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다...

기타 2009. 5. 28. 13:56

요게 100달러로 100밀리언 (우리 돈으로 치면, 10만원 자기앞수표로 전노 등이 받아먹었다는 1000억)

요게 10억달러 (우리 돈으로는 1조?). 100불짜리로.




요건 1조달러. 왼쪽 구속에 빨간 점하나, 그게 사람이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걍 많다.



소스: http://www.pagetutor.com/trillion/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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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80052155&code=940301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지위 상의 차이로 생기는 이런 불평등을 positional inequality라고 하는데, 불평등의 중요 요인 중 하나는 이처럼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화된 관습이다. 교육이나 기술처럼 생산성과 관련된 요소가 아니라.

한국 사회는 그 비중이 다른 사회보다 너무 크다.

이런 불평등은 그냥 바꾸면 바꿀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을 바꾸는 데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척,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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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패닉 인구

인구 통계 2009. 5. 28. 05:26
오바마가 히스패닉계인 Sotomayor를 대법관에 노미네이트한 이유 중 하나는, 다 아는 얘기지만,


미국의 출산율이 인구 재생산 레벨(2.1)을 가볍게 넘는 이유는 순전히 히스패닉과 흑인 때문이다. 백인과 아시안은 2 이하거나 간당간당하다. 아시안 인구가 늘어나는 이유는 재생산이 아니라 이민의 유입 때문. 유권자의 인구 구조 변화는 앞으로도 당분간 쭈~욱 계속된다.

70년대 닉슨이 시작한 인종간 혐오에 바탕을 둔, 암시적 백인 우월주의 선거전략은 인구구조 변화 때문이라도 지속되기 어렵다.

참고로 히스패닉이란 흑, 백, 아시안 같은 인종적 의미가 아니라, 라틴계라는 민족/문화 그룹을 의미함. 백인 히스패닉,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히스패닉이 모두 존재.

그래프는 요기(Pew Research Center)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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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지지율이 22%로 10%포인트 폭락하고, 민주당은 21%로 8%포인트가 올랐다. MB 지지율도 20%대 후반으로 폭락.

한나라당과 MB지지율 떨어지는건 이해한다고 해. 민주당이 한게 뭐가 있어서?

노무현 전대통령이 그래도 민주당 소속이라는 사람들의 생각 밖에는 다른게 없다. 식물정당에서 팔팔하게 살아 숨쉬는 대안정당으로 살아나는거, 한 순간이다. 이러다가 다 죽겠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기 시작한거다.

이 정국에서 선거구제 개편 같은 얕은 수로 노 전대통령의 유지를 이를려는 정치인은 별로 없을게다.

진보개혁세력은 <정치인들의 활동, 권모술수로써의 정치>와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결합해야만 산다. 지금은 서로 다른 세력으로 분리되어 별도의 활동을 하던 두 정치를 화학적으로 융합할 절호의 찬스다. 노 대통령이 온 몸 던져 제시한 메시지다.

호남 중심의 민주당 재건론은 전자만 있지 후자가 없어서 성공할 수 없고, 친노세력 중심의 정면돌파론은 후자만 있지 전자가 없어서 성공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변화 때문에 호남 중심 재건론이 타 지역, 타 계층과 연대할 수 있는 진보적 의미를 가지기 보다는 지역이기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커졌으며, 다수 대중의 물질적 욕망을 수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진보적 호남과의 결합없이 한국 사회의 진보적 아젠다를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정치적 능력은 현재도 없고 상상 가능한 미래에도 없다.

지역 등권론이 <운동으로써의 정치>도 포괄할 수 있었던 힘은 지역불균등 발전을 치유하는 경제적 함의와 5.18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운동을 완성하는 정치적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호남으로 대비되는 지역 불균등 발전 보다는 수도권 대 비수도권, 강남 대 강북으로 대비되는 계급 갈등의 의미가 더 커진 상황, 5.18 기념식마져도 내부 갈등을 겪는 현 상황은 호남이 더 이상 <운동으로써의 정치>의 바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친노세력은 그 구성원의 활동에서도 그렇고, 정치적 성향에서도 계급갈등을 해결하려는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가지고 있으나, 그들의 막연한 열망을 실현할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없고, 정치활동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실현할 당선 가능한 정치인들도 없다.  친노세력이 그들의 순수 혈통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운동으로써의 정치>의 대의를 몇몇의 심리적 자족을 위해 내버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전형적인 운동권 소아병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얼마전에 조사한 것처럼, 호남은 진보적 호남과 이기적 호남으로 분열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호남은 그 어떤 표밭보다 진보적이다.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추동하는 세력이 진보적 호남과 결합할 때, 진보적 호남이 지역이기주의적 호남을 압도하고 한국 사회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

어떤 정치도 실익과 명분을 분리해서 성공하지 못한다.

미국 공화당이 80년 이후 오랫동안 해먹을 수 있었던 것도 보수주의 운동과 정치를 결합했기 때문이고, 오바마가 성공한 것도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과 정치를 결합했기 때문이다. 루즈벨트가 새로운 미국, 새로운 세계의 역사를 쓴 정책을 펼친 것도, 미국 진보정치, 사회주의 운동의 아젠다와 지지를 그의 권모술수와 융합시켰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의 실패는, 그 역시 양자를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몸을 던져 마련한 마지막 승부수다. 지금 <정치인들의 활동, 권모술수로써의 정치>와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결합함으로써 이 유지를 이어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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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 모든 사람이 겸임교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 AFT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사이에 이미 정년을 보장받았거나 연구 성과가 좋으면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년트랙 교수직은 51%에서 39%로 12%포인트 감소하였다.

이 자리를 겸임교수, 연구교수 등등의 임시직들이 채우고 있다. 비정년트랙 교수직도 약간 증가. 미국에서 정년트랙 교수직 잡기가 점점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가는듯.

그래프는 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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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ternet.org/rights/140205

시카고의 Erich "Mancow" Muller라는 보수파 라디어 호스트가 물고문(waterboarding)은 고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물고문을 당해 본 결과, 물고문은 고문이라고 "자백"하였다.

물고문 시작한지 단 6초만에 "absolutely torture"라고.

Mancow라는 양반, 전쟁에 반대했던 민주당 하워드 딘에게 "비열하고", "피에 굶주린", "악마"라고 욕하며 미국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던 보수꼴통 강경파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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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년간 미국에서 여성의 객관적 지위는 지속적으로 향상되었지만, 그들의 주관적 행복도는 더 떨어져, 과거에는 주관적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행복하게 느겼지만, 이제는 여성이 남성보다 불행하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Stevenson and Wolfers: http://papers.nber.org/papers/w14969

보수적인 논객들은 이 결과를 "전통적인" 여성 역할이 여성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문열의 <선택>이 전파하는 이데올로기와 어쩜 그리도 똑같은지.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는 부유한 국가의 시민들의 평균 행복도가 가난한 국가의 시민들의 평균 행복도 보다 반드시 높지는 않지만, 국가 내에서 부유한 시민들의 행복도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높다는 것이다. 얼만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행복은 절대적 기준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비교를 통해 나오는 상대 평가다. 심지어 아우슈비츠에 있던 사람들의 행복도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그들이 행복한지 아닌지. 폐쇄사회일수록 행복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불행은 relative deprivation을 통해 느끼고, 그러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비교집단이 필요하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면, 그들의 비교집단이 늘어나고 그에 비해 그들의 객관적 지위의 향상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게 당연하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주관적 행복도가 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를 근거로 경제 발전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들이나, 여성의 객관적 지위 향상이 그들의 주관적 행복도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여성 운동 무용론을 펼치는 사람이나 도찐개찐이다.
Posted by so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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