충고하셨다.

"산지와 직거래를 트라."

이 걸 본 노회찬씨가 한 마디했다.

"종부세 깎아서 2300만원 돌려받은 거 가지고 시장에 가서 겨우 10만원 썼다."



종부세와 대형슈퍼는 시스템의 문제, 제도의 문제고, 시장에서 10만원쓰고 산지와 직거래를 트는 건, 개인의 노력 문제다. 어떤 어려움 가운데에도 개인이 노력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명박통 개인은 모든 시스템의 어려움을 이기고 성공한 개인이다. 어린 시절의 가난도, 건설 현장의 거침도, 김유정의 폭로도, 심지어 BBK까지도 그의 길을 막지 못하였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성공 케이스다.

이 번 간식 투어에서도 어김없이 그의 "나도 한 때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나도 한 때는 영세상인이었다"는 "나도 한 때는~" 레파토리가 반복되었다.

명박통의 과거 체험 레파토리는 공감이 있고 울림이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역경을 이기지 못한 답답한 족속들에게 짜증내는 목소리로 들린다. 산지 직거래를 트지 못하고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러 있는 답답이에 대한 짜증. 이렇게 들리는 이유는 이율배반적인 그의 정책 행보 때문일거다.

구조와 시스템, 제도에 대한 무시가 일관적이기라도 하면, 진정성이라도 있다고 치지, 종부세 인하, 법인세 인하, 부자 신문 살리기 법은 어쩜 그렇게도 제도적 보완을 잘 하는지. 그 자신을 포함한 부유층의 이익은 시스템으로 보존해주고, 서민들의 이익은 "산지와 직거래를 트라"는 개인 행동에 대한 충고로 막음질하는 지금까지의 행태.

이런 정치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부자를 위한 케인주의? 우석훈 식으로 토목 신자유주의? 그냥 엠비다움? 뭐가 되었든 부자 세금 깎아서 서민 떢볶기 사먹는 정치를 일컬어 중도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명박식 "나도 한 때는~" 레파토리를 들으면 소시적에 쓰던 알흠다운 단어가 생각난다.

"니똥 굵다!"


ps. 민주당은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해야지 왜 개인에 촛점을 맞춘 논평을 내놔서 점수를 까먹는지. 명박옹이 촛불 시위 직후에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떢볶기 사먹은 그 돈, 어디서 나온거야?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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